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위대한 대본가

안토니오 솜마(Antonio Somma)

정준극 2012. 12. 15. 06:17

안토니오 솜마(Antonio Somma)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의 대본 작성

 

안토니오 솜마

 

안토니오 솜마는 1809년 이탈리아의 우디네(Udine)에서 태어나서 1864년 베니스에서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의 극작가이다. 1859년에 베르디의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의 대본을 완성하여 그의 이름이 음악사에 남아 있게 된 사람이다. 솜마는 학생시절부터 오페라 대본을 썼다. 학생 시절에 쓴 비극인 '파리시나'(Parisina)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 극본이었다. 솜마가 베르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베르디가 '리어 왕'을 오페라로 만들기로 작정하고 대본가를 모색하다가 알게 되었다. 원래 베르디는 오랜 동료인 살바도레 카마라노에게 '리어 왕'의 대본을 의뢰하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카마라노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다른 대본가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솜마는 베르디의 지시 아래에 '리어 왕'의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르디가 작곡을 포기했기 때문에 '리어 왕'의 오페라 대본은 비록 거의 완성되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베르디는 '리어 왕'을 나폴리의 1858년 시즌을 위해 작곡하려고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작곡을 포기했다.

 

베르디는 새로운 오페라로서 '발로'(Ballo: 가면무도회를 줄여서 부르는 단어)를 추진하였으나 당국의 검열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솜마는 처음에 '구스타보 3세'(Gustavo III)라는 타이틀로 대본을 썼다. 그러다가 처음엔 나폴리, 다음엔 로마의 검열 당국에 의해 제목이 변경되고 배경장소가 변경되었으며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변경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래서 '구스타보 3세'는 '도미노를 쓴 복수'(Un vendetta in domino)가 나중에 로마 초연에 즈음해서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가 되었다. 그리고 장소는 스톡홀름이 아니라 영국 식민지하의 보스턴이 되었다. '도미노'는 가장무도회에서 사용하는 가면이나 의상등을 말한다.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