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이탈리아

루이지 리키(Luigi Ricci)

정준극 2013. 1. 17. 11:07

루이지 리키(Luigi Ricci)

베르디의 '오베르토' 초연 지휘

 

루이지 리키

 

루이지 리키(Luigi Ricci: 1805-1859)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겸 지휘자였다. 그의 동생인 페데리코 리키(Federico Ricci: 1809-1877)도 오페라 작곡가였다. 두 형제가 용감하게 협동하여 오페라를 완성한 것도 몇 편이 된다. 루이지 리키는 나폴리에서 태어났다. 나폴리음악원을 다닐 때인 1823년 첫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가 18세의 청년이었을 때였다. 그는 분명히 여러 면에서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그는 비상한 두뇌로서 쌍둥이 자매와 각각 연애를 하여 2중생활의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작곡가 중에서 그런 비상한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보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연애에 있어서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의 성공작은 '로셈버그의 키아라'(Chiara di Rosembergh)라는 오페라였다. 1832년, 그가 22세 때에 작곡한 것이다. 이어 1835년에 발표한 Un'avventura di Scaramuccia(스카라무키아의 모험)은 그의 이름을 유럽 여러 나라에 떨치게 해준 오페라였다. 그러다가 1837년에 돌연 작곡을 접고 트리에스테에 가서 음악도들을 가르치며 시간을 보냈다. 실은 젊은 나이에 방탕하고 사치스런 생활에 빠지는 바람에 빚을 많이 져서 도피행각을 벌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루이지 리키는 트리에스테에 가서 지내는 7년 동안 아무런 작곡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젊은 나이에 어떤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다. 실은 두 명의 아가씨들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도 다름아닌 쌍둥이 자매를 사랑하게 되었다. 프란체스카와 루드밀라였다. 두 아가씨 모두 당시 17세였다. 이 두 아가씨들이 누구냐 하면 소프라노 테레사 슈톨츠의 여동생들이었다. 테레사 슈톨츠는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이탈리아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던 소프라노로서 베르디와 친하게 지내다가 베르디의 두번째 부인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가 1879년에 세상을 떠나자 홀로 된 노년의 베르디를 4년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성껏 돌보아준 여인이다. 아무튼 테레사 슈톨츠의 여동생들인 두 아가씨 모두 루이지 리키에게서 성악을 배웠다. 두 아가씨와의 사랑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하기로 하고 본론에 들어가자면 루이지 리키는 사랑에 빠지게 되어 두 아가씨를 위해 오페라를 작곡했다. 프란체스카와 루드밀라가 함께 출연하는 오페라였다. 트리에스테에서는 공연 스케줄을 잡지 못하여 흑해 연안의 오데싸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루이지 리키는 오데싸에서의 공연을 끝내고 트리에스테로 돌아오자마자 쌍둥이 중에서 동생인 루드밀라와 전격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쌍둥이 언니인 프란체스카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후 루이지 리키는 세 편의 오페라를 더 작곡했다. 모두 대체로 성공한 작품들이었다. 그가 정작 대성공을 거둔 것은 Crispino e la comare(크리스피노와 대모)였다. 동생인 페데리코 리키와 협동한 마지막 작품이었다. 협동은 했어도 루이지가 거의 대부분을 완성했다.

 

코믹 오페라는 루이지 리키의 특기였다. 루이지 리키는 도니체티를 매우 존경했다. 그래서 도니체티 스타일의 코믹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루이지 리키의 작품들은 비록 도니체티의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 중에는 당시 이탈리아 코믹 오페라의 베스트로 간주되는 것도 있다. '크리스피노와 대모'(Crispino e la comare)이다. 1859년, 루이지 리키는 '4인조 악당'이라는 마지막 오페라를 완성한 이후에 어찌된 일인지 심각한 정신질환에 걸려 프라하의 병원에 입원했다가 그곳에서 5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루이지 리키와 루드밀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렐라 리키(Lella Ricci: 1850-1871)는 오페라 소프라노였으나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프란체스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루이지 리키-슈톨츠(1852-1906)는 작곡가였다.

 

