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이탈리아

프란체스코 바로톨로메오 콘티

정준극 2014. 1. 20. 07:02

프란체스코 바르톨로메오 콘티(Francesco Bartolomeo Conti)

만돌린 거장의 작곡가

 

 

프란체스코 바르톨로메오 콘티(1681-1732)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겸 만돌린 및 터보(theorbo) 연주자이다. 그는 만돌린 연주교본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책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오페라로도 이름이 기억되고 있다. 콘티는 플로렌스에서 태어났으며 20세도 되기 전에 이미 유명한 터보 연주자가 되어서 플로렌스 뿐만 아니라 페라라 또는 밀라노에 가서도 연주를 했다. 콘티는 1701년 비엔나의 합스부르크 궁정에서 터보 연주자로 임명을 받아 음악가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1706년 카니발을 위해 오페라 '클레오티데'(Cleotide)를 작곡했고 이어 1713년에는 궁정작곡가로 임명되었다. 그보다 앞서서 1708년에는 선임자로서 당대의 터보 연주자인 오라치오 클레멘티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자리를 이어 받았으며 1726년까지 그 직분을 유지하였다. 그 해에 그는 볼로냐의 아카데미아 필아르모니카의 멤버로 선임되었고 1711년에는 비엔나 궁정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가 되었다.

 

1711년 첫째 부인인 테레지아 쿠글러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비엔나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고 있는 소프라노 마리아 란디니와 재혼하였다. 프리마 돈나인 마리아 란디니는 1714년부터 1721년까지 콘티가 작곡한 오페라의 소프라노 역할을 맡았다. 마리아 란디니가 1722년에 세상을 떠나자 안나 마리아 로렌차나가 궁정오페라의 프리마 돈나로 임명되어 세편의 콘티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안나 마리아 로렌차나는 결국 1725년에 콘티의 세번째 부인이 되었다. 콘티는 건강이 나빠져서 이탈리아로 가서 휴양을 해야 했다. 그후 1732년에 비엔나로 돌아와서 두 편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고 그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직분은 그의 아들인 이그나치오 콘티(1699-1759)가 이어 받았다. 뛰어난 만돌린 주자였던 콘티는 만돌린 소나타를 여러 곡 작곡했다. 주로 왕족들의 생일이나 세례 기념 또는 결혼과 같은 중요한 행사를 위해 작곡했다. 헨델은 오르미스다(Ormisda)에 콘티가 클레오티데에서 사용했던 음악들을 인용하였다. 오르미스다는 1730년 여왕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도 콘티의 음악을 높이 평가했다. 콘티의 칸타타인 Languet anima mea는 바흐가 편곡을 했다. 콘티는 16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대부분 스코어가 분실되어서 어떤 것인지 알수가 없다. 현존하는 오페라는 '클레오티데'(Cleotide: 1706), '시에라 모레나의 돈 키스키오테'(Don Chisciotte in Sierra Morena: 1719), '크레타의 테세오'(Teseo in Creta)이다. 콘티는 13편의 페스테 테아트랄리, 9편의 오라토리오, 50편의 칸타타를 남겼다.

 

'시에라 모레나의 돈 키스키오테'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