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17. 리하르트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 1

정준극 2013. 3. 4. 09:04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 1

The Mastersingers of Nuremberg

리하르트 바그너의 3막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무대. 취리히 오페라. 대단한 무대와 대단한 출연진이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는 바그너가 대본을 쓰고 음악을 붙인 3막의 오페라이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지금으로부터 145년전인 1868년 6월 21일에 뮌헨의 왕립궁정국립극장(Königliches Hof- und National-Theater: 현재의 뮌헨국립극장: Nationaltheater München)에서 초연되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완성한지 8년이 지난 때였다. 초연의 지휘는 한스 폰 뷜로브(Hans von Bülow)가 맡았다. 그는 나중에 바그너의 두번째 부인이 된 코지마의 남편이었다. 당시 바그너는 첫번째 부인인 민나와 정식으로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부녀인 코지마와 부부처럼 지냈으며 자녀까지 두었던 터였다. 바그너는 1870년에 첫번째 부인인 민나가 세상을 떠나고 또한 한스 폰 뷜로브와 코지마가 법적으로 이혼하자 코지마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현재 세계의 오페라 극장에서 자주 공연되고 있는 오페라 중에서 단일 작품으로서는 가장 공연시간이 긴 작품이다. 4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공연해 보고 싶은 극장이나 단체가 많지만 출연자 섭외, 제작비 부담, 관객동원 문제 등 여러가지 난관으로 감히 공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연시간은 휴게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4시간 55분 정도. 주최측에서 충연자들은 물론, 관중들에게도 간식을 제공해야 할 판이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16세기 독일의 뉘른베르크(영어로는 Nuremberg)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내용으로 삼고 있다. 당시 뉘른베르크는 거의 독립성을 지닌 자유 제국도시(Freie Reichsstadt)였다. 뉘른베르크는 자유도시였으므로 문물의 교류가 활발하여 북유럽 르네상스의 센터 중의 하나였다. 당시 독일에서는 장인들 또는 예술가들의 조합인 길드(guild)가 성행하였으며 그 중에는 아마추어 시인들과 음악가들의 협회인 명가수(마이스터징거) 길드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명가수들은 주로 중산층 사람들로 구성되며 간혹 다른 직업의 명장(마이스터) 공예가들도 포함되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그러한 명가수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명가수가 되려면 장인이나 공인이 명장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훈련과정을 거쳐야 했다. 작곡도 할줄 알아야 했고 노래도 잘 부를 줄 알아야 했다. 일단  명가수가 되면 사회적으로 대단한 존경을 받는다.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뉘른베르크 명가수 길드의 전통과 특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으로는 실존인물을 내세우기도 했다. 명가수로 유명했던 한스 작스(Hans Sachs: 1494-1576)이다. 한스 작스는 구두장인이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한 장면을 그린 작품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바그너의 작품 중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우선 바그너의 주요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코믹한 작품이다. 바그너는 초기 작품 중에 코믹 오페라인 '사랑금지'(Das Liebesverbot)라는 것이 있지만 바그너 자신은 그것을 완성된 오페라로 간주하지 않았다. 한편.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바그너의 다른 작품들이 시기나 배경이 분명치 않은 신화적인 내용의 것인데 비하여 시기와 장소가 명시되어 있는 사실적인 작품이라는 특징이 있다. 장소는 뉘른베르크이며 시기는 15세기이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비교적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를 둔 내용이다. 중세 독일의 위대한 시인인 발터 폰 데어 포겔봐이데의 이름이 거론되는가 하면 구두장인이며 명가수인 한스 작스는 실존인물이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바그너의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초자연적이거나 마법적인 이벤트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또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독특한 점 중의 하나이다. 바그너는 오페라에 대한 그의 생각을 펼쳐보인 글을 여러 편 쓴 일이 있다. '음악과 드라마'(Oper und Drama: 1851)는 그 중의 하나이다. 바그너는 그의 저서에서 가사, 아리아, 합창, 중창, 심지어 발레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에 대한 이론을 기술하였다. 바그너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 그의 음악이론에 대한 아이디어를 펼쳐보였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세의 뉘른베르크

