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명작 오페라

빅토르 위고와 오페라

정준극 2012. 9. 20. 08:15

빅토르 위고와 오페라

 

오페라 '에스메랄다'의 한 장면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는 어느 누구보다도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서 전문가들을 오히려 부끄럽게 만드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보다도 그는 작품을 통하여 여러 작곡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어 오페라로 만들게 함으로서 그의 위대함을 높이 보여주었다. 위고는 글룩과 베버의 음악을 특별히 좋아했으며 베토벤을 깊이 숭모하였고 당시로서는 이상하리만치 팔레스트리나와 몬테베르디와 같은 중세의 음악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19세기에 활동했던 위대한 음악가 중에서 두 사람이 위고와 특별히 가깝게 지냈다. 베를리오즈와 리스트였다. 리스트는 위고의 저택에서 위고를 위해 베토벤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러면 위고는 친구들에게 리스트로부터 개인 레슨을 받았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였다. 위고는 실제로 리스트로부터 피아노 치는 법을 어느 정도 코치를 받았다. 그래서 위고는 노래의 피아노 반주를 한 손가락으로 하는 방법을 전수받았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농담으로 말하기도 했다. 위고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여류 작곡가인 루이스 베르탱(Louise Bertin: 1805-1877)과 가깝게 지냈다. 베르탱은 1836년에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을 바탕으로 오페라 La Esmeralda(에스메랄다)를 완성했다. 위고는 베르탱이 '파리의 노트르담'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든다고 하자 오페라의 대본을 직접 써 주었다. 아마 위고가 오페라의 대본을 쓴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프랑스의 세사르 푸니(Cesare Pugni)가 '에스메랄다'라는 3막의 발레작품을 작곡한 것도 있다.

 

오페라 '루크레지아 보르지아'의 한 장면

 

위고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음악작품은 19세기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약 1천 편에 이른다. 특히 그의 희곡은 여러 작곡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위고는 15편의 희곡을 남겼다. 그중에서 11편이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도니체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Lucrezia Borgia: 1833), 베르디의 '리골레토'(Rigoletto: 1851)와 에르나니(Ernani: 1844), 퐁키엘리의 '라 조콘다'(La Gioconda: 1876)는 위고의 희곡을 바탕으로 만든 대표적인 오페라들이다. 위고는 생전에 15편의 희곡을 남겼다. 그 중에서 4편을 이런 저런 사연으로 잊혀져 있으며 나머지 11편이 많은 작곡가들에게 감동을 주어 오페라 또는 다른 형태의 음악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잊혀진 4편의 희곡이란 위고가 15세 때에 썼다고 하는 위고의 첫번째 희곡인 Inez de Castro(카스트로의 이네즈), 완성은 되었지만 위고의 생전에 단 한번도 무대에 올려지지 않은 Milles francs de récompense, 미완성으로 남긴 '쌍둥이 형제'(The Twin Brothers), 그리고 '크롬웰'(Cromwell: 1827)이다. 크롬웰에 대하여는 유명한 대본가인 피아베가 베르디를 위해 대본을 썼으나 베르디는 그것이 드라마틱한 면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하여 밀어 두었으며 대신 '에르나니'를 선택하였다.

 

15편의 희곡에서 이상 4편의 이런 저런 사연으로 각광을 받지 못한 것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11편의 희곡 중에서 '일락의 왕' '에르나니' '파두아의 폭군' '루크뤼스 보르지아'의 4편은 여러 작곡가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져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받고 있지만 나머지 7편 중에서 6편은 그래도 그동안 많은 작곡가들이 오페라로 시도하였다. 하지만 다른 위대한 작품들의 그늘에 가려서 존재가 희박해 졌다. 그 여섯 편의 희곡은 '마리온 들로름'(Marion Delorme: 1831), '루이 블라'(Ruy Blas: 1838), '메리 튜도르'(Mary Tudor: 1833), '성주들'(Les Burgraves: 1843), '에이미 롭사르트'(Amy Robsart), '박해자'(Torquemada: 1869)이다.

