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6. 주세페 베르디의 '아이다'(Aida)

정준극 2012. 7. 21. 10:12

베르디의 '아디다'(Aida 또는 Aïda)

 

'아이다'(Aida)는 주세페 베르디의 4막 오페라이다. 그랜드 오페라의 대명사와 같은 작품이다. 특히 개선장면에서의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는 가히 모든 오페라를 압권이다. 어떤 공연에서는 낙타는 물론 코끼리까지 무대에 등장안 일이 있으니 웅장한 무대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이다'의 이탈리아어 대본은 안토니오 기슬란초니(Antonio Ghislanzoni: 1824-1893)가 썼다. 프랑스의 이집트학자인 오귀스트 마리에트(Auguste Mariette: 1821-1881)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완성한 것이다. 기슬란초니는 베르디를 위해 '돈 카를로스'의 이탈리아어 대본을 썼으며 '운명의 힘'의 두번째 버전의 대본을 쓴 사람이다. 그만큼 오페라 대본에 대하여 관록이 있는 사람이었다. 오귀스트 마리에트는 프랑스의 고고학자로서 특히 이집트학에 깊은 조예가 있으며 동시에 작가였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는 1871년 12월 24일 이집트 카이로의 케디비알 오페라 하우스(Khedivial Opera House)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지휘는 조반니 보테시니(Giovanni Bottesini)였다. 아이다는 이 오페라의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에티오피아의 공주인데 이집트에 포로로 잡혀와서 이집트 공주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는 여인이다. 원래 아이다라는 말은 아랍어로서 '방문자'(Visitor) 또는 '돌아온 사람'(Returning)이라는 뜻이며 아랍소녀들의 이름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이다.

 

'아이다' 포스터

 

당시 이집트와 수단을 통치하는 케다이브(Khedive: 총독)인 이스마일 파샤(Isma'il Pasha: 1830-1895)는 베르디에게 1871년 1월에 카이로에서 공연할 '아이다'의 작곡을 의뢰하면서 15만 프랑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돈도 돈이지만 '아이다'의 스토리에 이끌린 베르디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작곡에 착수하여 얼마후 불후의 명작인 '아이다'를 완성했다. 그러나 '아이다'의 초연은 당시 보불전쟁으로 연기될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12월에 가서야 겨우 무대에 올릴수 있었다. 그러는 중에 '아이다'의 원작에 대하여 논란이 있었다. '아이다'의 원작이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작곡가 겸 대본가인 테미스토클레 솔레라(Temistocle Solera: 1815-1878)라는 주장이 있었다. 솔레라는 '아이다'를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인 니테티(Nitteti: 1756)를 바탕으로 작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이 있었을 뿐이며 강력한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한편, 일반적으로 베르디의 '아이다'는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서 작곡되었고 아울러 카이로의 케디비알 오페라 하우스의 개관을 기념해서 작곡되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것도 사실과는 다르다. 케디비알 오페라 하우스의 개관기념으로는 베르디의 '리골레토'가 공연되었다. 그리고 실은 이스마일 파샤가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여서 베르디에게 '아이다'의 작곡을 의뢰했다는 것은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베르디는 '나는 무슨 기념일을 위해 작곡하지는 않습니다'라고 거절하였다고 한다. 과거에 보면 국왕의 생일, 결혼기념일, 전승기념일, 세례 기념일 등을 위해 오페라를 작곡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베르디는 그런 형식적인 사항에 얽매이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다'의 무대. 아버지 아모나스로를 발견하고 만나는 아이다

 

'아이다'에는 서곡이 있는가 없는가? 대답은 '있지만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있다'이다. 베르디는 처음에 서곡을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도 섭섭하여서 짧은 서주 부분만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꾸 서곡이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므로 짧은 서주 부분 대신에 여러 형태의 음악을 혼합하여서 서곡을 만들었다. 하지만 베르디는 실제 초연에서 서곡 부분을 연주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대하여 베르디는 서곡이 '허세만 부리는 무미건조한 것'(Pretentious insipidity)라고 말하였다. 오늘날 베르디가 만든 서곡은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있다. 다만, 1940년 3월에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미국 NBC 교향악단이 방송을 위해 서곡을 연주한 일은 있다. 그런가하면, '아이다'가 4막까지 있는 긴 작품이므로 서곡을 제외하여서 되도록이면 공연시간을 줄일 생각도 있었다.

