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에스메랄다(La Esmeralda)
프랑스의 여류 작곡가인 루이스 베르탱(Louise Bertin)의 4막 오페라
빅토르 위고 원작의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꼽추)을 바탕으로 한 작품
루이스 베르탱
빅토르 위고(1802-1885)의 '파리의 노트르 담'(Notre-Dame de Paris)을 소재로 한 오페라는 지금까지 두 편이 알려져 있다. 먼저 나온 것이 프랑스의 여류 작곡가인 루이스 베르탱(Louise Bertin: 1805-1877)이 완성한 '라 에스메랄다'(La Esmeralda)로서 1836년 11월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다른 하나는 1914년에 비엔나에서 초연된 '노트르 담'(Notre Dame)으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란츠 슈미트(Franz Schmidt: 874-1939)가 작곡한 것이다. 루이스 베르탱의 '라 에스메랄다'는 원작자인 빅토르 위고 자신이 오페라의 대본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쓴 유일한 오페라 대본이다. 프란츠 슈미트의 '노트르 담'도 물론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대본은 아마추어 시인이며 화학자인 레오폴드 빌크(Leopold Wilk: 1876-1944)라는 사람이 썼다. 슈미트의 '노트르 담'의 비엔나 초연에서 주역인 에스메랄다는 당대의 소프라노 마리 구타일 쇼더(Marie Gutheil-Schoder)가 맡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슈미트의 '노트르 담'에 나오는 간주곡(인터메쪼)은 가장 아름다운 집시 음악으로서 찬사를 받고 있다. [영어제목으로는 The Hunchback of Notre Dame('노트르 담의 꼽추')라고도 하는데 이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그렇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온 뮤지컬의 타이틀은 오리지널 제목대로 '노트르담 드 파리'이다.]
여담이지만,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 담'은 뮤지컬(락 오페라)과 발레로도 만들어졌다. 락 오페라인 '파리의 노트르 담'은 이탈리아의 리카르도 코치안테(Riccardo Cocciante: 영어로는 Richard Cocciante: 1946-)가 음악을 맡았고 캐나다의 퀘벡 출신으로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뤼크 플라몽(Luc Plamon: 1942-)이 리릭(가사)을 맡았다. 뮤지컬 '파리의 노트르 담'은 '레 미제라블'이나 '판톰 오브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발레 작품인 '파리의 노트르 담'은 프랑스의 유명한 안무가인 롤랑 프티(Roland Petit: 1924-2011)가 안무를 맡은 것이다. 이 발레 작품은 1965년에 파리에서 데뷔하였다. 이러한 여러 종류의 작품 중에서 아무래도 베르탱의 '라 에스메랄다'가 원작에 가장 충실한 것이므로 이를 소개코자 한다. 아무렴 위고 자신이 대본을 쓴 작품이므로 원작에 가장 가깝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베르탱은 평소에 위고와 절친한 사이이기도 했다.
