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이탈리아

지안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Gian Francesco Malipiero)

정준극 2012. 10. 2. 08:12

지안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Gian Francesco Malipieri)

고전에 바탕을 둔 이탈리아 현대음악의 개척자

 

지안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

 

지안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는 1882년 베니스에서 태어나서 1973년 베니스 인근의 트레비소에서 세상을 떠난 현대음악 작곡가, 음악학자, 음악교사, 편집자이다. 그는 음악적 분위기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오페라 작곡가였던 프란체스코는 그의 할아버지였다. 그런 배경이기 때문에 그는 어릴때부터 음악가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가정에 복잡한 문제들이 생기는 바람에 청소년 시기에 제대로 음악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가 11살 때인 1893년 아버지와 어머니가 별거에 들어간 것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트리에스테, 베를린, 그리고 마침내는 비엔나로 옮겨가며 살았다. 젊은 말리피에로와 아버지의 관계는 바람직하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와 대판 다투고는 집을 나와 베니스에 있는 어머니에게 갔다. 그는 베니스에서 고등음악원(Liceo Musicale)에 다니고 졸업할수 있었다. 말리페에로는 한때 작곡가이며 오르가니스트인 마르코 엔리코 보씨로부터 대위법을 공부했으나 그만두고 몬테베르디와 지롤라모 프라스코발디와 같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로부터 그는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음악연구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얼마후 볼로냐로 간 그는 볼료냐 고등음악원(Bologna Liceo Musicale)에서 작곡을 공부하였다.

 

볼료냐 음악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05년에 베니스로 돌아왔다. 베니스에 정착하려 했던 그는 갑자기 계획을 바꾸어 이듬해에 베를린으로 가서 막스 브루흐(Max Bruch)의 문하에 들어가 작곡 공부에 박차를 가하였다. 몇년 후인 1913년 그는 파리로 갔다. 그는 파리에서 라벨, 드비시, 드 팔라, 쇤버그, 알반 베그크 등의 작품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는 스트라빈스키의 무용조곡인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자기도 그와 같은 작품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다졌다. 그는 파리에서 알프레도 카셀라, 가브리엘레 다눈치오 등과 교분을 가지며 작곡활동에 들어갔다. 그는 파리에 있으면서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이 주관하는 작곡부분 경연대회에 각각 다른 이름으로 다섯 작품을 출품하여 그중에서 네 작품이 입상하는 실적을 보여주었다. 1917년에 이탈리아가 파코레토 전투에서 대패하자 그는 베니스를 떠나 로마에서 지낼수 밖에 없었다. 1923년에 그는 알프레도 카셀라, 가브리엘레 다눈치오와 함께 신음악협회(Corporazione delle Nuove Musiche)를 설립하였다. 그는 베니토 무솔리니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는 그가 피란델로의 대본인 La favola del figlio cambiato로서 오페라를 만들면서 멀어졌다. 이 오페라는 파치스트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말리피에로는 그의 다음번 오페라인 Giulio Cesare를 무솔리니에게 헌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솔리니와의 관계는 멀어져만 갔다.

 

말리피에로는 1921년부터 1924년까지 파르마음악원의 작곡교수로 활동했다. 1924년에는 베니스고등음악원의 작곡교수가 되었고 이어 1939년부터 1952년까지는 음악원장으로 봉직했다. 베니스고등음악원에서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중에는 루이지 노노(Luigi Nono)도 포함되어 있다. 1923년에 그는 아솔로(Asolo)라는 작은 도시에 거처를 정하고 그때부터 몬테베르디, 비발디 등 바로코 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편집하고 정리하는 일에 정성을 바쳤다. 특히 안토니오 비발디연구소(Istituto Italiano Antonio Vivaldi)에서의 업적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로부터 말리피에로는 비발디 협주곡의 편집가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의 작품 중에는 17편의 교향곡이라고 부르는 작품이 있다. 그는 그중에서 11편만 넘버링을 했다. 첫번째 교향곡은 그가 50세가 넘은 중후한 시대에 작곡한 것이다. 그는 첫 교향곡을 작곡하기 전에도 교향곡 스타일의 작품을 썼지만 신포니아라는 타이틀을 붙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오스트리아-독일 스타일의 교향곡 전통에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예외가 있다면 1905년에 작곡한 Sinfonia degli eroi, 1906년의 Sinfonia del mare, 1909-1910년에 완성한 Sinfonia del silenzio e della morte 이다. 그의 초기의 작품들은 베토벤이나 브람스 스타일의 교향곡이라기 보다는 교향시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는 오페라도 약 20편을 작곡했다. 그중에서 그는 L'Orfeide를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고 있다. 1925년에 뒤셀도르프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지안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의 오페라 수첩

 

● L'Orfeide(오르페오). 1925년 뒤셀도르프에서 초연. 1부 La morte delle maschere, 2부 Sette canzoni, 3부 Orfeo ● Tre commedie goldoniane. 1926년 다름슈타트에서 초연. 1부 La bottega da caffe, 2부 Sior Todero Brontolon, 3부 Le baruffe Chiozotte ● Filomela e I'infatuato(1928 프라하) ● Torneo notturno. 1929 ● La favola del fiiglio cambiato. 1933 ● Giulio Cesare. 1936 제노아 ● Antonio e Cleopatra. 1938 플로렌스 ● I capricci di Callot(ETA 호프만 대본).1942 로마 ● L'allegra brigata. 1950 밀라노 ● Mondi celesti et infernali. 1961 베니스 ● Il figliuol prodigo. 1957 플로렌스 ● Donna Urraca. 단막. 1954 ● Venere prigioniera. 1957 플로렌스 ● Il marescalco. 1957 트레비소 ● Don Giovanni. 1963 나폴리 ● Rappresentazione e festa di Carnasciale e della Quaresima(오페라 발레). 1970 베니스 ● Le metamorfosi di Bonaventura. 1966 베니스 ● Don Tartufo bacchettone. 1970 베니스 ● Iscariota.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