이제 루이지 리카와 베르디의 두번째 부인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그리고 말년에 베르디의 동반자로서 역할을 했던 소프라노 테레사 슈톨츠와 어떤 관계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자세히 풀어보도록 한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테레사 슈톨츠에게는 두 여동생이 있었다. 쌍둥이였다. 프란체스카(홰니)와 루드밀라(리디아)였다. 정말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 게다가 둘다 소프라노였다. 프란체스카와 루드밀라는 둘 다 트리에스테에서 루이지 리키(Luigi Ricci)의 제자가 되었다. 사실 루이지 리치는 베르디의 두번째 부인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도 무관한 사이가 아니었다. 주세피나가 소프라노로서 첫 데뷔한 작품이 루이지 리키의 오페라 Chiara Di Rosembergh(로젬버그의 키아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이지 리키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베르디의 첫 오페라인 '오베르토'의 초연을 지휘했다. 아무튼 베르디와 여러 인연이 있다. 그건 그렇고 이 루이지 리치라는 사람은 카사노바의 친척쯤 되는지 쌍둥이 자매인 프란체스카 및 루드밀라와 동시에 연애를 하였다. 말이 고상해서 연애이지 실은 17세 밖에 되지 않은 아가씨들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루이지 리키는 얼굴이 똑같이 생긴 쌍둥이 자매와 서로 모르게 연애를 하다니 재주가 기막히게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얼마후 루이지 리키는 그래도 몇시간이라도 젊다고 생각하여 동생 루드밀라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루이지 리키는 동생 루드밀라와 결혼한 후에도 언니 프란체스카와 은밀히 관계를 맺으면서 지냈다. 그러면 안되는데 말이다.

 

루이지 리키는 루드밀라와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두었다. 아델라이데(렐라)로서 역시 소프라노였다. 테레사의 조카인 아델라이데는 아직 20대의 초반인 젊은 나이에 보헤미아의 유명한 작곡가인 스메타나와 좋아 지내다가 결국은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 아델라이데는 임심중절 수술을 받다가 잘못되어 목숨을 잃었다. 아델라이데가 21세 때였다. 한편, 루이지 리키는 프란체스카와의 사이에서도 아들 하나를 두었다. 아버지의 이름과 같은 루이지 리키였다. 역시 지휘자 겸 작곡가로 활동했다. 아들 루이지 리키는 이모인 테레사가 세상을 떠나자 테레사의 유산을 상속받았으며 이름도 루이지 리키-슈톨츠(Luigi Ricci-Stolz)라고 바꾸었다. 테레사의 손자뻘이 되는 사람이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오페레타 작곡가인 로베르트 슈톨츠(Robert Stolz: 1880-1975)이다.

 

루이지 리키의 오페라 수첩

 

● L'impresario in auguistie(곤궁에 처한 흥행가). 화르사. 나폴리 음악원. 1823 ● La cena frastornata(피곤한 저녁식사). 나폴리. 1824 ● L'abbate Taccarella(타카렐라 수도원장). 또는 Aladino(알라디노). 나폴리. 1825 ● Il sogno avverato(실현된 꿈). 나폴리. 1825 ● Il diavolo condannato a prender moglie. 나폴리. 1827 ● La lucerna di Epitteto(빛나는 광채). 나폴리. 1827 ● Ulisse in Itaca(이타카의 율리시스). 나폴리. 1828 ● Colombo(콜럼버스). 파르마. 1829 ● L'orfanella di Ginevra(제네바의 고아). 로마. 1829 ● Il sonnambulo(몽유병자). 로마. 1829 ● Fernando Cortez(페르난도 코르테즈) 또는 L'eroina del Messico(멕시코의 여장부). 로마. 1830 ● Annibale in Torino(토리노의 한니발). 토리노. 1830 ● La neve(눈). 밀라노. 1831 ● Chiara di Rosembergh(로셈버그의 키아라). 밀라노 라 스칼라(1831). 프랑스에서는 Chiara di Montalbano 라는 타이틀로 공연(1835) ● Il nuovo Figaro(새로운 피가로). 파르마. 1832 ● I due sergenti(두 명의 상사). 밀라노 라 스칼라. 1833 ● Un'avventura di Scaramuccia(스카라무슈의 모험). 밀라노 라 스칼라. 1834. 프리드리히 폰 플로토우도 같은 작품을 완성함. ● Gli esposti(고아) 또는 Eran due or son tre. 토리노. 1834 ● Chi dura vince(수수밭). 또는 La luna di miel(꿀의 달). 로마. 1834. 페데리코 리키가 La petite comtesse(귀여운 백작부인)으로 수정. ● La serva e l'ussero(하녀와 기병). 파비아. 1835 ● Il colonello(식민지 사람들). 페데리코 리카와 협동. 나폴리. 1835 ● Il disertore per amore(사랑을 위한 파멸). 페데리코 리키와 협동. 나폴리. 1836 ● Le nozze di Figaro(피가로의 결혼). 밀라노 라 스칼라. 1838. 수정본은 라 스칼라에서 1841. ● La solitaria delle Asturie(오스트리아에서의 고독). 오데사. 1845 ● L'amante di richiamo(돌아온 정부). 페데리코 리키와의 협동. 토리노. 1846 ● Il birraio di Preston(프레스톤의 맥주집). 플로렌스. 1847 ● Crispino e la comare(크리스피노와 대모). 페데리코 리키와 협동. 베니스. 1850 ● La festa di Piedigrotta(피에디그로타의 축제). 나폴리. 1852 ● Il diavolo a quattro(4인조 악당). 트리에스트. 1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