노트르 담 드 파리
오페라 '라 에스메랄다'는 1836년 11월 14일 당시 파리의 왕립음악아카데미극장(Théâtre de l'Académie Royale de Musique: 현재의 Opéra Le Peletier)에서 초연되었다. 타이틀 롤은 코르넬리 활콘(Cornélie Falcon)이 맡았다. 코르넬리 활콘은 마이에르베르의 '위그노'에서 발랭탱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이다. 초연의 무대는 화려하고 웅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였다. 그 영향으로 루이스 베르탱은 '라 에스메랄다'의 초연 이후 40년을 더 살았지만 '라 에스메랄다'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았다. 루이스 베르탱은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선천적으로 소아마비였다. 그래서 평생을 휠체어를 타고 지내야 했다. 하지만 베르탱은 어려서부터 신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러 면에서 재능이 뛰어났다. 음악에 대한 재능을 둘째 치고라도 그는 재능있는 화가였으며 시인이었고 대본가였다. 그는 19세 때에 첫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월터 스콧경의 소설인 '기 맨너링'을 소재로 한 '기 맨너링'(Guy Mannering)이었다. 베르탱은 이 오페라의 대본도 직접 완성하였다. 그가 작곡한 여러 오페라 중에서 '늑대인간'(Le loup-garou: The werewolf)과 '파우스토'(Fausto)는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공연되어 많은 찬사를 받은 것이다. '파우스토'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소재로 택한 것으로 대본은 역시 베르탱 자신이 직접 작성하였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은 대부분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에르나니(Hernani), 루이 블라(Ruy Blas), 일락의 왕(Le roi s'amuse), '파두아의 폭군 안젤로'(Angelo, tyran de Padoue), 마리 튜도르(Marie Tudor), 뤼크레스 보르지아(Lucrece Borgia)등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라 에스메랄다'는 빅토르 위고 자신이 작곡자인 베르탱과 협력하여 직접 오페라의 대본을 쓴 유일한 경우이다. 빅토르 위고는 1830년에 '파리의 노트르 담'을 발표하자마자 오페라를 위해 대본을 쓸 생각을 하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대성공을 거둔 '파리의 노트르 담'을 위고 자신이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자 여러 작곡가들이 대본이 완성되면 오페라로 만들겠다고 부탁하고 나섰다. 그중에는 마이에르베르와 베를리오즈도 포함되어 있었다. 위고는 이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였다. 그러나 위고의 부인의 말에 따르면 베르탱의 부탁은 베르탱 가문과의 친분을 생각하여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18332년 9월에 위고는 평소부터 친분이 두터운 베르탱 가족의 별장에 가서 체류하고 있었다. 그때 딸 루이스의 부탁을 받은 루이스의 아버지 루이 프랑수아 베르탱이 위고에게 루이스가 '파리의 노트르 담'을 오페라로 만들고 싶어하니 대본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였다는 것이며 위고로서는 들어주지 않을수 없어서 승락을 했다는 것이다. 위고는 당장 대본 작업에 착수하여서 한달후에 파리로 돌아갈 즈음에는 대본을 완성하였다. 위고는 1832년 10월에 '파리의 노트르 담'의 오페라 대본을 루이스 베르탱에게 전달하였다.
'노트르 담 드 파리'를 완성했을 당시의 빅토르 위고
당시 위고는 '일락의 왕'의 연극 공연을 위한 리허설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 있었다. 당국의 간섭이 여간 아니었던 것도 큰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파리의 노트르 담'의 대본은 최종 마무리를 위해 몇번이나 손질을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리허설을 시작할수 있었던 것은 위고가 대본을 쓰기 시작한 때로부터 3년이나 지난 때였다. 장편소설의 내용을 4시간에 해당하는 대본으로 압축하는 것은 위고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위고는 우선 등장인물들 중에서 몇 명을 제외하였다. 예를 들면 노트르 담의 부사제이면서 모든 일에 적대적인 클로드 플로요(Claude Frollo)의 동생인 즈앙 플로요(Jehan Frollo)를 제외하였다.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인공인 콰지모도의 역할도 오페라에서 상당히 축소하였다. 그보다는 오히려 에스메랄다와 근위대의 대위인 페부스(Phoebus)와의 러브 스토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도록 했다. 또한 베르탱의 요청에 의해 마지막 장면에서는 에스메랄다가 처형되는 대신 도망가는 것으로 각본을 바꾸었다. 그런데 1834년에 곤란한 일이 생겼다. 가톨릭 교회가 '파리의 노트르 담'을 금서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 List of Prohibited Books)에 추가한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성모에게 봉헌된 노트르 담 사원이 외설의 장소가 되는 것을 용인할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베르탱은 1836년 1월에 오페라의 대본을 교회의 검열을 받기 위해 당국에 제출하였다. 당국은 우선 오페라의 제목을 바꾸도록 했고 이어 성직자(Priest)라고 표현된 클로드 플로요에 대한 내용을 모두 삭제토록 요구했다. 그래서 '파리의 노트르 담'이 '라 에스메랄다'가 되었다. 제목을 바꾸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대본에서 클로드 플로요를 성직자라고 표현한 부분을 모두 삭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국에 검열을 요청할 당시에는 이미 이 오페라의 대본이 인쇄되어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허설에서 성악가들이 검열 이전의 오리지널 대본으로 연습을 하며 성직자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자 감시하고 있던 당국은 당장 삭제하라고 요구했지만 성악가들은 검열 받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대로 성직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노트르 담 드 파리'의 현관 상단 아치의 조각. 웃기느라고 그랬겠지만 왼쪽에 따로 구부리고 앉아 있는 사람이 콰지모도라는 얘기가 있다.