 

라다메스의 개선을 축하하는 장면

 

'아이다'의 초연은 대단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 것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대여서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더구나 고대 이집트의 화려함을 재현한 것이어서 이집트 총독을 맡고 있는 이스마일 파샤는 '아이다'에 대하여 그저 대만족이었다. 초연의 의상, 장신구, 무대장치 등은 모두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직접 디자인 한 것이었다. 베르디는 카이로에서의 초연에 참석하지 못했다. 베르디는 이집트 당국이 초연에 정치인, 비평가, 귀족들만을 초청한 것에 대하여 대단히 실망하였다. 베르디는 일반 대중들은 아무도 관람하지 못하였음을 유감으로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베르디는 카이로 초연의 이듬해인 1872년 2월 8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이탈리아 초연을 사실상의 '아이다' 초연으로 간주하였다. 베르디는 라 스칼라의 초연에서 무대장치의 세세한 사항까지 관여하므로서 '아이다'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보여 주었다.

 

'아이다'가 초연된 카이로의 케디비알 오페라 하우스. 1869년. 얼마후 화재로 모습이 사라지고 현재는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다.

 

베르디는 아이다를 당대의 소프라노 테레사 스톨츠(Teresa Stolz)가 맡는 것으로 염두에 두고 작곡하였다. 보헤미아 출신의 테레사 스톨츠는 실제로 라 스칼라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다. 베르디는 스톨츠의 피앙세인 안젤로 마리아니(Angelo Mariani)에게 카이로 초연의 지휘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였으나 마리아니는 멀리 여행을 가기가 곤란하다고 하며 거절하였다. 그래서 카이로의 초연은 조반니 보테시니가 맡게 되었다. 라 스칼라의 초연에서 암네리스 역은 메조소프라노 마리아 봘트만(Maria Waldmann)이 맡았다. 베르디가 가장 총애하는 소프라노였다. 마리아 봘트만은 초연 이후에도 베르디의 요청에 따라 암네리스 역을 여러번 맡아했다. 라 스칼라의 초연에서 라다메스 역은 테너 주세페 판첼리(Giuseppe Fancelli)가 맡았다. 한편, 카이로 초연에서는 아이다 역을 소프라노 안토니에타 아나스타시 포초니(Antonietta Anastasi-Pozzoni)가 맡았고 암네리스는 엘레오노라 그로시(Eleonora Grossi), 라다메스 역은 테너 피에트로 모니니(Pietro Mognini)가 맡았다.

 

 

1872년 라 스칼라에서의 초연에서 아이다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 테레사 스톨츠. 오른쪽은 암네리스 역의 마리아 봘트만

 

밀라노 초연은 예상대로 대갈채를 받았다. 그로부터 '아이다'는 이탈리아는 물론, 세계의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서로 공연하려는 작품이 되었다. 물론 대단한 제작비가 드는 공연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극장에서 과감하게 무대에 올렸다. 영국의 오페라베이스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오늘날 '아이다'는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 중에서 13위를 차지하였다. 2007년 현재, 메트로폴리탄이 1천 1백회의 '아이다'를 공연한 것만 보아도 알수 있는 일이다. 메트로폴리탄에서 '라 보엠' 다음으로 가장 많이 공연된 오페라였다. 오페라 '아이다'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에티오피아 공주인 아이다(S), 이집트의 왕(파라오: 바로: B), 이집트의 공주인 암네리스(Amneris: MS), 근위대장인 라다메스(Radames: T), 에티오피아의 왕 아모나스로(Amonasro: B) 등이다. 오페라 '아이다'의 시대배경은 명확하게 표시되지 않았다. 다만, 고대 이집트 왕국이라는 설명이 있을 뿐이다. 시대배경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무대장치와 의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다. 원작자인 오귀스트 마리에트는 정통 이집트의 의상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2006년 미국 오페라 패시픽의 공연

 