                          

[작곡 히스토리]

바그너의 자서전인 '나의 삶'(Mein Leben)에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창작기가 상당히 자세히 적혀 있다. 바그너는 1845년에 온천휴양을 위해 마리엔바드(Marienbad: 현재 체코공화국 소속)에 갔었다. 이곳에서 독일의 문인이며 정치사학자인 게오르그 고트프리트 게르비누스(Georg Gottfried Gervinus: 1805-1871)의 '독일문학사'(Geschichte der deutschen Dichtung)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 책에는 명가수와 한스 작스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실존인물인 한스 작스가 '비템베르크의 나이팅게일'(Die Wittembergisch Nachtigall)이라는 제목아래 독일의 유명한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를 주제로하여 쓴 시도 들어 있었다. 종교개혁을 알리는 이 시의 첫 구절인 'Wacht auf, es nahet gen den Tag; ich hör' singen im grünen Hag ein wonnigliche Nachtigall'은 나중에 바그너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3막에서 군중들이 한스 작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며 노래부르는 장면에 그대로 사용하였다. 또한 바그너가 실제로 겪은 사건도 이 오페라의 한 장면에 그려 놓았다. 즉, 그가 정치적인 문제로 드레스덴을 떠나 스위스에서 도피생활을 해야 했던 내용을 2막의 피날레에서 발터 폰 슈톨칭의 처지로서 비유하여 설명했다. 그러므로 바그너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대본을 초안한 것은 실제로 이 오페라가 뮌헨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진 때로부터 23년 전인 1845년, 마리엔바드 온천장에서였다. 바그너는 1851년에 쓴 '친구에게 알림'(Eine Mitteilung an meine Freunde)에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비극 오페라를 뒤를 잇는 코믹 오페라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바 있다. 비극오페라라는 것은 '탄호이저'를 의미했다.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비극을 공연한 다음에는 코믹한 풍자극을 공연하는 관습이 있었다. 바그너도 그같은 관습을 따르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비극인 '탄호이저'도 코미디인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와 마찬가지로 노래경연대회가 포함되어 있어서 서로 상통되는 점이 있다.

 

바그너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시나리오 초안을 구상한 마리엔바드 온천장

                             

[쇼펜하우어의 영향]

바그너는 1854년에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읽고 이 철학자의 미학에 대한 이론에 충격을 받았다. 쇼펜하우어는 '예술이란 이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도피하려는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주장했으며 '음악은 예술 중에서 가장 높은 경지의 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현실 세계를 대표하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하여 음악은 관념상의 존재라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음악은 말이 필요없이도 감정을 전달하고 소통할수 있다고 말했다. 바그너는 1850-51년에 쓴 '오페라와 드라마'에서 오페라의 기본구조가 되는 아리아, 합창, 듀엣, 트리오, 레치타티브 등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면서 조소한바 있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음악의 역할에 대한 이론을 읽은 후에 오페라에 대한 처방을 재평가하였다. 그러한 재평가는 바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 찾을수 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코미디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속에서 음악의 위치, 의지의 부인과 위안의 포기에 대한 바그너의 아이디어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뉘른베르크'의 음악은 Wahn 이라는 단어로 가득찬 세계를 이끌어 오는 것이다. 독일어의 Wahn 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Illusion(환상) 또는 Madness(광기), Folly(우둔함), Self-deception(자기 기만)이라는 뜻으로 번역할수 있다. 2막에서 소요를 일으킨 것도 Wahn이라고 할수 있다. 소요라는 것은 신분과 정체를 오해했기 때문에 생기는 이벤트를 말한다. 그같은 Wahn은 '자기 기만'의 형태로 표현된다. 한편, 평론가들은 3막에서 한스 작스의 유명한 독백인 Wahn, Wahn, Überall Wahn이 쇼펜하우어의 주장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Wahn이 인간을 실제로 자기를 파괴하는 방법으로서 행동하도록 끌고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완성하고나서 1861년에 '뉘른베르크'에 대한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다만, 그가 처음에 코미디로서 초안을 잡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접근했다. 한스 작스라는 인물은 바그너가 창조한 모든 인물들 중에서 가장 쇼펜하우어적인 인물로 그렸다. 바그너 학자인 루시 베케트(Lucy Beckett)는 바그너의 한스 작스와 쇼펜하우어가 표현한 고귀한 사람이 서로 놀랍도록 유사성이 있다고 말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를 읽어보면 알수 있다. 한스 작스의 또 다른 중요한 면모는 에바의 사랑을 얻는 희망을 포기한 것이다. 이것 역시 쇼펜하우어적인 사상과 관련이 있다.

