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Felix Mottl(펠릭스 모틀)

정준극 2012. 6. 5. 08:44

Felix Mottl(펠릭스 모틀)

 

위대한 바그너 지휘자이며 작곡가인 펠릭스 모틀

 

펠릭스 요제프 폰 모틀(Felix Josef von Mottl: 1856-1911)은 오늘날 비엔나의 히칭인 운터 장크트 바이트(Unter Sankt Veit)에서 태어난 지휘자 겸 작곡가이다. 모틀은 1900년대 초반, 비엔나에서 가장 뛰어난 지휘자였다. 특히 바그너의 해석에 있어서 찬란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작곡가로서 그는 세 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그중에서 '아그네스 베르나우어'(Agnes Bernauer)는 1880년 봐이마르에서의 초연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는 이밖에도 현악4중주곡과 많은 가곡들을 작곡했다. 모틀이 바그너의 '베젠동크 가곡'의 오케스트레이션을 한 버전은 지금도 가장 훌륭한 것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그는 또한 훌륭한 음악교사였다. 그의 제자 중에는 에르네스트 반 다이크(Ernest van Dyck), 빌헬름 페터센(Wilhelm Petersen)등이 있다.

 

모틀은 어려서부터 음악에 대한 소질이 풍부하여서 궁정채플인 뢰벤부르크 코르빅트에서 성악훈련을 받았으며 이어 비엔나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였다. 모틀은 지휘자로서 바이로이트극장에서 링 사이클을 처음으로 공연할 때에 한스 리히터의 보조역할을 하였다. 이어 1886년에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성공적으로 지휘하였다. 1881년부터 1903년까지는 칼스루에 오페라의 지휘자로 바그너, 베를리오즈, 엠마누엘 샤브리에의 작품 해석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모틀은 또한 샤브리에의 '부레 환상곡'(Bourree fantasque)와 '세곡의 로맨틱 왈츠'(Trois valses romantiques)의 오케스트라 파트를 완성하였다. 그는 바그너 전문 지휘자로서 런던과 뉴욕의 초청을 받아 지휘하였다. 뉴욕에서는 특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바그너 지휘자로서 바그너의 작품을 뉴욕에 알리는데 기여를 했다.

 

비엔나의 19구에는 펠릭스 모틀을 기념하여 펠릭스 모틀 슈트라쎄(Felix Mottle Strasse)가 있다. 사진은 펠릭스 모틀 슈트라쎄의 코너길이다. 이 거리의 20번지에는 베트남대사관이 있다.

 

펠릭스 모틀은 1911년 6월 21일 뮌헨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하는 중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졌다. 100번째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하던 것이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1일 후인 7월 2일에 숨을 거두었다. 펠릭스 모틀은 체코 오리진의 소프라노인 츠덴카 파스벤더(Zdenka Fassbender: 1879-1954)와 오래동안 연인이었다. 두 사람은 모틀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에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났다. 츠덴카 파스벤더는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브륀힐데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소프라노였다.

 

브륀힐데 역의 츠덴카 파스벤더. 펠릭스 모틀이 병상에 있을  때에 결혼식을 올렸다. 모틀은 결혼식을 올린지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모틀은 46세였고 파스벤더는 23세였다. 파스벤더는 남편 모틀이 세상을 떠난후 52년을 더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