 

사실상 위고의 작품들은 오페라로서는 몇 몇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실패였으며 오늘날 거의 잊혀져 있다. 하지만 위고의 작품은 뮤지컬의 훌륭한 소재였다. 대표적인 경우는 '파리의 노트르담'과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다. 이 두 작품 모두 뮤지컬로 만들어져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레 미제라블'은 런던의 웨스트 엔드에서 가장 장기 공연된 뮤지컬이었다. 위고의 아름다운 시들도 작곡가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어 노래로 만들어졌다. 베를리오즈, 비제, 프랑크, 랄로, 리스트, 마스네, 생-생, 라흐마니노프, 바그너 등이 위고의 시에 음악을 붙였다.

 

오페라 '리골레토'의 한 장면

                     

위고의 작품이 현대에도 여러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도록 한 것은 특기할 일이다. 예를 들면 위고의 사형제를 반대하는 소설인 Le Dernier Jour d'un Condamné(저주받은 자의 마지막 날: The Last Day of a Condemned Man)은 데이빗 알라냐(David Alagna)가 음악을 붙이고 프레데리코 알라냐(Frederick Alagna)가 대본을 써서 오페라로 만들었다. 이 오페라는 2007는 이들의 동생인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Roberto Alagna)가 주역을 맡아 초연되었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앞 바다에 있는 귀른지(Guernsey) 섬에서는 매 2년마다 '빅토르 위고 국제음악제'(Victor Hugo International Music Festival)가 열려 위고의 시에 노래를 붙인 가곡들이 발표된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현대작곡가인 귀욤 콘네송(Guillaume Connesson), 리샤르 뒤뷔뇽(Richard Dubugnon), 올리비에 캬스파르(Olivier Kaspar), 티에리 에스카이슈(Thierry Escaich)  등이다. 귀른지 섬은 위고가 15년 동안이나 당국에 의해 추방되어 살았던 곳으로 그는 이곳에서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오페라 '저주받은 자의 마지막 날'(클로드 괴)의 한 장면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완성된 대표적인 오페라들은 다음과 같다.

 

○ 뤼크레스 보르지아(Lucrèce Borgia)

  - 게타노 도니체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Lucrezia Borgia). 1833년 (위고의 희곡을 오페라로 만든 것 중에서 처음 성공한 작품). 유명한 축배의 노래(브린디시)인 Il segreto per esser felici, 제나로의 아리아인 Di pescatore ignobile, 공작의 아리아 Vieni, la mia vendetta, 루크레치나의 아리아 Com'e bello 등이 유명하다.

 

○ 일락의 왕(Le roi s'amuse)

  - 주세페 베르디의 '리골레토'(Rigoletto). 1851년 (위고의 희곡을 오페라로 만든 것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 오페라베이스에 따르면 '리골레토'는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고 있는 오페라 중에서 9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함). 위고의 원작은 국왕에 대한 모욕 등의 이유로 파리에서 공연금지 되었다. 실제로 위고는 프랑시스 1세를 비유로 희곡을 만들었다. 그러나 베르디의 오페라는 내용을 바꾼 것이기 때문에 파리에서 공연금지를 할수 없었다. 베르디의 '리골레토'는 파리에서만 1백회 이상의 공연기록을 거두었다. 위고는 '리골레토'를 보고나서 '나의 희곡보다 더 훌륭하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위고는 특히 4중창인 Bella figlia d'amore에 대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리골레토'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La donna e mobile 이다.

 

'루이 블라스'의 한 장면

 

○ 파두아의 폭군 안젤로(Angelo, tyran de Padoue)

 

  - 아밀카레 폰키엘리(Amilcare Ponchielli: 1834-1886)의 '라 조콘다'(La Gioconda). 1876년. 3막의 발레 장면의 음악인 '시간의 춤'으로 유명한 작품임. 1막에서 조콘다의 아리아인 Vode di donna o d'angelo(여인의 음성인가, 천사의 소리인가)는 가장 유명한 아리아임.