 

[초연]

시나리오를 완성한 바그너는 1862년부터 대본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어 서곡을 작곡했다. 서곡이 완성되었다고 하자 사람들은 서곡만이라도 어서 듣고 싶다고 간청하였다. 그리하여 서곡은 1862년 11월 2일에 라이프치히에서 바그너 자신의 지휘로 일반연주되었다. 대단한 감동을 주는 서곡이었다. 1막의 작곡은 1863년 봄부터 시작했다. 바그너가 비엔나 교외인 펜칭(Penzing)에 거주하고 있을 때였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1867년이 되었지만 바그너는 '뉘른베르크'를 완성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냈다. 그때 바그너는 스위스 루체르네 부근의 트리브센(Tribschen)에 살고 있었다. 바그너는 이 기간에 실상 세월만 보낸 것이 아니라 정말로 역경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며 지냈다. 아마 바그너의 전생애에 있어서 가장 곤경에 처하여 있던 시기였을 것이다. 우선 1861년 '탄호이저'의 파리 공연은 대재앙이었다. 이로 인하여 바그너는 '링 사이클'의 완성을 포기해야 했다. 1864년에는 비엔나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공연키로 하여 무려 77회나 리허설을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결국은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1866년 바그너의 첫번째 부인인 민나가 바그너와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치고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그러한 때에 '뉘른베르크'의 초연이 주선되었던 것이다.

 

바그너는 1863-64년간 비엔나 교외의 펜칭(현재는 비엔나 14구)에 있는 저택에서 살면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상당부분을 작곡했다. 현재 그 집은 바그너 빌라라고 부르며 벽면에 '마이스터징거'를 작곡했다는 기념명판이 부착되어 있다. 하디크가쎄(Hadikgasse) 72번지이다.

 

'뉘른베르크'의 역사적인 초연은 1868년 6월 21일 뮌헨의 왕립궁정국립극장에서 있었다. 현재의 뮌헨국립극장이다. 초연은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2세 국왕이 후원했으며 한스 폰 뷜로브가 지휘를 맡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버지인 프란츠 슈트라우스는 이 초연의 오케스트라 멤버로서 프렌츠 혼을 불었다. 프란츠 슈트라우스는 바그너를 상당히 싫어한 것으로 유명했다. 바그너는 리허설에 거의 모두 참석해서 코멘트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수시로 리허설을 중단시키고 코멘트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 까지야 어쩔수 없다 치더라도 어떤 때는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출연자들이 대단히 힘들어했다. 아무튼 바그너의 간섭으로 리허설은 예상 밖으로 오래 걸렸다. 더구나 '뉘른베르크'의 전체 공연은 거의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것이었다. 리허설은 당연히 시간이 더 걸렸다. 밤을 새고 새벽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모두들 지쳐있었다. 마침내 평소 바그너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프란츠 슈트라우스가 중심이 되어 오케스트라가 스트라이크를 일으켰다. 프란츠 슈트라우스는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더 이상 연주를 못하겠다고 나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프란츠 슈트라우스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버지였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가 1868년 6월에 초연된 뮌헨국립극장(당시는 왕립궁정국립극장)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있었지만 초연은 계획대로 치루어졌고 대성공이었다. 바그너의 완전한 승리였다.  평론가들은 '뉘른베르크'를 바그너의 최대 걸작이라고 하면서 찬사를 보냈다. 초연의 첫날 공연이 끝나자 만장한 관중들은 '바그너, 바그너, 바그너'라고 소리치면선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때 바그너는 루드비히 2세와 함께 로열 박스에 있었다. 바그너는 루드비히의 앞으로 나와서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깊은 인사와 함께 한마디를 했다. 그것은 왕실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로열 박수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국왕 이외에 어떤 사람도 앞으로 나와서 관중들에게 인사를 할수 없으며 더구나 국왕이 뒤에 앉아 있는데 한마디 할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루드비히 2세는 바그너를 존중하여서 잠자코 있었다.

