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요제프 하이든(Joseph Haydn)
요제프 하이든. 토마스 하디 작품
하이든을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그렇다고 그가 교향곡만을 작곡한 것은 아닌 것은 누구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하이든을 '실내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하이든이 수많은 종교음악도 작곡했다. 그래서 하이든을 '종교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러도 좋으련만 무엇무엇의 아버지라는 표현이 많아서인지 그렇게는 부르지 않고 있다. 하이든의 대표적인 종교음악 작품은 아무래도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일 것이다. 정말로 위대한 작품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그렇고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작품이다.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하이든이 생애의 말년에 완성한 것이다. 하이든은 1732년에 태어나서 1809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은 77세였다. '천지창조'는 그가 요단강을 건너가기 약 10년 전인 66세 때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의 평생에 걸친 신앙심의 결정판이라고 할수 있다. 하이든은 참으로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성당에서 봉사하며 살았다. 비엔나의 슈테판성당(Stephansdom)에서 소년성가대원으로 활동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하이든이기에 사람들은 그의 종교음악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하이든은 젊은 시절에도 종교음악들을 작곡했다. '천지창조'가 나오기 전까지 하이든의 가장 훌륭한 종교음악으로 찬사를 받은 작품은 바로 '스타바트 마테르'였다. '스타바트 마테르'는 1767년, 하이든이 35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완성한 작품이다. 당시 하이든은 아이젠슈타트의 에스터하지 궁전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이든이 에스터하지 가문에서 활동하기 사작한 것은 1761년이다. 그러므로 '스타바트 마테르'는 그가 에스터하지 가문에서 일한지 6년이 지나서 뜻한바 있어서 완성한 것이다.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특별히 성금요일의 프로그램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하르논쿠르트가 지휘하고 아놀드 쇤버그 합창단이 연주한 CD
하이든은 에스터하지 궁전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종류의 음악들을 작곡했지만 종교음악은 거의 작곡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분야는 당시 명목상이지만 에스터하지 궁전의 전속 작곡가 겸 지휘자인 그레고리우스 베르너(Gregorius Werner: 1697-1766)의 소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우스 베르너는 하이든보다 30여세나 연상이었다. 그레고리우스 베르너는 에스터하지 궁전에 있으면서 40곡의 미사곡을 비롯하여 진혼곡, 테 데움, 오페르토리스, 베스퍼스, 성금요일 오라토리오 등 수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했다.그레고리우스 베르너는 젊은 하이든의 천부적인 재능을 별로 눈여겨 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하이든을 '그장글마허'(G'sanglmacher) 또는 '모데한슬'(Modehansl)이라고 부르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장글마허라는 말은 '그저 그렇고 그런 노래를 작곡하는 사람'이란 뜻이며 모데한슬이라는 말은 '제복을 입은 귀족 집의 하인'이라는 뜻이다. 그러한 그가 아직 은퇴하지 않고 전속 작곡가 겸 지휘자의 자격으로 있기 때문에 마음씨 착한 하이든은 그래도 그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종교음악을 작곡하지 않고 지냈던 것이다.
그러나 1766년 3월에 그레고리우스 베르너가 세상을 떠나자 사정은 달라졌다. 하이든은 평소에 생각만 하고 있던 종교음악을 작곡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하이든은 그레고리우스 베르너가 세상을 떠난 그 해에 저 유명한 '성세실리아 미사곡'(Missa Sanctae Caeciliae)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767년에 '스타바트 마테르'를 완성했다.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일단 에스터하지 궁전에서만 연주되었으므로 외부적으로는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가 비엔나에서 정식으로 연주된 것은 1768년 3월 25일이었다. 장소는 어딘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하이든이 직접 지휘하였다고 되어 있다. 비엔나 초연에서는 소프라노 안나 마리아 셰프스토스(Anna Maria Scheffstoss), 테너 칼 프리베르트(Carl Friberth)가 솔리스트로 나왔었다고 한다. '스타바트 마테르'가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781년 4월 파리에서였다. 종교음악 대연주회에서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와 포르투갈의 신부로서 비토(Vito)라고만 알려진 사람의 '스타바트 마테르'를 함께 연주하는 콘서트에서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도 선을 보였던 것이다. 파리에서의 '스타바트 마테르' 연주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었다. 하이든 자신도 파리의 연주는 대성공이었다고 하면서 흐믓해 했다고 한다. 그후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런던과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연주되어 '진짜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라는 찬사를 받는 작품이 되었다. 특히 로마에서의 연주는 대성공을 거둔 것으로서 교황청에서 나온 사람들마저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의 심정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옥스포드의 크라이스트 쳐치 대성당 합창단이 연주한 음반
1803년에 하이든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지기스문트 노이콤(Sigismund Neukomm)이라는 사람이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도록 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파트를 당시의 감각에 맞게 편곡하였다. 노년에 이른 하이든은 더 이상 작곡에 힘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던 때였으므로 제자 노이콤이 편곡한 것을 가지고 그해 9월에 에스터하지 궁전에서 에스터하지 가문의 공주의 생일을 축하하여서 직접 지휘를 하였다. 노이콤의 오케스트라 버전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연주되고 있는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 버전이다. 하이든은 '스타바트 마테르'를 작소니 선제후의 공주인 마리아 안토니아에게 헌정한 것으로 했다. 마리아 안토니아는 바로크 오페라의 작곡가로 유명한 니콜라 포르포라(Nicola Porpora: 1686-1768)와 독일의 작곡가 겸 음악교사인 요한 아돌프 하쎄(Johann Adolph Hasse: 1699-1783)에게서 음악을 공부하였으며 작곡도 한 여인으로 하이든과는 에스터하지 가문을 통하여 교분이 있었다.