  - 사베이로 메르카단테(Saveiro Mercadante: 1795-1870)의 '일 지우라멘토'(Il giuramento: 맹세). 1837년

  - 세자르 쿠이(Cesare Cui: 1835-1918)의 '안젤로'(Angelo). 1876년. '라 조콘다와 같은 해에 초연.

  - 알프레드 브루노(Alfred Bruneau: 1857-1934)의 '파두아의 폭군 안젤로'(Algelo, tyran de Padoue).

1928년

 

○ 파리의 노트르 담(Notre-Dame de Paris)

  - 루이스 베르탱(Louise Bertin: 1805-1877)의 '라 에스메랄다'(La Esmeralda). 1836년

  - 프란츠 슈미트(Franz Schmidt: 1874-1939)의 '노트르 담'(Notre Dame). 1914년

 

빅토르 위고가 처음으로 오페라 대본을 쓴 것이 '라 에스메랄다'이다. 친구처럼 지내는 루이스 배르탱이 '파리의 노트르 담'을 원작으로 오페라를 만들겠다고 하자 베르탱을 위해 대본을 썼다. 위고가 쓴 처음이자 마지막 오페라 대본이다. 그러나 위고 자신도 자기의 소설과는 여러 면에서 내용이 다른 오페라 대본을 썼다. 예를 들면 푀부스(Phoebus)에 대한 사항이다. 소설에는 푀뷔스가 에스메랄다에 집착한 나머지 에스메랄다가 처형되는 장면을 몰래 훔쳐 보는 이상한 성격의 성직자로 나오지만 오페라 대본에서는 에스메랄다가 처형되는 것을 구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인물로 설정한 것이다. 1836년의 '라 에스메랄다' 초연은 실패였다. 그래서 다른 작곡가들이 그렇다면 자기들이 한번 도전해 보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래서 실제로 '파리의 노트르담'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들이 수없이 나왔다. 이탈리아의 알베르토 마쭈카토, 캐나다의 앙드레 프레보(Andre Prevost),  스페인의 호세 발레로(Jose Valero),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아르고미스키, 독일의 루이제 아돌파 르 보(Luise Adolpha Le Beau), 미국의 윌리엄 헨리 프라이(William Henry Fry: 1813-1864), 이탈리아의 화비오 캄파나(Fabio Campana), 브라질의 에메리코 호보 데 메스퀴타(Emerico Lob de Mesquita: 1746-1805) 등이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프라이의 '노트르 담 드 파리'는 미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것이었다. 미국에서만 350회 이상의 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프라이의 오페라는 유럽으로는 건너오지 않았다. 그에 비하여 캄파나의 '노트르 담 드 파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러시아에서 초연을 가진 이후 런던으로 건너왔기 때문이다. 런던 공연에서는 에스메랄다의 역할을 아델리나 패티(Adelina Patti)가 맡아했다.

 

○ 에르나니(Hernani)

  - 주세페 베르디의 '에르나니'(Ernani). 1844년. (엘비라의 아리아인 Ernani, Ernani involami는 소프라노 아리아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 중의 하나이다. 1막에서 엘비라, 에르나니, 돈 카를로의 트리오, 4막에서 엘비라, 에르나니, 실바의 트리오도 유명하다.