 

[출연진]

- 에바(Eva: S) - 포그너의 딸(초연에서는 마틸데 말링거가 맡았다.)

- 막달레나(Magdalena: MS) - 에바의 유모

- 발터 폰 슈톨칭(Walter von Stolzing: Heldentenor) - 프랑코니아에서 온 젊은 기사

- 다비드(David: High character-tenor) - 한스 작스의 도제

- 한스 작스(Hans Sachs: B-Bar) - 구두장인, 명가수(마이스터징거)

- 바이트 포그너(Veit Pogner: B) - 금세공장인, 명가수

- 직스투스 베크메써(Sixtus Beckmesser: Bar) - 마을 서기, 명가수

- 프리츠 코트너(Fritz Kothner: B) - 제빵 장인, 명가수

- 쿤츠 포겔게장(Kunz Vogelgesang: T) - 모피 장인, 명가수

- 콘라트 나하티갈(Konrad Nachtigal: B) - 함석 장인, 명가수

- 헤르만 오르텔(Hermann Ortel: B) - 비누 장인, 명가수

- 발타자르 초른(Balthasar Zorn: T) - 주석 장인, 명가수

- 아우구스틴 모저(Augustin Moser: T) - 양복 장인, 명가수

- 울리히 아이쓸링거(Ulrich Eisslinger: T) - 식료품상, 명가수

- 한스 폴츠(Hans Foltz: B) - 구리 장인, 명가수

- 한스 슈봐르츠(Hans Schwarz: B) - 양말 장인, 명가수

- 야경꾼(B), 기타 명가수조합원과 그 부인들, 나그네들, 도제들, 마을의 아가씨들, 뉘른베르크 시민들

 

성 카타리네 교회에서의 노래 경연대회 장면

 

[줄거리]

1막 1장. 뉘른베르크 성 카타리네 교회의 내부. 장엄한 전주곡이 끝나는 것과 함께 교회에서의 예배도 끝난다. 그 때 프랑코니아에서 온 젊은 기사인 발터 폰 슈톨칭이 바로 그날 아침에 만난 에바 포그너에게 혹시 누구와 약혼한 사이냐고 묻는다. 에바는 첫 눈에 발터에게 사랑하는 감정을 갖는다. 에바는 아버지인 금속장인이며 명가수인 바이트 포그너가 오는 성요한 축일(하지축제의 날)에 펼쳐지는 명가수조합의 노래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결혼시키기로 했다는 얘기를 전한다. 성요한 축일은 바로 다음 날이다. 에바의 하녀이며 유모인 막달레나가 다비드에게 명가수 경연대회에 참가하려면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하는지를 발터에게 설명해 주라고 권고한다. 다비드는 구두장인이며 명가수인 한스 작스의 도제이다. 발터는 전통적으로 예배 후에 교회에서 모이는 조합회의에서 명가수로서의 자격을 얻고자 한다. 발터는 명가수조합의 규칙이나 관례를 모르지만 노래 경연대회에 나가고 싶어한다.

 

