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크레네크의 3부작
● 독재자(Der Diktator: The Dictator)
● 헤비웨이트 또는 국가의 명예(Schwergewicht oder Die Ehre Der Nation: Heavyweight or The Nation's Honor)
● 비밀 왕국(Das Geheime Königreich: The Secret Kingdom)
에른스트 크레네크
에른스트 크레네크(Ernst Krenek: 1900-1991)는 무조성(Atonality) 음악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그밖에 모더니즘 음악을 남긴 작곡가이다. 크레네크는 다른 작품들도 남겼지만 오페라는 약 20편을 남겼다. 그는 참으로 다양한 장르의 현대 오페라들을 작곡했다. 그래서 그의 오페라들에는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예를 들면 Komische Oper(코믹 오페라), Schauspiel(연극), Musikalische Komödie(음악적 코미디), Tragische Oper(비극 오페라), Märchenoper(동화 오페라), Burleske Operetta(벌레스크 오페레타), Grosse Oper(대 오페라), Satire mit Musik(음악이 있는 풍자), Bühnenwerk mit Musik(음악이 있는 무대작품), Fable(우화), Drama with music(음악이 있는 드라마), Komische Kammeroper(코믹 실내오페라), Spieloper(연극 오페라), Television opera(텔리비전 오페라) 등이다. 크레네크의 가장 대표적인 오페라는 '조니가 연주하다'(Jonny spielt auf)이지만 3부작도 커다란 관심을 끌고 있다. 그의 3부작 중에서 '독재자'는 비극적 오페라(Tragische Oper)이며 '헤비웨이트'는 벌레스크 오페레타(Burleske Operetta)에 속하고 '비밀 왕국'은 동화오페라(Märchenoper)에 속한다.
3부작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에른스트 크레네크가 어떤 생애를 살았는지를 간단히 소개코자 한다. 크레네크는 20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에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체코 출신의 군인으로 오스트로-헝가리제국군에 속해 있었다. 크레네크는 비엔나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이어 베를린에서 프란츠 슈레커(Franz Schreker)와 함께 공부했다. 그후 그는 독일의 여러 오페라 하우스에서 지휘자로서 활동했다. 1차 대전중에는 오스트리아군에 징집되었으나 다행히 비엔나에서 복무할수 있어서 전쟁 중이었지만 계속 음악공부를 할수 있었다. 1922년에 그는 비엔나에서 구스타브 말러의 부인인 알마 말러와 이들의 딸인 안나 말러를 만났다. 크레네크는 2년후인 1924년에 안나 말러와 결혼하였다. 당시 이들의 결혼은 비엔나 사회의 대단한 화제꺼리였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이유는 많았지만 굳이 소개하지 않겠다. 그가 안나 말러와 결혼할 시점에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을 거의 완성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독일에서도 그랬지만 오스트리아에서의 인플레이션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오르는 실정이었다. 크레네크는 생활에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작곡활동도 원만하지 못했다. 마침 그때 비엔나에 와서 있던 호주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알마 무디(Alma Moodie)가 크레네크와 친교를 갖게 되어 그를 도왔다. 알마 무디는 크레네크가 바이올린 협주곡의 스코어링을 완성하는 것을 도운 것이 아니라 스위스의 부호인 베르너 라인하르트(Werner Reinhart)를 소개해주어 재정적인 도움을 받게 해주었다.
구스타브 말러의 딸인 안나 말러(1904-1988). 크레네크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비엔나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조각가였다.
크레네크는 알마 무디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헌정하였다. 이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1925년 1월에 독일의 데싸우에서 알마 무디에 의해 초연되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크레네크는 알마 말러와의 이혼을 마무리했다. 크레네크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초연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와 알마 무디와의 스캔들이 소문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크레네크는 알마 무디와의 관계에 대하여 '짧지만 복잡한 것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짧다는 것은 이해를 할수 있겠지만 무엇이 복잡한지는 오직 당사자들만이 아는 사항일 것이다. 아무튼 크레네크는 알마 무디에 대하여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대표작인 '자니가 연주한다'(Jonny spielt auf)에서 여주인공인 아니타의 이미지를 알마 무디를 염두에 두고 작곡하였다. 크레네크는 1924년에 완성한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를 알마 무디에게 또 다시 헌정하였으며 '작은 조곡'(Kleine Suite)는 베르너 라인하르트에게 헌정하였다.