제1막 1장은 이집트의 왕궁이다. 저 멀리 뒤쪽으로는 피라미드와 멤피스의 신전이 보인다. 이집트의 고승인 람피스(Ramfis)는 젊은 용사인 라다메스에게 아무래도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라다메스는 이집트군의 사령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람피스와 라다메스의 듀엣이 Si, corre voce l'Etiope ardisca(그렇다. 에티오피아가 우리의 힘을 위협하고자 다시한번 도전한다는 소문이다)이다. 라다메스는 전쟁에 나가서 승리를 하고 또한 에티오피아의 노예인 아이다의 사랑을 얻고 싶은 심정이다. 라다메스의 아리아가 유명한 Se quel guerrier io fossi!...Celeste Aida!(청아한 아이다)이다. 실은 아이다도 라다메스를 은근히 사랑하고 있다. 아이다는 이집트의 적국인 에티오피아의 왕 아모나스로의 딸로서 이집트에 잡혀와 노예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무도 아이다의 신분을 알지 못하고 있다. 아이다의 아버지인 아모나스로는 포로로 잡혀간 딸을 구출하기 위해 다시 이집트를 침공한 것이다.

 

아이다와 아모나스로의 만남

 

이집트 왕의 공주인 암네리스가 들어선다. 암네리스는 젊은 장군인 라다메스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라다메스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두려워하고 있다. 라다메스, 암네리스의 듀엣이 Quale insolita gioia nel tuo sguardo(그대의 눈빛에서 바라지 않는 기쁨을 볼수 있네)이다. 이어 아이다가 등장한다. 암네리스는 아이다를 바라보는 라다메스의 눈빛을 보고 노예인 아이다가 자기의 라이발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암네리스는 그런 내색을 감추고 아이다를 부드럽게 대한다. 암네리스, 아이다, 라다메스의 트리오가 Vieni, o diletta, appressati(오라 오 기쁨이여 가까이 오라)이다. 이어 왕이 등장한다. 고승 람피스와 대소신료들이 함께 따라 들어오는 화려하고 엄숙한 장면이다. 잠시후 전령이 뛰어 들어와서 에티오피아의 왕인 아모나스로가 군대를 이끌고 테베로 진군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에 이집트 왕은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라다메스를 이시스신의 뜻에 따라 이집트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이집트 왕, 전령, 라다메스, 아이다, 암네리스와 합창단이 Alta cagion v'aduna(오 이집트의 운명이여)를 부른다. 왕의 명령을 받은 라다메스는 성스러운 무기를 들기 위해 불칸 신전으로 간다. 왕, 라다메스, 아이다, 암네리스, 합창단의 노래가 Su! del Nilo al sacro lido(오 성스러운 강 나일이여, 강변을 지키시라)이다. 모두들 불칸 신전으로 향하고 홀에는 아이다만이 남아 있다. 아이다는 아버지와 조국에 대한 사랑과 라다메스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아이다의 아리아가 유명한 Ritorna vincitor(이기고 돌아오라)이다.

 

불가리아 공연 장면

 

2장은 불칸 신전의 내부이다. 엄숙한 의식이 진행되며 여사제들의 댄스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여사제장과 라다메스, 그리고 합창단이 Possente Ftha...Tu che dal nulla(오 전능하신 프타여)를 부른다. 이어 여사제장이 라다메스를 총사령관에 임명한다. 이 때의 노래가 Immenso Ftha...Mortal, diletto ai Numi(오 전능하신이여, 보호하시고 지켜주소서)이다. 신전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이집트와 이집트의 용사들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한다. Nume, custode e vindicel(지켜주시는 신이시여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이다.

 

불칸 신전에서 신녀들의 춤

 

제2막 1장. 암네리스의 방이다. 라다메스의 승리를 축하하는 춤과 음악이 연주된다. 암네리스와 합창단의 노래가 Chi mai fra gli inni e i plausi(우리의 노래가 그의 영광을 찬양하네)이다. 축하 무드이지만 암네리스의 마음은 라다메스의 사랑에 대한 의구심으로 넘쳐 있다. 암네리스는 라다메스가 과연 아이다와 사랑하는 사이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그러다가는 자기의 의심이 지나치다는 생각으로 잊고자 한다. 이와 함께 벌어지는 댄스가 무어 노예들의 춤이다. 암네리스와 합창단의 노래는 Vieni, sul crin ti piovano(그대의 꽃다발로 묶어 주세요)이다. 암네리스는 아이다가 방에 들어오자 암네리스는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나가라고 한다. 암네리스는 아이다의 마음을 일부러 떠보기 위해 라다메스가 전장에서 죽었다고 얘기해 준다. 과연, 충격을 받은 아이다는 자기의 마음은 영원히 라다메스의 것이라고 고백한다. 암네리스와 아이다의 듀엣이 Fu la sorte dell' armi a' tuoi funesta(전투의 결과는 그대의 백성들에게 잔인한 것이었다)이다. 아이다의 고백을 들은 암네리스는 분노로 어찌할줄 모른다. 암네리스는 아이다에 대하여 보복하기로 결심한다. 암네리스, 아이다, 합창단의 노래가 Su! del Nilo al sacro lido(올라오라! 나일의 성스러운 강변으로)이다. 암네리스는 아이다를 방에 홀로 남겨 놓은채 방에서 나간다.