  - 빈첸조 가부시(Vincenzo Gabussi: 1800-1846). 1834년

  - 알베르토 마쭈카토(Alberto Mazzucato: 1819-1846). 1843년

  - 앙리 루이 히르슈만(Henri Louis Hirschmann: 1873-1961). 1908년

 

○ 저주 받은 자의 마지막 날(Le Dernier Jour d'un Condamné: Claude Gueux)

  - 데이빗 알라냐(David Alagna)의 '저주 받은 자의 마지막 날. 2007년

  - 티에리 에스케슈(Thierry Escaich)의 '클로드 괴'. 2013년

 

'에르나니'. 안젤라 메아드와 살바토레 리치트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위고가 남긴 위대한 희곡으로서 여러 작곡가들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졌지만 오늘날 안타깝게도 잊혀져 있는 것들을 소개코자 한다.

 

○ 마리온 들로름(Marion Delorme)

 - 스테픈 헬러(Stephen Heller: 1813-1888). 헝가리. 1856년

 - 조반니 보테시니(Giovanni Bottesini: 1821-1889). 이탈리아. 1862년

 - 카를로 페드로티(Carlo Pedrotti: 1817-1893). 이탈리아. 1865년

 - 르노 베르비에(Renaud Berbeir: 1890-1981). 프랑스. 1875년

 - 펠립 페드렐(Felip Pedrell: 1841-1922). 스페인. 1880년경

 

○ 뤼 블라(Ruy Blas) - 루이 블라스

  - 필리포 마르케티(Filippo Marchetti: 1831-1902)의 '루이 블라스'. 이탈리아. 1869년

  - 쥘르 마스네(Jules Massenet)의 '바잔의 돈 세자르'(Don Cesar de Bazan). 프랑스. 1872년

  - 요제프 미할 포니아토브스키(Jozef Michal Poniatowski: 1814-1873). 폴란드. 1843년

  - 스테픈 글로우버(Stephen Glover: 1813-1870). 영국. 1861년

  - 벤자민 고다르(Benjamin Godard: 1849-1895). 프랑스. 1891년 

  - 주세페 피에트리(Giuseppe Pietri: 1886-1946). 프랑스. 1916년

 

○ 마리 튜도르(Marie Tudor) - Mary Tudor

  - 조반니 파치니(Giovanni Paccini: 1796-1867)의 '영국 여왕 마리아'(Maria, regina d'Inghilterra: Mary Tudor, Queen of England). 1843년

  - 안토니오 카를로스 고메스(Antonio Carlos Gomes: 1836-1896)의 '마리 튜도르'(Marie Tudor). 1879년. 베르디에게 '활슈타프'와 '오텔로'의 대본을 제공한 작곡가 겸 대본가인 아리고 보이토가 고메스를 위해 '마리 튜도르'의 대본을 제공함.

  - 블라디미르 카슈페로프(Vladimir Kashperov: 1826-1894). 러시아. 1859년

  - 마이클 윌리엄 발프(Michael William Balfe: 1808-1870). 아일랜드. 1863년

  - 루돌프 바그너 레제니(Rudolf Wagner-Regeny: 1903-1969). 오스트리아-헝가리. 1935년

 

○ 성주들(Les Burgraves)

  - 마테오 살비(Matteo Salvi: 1816-1887). 이탈리아. 1845년

 

○ 에이미 롭사르트(Amy Robsart) - 에이미 롭사르트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총신으로 유명했던 로버트 더들리경(로베르토 드브러)의 첫번째 부인이다.

  - 게타노 도니체티의 '케닐워스 성의 엘리사베타'(Elisabetta al castello di Kenilworth). 1929년. 도니체티의 이 오페라는 실제로 위고의 희곡 '에이미 롭사르트'와 외진 스크리브의 대본인 '레이체스터'(Leicester)를 혼합한 것이다. '케닐워스 성의 엘리사베타'는 도니체티의 튜도 시기를 무대로 한 첫번째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오페라는 엘리자베스 1세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내용은 더들리 경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므로 '여왕 3부작'으로 간주하지 않기도 한다.

 

○ 박해자(Torquemada) - 토르크마다는 중세 스페인의 유명한 종교재판관의 이름이기도 하다.

  - 니노 로타(Nino Rota: 1911-1979). 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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