크레네크는 작곡을 하면서 잡지에 기고도 활발히 하였다. 그의 저널리즘과 음악은 1933년부터 독일의 권력을 잡은 나치의 타겟이 되었다. 1933년 3월 6일, 크레네크가 괴테의 Triumph der Empfindsamkeit 라는 연극을 위해 쓴 막간음악이 만하임에서 연주될 예정이었으나 나치에 의해 갑자기 연주가 중지되었다. 그날은 나치가 선거에서 승리하여 제국의회를 장악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나치의 압박은 비엔나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비엔나의 슈타츠오퍼에서 공연 예정이었던 크레네크의 오페라 '칼 5세'(Karl V)의 초연이 취소되었던 것이다. 그의 대표적 오페라인 Jonny spielt auf는 1938년 뮌헨에서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나치에 의해 '퇴폐음악'으로 낙인이 공연이 금지되었다. 재즈를 모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나치는 그렇다고 쳐도 기존의 보수적인 음악인들도 Jonny spielt auf를 비난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onny spielt auf는 크레네크의 생애동안 유럽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며 공연이 계속되었다. 너무나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Jonny 라는 이름을 붙인 물건들도 여럿이나 나왔다.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에서는 Jonny 라는 이름의 담배도 나왔다. 이 담배는 오늘날에도 판매되고 있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던 해인 1938년, 크레네크는 다행히 미국으로 건너갈수 있었다. 그는 미국의 여러 대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교수의 직을 가지고 있었던 곳은 미네소타 세인트 폴(생 폴) 소재의 햄라인(Hamline) 대학교였다. 크레네크는 이곳에서 제자인 글래디스 노르덴스트롬을 만나 결혼하였다. 그는 1945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그후 캐나다의 토론토로 이전하였다. 1950년대에 그는 토론토의 왕립음악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80년대 말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캘리포니아의 팜스프링스에서 지내다가 1991년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인인 글래디스 노르덴스트롬은 1998년에 '에른스트 크레네크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2004년에는 비엔나에 '에른스트 크레네크 크렘스'라는 개인재단을 설립하였다.
크레네크의 생애에 대하여 너무 길게 설명하였음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이제 본론인 3부작에 대하여 소개코자 한다. 기왕에 3부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 붙이자면 잘 아는대로 푸치니도 3부작을 작곡했다. 일 트리티코(Il Trittico)라고 하며 '외투'(Il tabarro), '수녀 안젤리카'(Suor Angelica), '자니 스키키'(Gianni Schicchi)가 그것이다. 크레네크의 3부작(Trilogy)은 그가 20대의 청년인 1920년대에 완성한 것이다. 크레네크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세 작품을 보면 크레네크가 타고난 무대음악 작곡가인 것을 짐작하게 한다. 크레네크가 3부작을 완성할 당시는 뷔스바덴(Wiesbaden)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던 때였다. 그러므로 3부작은 1928년 뷔스바덴에서 초연되었다. 돌이켜보건대 크레네크의 첫번째 성공작 오페라는 Der Sprung über den Schatten(그림자 뛰어넘기)였다. 이 오페라는 당시의 유행이었던 차이트오퍼(Zeitoper) 형태였다.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재즈를 오페라에 가미한 작품이었다. 아마 오페라에 재즈 음악을 도입한 작품으로서는 크레네크의 이 오페라가 최초일 것이다. 차이트오퍼라는 것은 독일에서 유행한 오페라의 한 장르로서 오페라에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림자 뛰어넘기'는 재즈도 재즈이지만 풍자와 비유, 정신분석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내용은 중부 유럽의 어느 소공국에서 일어난 혁명을 다룬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만든 오페라가 그리스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신화에 바탕을 둔 신화오페라였다. 아무튼 이 두 오페라는 나중에 줄거리와 음악적 테크닉에서 크레네크 특유의 오페라 스타일을 형성케 한 전초작업이었다.