이제 '라 에스메랄다'는 무대 공연만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제작비가 조달되지 못하였다. 4명의 주역은 파리 오페라극장에 소속되어 있는 당대의 이름난 성악가들이 맡도록 되어 있지만 이들에게 줄 출연료조차 터무니 없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에스메랄다는 소프라노 코르넬리 활콘(Cornélie Falcon), 페부스 대위는 테너 아돌프 누리(Adolphe Nourrit), 노트르 담의 부사제인 클로드 플로요는 베이스 니콜라스 르바세르(Nicolas Levasseur), 콰지모도는 테너 장 에티안느 마솔(Jean-Etienne Massol)이 맡도록 했다. 유명한 실내장식가인 위마니트 르네 필라스트르(Humanité-René Philastre)와 무대디자이너인 샤를르 안투안 깡봉(Charles-Anoine Cambon)이 세트와 의상의 디자인을 맡았다. 제작비의 일부는 루이스 베르탱이 아버지에게 부탁하여 충당할수 있었다. 베르탱은 몸이 불편하여서 리허설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베르탱의 아버지가 많은 일을 도와주었다. 우선 베르탱의 아버지는 리허설의 지휘를 베를리오즈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베를리오즈가 리허설을 시키다보니 성악가들과 오케스트라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베를리오즈는 이들과 다투느라고 볼 일도 못 볼 지경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무엇이든지 트집잡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라 에스메랄다'가 베르탱 가문의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겨우 공연될수 있다는 얘기를 하였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라 에스메랄다'에 나오는 아리아 중에서 가장 훌륭한 곡은 베르탱이 작곡한 것이 아니라 베를리오즈가 작곡한 것이라고 퍼뜨리고 다녔다. 베를리오즈는 자기를 그렇게 알아 주는데 대하여 우쭐했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왜곡할수가 없어서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쫓아 다니면서 아니라고 얘기해 주어야 했다. 베를리오즈는 나중에 너무 화가 나서 리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상이 온통 지옥과 같다. 냉혹하기가 그지없는 지옥이다'라고 썼을 정도였다. 빅토르 위고는 리허설 기간 중에 마침 브리타니 지방에 있었다. 그래서 리허설에는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나중에 파리로 돌아온 위고는 마지막 리허설을 보고 분연히 실망했다고 한다. 위고의 부인인 아델레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위고는 무대 세트가 생각보다 초라하고 아름답지도 않은데 대하여 실망했으며 또한 의상에 있어서도 거지들이나 방랑자들이 입는 옷이 모두 새로 만든 새옷이어서 상류층 사람들과 도무지 구별이 안된다고 불평을 했다고 한다.
에스메랄다의 이미지를 창조한 코르넬리 활콘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초연의 밤은 다가왔다. 그런데 1836년 11월 14일 파리 왕립음악아카데미극장에서의 초연은 한마디로 재난의 전조였다. 관객의 일부와 평론가들이란 사람들은 '라 에스메랄다'가 형편없다고 소리쳤다. 물론 초연의 밤은 베르탱 가문의 친지들과 베르탱의 후원자들이 대거 초청을 받아 참석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석으로부터 야유와 비난이 터져나왔다. 비난의 화살은 루이스 베르탱의 오빠에게도 향했다. 파리오페라극장의 책임자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라 에스메랄다'의 공연에 여러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베르탱가가 Journal des débats(논단저널)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라 에스메랄다'를 선전했다고 주장하였다. 위고와 베를리오즈는 모두 이 저널의 고정 기고자였다. 이 저널은 정치적으로 자유진보적 성향이었다. 그러므로 보수왕당파들은 노상 이 저널을 공격하였다. '라 에스메랄다'를 공격한 것도 실은 정치적 이유로 이 저널을 공격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말할수 있다.