18세기에 써진 여러 편의 '스타바트 마테르' 중에서 이탈리아의 바로크 작곡가인 안토니오 칼다라(Antonio Caldara: 1670-1736)만이 그의 '스타바트 마테르'에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는 오리지널 전례문을 사용하였다. 하이든을 비롯하여 페르골레지, 드라기, 투마, 트레타, 가스만 등은 변형된 텍스트를 사용하였다. 더구나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에 나오는 12번째 곡인 Fac me cruce의 가사는 다른 작곡가들의 '스타바트 마테르'에서는 볼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젠슈타트에서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 스코어가 발견된 것을 보면 하이든이 페르골레지의 작품을 참고했던 것 같기는 하다. 하이든이 '스타바트 마테르'를 완성한 1767년은 하이든으로서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질풍노도)시기였다고 할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을 보면 과거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단조를 사용한 것이 더러 있으며 하모니에 있어서도 특이한 시도를 보였다.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의 오케스트라는 바이올린과 첼로 이외에 2개의 오보에와 2개의 프렌츠 혼이 전부이다. 그러나 알토 솔로인 두번째 곡(O quam tristis)과 열번째 곡인 사중창 및 합창의 Virgo virginum praceclara에서는 오보에를 더블 리드로 되어 있는 두개의 코르 앙글레(cors anglais)로 교체된 것을 볼수 있다. 하이든이 오보에 대신에 코르 앙글레를 사용한 것은 말하자면 모차르트가 오보에 대신에 클라리넷을 사용한 것과 같다.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느린 템포이다. 마치 절제된 듯한 템포이다. 그래서 더욱 심금을 울려주는지 모르겠다. 이렇듯 절제된 느린 템포는 나중에 '십자가상의 칠언'에도 적용되어 또 다른 감동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베이스를 위한 아리아 두곡이다. 5번 곡인 Pro peccatis suae gentis와 11번 곡인 Flammis orci ne succendar는 다른 곡들과는 대조적인 템포이다. 5번 곡은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행진곡 풍으로)이며 11번 곡은 프레스토(매우 빠르게)라는 지시가 내려있다. 마치 어디한번 마음껏 불러보라고 한것과 같다. 그런 중에도 마지막 곡인 13번 Paradisi gloria는 참으로 예외적이다. 후가 스타일이지만 군데군데 장식적으로 소프라노를 추가하여 극적인 효과를 조성한 작품이다. 마지막 곡은 처음에는 마치 잔잔한 바다처럼 고요함을 보여주다가 나중에는 빠르고 격정적인 템포이다. 이는 마치 '십자가상의 칠언'에서 Terremoto와 흡사하다.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다음과 같은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눈을 감고 조용히 들어보라.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곡들이다. 여러 스타바트 마테르 중에서 하이든의 작품이 가슴을 저미는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멜로디로서 사랑을 받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얘기이다.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보석 중의 보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로 귀중하고 아름답다.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인 루드비히 티크(Ludwig Tieck: 1773-1853)는 하이든의 스타바트 마테르를 듣고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 얼굴을 돌려야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특히 Vidit suum dulcem natum(성모께서 불쌍한 아들을 바라보시다: She beheld her tender Child)라는 구절에서 그러했다고 한다.
1. Stabat Mater dolorosa(테너와 합창. 라르고)
2. O quam tristis et afficta(알토. 라르게토)
3. Quis est homo qui non fleret(합창. 렌토)
4. Quis non posset(소프라노. 모데라토)
5. Pro peccatis(베이스.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6. Vidit suum(테너. 렌토)
7. Eia Mater(합창. 알레그레토)
8. Sancta Mater(소프라노와 테너. 라르게토)
9. Fac me vere(알토. 라그리모소)
10. Virgo virginum praeclara(솔리스트와 합창. 안단테)
11. Flammis orci ne succendar(베이스. 프레스토)
12. Fac me cruce(테너. 모데라토)
13. Quando corpus(소프라노와 알토 및 합창. 라르고). Paradisi gloria(소프라노와 합창. 알라 브레베)
스타바트 마테르. 십자가 옆에서 슬픔에 젖어 있는 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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