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탄생 200 주년 기념
라이프치히와 바이로이트를 잇는 브릿지
바그너 초상화와 라이프치히 브륄의 바그너 생가. 당시. 현재는 새로운 대형상점이 들어서 있다.
바그너는 라이프치히에서 1813년 5월 22일에 태어났다. 그러므로 2013년은 바그너 탄생 200 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이다. 자꾸 얘기할 필요도 없지만 리하르트 바그너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작곡가의 한 사람이다. 바그너는 찬란한 뮤직 드라마의 창조자이다. 그가 주도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독일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제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바그너 탄생 200 주년을 맞이하여 라이프치히는 벌써부터 여러 행사들을 준비해 왔다. 라이프치히와는 별도로 바그너가 웅대한 꿈을 펼쳤고 마지막 안식을 하고 있는 바이로이트로서도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라이프치히와 바이로이트는 각각 따로 행사를 진행할 것이 아니라 서로 연합하여 행사를 진행하자고 합의했다. 그렇게 하여 성사된 것이 이른바 '바그너-데페셰'(Wagner-Depesche)이다. 말하자면 '바그너 특보'(特報)이다. 데페셰라는 말은 전보(텔레그램)와 같은 뜻의 단어이다. 서로 협동하여서 바그너 팬들에게 특별한 소식을 전해주자는 뜻이리라.
두 도시는 각각의 기념 로고를 만들었다. 바그너와 관련한 모든 기념행사에 그 로고를 사용하고 있다. 바이로이트의 로고에는 바그너(Wagner)가 사인으로 즐겨 사용했던 핸드라이팅인 W를 이니셜로 넣고 붉은 바탕에 Bayreuth 2013 - Da steckt Wagner drin!(바그너의 모든 것!)이라는 글자를 넣었다. 바그너의 카리스마는 전세계에 뻗쳐 있지만 그의 일생을 대표하는 작품은 바이로이트에서 완성된 것이다. 한편, 라이프치히는 2015년에 도시로서 설립된지 1천년을 기록하는 해이므로 바그너 200 주년은 이와 연계하여 대대적인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그래서 바그너를 위한 별도의 로고라고 보기보다는 라이프치히가 다른 모든 행사에도 사용할수 있는 로고를 창안하였다.
왼쪽: 라이프치히의 바그너 200 주년 기념 로고, 오른쪽: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200 주년 기념 로고
바그너의 생가가 있던 곳에 기념관이 들어선다. 바그너가 태어난 집은 라이프치히의 브륄(Brül) 3번지에 있었다. 그가 태어난 해인 1813년에는 라이프치히 근처에서 프랑스와 프러시아, 러시아, 오스트리아, 스웨덴이 연합하여 전투를 벌인 열국들의 전투(Battle of the Nations 또는 라이프치히 전투)가 있어서 혼돈스럽기가 이를데 없었다. 바그너가 태어난 집은 1886년에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새로운 대형 상점이 들어섰다. 콘수멘트(Konsument)라는 백화점이었다. 라이프치히 사람들은 이 백화점을 '블레흐뷔흐제(Blechbüchse) 또는 '양철 깡통'(Tin can)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현관을 알루미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2010년에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로 했다. 새로운 건물의 한쪽에는 바그너의 생가가 있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생길 예정이다.
라이프치히에는 또하나의 바그너 기념관이 마련된다. 바그너가 다녔던 학교인 성니콜라스학교(Alte Nikolaisschule)의 강당 지하실에 마련되고 있다. 지금은 학교였다는 건물만 남아 있다. 바그너는 이 학교에 15세 때인 1828년부터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바그너는 유급이 되어 다른 학생들처럼 학년에 올라가지 못했다. 바그너는 불량학생으로서 나쁜 점수를 받았다. 바그너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런 성니콜라스학교는 일찍이 1512년 성니콜라스 축일에 오픈되었다. 라이프치히에서 문을 연 유일한 일반학교였다. 이 학교의 졸업생 중에서 유명한 인사로는 독일의 유명한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고트프리드 빌헬름 라이브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와 작가인 요한 고트프리드 조이메(Johann Gottfried Seume)등이 있으나 아무래도 리하르트 바그너가 가장 유명한 졸업생이 아닐수 없다. 성니콜라스학교는 전쟁을 겪으면서 완전파괴되었고 학교는 진작에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1991-94년에 라이프치히와 자매결연을 맺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후원금으로 재건되었다. 현재 구성니콜라스학교는 라이프치히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옛 학교건물의 강당인 Gasthaus Alte Nikolaisschule는 관관명소가 되었다. 라이프치히 시는 2013년까지 이 건물의 지하에 리하르트 바그너 기념관을 만들고 청소년시대의 바그너를 집중 소개할 계획이다.