4막에서 콰지모도의 아리아인 Air des Cloches(종의 노래)는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곡이다. 콰지모도가 이 아리아를 부르고 나자 관중석에 있던 몇 사람들이 '저건 베를리오즈의 것이야!'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알렉산더 뒤마도 포함되어 있었다. '라 에스메랄다'는 초연 이래 겨우 6회의 공연을 더 가진후 막을 내릴수 밖에 없었다. 여섯번째 공연은 전체 4막을 3막으로 줄이고 대신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보다도 더 좋아한다는 발레를 넣었다. '다뉴브의 아가씨'(La Fille du Danube)라는 발레였다. 발레가 시작되기 전에 관객들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베르탱 때려 부수자' 'Journal des Debats 때려 부수자' '막을 내려라'라고 고함을 질렀다. 난장판이었다. 무대에 있던 에스메랄다 역의 코르넬리 활콘은 당황하여 무대 뒤로 도망치듯 사라질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막이 내려졌다. 그런 난장판 소식을 들은 루이스 베르탱은 다시는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위고의 부인인 아델레는 그의 비망록에 '라 에스메랄다'의 마지막 공연을 '재난'(Fatalité!)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했다. 하지만 재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후 당대의 소프라노였던 코르넬리 활콘은 목소리를 잃고 다시는 노래를 부를수 없게 되었다. 근위대 대위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던 테너 아돌프 누리는 얼마후 이탈리아에서 자살하였다. '에스메랄다'호라고 명명된 대형 화물선이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운항하는 도중 선원들과 화물이 모두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밖에도 에스메랄다라는 이름을 가진 재난이 자주 일어났다.
프롤요와 콰지모도
'라 에스메랄다'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에스메랄다(S)는 아름다운 집시 댄서이다. 페뷔스(Phoebus de Chateaupers: T)는 왕실근위대의 대위이다. 클로드 프롤요(Claude Frollo: B)는 노트르 담 대성당의 부사제(아크디콘)이다. 콰시모도(Quasimodo: T)는 노트르 담 대성당의 종치기이다. 플뢰 드 리 드 곤들로리에(Fleur de Lys de Gondelaurier: S)는 페뷔스 대위의 부유한 피앙세이다. 플뢰 드 리의 어머니가 파리 사교계에서 한 얼굴 하고 있는 마담 알로이스 드 곤들로리에(Madame Aloise de Gondelaurier: MS)이다. 클로팽(Clopin: T)은 거리에서 연극을 하는 사람으로 방랑자들의 리더이다. 이밖에도 르 비콩트 드 기프(Le Vicomte de Gif: T), 무슈 드 슈브러스(Monsieur de Chevreus: B), 무슈 드 모를레(Monsieur de Morlaix: B) 등이 등장한다.
'라 에스메랄다'의 시디는 1482년이며 장소는 파리이다. 제1막은 부랑자들이 기거하고 있는 파리의 슬럼지역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놀리느라고 Cour des miracles(기적의 궁전)라고 부른다. 클로팽이 이끄는 집시 거지들과 도둑들이 저속하고 불량스런 노래를 부르며 카니발을 축하하고 있다. 에스메랄다가 이들을 위해 집시 댄스를 춘다. 노트르 담 대성당의 부패하고 저속한 부사제인 프롤요가 대성당의 자기 방에서 에스메랄다가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몰래 훔쳐본다. 프롤요는 에스메랄다를 어떻게 해 보려는 욕심으로 가득차 있다. 거지들과 부랑배들이 노트르 담 대성당의 종치기인 콰지모도를 데리고 와서 '바보들의 교황'으로 뽑고 왕관을 씌어준다. 그런 모습을 보다못한 프롤요가 대성당의 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콰지모도를 심하게 질책한다. 군중들이 그런 프롤요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폭행을 하려고 한다. 잘못하다가는 폭행을 당해 죽을지도 모른다. 거지 대장인 클로팽이 무슨 생각인지 프롤요를 구해준다. 그렇지만 프롤요는 예쁘고 관능적인 에스메랄다에 대한 욕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프롤요는 콰지모도를 부추켜서 결국 에스메랄다를 납치해 간다. 마침 그때 왕궁의 근위대 대위인 페뷔스가 부하들을 데리고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보고 달려와서 에스메랄다를 구출해 준다. 페뷔스 대위는 매력적이고 야성적인 에스메랄다에게 호감을 가지고 스카프를 선물로 준다.
