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비올레타를 창조한 마리아 스페치아 알디기에리

정준극 2012. 6. 12. 08:22

마리아 스페치아 알디기에리(Maria Spezia-Aldighieri)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

'가면무도회'의 세계 초연에서 아멜리아 역할도 담당

 

마리아 스페치아 알디기에리

 

마리아 스페치아 알디기에리(Maria Spezia-Aldighieri: 1828-1907)는 1854년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베니스의 테아트로 산 베네데토에서 재초연되었을 때에 비올레타를 맡아 비올레타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이다. 재초연이라고 한 것은 실상 '라 트라비아타'는 1853년에 초연되었지만 출연진의 미흡함 등으로 관중들의 야유를 받아 실패로 돌아갔으나 베르디가 오리지널 스코어의 몇 부분을 수정하여 이듬해인 1854년에 다른 극장에서 다시 무대에 올려 이번에는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마리아 스페치아 알디기에리는 1849년에 오페라 소프라노로서 데뷔하여 1870년대까지 세계의 오페라 무대를 주름 잡았던 유명 소프라노였다. 그는 특히 콜로라투로 소프라노의 역할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바리톤 고타르도 알디기에리와 결혼하였으며 가수 조지 아론(George Aaron)의 할머니가 된다.

 

마리아 스페치아는 베로나에서 태어났다. 베로나에서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오페라 데뷔는 1849년 필라르모니코(Fliarmonico)극장에서 벨리니의 '텐다의 베아트리체'(Beatrice di Tenda)의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었다. 이어 도니체티의 '마리아 파딜라'(Maria Padilla)와 베르디의 '아틸리'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큰 주목을 받았다. 1852년부터 1년 동안은 러시아의 생페터스부르크의 마리인스키 극장에 전속되었다. 그후 이탈리아에 돌아온 그는 2년여 동안 이탈리아 전역의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여러 역할을 맡으며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명성을 떨쳤다. 예를 들면 나폴리의 산 카를로 국장, 토리노의 테아트로 레지오, 로마의 코스탄치 극장, 아폴로 극장, 베니스의 라 페니체극장 등이었다. 그는 또한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에 출연했다.

 

1854년에 베르디는 마리아 스페치아에게 비올레타의 역할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베니스의 산베네데토극장에서였다. 라 트라비아타는 1853년 4월에 페니체극장에서 초연을 가졌으나 실패로 돌아간 일이 있다. 그러나 두번째 초연인 산베네데토극장에서의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마리아 스페치아는 나중에 비올레타를 파리의 이탈리아극장에서 다시 맡아 큰 갈채를 받았다. 이어 밀라노의 라 스칼라 등 이탈리아의 여러 극장에서 비올레타를 맡아 대기염을 토하였다. 베르디는 미완성 오페라인 Re Lear(리어 왕)에서도 마리아 스페치아를 가장 이상적인 코르델리아로 내정했었다.

 

1855-56년에 마리아 스페치아는 나폴리의 산카를로 극장에 전속되었다. 그때 그는 마리에타 스페치아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다. 이곳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들은 '나부코'의 아비가일, 에리코 페트렐라(Errico Petrella)의 '마르코 비스콘티'(Marco Visconti)에서 비체(Bice), '에르나니'의 엘비라, '주세페 아폴로니'(Giuseppe Apolloni)의 '레브레오'(L'ebreo)에서 레일라, '일 트로바토레'의 레오노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로시나, '로한의 마리아'(Maria di Rohan)의 타이틀 롤, 그리고 물론 비올레타 등이었다. 이때가 마리아 스페치아의 전성기였다. 그는 1857년에 런던의 여왕폐하극장에서 '라 화보리타'의 이네즈 역할을 맡았다. 같은 해에 그는 마이에르베르의 '위그노'에서 발렌탱(Valentine)으로 라 스칼라에 데뷔하였다. 이어 1858년에는 다시 라 스칼라에서 스테파노 론케티 몬테비티(Stefano Ronchetti-Monteviti)의 '페르골레세'(Pergolese)의 세계초연에서 마틸데를 맡아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1861년에 그는 그때는 이미 남편이 된 바리톤 알디기에리의 상대역으로서 라 스칼라와 나폴리의 산 카를로에서 '나부코'의 아비가일을 맡았다. 그때부터 마리아 스페치아는 마리아 스페치아 알디기에리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862년에는 산 카를로에서 베르디의 '가면무도회'가 초연되었을 때 남편 레나토의 상대역인 아멜리아를 맡아 오페라의 역사에 기록되었다. 같은 해에 마리아 스페치아 알디기에리는 빈첸조 모스쿠짜(Vincenzo Moscuzza)의 '돈 카를로'의 세계 초연에서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 역할을 맡아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또한 산 카를로에서 엔리코 베비냐니(Enrico Bevignani)의 '카테리나 블룸'(Caterina Blum)의 세계 초연에도 출연하였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 출연은 1872년 볼로냐의 테아트로 코무날레에서 벨리니의 '노르마'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었다.

 

마리아 스페티아 알디기에리의 사진을 담은 '라 트라비아타' 음반 커버

 

마리아 스페치아 알디기에리가 주역을 맡았던 다른 오페라들은 베르디의 '해적'(I masnadieri) 에서 아말리아, '오텔로'의 데스데모나, '리골레토'의 질다, '롬바르디의 첫 십자군'에서 지셀다와 비클린다, '막베스'에서 레이디 막베스, '두 사람의 포스카리'에서 루크레치아, 카를로 페드로티(Carlo Pedrotti)의 '마제파'(Mazeppa)에서 마리아,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와 '베르지의 젬마'(Gemma di Vergy)의 타이틀 롤, 아킬레 페리(Achille Peri)의 '주디타', 베르디의 '루이자 밀러', 테드로티의 '로르메의 마리온'(Marion de Lorme)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