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동서음식의 교차로

봐이첸비어 이야기

정준극 2012. 8. 21. 04:53

봐이첸비어 이야기

Weizenbier

 

비엔나의 지벤 슈테른 브로이 맥주집. 무슨 작은 맥주공장과 같다.

                         

비엔나에 와서 맥주를 마시려면 봐이첸비어(Weizenbier: 그냥 봐이첸이라고도 함)를 한번 맛보라고 권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엔나에서 마실수 있는 맥주는 수십가지가 되지만 그중에서도 봐이첸비어에 맛을 들이면 계속 찾게 된다는 얘기다. 맛은 약간 시큼달콤하다는 평이다. 그렇다면 봐이첸비어는 비엔나만의 특산인가? 실은 그렇지 않다. 오리지널은 벨기에이지만 주로 독일에서 많이 만들어 파는 맥주이다. 따라서 비엔나의 봐이첸비어라는 것은 대부분 독일에서 수입한 것이다. 봐이첸비어라는 것은 무엇인가? 별로 할 일도 없으므로 비교적 자세히 소개코자 한다. 사실 별것도 아닌 봐이첸비어에 대한 이야기를 본 블로그에서 소개한다는 것은 음주를 권면하는 감이 있어서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비엔나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라고 하며 또한 관광객들에게도 권고사항이라고 하니 일단은 알고 있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 같아서 소개코자 한다.

 

봐이첸비어는 간단히 말해서 밀맥주이다. 독일어로 밀(Wheat)을 봐이첸(Weizen)이라고 한다. 밀맥주라고 해서 순전히 밀로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보리 엿기름을 기본으로 하여 맥주를 만들되 다만 여기에 밀의 분량을 상당히 많이 넣어 발효시킨 맥주이다. 밀맥주이기 때문에 영어로는 Wheat beer 라고 부른다. 아무튼 만드는 방법이 보통 맥주들과는 다르다. 그리고 대단히 정성을 들여서 만든다. 독일에서는 아예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하여서 만들도록 하고 있다. 봐이첸비어에는 당연히 여러 종류가 있다. 헤페봐이첸(Hefeweizen)을 포함한 봐이스비어(Weissbier: 백맥주), 위트비어(Witbier: 백맥주: 벨기에)가 대표적이며 이밖에도 이암빅(Iambic), 베를리너 봐이쎄(Berliner Weisse), 고제(Gose: 라이프치히), 브로이한(Broyhan), 그래처(Graetzer), 첼리스(Celis) 등이 있다. 위트비어(Witbier)에서 위트는 더치어로 White를 말한다. 위트비어는 더치(화란)어로 된 명칭이지만 전통적으로 벨기에 맥주인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위트비어를 만들 때에는 우리말로 고수풀이라고 하는 미나리 비슷하게 생긴 약용식물과 오렌지 껍질을 섞어서 넣는다. 그것이 전통적인 봐이첸비어 제조방법이다. 고수풀은 영어로 코리안더(Coriander)라고 한다. 벨기에의 유명한 맥주제조회사인 회가르덴 맥주회사(Hoegaarden Brewery)는 이같은 전통적인 방법을 바탕으로 하여 위트비어를 만들고 있다. 회가르덴이라는 상표이다. 첼리스는 벨기에와 독일의 봐이첸비어 제조 비법이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의 오스틴에서 만들어 내는 맥주이다. 회가르덴 맥주회사의 피에르 첼리스라는 사람이 발전시킨 방법이기 때문에 첼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봐이스비어(Weissbier: White beer)는 독일에서 개발한 밀맥주로서 밀의 분량을 최소한 50%가 되도록 하여 만든 것이다. 그래서 맥주의 색갈이 진하지 않기 때문에 봐이스비어라는 말을 붙였다. 벨기에에서 위트비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만, 벨기에의 위트비어는 간혹 엿기름을 넣지 않고 순수 밀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벨기에가 되었건 독일이 되었건 밀의 분량을 많이 사용하여 만든 맥주는 색갈이 연하다. 그러므로 위트비어라고 부르던지 봐이스비어라고 부르던지 일단은 사촌간이다.

 

 

헤페봐이젠. 헤페는 이스트를 말한다.

 

봐이첸비어라는 말은 독일에서도 주로 뷔르템베르크를 중심으로 한 서부 및 북부지역에서 부르는 것이며 남부의 바바리아 지방에서는 봐이스비어라는 말이 더 일반적이다. 바바리아에서는 봐이스비어라는 말이 길다고 생각하여 보통 봐이쎄(Weisse)라고만 부른다. 봐이첸비어라는 말이 길다고 생각해서 보통 봐이첸이라고만 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헤페봐이첸(헤페봐이첸비어)은 필터를 거치지 않고 만든 밀맥주를 말한다. 크리스탈봐이첸(Kristallweizen 또는 Kristallweissbier)이라는 맥주도 있다. 헤페봐이첸과는 달리 필터를 거친 맥주를 말한다. 그래서 수정처럼 맑다. 반면에 둥클레스 봐이스비어(Dunkles Weissbier) 또는 둥클레스 봐이첸(Dunkles Weizen)은 검은 색을 띤 밀맥주이다. 이밖에도 봐이첸보크(Weizenbock)는 보크 스타일로 만든 밀맥주로서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독일이 오리진이다.

 

오늘날 봐이첸비어는 벨기에나 독일에서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에서도 만들며 얼마전부터는 캐나다에서도 만들기 시작했다. 미국이던 캐나다이던 만드는 방식은 전통적인 벨기에 방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밀맥주를 전통적인 맥주로 간주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서자취급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회사들이 밀맥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예를 들면 Discovery, Eichenblatt Bitte, White Dolphin, White Dwarf 등이다. 영국의 밀맥주는 약간 쌉쌀한 맛이 감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크리스탈봐이첸을 마실 때 보통 레몬이나 오렌지 조각을 잔에 얹어 마신다. 미국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러면 바바리아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아이구 촌놈들은 못말려!'라면서 못마땅해서 얼굴을 찌푸린다. 바바리아 북부지방에서는 크리스탈봐이첸에 쌀을 한 줌 넣어 마신다. 그러면 거품이 오래간다. 바바리아 지방의 식당에서는 콜라 봐이첸이라는 메뉴가 있다. 콜라와 봐이첸을 섞은 것이다. 콜라 봐이첸은 네거(Neger)라고 불리기도 한다. 네거는 독일어로 아프리카 계통의 흑인을 말한다. 콜라를 섞은 봐이첸의 색갈이 검기 때문이다. 만일 일반 봐이첸 대신에 봐이첸 보크를 콜라와 섞으면 터보 네거(Turbo-Neger)라고 부른다. 여름철에 인기있는 메뉴로서는 봐이첸과 레모네이드를 반반씩 섞는 것도 있다. 이를 루스(Russ)라고 부른다. 독일어로 러시아를 의미한다.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독일의 어떤 지방에서는 봐이첸에 바나나 넥타를 섞은 것이 대인기이다. 이를 바바나봐이첸이라고 부른다.

 

왼편 헤페봐이첸, 오른쪽 크리스탈봐이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