에스메랄다 역을 맡은 아델리네 패티. 1870년
제2막은 플라스 드 그레브(Place de Greve)라고 부르는 광장이다. 오늘날 파리 시청이 있는 곳이다. 콰지모도가 차꼬가 달린 칼에 갇혀 있다.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는 일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콰지모도는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다. 그 모습을 본 에스메랄다가 콰지모도를 불쌍히 여겨서 물을 마시라고 준다. 장면은 바뀌어서 플뢰 드 리가 살고 있는 저택의 웅장한 응접실이다. 플뢰 드 리는 근위대 대위인 페부르의 피앙세이다. 연회가 열리고 손님들이 몰려 온다. 그런데 손님들은 창문을 통해서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는 에스메랄다를 쳐다보기에 정신이 없다. 에스메랄다는 페뷔스 대위가 준 스카프를 흔들면서 춤을 추고 있다. 마치 페뷔스 대위에게 자기의 사랑을 받아 달라고 호소하는 듯한 제스추어이다. 플뢰 드 리는 거리의 집시 여자가 자기 피앙세인 페뷔스 대위의 스카프를 가지고 흔드는 모습을 보고 놀라며 페뷔스 대위와 저 집시 여자가 어떤 관계이 있는 것 같아서 두려워한다. 플뢰 드 리는 페뷔스 대위가 다른 여자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고 생각하여 비난한다. 다른 손님들도 대강의 사태를 눈치 채고는 페뷔스 대위에게 조소의 눈길을 보낸다. 잠지 전까지도 창문을 통해 야성적인 집시 여자의 춤추는 모습을 훔쳐 보던 그 사람들이었다.
'라 에스메랄다'가 초연된 파리 오페라 극장(당시는 왕립음악아카데미 극장)
제3막. 어떤 주점이다. 페뷔스와 그의 부하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다. 페뷔스는 부하들에게 자기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고 자랑한다. 실제로 페뷔스는 뚜쟁이의 주선으로 그날 밤에 주점에서 에스메랄다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 프롤요가 나타나서 에스메랄다라는 집시 여자는 마법사이므로 잘못하면 뚜쟁이와 페뷔스가 큰 곤란을 겪을지도 모르므로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장면은 바뀌어 주막에 있는 어떤 방이다. 플로요가 방의 한 구석에 숨어 있다. 에스메랄다와 페뷔스가 만나서 무슨 짓을 하는지를 염탐하기 위해서이다. 과연, 에스메랄다와 페뷔스는 서로 부등켜 안고 노골적인 사랑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프롤요가 질투심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칼을 빼어들고 페뷔스를 찌른다.