1막 2장. 도제들이 교회에서 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다비드는 발터에게 명가수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명가수가 되려면 몇년동안 리트(가곡)의 가사를 쓰는 법, 노래부르는 법을 연마해야 하며 아울러 자기의 전문직업 분야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발터와 같은 귀한 신분의 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여 말한다. 이어서 다비드는 발터에게 작곡과 노래부르기에 대한 규칙들을 아주 복잡하게 설명해 준다. (다비드의 멜로디는 대체로 실제로 과거 명가수들이 불렀던 노래의 멜로디들이다.) 발터는 복잡한 규정에 대하여 혼란스러워하지만 어쨋든 우선 명가수 조합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뉘른베르크의 성카타리네교회는 중세에 도미니카수도회의 수도원교회였다. 수도원은 문서의 필사와 타페스트리 제작으로 유명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세속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다. 1620-1778년에는 뉘른베르크 명가수조합의 본부였다. 1945년에 전쟁으로 완전파괴되었으며 그후로 복구하지 않아 현재는 폐허로 남아 있다. Ruine der Katharinenkirche 라고 부른다. 현재는 그 자리에서 연극, 연주회등 여러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1막 3장. 명가수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선다. 에바의 부자 아버지인 바이트 포그너와 마을 서기인 베크메써도 포함되어 있다. 베크메써는 영리한 테크닉을 가진 가수로서 아무런 반대의견 없이 경연대회에서 우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발터가 포그너의 손님으로서 경연대회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실망한다. 포그너는 다른 명가수들이 도착하자 그들에게 발터를 소개한다. 회의의 의장을 맡은 제빵 장인인 프리츠 코트너가 출석을 부른다. 포그너가 나서서 노래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사람과 자기 딸을 결혼시키겠다고 다시 한번 선언한다. 그러자 한스 작스가 나서서 당사자인 에바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아야 할 것이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한다. 포그너는 만일 딸 에바가 노래경연대회의 우승자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고 이미 명가수로 인정을 받은 사람 중의 한 사람과는 분명히 결혼해야 할것이라고 말한다. 한스 작스는 경연대회의 우승자를 명가수들이 선정할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참석하여 그들이 선정토록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다른 명가수들이 그 제안에 대하여 말도 안되는 소리라면서 반대를 하여 없던 일로 한다.

 

포그너는 발터를 명가수조합에 가입할 후보자라고 공식적으로 소개한다. 그러자 다른 명가수들은 발터에 잘 알지 못하므로 별로 관심이 없는 표정들이다. 회의의 의장을 맡은 코트너가 발터에게 자기를 소개해 보라고 권한다. 발터는 시 스승이 발터 폰 데어 포겔봐이데(Walter von der Vogelweide)라고 소개하고 프랑코니아에 있는 그의 개인 서재에서 그의 시를 공부했다고 말한다. 발터 폰 데어 보겔봐이데(대략 1170-1230)은 당대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었다. 사람들은 발터가 그런 위대한 시인으로부터 시를 배웠다고 하자 놀라움을 표시한다. 발터는 노래부르는 것은 지저기는 새들과 자연의 소리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명가수들은 비록 잘 알지 못하는 나그네이지만 그의 말을 믿어서 마지 못해 발터의 회원가입을 승인한다. 그러면사 발터에게 그가 직접 지은 시로 노래를 불러보라고 요청한다. 발터는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심사는 조합의 채점위원인 베크메써가 맡기로 한다. 발터는 새로운 자유형태의 곡조로 노래를 부른다. 그런 노래는 명가수들의 규칙에 어긋나는 노래였다. 그래서인지 발터가 노래를 부르는 중에 마음씨가 고약한 베크메써는 계속 칠판에 무엇무엇이 규칙을 어긴 것이라면서 분필로 써내려갔다. 그렇게 분필글씨를 쓰는 소리가 아주 귀에 거슬렸다. 베크메써가 발터의 잘못을 칠판 가득히 써내려가다가 더 이상 쓸 자리가 없자 발터의 노래를 중단시키며 한다는 소리가 노래를 끝까지 불러야 할 이유가 없다고 선언한다. 한스 작스는 다른 명가수들에게 발터가 노래를 계속하도록 설득하였으나 베크메써는 규칙에 어긋나는 노래를 더 부르도록 한다는 것은 안된다면 사뭇 신랄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한스 작스에게 가서 구두 만드는 것이나 끝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리 채점담당이라고 하지만 지나친 언급이었다. 결국 명가수 심사위원들은 발터의 노래를 다수결로 거부했다.