라이프치히의 푈커슐라하트덴크말(Volkerschlachtdenkmal). 푈커슐라하르트는 1813년(바그너가 태어난 해) 라이프치히 인근에서 나폴레옹군과 프러시아-러시아-오스트리아-스웨덴 연합군이 벌인 전투를 말한다. 라이프치히는 이 전투에서 희생된 병사들을 추모하는 기념탑을 세우기로하여 14년 공사끝에 높이 91 미터의 웅장한 기념탑을 완성하였다. 이 기념탑의 인근에는 공동묘지교회(프리드호프스카펠리아)와 화장장(크레마토리움)이 있다.
바이로이트는 라이프치히처럼 새로운 기념관을 마련하는 계획은 없다. 어찌보면 도시 전체가 바그너 기념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이로이트를 바그너시티(바그너슈타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바이로이트 축제극장(Bayreuth Festspielhaus)과 바그너가 영면하여 있는 빌라 반프리트(Villa Wahnfried)는 바그너 애호가들에게 필견의 순례장소가 되어 있다.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하우스는 바이로이트의 랜드마크로서 '푸른 언덕'(Grüner Hügel)이라고 부르는 건물이다. 처음 이 건물을 지을 때 그 곳이 푸른 숲이 우거진 언덕이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독특한 건축과 뛰어난 음향으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오페라 극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바그너 자신이 1872-76년의 4년동안 이 극장의 건설을 직접 감독했다. 바그너는 이 극장에서 자신의 작품만을 연주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첫 공연은 1876년 '니벨룽의 반지' 전편이었다. 2013년 바그너해를 맞이하여 바이로이트 마케팅-관광공사는 2012년 9월부터 2013년 5월 바그너가 태어난 싯점까지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하우스의 특별관람을 주선하고 있다.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하우스. 푸른 구릉지대에 있기 때문에 '그뤼너 휘겔'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건물이다.
1883년 2월 13일에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 세상을 떠난 바그너의 시신은 바이로이트로 운구되어 2월 18일 빌라 반프리트의 정원의 묘지에 안치되었다. 바그너는 말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기후가 온난한 이탈리아로 자주 여행을 갔었다. 그리하여 바그너는 1882년 1월에 시실리의 팔레르모에서 '파르치팔'을 완성하기도 했다. '파르치팔은 그해 여름에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다. 바그너는 가족과 함께 이듬해인 1883년에 베니스에서 겨울을 보냈다. 그러다가 2월 13일에 베니스의 팔라쪼 벤드라민(Palazzo Vendramin)에서 세상을 떠났다. 현재 빌라 반프리트에는 바이로이트에서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난 바그너의 두번째 부인인 코지마도 바그너와 같은 영묘에 안치되어 있다. 코지마는 잘 아는대로 프란츠 리스트의 딸이다.
빌라 반프리트의 바그너 묘지
라이프치히에서의 바그너 탄생 200 주년 기념행사는 그가 태어난 달인 2013년 5월에 집중되어 있다. 바그너의 오페라로서는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urenberg), '파르지팔'(Parsifal), '신들의 황혼'(Die Gotterdammerung), '요정'(Die Feen), '사랑금지'(Das Liebesverbot). '방랑하는 화란인'(Der fliegende Hollander)이 공연된다. 여러 종류의 전시회도 준비된다. 예를 들면 '마티아스 오제(Matthias Ose)의 캐리캐추어로 본 바그너의 생애', '바그너 시대의 악기 전시회', '젊은 리하르트 바그너: 1813-1834' 등이다. 기념 연주회로서는 '바그너 탄생 200주년 기념 대연주회'(5월 16일), '말렌느 야슈케(Marlene Jaschke)와 함께 하는 풍자와 캬바레 음악회 - 아우프 인 덴 링(Auf in der Ring)', '고틱 음악과의 만남 - 파르지팔', 토마스성당 소년합창단의 모테트 연주회, 리하르트 바그너와 프란츠 리스트 오르겔 음악연주회, 어린이를 위한 반지음악회, 리하르트 바그너 발레 이브닝, 2013년 링 - 음악극장 연주회, 실내악 연주회 등이다. 바그너 탄생 200 주년 기념식은 탄생일인 5월 22일에 거행된다. 이날에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Ring ohne Worte'(무언의 반지)라는 타이틀의 연주회가 열린다. 이 연주회는 라이프치히와 바이로이트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연주회로서 '오페라 라이프치히'의 GMD(Generalmusikdirektor)인 울프 쉬르머(Ulf Schirmer)가 게봔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니벨룽의 반지'의 음악이 오케스트라만의 연주로 진행된다.
라이프치히 게봔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연주회. 1845년. 게봔트하우스는 원래 직물상인연합회관이었다.
오늘날의 라이프치히 게봔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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