3부작의 첫번째 작품인 '독재자'는 어찌보면 진부한 내용의 비극이다. 장소는 스위스의 어느 온천 마을이다. 장교였던 마리아의 남편은 전쟁에서 부상을 당해 앞을 보지 못한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마리아를 일부러 멀리한다. 눈먼 남편과 마리아는 이같은 불행의 원흉이 독재자의 무의미한 전쟁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독재자를 암살하기로 작정한다. 독재자는 아주 이기적이며 도덕관념이 없는 인간이다. 그러면서도 욕심이 많다. 그런데 크레네크가 생각한 독재자는 누구인가? 히틀러인가 무솔리니인가? 이 오페라의 완성 연도가 1926년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무솔리니가 대상인물인 것이 분명하다. 마침 독재자는 부인과 함께 스위스의 온천지대에 머물고 있다. 독재자의 부인인 샬로테는 독재자가 전쟁을 밥먹듯 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업보를 받을 것으로 믿어서 남편의 생애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있으면서도 독재자의 무분별한 연애행각에 대하여는 질투심을 참지 못하고 있다. 독재자를 죽이기 위해 권총을 들고 찾아간 마리아는 그를 죽이기는 커녕 독재자의 카리스마에 오히려 마음을 빼앗긴다. 커튼 뒤에 숨어서 독재자와 마리아의 수작을 본 샬로테는 참을수 없어서 마리아의 권총을 집어들고 독재자를 쏜다. 그러나 마리아가 순간적으로 독재자의 앞을 가로막고 나서는 바람에 마리아가 대신 쓰러진다. 마리아로서 독재자가 정말 자기의 목숨을 버릴만큼 귀중한 존재였다는 말인가? 그때 아내 마리아를 찾아 온 남편이 이제 일이 다 끝났냐고 묻는다.
'독재자'에서 독재자와 부인인 샬로테
두번째 작품인 '헤비웨이트'(또는 국가의 명예)는 다른 두 작품보다도 공연시간이 상당히 짧다. 재즈를 사용하고 폭넓은 풍자와 비유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Jonny spielt auf 와 크게 다를바가 없다. 헤비웨이트 선수가 체육관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한쪽을 보니 자기의 부인이 댄스 강사와 섹스를 하고 있다. 헤비웨이트의 이름은 아담 옥센슈봔츠(Adam Oxenschwanz)이다. 옥센슈봔츠는 글자 그대로 보면 '황소꼬리'이지만 '슈봔츠'라는 단어만 보면 비속어로서 남자의 성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상한 느낌을 준다. 헤비웨이트는 국가의 명예이다. 그런 헤비웨이트이지만 오쟁이진 남편이다. 바람을 피는 아내의 남편이라는 뜻이다. 아무튼 헤비웨이트는 부인을 당장 붙잡아서 철창 안에 가두어 두고 자기는 잘 차려진 아침밥상 앞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한다. 이때 어떤 신문기자가 와서 헤비웨이트와 인터뷰를 한다. 신문기자는 헤비웨이트가 마치 돼지처럼 꿀꿀거리면서 밥을 먹어대는 소리 하나하나를 기사로 생각하여 받아 적는다. 잠시후 어떤 별로 못 생기고 얼빠진 멍청이처럼 보이는 여학생이 나타난다. 하지만 여학생은 그의 아버지인 교수가 뒤따라 나타나는 바람에 숨어야 했다. 교수는 딸이 헤벌어진 여자처럼 바람을 필 것이 걱정이다. 헤비웨이트는 밥을 먹고 났으므로 다시 연습을 할 생각이다. 그런중에 여학생은 더 이상 숨어 있기가 어려워서 헤비웨이트의 연습용 인형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나타난다. 아무것도 모르는 헤비웨이트는 한 방에 여학생을 때려 눕힌다. 그런데도 여학생은 좋다고 한다. 여학생으로서는 생전 처음 느끼는 성적인 희열이다. 한편, 댄스 강사는 변장을 하고 다시 나타나서 헤비웨이트를 전기로 움직이는 기계노에 붙들어 두고 계속 노를 젓게 한 후에 헤비웨이트의 마누라와 함께 도망간다. 정부 관리가 찾아와서 헤비웨이트에게 그가 국가의 명예이므로 올림픽 경기에 출전시키기로 했다고 전한다. 오페라 '헤비웨이트'의 음악적 특성은 서곡에서 나타난다. 휘슬과 트럼펫이 일제사격을 퍼붓듯 소리를 내뿜는 것으로 시작한다. 유쾌하다. 마치 술취한 요한 슈트라우스가 연주하는 왈츠도 나온다. 후가풍이지만 멋있게 편곡되어 있다.