 

발터와 베크메써

 

2막1장. 뉘른베르크 거리의 저녁이다. 포그너의 집과 한스 작스의 구두방의 사이에 있는 코너이다. 다비드가 막달레나에게 발터가 조합 가입에서 실패했다고 전한다. 막달레나는 실망한 나머지 다비드에게 주려고 가지고 왔던 음식을 주지도 않고 가버린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도제들이 다비드를 조롱한다. 다비드가 그들에게 대들려고 할 때 마침 한스 작스가 나타나서 자기의 도제인 다비드를 가게 안으로 쫓아버린다.

 

2막 2장. 포그너와 그의 딸 에바가 도착한다. 두 사람은 서로 알맹이도 없는 얘기를 주고 받는다. 에바는 발터가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궁금하지만 노골적으로 묻지를 못한다. 포그너는 자기 딸을 노래 경연대회의 우승자와 결혼시키겠다는 것이 과연 잘 한 결정인지 의심한다. 두 사람이 집으로 들어갈 때에 막달레나가 나타나서 에바에게 발터가 실패했다는 소문을 얘기해 준다. 에바는 한스 작스에게 이 문제를 직접 묻기로 결심한다.

 

2막 3장. 땅거미가 질 무렵이다. 한스 작스는 자기 가게에 앉아서 베크메써가 주문한 새 구두를 만들고 있다. 한스 작스는 얼마 전에 발터가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깊은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다.

 

2막 4장. 에바가 한스 작스를 찾아온다. 두 사람은 다음 날 있을 노래 경연대회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다. 에바는 베크메써가 우승을 차지할 것 같아서 걱정이다. 에바는 상처한 한스 작스가 우승해도 좋을 것 같다는 힌트를 준다. 그 말에 한스 작스가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에바에게 자기는 이미 너무 늙어서 남편이 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한스 작스는 베크메써가 공연한 트집을 잡아서 발터가 합격하지 못했다는 얘기해 준다. 그 말을 들은 에바는 너무 기가 막혀서 분을 참지 못하고 무작정 화를 낸다. 한스 작스는 에바가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에바가 발터를 사랑하고 있다는 감을 잡는다. 그때 막달레나가 나타나서 지금 베크메써가 에바의 창문 밖에서 에바를 위해 세레나데를 부르려고 하고 있다고 전한다. 에바는 막달레나에게 마치 자기가 있는 듯이 침실 창문에 기대어 있으라고 부탁한다.

 

2막 5장. 에바가 떠나려 할 때 발터가 나타난다. 발터는 에바에게 명가수 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거절 당했다고 얘기해준다. 발터와 에바는 기왕 일이 그렇게 되었으니 둘이서 멀리 도망가자고 얘기한다. 그런데 한스 작스가 두 사람의 도망 계획을 우연히 엿듣는다. 두 사람이 한스 작스의 가게 앞을 지나가려하자 한스 작스는 일부러 램프를 들고 거리를 밝게 비춘다. 두 사람은 어쩔수 없이 포그너의 집 뒤의 어두운 곳에 숨는다. 발터는 한스 작스가 자기들의 사랑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한스 작스에게 따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마침 베크메써가 세레나데를 부르기 위해 나타나는 바람에 그러지를 못한다.

 

2막 6장. 에바와 발터는 베크메써가 나타나자 어둠 속으로 더 숨어 들어간다. 베크메써가 세레나데를 부르기 시작한다. 한쪽에 있던 한스 작스가 그런 베크메써를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베크메써의 세레나데를 방해하기 위해 구두만드는 노래를 힘껏 부른다. 그리고는 아직 반쯤밖에 만들지 않은 구두의 밑창을 망치로 두드리기 시작한다. 베크메써가 한스 작스의 소음때문에 속이 상해서 한스 작스에게 그만두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스 작스는 주문받은 구두를 어서 만들어야 한다면서 그치지를 않는다. 베크메써는 한스 작스가 자기의 구두 만드는 것을 늑장을 부리고 있다고 비난한 일이 있다. 한스 작스가 타협안을 내놓는다. 자기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며 대신에 베크메써가 계속 노래를 부르도록 하겠지만 자기가 채점위원이 되어 만일 노래를 잘못 부르면 그때마다 망치로 구두 밑창을 한번씩 두드릴것이니 그렇게 하자는 제안이다.

