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만에 완성한 '메시아'
텍스트를 쓴 챨스 제넨스는 누구인가?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텍스트를 쓴 챨스 제넨스
무릇 노래에 있어서 가사는 멜로디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사자의 중요성이 작곡자보다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메시아'라고 하면 작곡자인 헨델의 이름만 생각할 뿐이며 텍스트를 작성한 작사자의 이름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보통이다. '메시아'의 텍스트는 챨스 제넨스라는 사람이 작성했다. 영국의 챨스 제넨스는 아마도 1700년에 태어난 것으로 생각되는 인물이다. 토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서 결국 그 넓은 토지들을 모두 상속받아 부유하게 지낸 사람이다. 챨스 제넨스의 부동산은 워위크셔어와 레이체스터셔(Leichestershire)에 있었다. 그는 신앙심이 대단히 두터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1701년의 왕위계승법(Act of Settlement)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1701년의 왕위계승법은 결론적으로 하노버가문이 영국의 왕위를 차지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정치적 소견때문에 옥스포드의 정치대학이라고 하는 발리올 칼리지(Balliol College)로부터 학위를 받지 못했으며 나아가 그의 가족들은 공직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당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재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유유자적하며 지낼수 있었고 그러다보니 문학과 음악 등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제넨스는 헨델의 작곡을 여러 면에서 도와주었다. 제넨스는 1725년 오페라 '로델린다'(Rodelinda)를 필두로 그후 상당기간 동안 헨델의 악보를 출판토록 재정지원을 하였다. 제넨스와 헨델의 우정은 제넨스가 오라토리오 '사울'의 텍스트를 작성하여 제공한 이래 더욱 공고해졌다. 그래서 헨델은 고스팔(Gospall)에 있는 제넨스의 저택을 자주 방문하여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제넨스는 '메시아'의 텍스트를 1741년 여름에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신실한 영국 성공회의 교인이며 성서의 말씀을 일자일획이라도 소홀함이 없이 믿는 그는 '메시아'의 텍스트를 작성하면서 당시 성서의 권위에 이의를 제기한 데이즘(Deism: 理神論)에 도전코자 했다고 한다. 데이즘은 인간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관여를 거부하는 주장이었다. 즉, 사람의 모든 생사화복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경륜하시는 것이며 인간으로서는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기존의 신앙교리이지만 데이즘은 인간 스스로가 운명을 변경해 나갈수 있다는 주장을 했던 것이다. 한편, 헨델이 '메시아'의 텍스트에 어떤 관여를 했다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 헨델은 '사울'의 경우에 텍스트의 작성을 미리 협의하고 수정하기도 했지만 '메시아'의 경우에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제넨스의 텍스트를 고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헨델은 '메시아'의 작곡을 다만 24일 만에 완료했다. 놀라운 스피드였다. 헨델은 제넨스로부터 텍스트를 1741년 7월 10일에 받아서 여러번 읽어본후 8월 22일부터 작곡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헨델은 파트 1의 형태를 8월 28일에 마무리했고 파트 2는 9월 6일까지 끝냈으며 파트 3는 9월 12일까지 완성했다. 그리고 전곡을 최종적으로 가다듬고 마무리하는데 이틀이 걸려서 결국 9월 14일에 전체를 완성하였다. 헨델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보면 헨델이 작곡을 상당히 서둘렀다는 느낌을 받는다. 왜냐하면 잉크가 번진채 그대로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악보의 일부를 지운 흔적도 있고 심지어는 음표를 잘못 써넣은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 259 페이지에 이르는 스코어의 분량에 비하면 그만한 실수는 매우 근소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헨델은 자필의 '메시아' 악보 마지막 페이지의 끝에 SDG라고 써넣었다. 라틴어로 Soli Deo Gloria 라는 뜻이다. 즉, '오직 하나님에게만 영광을 드리다'라는 의미이다. 일설에 의하면 헨델은 하늘의 영감으로서 '메시아'를 작곡했다는 것이며 특히 '할렐루야'를 작곡할 때에는 천국의 모습이 그의 눈 앞에 보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한 헨델이 작곡을 마치고 나서 SDG라는 글을 남겼다는 것이다. 또한 하늘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만큼 빠른 시일 안에 '메시아'를 완성할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실은 헨델의 스피드는 알아주는 것이었다. 헨델은 오페라를 작곡할 때에 예를 들어 '메시아'의 분량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거의 한달 이내에 완성한 실적이 있다. 오라토리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헨델은 '메시아'를 끝내 놓고 나서 즉시 다음번 오라토리오에 착수하였다. '삼손'이다. 헨델은 1주일 만에 '삼손'의 구상을 마치고 한달 만에 전곡을 완성하였다. 헨델의 초스피드 작곡에는 이미 만들어 놓은 음악을 재사용하는 것도 한몫을 했다. '메시아'의 경우에는 최소한 다섯 곡이 그에 해당하는데 그 중에는 최근에 완성한 것도 있지만 20여년 전인 1722년에 만들어 놓은 것을 사용한 것도 있다. 1722년에 만들어 놓은 것은 Se tu non lasci amore 로서 '메시아' 50번인 테너와 알토의 듀엣 O Death, where is thy sting?(오 죽음아 너의 독침은 어디 있느냐?)의 기본이 되었다. 그리고 21번 합창 His yoke is easy(그의 멍에는 쉽고)와 7번 합창 And he shall purify(깨끗게 하시리라)는 헨델이 최근에 작곡한 Quel fior che alla'ride에서 가져온 것이고 마찬가지로 12번 For unto us a child is born(우리를 위해 한 아기 나셨네)와 26번 All we like sheep(양과 같이)는 No, di voi non vo'fidarmi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편, 반주 부분에서는 악기의 사용이 적절치 못한 부분이 있고 조화를 이루지 못한 파트도 있지만 이런 것들은 나중에 사보가 등이 보완해 놓기도 했다. 물론 더 나중에는 여러 사람들이 오케스트라 파트를 수정보완하기도 했다. 그중에는 모차르트도 포함된다.
헨델의 '메시아' 오리지널 스코어. 지운 부분, 잉크가 번진 부분, 음표를 잘못 그린 부분 등 오류가 많았다. 이를 주로 사보가들이 수정하였다. 위와 같은 악보를 정서하라고 하면 아마 요즘같아서는 신경질이 나서 당장 못하겠다고 하며 때려 치울 것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도 그랬겠지만 대체로 사보가들이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온 정성을 들여서 엉터리 악보를 잘 정리하여 누구나 쉽게 볼수 있는 악보로 만들었으니 대단하다. 사보가들은 어쩌면 작곡가들보다 더 뛰어난 음악적 실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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