 

2006년 베로다 야외극장 공연 장면

                              

2장은 테베의 웅장한 성문이 보이는 무대이다. 에티오피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라다메스가 이집트 군대와 함께 당당하게 테베로 개선한다. 아이다는 라다메스가 살아있으며 더구나 개선장군인 것을 보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과 조국에 대한 애정으로 갈등한다. 고승인 람피스와 합창단이 Gloria all'Egitto, ad Iside(이집트에 영광을, 이시스 신에게 영광을)이라는 합창으로 라다메스의 승전을 환영한다. 장엄한 음악과 화려한 춤이 어우러진다. 이집트 왕은 전승한 라다메스 장군이 무슨 소원을 말하던지 들어줄 것이라고 선언한다. 에티오피아 포로들이 노예처럼 끌려온다. 그 중에는 에티오피아의 왕인 아모나스로도 들어 있다. 포로들 중에서 아모나스로의 모습을 발견한 아이다가 아버지를 향하여 뛰어 나간다. 아버지와 딸은 감격적인 만남을 가진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은 아직도 포로로 잡힌 아모나스로와 아이다의 신분을 알지 못하고 있다. 아모나스로는 스스로 에티오피아의 왕이 전투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선언하며 자기의 신분을 감춘다. 그러면서 아모나스로와 에티오피아의 포로들은 이집트의 왕에게 자비를 구한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포로들을 모두 죽이라고 소리친다. 아이다, 암네리스, 라다메스, 이집트의 왕, 아모나스로,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가 Che veggo!...Egli?...Mio padre!...Anch'io pugnai(무엇을 보는가? 그 사람인가? 나의 아버지인가?)이다. 아이다를 사랑하는 라다메스는 이집트 왕에게 포로들을 살려 주고 석방할 것을 간청한다. 이집트 왕은 라다메스의 한가지 소원을 무엇이든지 들어 주겠다고 했으므로 라다메스의 청원을 수락한다. 그러면서 라다메스를 자기의 후계자로 선언하고 암네리스 공주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아이다, 암네리스, 라다메스, 이집트 왕, 아모나스로, 합창단의 노래가 O Re: pei sacri Numi!...Gloria all'Egitto(오 왕이시여, 신들의 이름으로 원하노니...이집트에 영광을)이다. 이집트인들은 에티오피아인들이 패전에 대하여 보복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아모나스로와 아이다를 그대로 포로로 잡아 둔다.

 

아이다의 갈등을 표현한 포스터

 

제3막은 나일강변, 이시스 신전 부근이 무대이다. 암네리스와 라다메스의 결혼식날 저녁, 이시스 신전 앞이다. 람피스 고승과 암네리스, 그리고 합창단이 O tu che sei d'Osiride(오 오시리스 신을 위한 그대들이여)를 부른다. 신전의 밖에서는 아이다가 라다메스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그렇게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아이다의 아리아가 Qui Radames verra...O patria mia(오 나의 조국이여)이다. 아모나스로가 나타나서 아이다에게 라다메스를 통해서 이집트군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라고 강요한다. 아이다와 아모나스로의 듀엣이 Ciel, mio padre!...Rivedrai le foreste imbalsamate(다시한번 바라보리)이다. 잠시후 라다메스가 나타나자 아모나스로는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바위 뒤로 몸을 숨긴다. 라다메스는 아이다에게 자기가 결혼할 상대는 암네리스가 아니라 아이다라고 말한다. Pur ti riveggo, mio dolce Aida...Nel fiero anelito: Fuggiam gli ardori inospiti...La, tra foreste vergini(그대를 다시 만나니 기쁘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다여)이다.

