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시베리아의 디바 에테리 그바차바

정준극 2012. 8. 21. 16:56

에테리 그바차바(Eteri Gvazava)

시베리아의 디바

 

 

시베리아 출신의 소프라노 에테리 그바차바는 20세기의 말에 국제적으로 놀라운 명성을 쌓은 디바이다. 그는 시베리아 출신으로서 러시아인이지만 실은 그 자신이 코카서스(카프카스) 산맥의 작은 공화국인 그루지아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에테리 그바차바의 아버지는 러시아인이지만 어머니는 그루지아(조지아)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그루지아가 시베리아보다 더 따듯하고 더 정열적인 곳이라며 마치 이탈리아와 같다고 말해왔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 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노보시비르스크는 고향인 옴스크에서 기차로 하룻밤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의 선생은 니나 루비아노스브카야였다. 훗날 에테리는 니나 루비아노스브카야 선생에 대하여 '진정한 스승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와 같은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할 때에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라고 말하며 존경하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을 맡은 에테리 그나차바

                    

1995년에 노보시비르스크 음악원을 졸업한 에테리는 독일로 가서 칼스루에 음대에 들어갔다. 칼스루에에서는 여러 친구들을 사귈수 있었다. 친구 중의 하나인 피아니스트 페터 넬슨은 에테리에게 '이제 준비가 다 된 것 같으니 국제성악경연대회에 나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에테리가 처음으로 도전한 국제성악경연대회는 독일에서도 이름난 레코드 제작사이며 음악출판사인 베르텔스만(Bertelsmann)이 주최한 경연대회였다. 에테리가 1등을 차지했다. 라 보엠에서 '내 이름은 미미'(Si, mi chiamano Mimi)를 불렀다. 놀라운 테크닉과 따듯한 음성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1997년에 에테리는 어떤 전화 한통을 받았다. 앞으로 에테리의 에이전트 역할을 하겠다고 제안하는 전화였다. 실은 저명한 피아니스트이며 반주자인 챨스 스펜서(Charles Spencer)가 주선한 제안이었다. 챨스 스펜서는 에테리가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 전부터 에테리의 경력을 자세히 눈여겨 보았으며 에테리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도와주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챨스 스펜서는 크리스타 루드비히, 군둘카 야노비츠(Gundulka Janowitz)와 같은 저명한 성악가들의 반주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챨스 스펜서는 에테리를 제작자인 조르지오 슈트렐러(Giorgio Strehler)에게 소개해 주었다.

 

'여자는 다 그래'에서 피오르딜리지를 맡은 에테리 그나차바(오른쪽)

                

슈트렐러는 특이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슈트렐러는 피콜로 테아트로라는 작은 극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이 극장에서 공연할 성악가들의 그룹을 조직하였는데 무명 및 신인을 주축으로 했다. 첫번째로 계획한 작품이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였다. 슈트렐러는 '여자는 다 그래'에 뛰어난 재능의 신인들을 기용할 생각이었다. 공연은 그해 12월로 예정되어 있었고 주연급 선발을 위한 오디션은 4개월 전인 8월에 실시되었다. 슈트렐러는 '여자는 다 그래'에 출연할 성악가들이 매력적인 면모를 갖추어 관중들의 호감을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에테리는 이러한 조건에 맞는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소프라노였다. 그런데 사실 에테리는 오디션에서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몸이 아파서였다. 하지만 슈트렐러는 에테리의 빛나는 음성을 높이 평가하여 오디션에 실패한 것은 몸이 아파서인 것을 감안하고 며칠 후에 다시 기회를 주었다. 그리하여 에테리는 완벽한 피오르딜리지로서 발탁되었다. 리허설은 12월 초부터 시작되었다. 슈트렐러가 크리스마스 날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모두들 열심히 연습을 했다. '여자는 다 그래'는 밀라노의 누오보 피콜로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어찌나 인기를 끌었던지 43회의 연속공연을 기록했다. 당시 오페라로서 이만한 공연은 전혀 예가 없었던 일이었다. 더구나 이탈리아 TV에 방송되기도 했다. 이어 유럽의 여러나라와 일본에서까지 방송되었다.

 

콘서트 연주회에서의 에테리 그바차나

                               

에테리는 북독일의 빌레펠트(Bielefeld) 오페라극장에 자리를 잡았다. 에테리는 오페라 공연에 대한 준비사항들을 배웠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배웠다. 에테리의 오페라적 재능은 날로 향상되었다. 에테리는 2000년 말에 이미 타티아나(유진 오네긴), 류(투란도트), 미카엘라(카르멘), 그레텔(헨젤과 그레텔), 돈나 엘비라(돈 조반니), 줄리엣(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루살카의 타이틀 롤을 두루 맡았다. 그러는 중에 어떤 제작자가 에테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안드레아 안더만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국제적으로 히트한 TV 오페라인 '토스카'를 제작한 경력이 있었다. 안더만은 에테리를 내세워 TV를 위한 '라 트라비아타'를 제작하고 싶어했다. 제목은 '파리의 트라비아타'(Traviata a Paris)라고 했다. 이 작품은 2000년 6월에 유럽의 대부분 지역에서 TV로 방영되었다. 알프레도는 당대의 테너 호세 쿠라가 맡았고 이탈리아의 바리톤인 리지에로 라이몬디가 제르몽을 맡았다. 그리고 지휘는 주빈 메타였다. 이 영화의 촬영 이후 에테리는 실제로 무대에서 비올레타로서 만인의 심금을 울렸다. 오늘날 에테리 그바차바는 노래와 연기의 양면에 있어서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중견 오페라 성악가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비올레타를 맡은 에테리 그바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