1844년에 에스메랄다 역을 맡았던 샬로테 그리시와 콰지모도 역을 맡았던 쥘르 페로. 무대장면 그림
제4막의 첫 장면은 감옥이다. 프롤요의 거짓 증언과 모함으로 에스메랄다가 페뷔스 대위를 살해한 범인으로 지목되어 감옥에 갇힌다. 에스메랄다는 이제 처형만을 기다린다. 에스메랄다는 칼에 찔린 페뷔스 대위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프롤요가 에스메랄다에게 자기의 애인이 되는 조건으로 석방을 제안한다. 에스메랄다가 분노하며 거절한다. 장면은 바뀌어 노트르 담 대성당 앞의 광장이다. 콰지모도가 대성당의 종을 울리고 있다. 에스메랄다는 처형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프롤요가 에스메랄다는 다시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이번에는 뇌물을 준 클로팽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다. 사람들이 에스메랄다의 처형을 구경하기 위해 광장으로 몰려든다. 그때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잡아채어 대성당 안으로 도망간다. 대성당은 성스러운 장소이므로 그 안에 있으면 아무리 사형범이라고 해도 어쩔수가 없다. 병사들이 대성당에서 에스메랄다를 데려 나오려고 시도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그때 갑자기 부상 당한 페뷔스가 나타난다. 페뷔스는 에스메랄다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증언한다. 그런후에 에스메랄다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 에스메랄다는 페뷔스의 시신에 몸을 던지며 자기도 함께 죽겠다고 맹세한다. 프롤요가 '파탈리테!'(이 무슨 불행이란 말인가!)라며 울부짖는다. 막이 내린다.
영화 '노트르 담의 꼽추' 포스터. 콰지모도 역에 안소니 퀸, 에스메랄다 역에 지나 롤로브리지다.
[참고사항]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줄거리. 프랑스의 전설적인 극작가 플라몽동과 유럽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 코치안테 등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이 1998년에 만들어 낸 뮤지컬.
파리의 음유시인 그랭구아르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서곡으로 시작된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주교 프롤로는 어릴 적 버려진 꼽추 콰지모도를 성당의 종지기로 키워 충직한 종으로 삼는다. 성당 앞 광장에 모여 사는 집시들. 그곳에 클로팽과 아름다운 여인 에스메랄다가 산다. 프롤로 주교는 에스메랄다의 춤추는 모습을 우연히 본 후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어 가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고 갈등한다. 욕망에 흔들리던 프롤로는 콰지모도에게 에스메랄다의 납치를 명한다.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는 순간, 근위대장 페뷔스가 나타나 에스메랄다를 구하고 콰지모도를 체포한다. 페뷔스는 플뢰르 드 리스와 이미 약혼한 사이지만, 에스메랄다에게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체포된 콰지모도는 바퀴형틀에 묶여 애타게 물을 찾지만 군중들과 그의 주인 프롤로마저 조롱하고 외면한다. 이 때 에스메랄다가 나타나 콰지모도에게 물을 건네고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의 따스한 손길에 감동한다. 에스메랄다를 향한 안타까운 사랑의 콰지모도, 집착의 프롤로, 욕망의 페뷔스...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과 질투심에 눈 먼 프롤로 주교는 에스메랄다를 만나러 가는 페뷔스를 미행하여 그를 칼로 찌르고, 에스메랄다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둔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콰지모도는 종 치는 일도 잊은 채 슬픔에 잠겨 헤매인다. 한편, 클로팽과 집시들은 도시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페뷔스에게 체포된다. 칼에 찔렸으나 목숨을 건진 페뷔스는 약혼녀 플뢰르 드 리스에게 돌아가고 플뢰르는 페뷔스에게 에스메랄다를 교수형시킬 것을 요구한다. 프롤로는 감금한 에스메랄다에게 목숨을 담보로 사랑을 강요하고, 에스메랄다는 페뷔스가 약혼녀에게 돌아간 줄도 모른 채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라도 끝까지 페뷔스와의 사랑을 지키려고 한다. 한편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구출하기 위해 클로팽과 집시 무리를 탈옥시킨다. 에스메랄다는 콰지모도의 도움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안전하게 피신하지만, 이내 프롤로의 명을 받은 페뷔스와 병사들이 탈옥한 집시들을 공격하고 에스메랄다를 지키려던 클로팽이 결국 죽음을 맡게되고 집시들은 추방되며 에스메랄다는 다시 체포된다. 콰지모도는 교수형 당하는 에스메랄다를 보며 프롤로의 추악함에 배신감을 못이겨 결국 프롤로를 계단 밑으로 밀어버린다. 싸늘해진 에스메랄다의 주검을 부둥켜 안고 절규하는 콰지모도!
노트르 담에서 에스메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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