 

낙타까지 등장한 아이다의 무대

 

라다메스는 아이다에게 함께 멀리 도피하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무한테도 발견되지 않을 안전한 길로 가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무심코 이집트군이 공격할 지점을 얘기한다. 그러자 숨어 있던 아모나스로가 나타나서 자기가 에티오피나의 왕이라는 것을 비로소 밝힌다. 라다메스는 이집트의 장군으로서 명예가 떨어지게 된 것을 한탄한다. 이때 신전을 떠나던 암네리스와 람피스가 저 멀리에서 라다메스가 적들과 내통하는 모습을 본다. 암네리스가 급히 경비병들을 부른다. 아모나스로와 아이다는 라다메스에게 어서 함께 도망가자고 말하지만 라다메스는 거절하고 경비병들에게 순순히 항복한다.

 

베로나 야외극장의 공연 장면

 

제4막 1장은 재판장이다. 한쪽에는 라다메스가 갇혀 있는 감옥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암네리스는 라다메스를 구하고 싶어한다. 암네리스는 경비병에게 라다메스를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암네리스의 아리아가 L'aborrita rivale a me sfuggia(증오하는 라이발이 나로부터 도망을 갔도다)이다.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에게 적들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부인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라다메스는 거절한다. 암네리스는 라다메스가 처형될 것을 알고 다시 한번 간청하지만 라다메스는 암네리스의 제안을 결연히 거절한다. 라다메스는 아이다가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안심한다. 라다메스는 아이다가 무사히 고국인 에티오피아로 돌아갈 것을 바란다. 암네리스와 라다메스의 노래가 Gia i Sacerdoti adunasi(사제들이 이미 모였도다)이다.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의 태도에 대하여 몹시 마음이 상해 있다. 라다메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다. 라다메스는 고승 람피스의 주장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라다메스에게 사형이 언도된다. 암네리스는 사제들에게 제발 라다메스를 죽이지만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사제들이 라다메스를 생매장하여 죽일 것을 결정하자 암네리스는 사제들을 저주한다. 잠시후 라다메스를 데리고 나간다. 암네리스, 람피스, 합창단의 노래가 Ahime!...Morir mi sento(알라스...죽음을 느끼도다)이다.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공연 장면

 

2장은 아래쪽으로 불칸 신전의 지하 감옥이 보이고 윗쪽으로는 신전이 보이는 무대이다. 라다메스는 구덩이처럼 생긴 신전의 지하 감옥으로 끌려와 갇힌다. 사람들이 구덩이의 윗쪽을 봉인한다. 라다메스는 아이다가 안전하게 도피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그런데 구덩이의 한쪽에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다이다. 아이다는 라다메스와 함께 죽기 위해 미리 구덩이 속에 숨어 들어와 있었다. 라다메스와 아이다의 노래가 La fatal pietra sovra me si chiuse(운명의 바위가 우리의 위를 덮었도다)이다. 두 사람은 끔찍한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라다메스의 아리아가 Morir! Si pura e bella(죽는 다는 것, 얼마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것인가)이다. 라다메스는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한다. 구덩이의 윗쪽 불칸 신전에서는 암네리스가 이시스 신에게 기도를 드리며 흐느껴 울고 있다. 아이다는 라다메스의 팔에 안겨 죽는다. 아이다. 라다메스, 암네리스, 합창단의 노래가 마지막으로 울려퍼진다. Immenso Ftha!(전능하신 프타신이시여)이다.

 

암네리스. 포틀랜드 오페라. 루레트 바이비.

 

오페라 '아이다'가 나온 후 영화도 여러 편이 제작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53년에 제작된 것으로 라다메스 역에 로이스 맥스웰, 아이다 역에 소피라 로렌이 맡은 것이다. 또 하나는 1987년에 스웨덴에서 제작된 영화이다. 두 경우에 주역들의 노래는 유명 성악인의 노래를 립 싱크하였다. 1998년에는 엘튼 존과 팀 라이스가 뮤지컬 '아이다'를 제작한 바있다.  

 

 

 소피아 로렌이 아이다 역을 맡은 1953년도 영화의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