'헤비웨이트' 무대
세번째 오페라인 '비밀 왕국'은 동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슈레커-쳄린스키 스타일의 오페라로서 무언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오페라적 동화이다. 일각에서는 마치 '마술피리'를 연상케 하는 오페라라는 언급이 있었다. 무대는 중부 유럽에 있는 어떤 소왕국이다. 왕은 백성들이 혁명을 원하며 왕궁으로 몰려오자 자기의 무능함과 실정을 크게 뉘우치며 통곡한다. 왕은 어릿광대에게 해결책을 묻는다. 어릿광대는 대답 대신 수수께끼를 하나 던진다. '둥글고 빛나는 것으로서 머리에 있으며 이 세상 모두를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이다. 관객들은 일반적으로 왕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날레를 보아야 해답을 알수 있다. 남편에게 싫증이 난 콜로라투라 왕비는 남편의 행동을 비난하며 반도들에게 왕을 넘겨버릴 생각을 한다. 그러자 왕은 자기가 쓰고 있던 왕관을 욕심많은 왕비에게 주지않고 대신 어릿광대에게 준다. 왕비는 어릿광대가 가지고 있는 왕관을 빼앗아서 반도의 지도자에게 주어 안전을 보장받고자 한다. 그래서 세명의 시녀에게 어릿광대를 유혹하라고 지시한다. 세명의 시녀들은 어릿광대에게 술을 먹이고 카드 놀이를 해서 왕관을 빼앗아 왕비에게 전한다. 왕비는 반도들과 협상을 한다. 하지만 반도들은 왕관만을 원할 뿐이며 왕비는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는 와중에 왕은 어릿광대의 옷 속으로 숨는다. 이어 춤곡처럼 매력적인 음악이 왕궁을 휩쓴다. 장면은 바뀌어 무대는 숲속이다. 반도들이 왕비를 잡기 위해 마법의 숲까지 따라온다. 반도들은 왕비에게서 왕관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돌려 줄 생각이다. 왕비는 피하다 못해서 커다란 나무로 변한다. 왕은 그 나무가 왕비인줄 모르고 가지에 줄을 걸고 목매달아 죽으려 한다. 왕비는 왕에게 노래하며 그를 안심시킨다. 왕은 왕비를 만나서 기쁜다. 실은 왕비의 누드를 보고 마음이 변했는지도 모른다. 왕과 왕비가 다시 결합한다. 두 사람은 지혜를 얻는다. 왕은 마침내 어릿광대가 낸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는다. 자연을 반영하는 산짐승의 커다란 눈망울이 해답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스타일의 음악이 간주곡 처럼 나온다.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에 나오는 음악처럼 들린다. 처음엔 가볍고 사랑스러운 음악이지만 점점 무겁고 엄청난 음악으로 변한다. 이상한 음악이지만 감동적이다.
'비밀 왕국'에서 왕과 왕비와 어릿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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