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Walter Jurmann(발터 유르만)

정준극 2012. 6. 5. 11:09

Walter Jurmann(발터 유르만)

 

발터 유르만과 이본느 유르만

 

비엔나에서 태어난 발터 유르만(Walter Jurmann: 1903-1971)은 나치를 피하여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주로 영화음악을 만든 오스트리아-미국의 작곡가이다. 그는 원래 의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피아노에 대한 재능을 버리지 못하여 니더외스터라이히의 젬머링에 있는 어떤 1급 호텔의 라운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이어 의학공부를 집어치우고 음악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음악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비엔나를 떠나 베를린으로 갔다. 역시 팝음악은 비엔나보다는 베를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베를린에서 대중적인 여러 노래들을 작곡하여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Du bist nicht die Erste 이었다. 아마도 1920년대에 그가 작곡한 가장 유명한 곡은 Veronika, der Lenz ist da 일 것이다. 이곡은 남성 아카펠라 앙상블인 '코메디안 하르모니스트'가 불러서 대 히트를 기록하였다. 무성영화가 지나가고 유성영화가 도착하자 그는 영화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히트곡은 Ihre Majestat, die Liebe(여왕폐하, 사랑)였다. 유르만의 멜로디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부르기가 쉽기 때문에 새로운 영화음악이 나온 다음날에는 이미 사람들이 거리에서 흥얼거릴 정도였다.

 

소프라노 겸 배우인 데아나 더빈과 함께. 서 있는 사람은 조 파스테르나크(헝가리 출신, 미국의 영화제작자)

 

1933년에 나치가 정권을 잡자 그는 베를린을 떠나 파리로 갔다. 그는 파리에서 계속 노래를 작곡했으며 때로는 샹송 스타일의 노래를 작곡하여 사랑을 받았다. 그는 1934년에 영화제작자인 루이스 마이어(Louis Mayer)를 만났다. 마이어는 유르만에게 미국에서의 7년 계약을 제시했다. 마이어는 사무엘 골드윈과 함께 메트로 영화사를 인수하여 메트로 골드윈 마이어(Metro Goldwyn Mayer: MGM) 회사를 설립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유르만은 파트너처럼 일하던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인 브로니슬라브 카퍼(Bronislaw Kaper: 1902-1983)와 함께 할리우드로 갔다. 할리우드에서 유르만이 만든 영화음악은 Mutiny on the Bounty(바운티호의 반란: 1935: 타히티의 러브 송), San Francisco(샌프란시스코: 1936), A Day at the Races(경마장의 하루: 1937: All God's Chillun Got Rhythm), 주디 갈란드가 출연한 Presenting Lily Mars(릴리 마스를 소개합니다: 1943) 등이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그는 1953년 어떤 파티에서 헝가리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인 이본느 옐리네크(Yvonne Jelinek)를 만나 결혼하였다. 유르만은 1971년 유럽을 여행 중에 부다페스트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을 거두었다. 부인인 이본느의 고향이었다. 유르만의 시신은 미국으로 운구되어 헐리우드의 훠에버 공동묘지(Forever Cemetery)에 안장되었다.

 

1967년경 부인 이본느와 함께 텍사스의 산안토니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