 

베크메써는 에바의 침실 창문에 누군가 어른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사람을 에바라고 생각해서 한스 작스와 싱갱이를 할 시간이 없었다. 실은 막달레나가 에바의 지시대로 창문에 기대어 서 있었던 것이다. 베크메써는 다시 정신을 차려서 세레나데를 부르지만 너무 잘못 부르기 때문에 한스 작스가 망치로 구두 밑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그 통에 한스 작스의 도제인 다비드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 보니 베크메써가 분명히 막달레나를 대상으로 해서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다. 다비드가 질투에 불타서 베크메써에게 항의하며 대든다. 이런 소동으로 이웃 사람들이 모두 잠에서 깬다. 평소에 베크메써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다른 도제들도 합세하여 베크메써를 비난한다. 사태는 소요로 치닫는다. 그런 혼란한 틈을 타서 발터가 에바와 도망가려고 한다. 그때 한스 작스가 재빨리 에바를 자기 집으로 밀어서 들여보내고 발터는 가게로 들어가게 한다. 잠시후 언제그랬냐는 듯이 거리가 조용해진다. 한적한 밤거리에 야경꾼이 시간을 알리면서 지나가고 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무대

 

3막 1장. 한스 작스의 구두방이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한스 작스는 어떤 커다란 책을 읽고 있다. 한스 작스는 책읽는 일에 열중하여서 다비드가 베크메써에게 새로 만든 구두를 배달하고 돌아왔지만 그런 사실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다비드가 그런 한스 작스의 관심을 끌어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두 사람은 그날 있을 축제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다. 이 날은 성요한의 축일이기도 하지만 한스 작스의 명명일이다. 다비드가 축제 준비를 위해 떠나자 홀로 앉아 있는 한스 작스는 어젯밤의 소란을 곰곰히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미쳤지, 미쳤어! 모두 미쳤어!'(Wahn! Wahn! Überall Wahn!)라고 중얼거린다. 한스 작스는 그가 에바와 발터의 도피를 막았기 때문에 그런 대단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3막 2장. 한스 작스는 잠시 시간을 내어 발터에게 음악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명가수로서 노래부르는 법, 특히 명가수조합의 규칙에 맞게 노래부르는 법도 가르쳐 준다. 발터는 경연대회에서 새로 부를 노래의 가사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그 가사에 맞추어서 정성스럽게 노래를 부른다. 1막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과는 전혀 딴 판이다. 한스 작스는 발터가 새로 지었다는 시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자 그 시가 너무나 아름다원서 받아 적기 시작한다. 그런데 발터는 피곤해서인지 마지막 소절의 가사를 만들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일단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옷을 갈아 입으러 잠시 구두방에서 나간다.

 

3막 3장. 베크메써는 아직도 전날 밤의 소요 때문에 속이 상해 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지경이다. 한스 작스의 가게에 들른 베크메써는 책상 위에 한스 작스가 적어 놓은 새로운 노래가사를 본다. 베크메써는 가장 유명한 시인이기도 한 한스 작스가 아무도 몰래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경연대회에 직접 참가해서  자기가 새로 쓴 시로 노래를 불러 우승하여 에바와 결혼할 생각이라고 믿는다. 잠시후 한스 작스가  돌아오자 베크메써는 새로 쓴 노래가사를 들이 밀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따진다. 한스 작스는 베크메써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자기는 결코 에바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노래가사를 받아 적기는 했지만 자기가 쓴 것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밝힌다. 한스 작스는 가사를 적은 종이를 베크메써에게 선물이라고 하면서 가지라고 한다. 한스 작스는 그 가사를 자기가 쓴 것이 아니므로 이후로 절대로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베크메써에게 그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므로 그렇게 알라고 말한다. 그러나 베크메써는 그 가사를 유명한 한스 작스가 쓴 것이라고 확신하고 경연대회에서 사용할 생각으로 준비를 위해 바삐 밖으로 나간다. 한스 작스는 베크메써의 어리석음에 웃음만 짓는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사람이 좋아지겠지라고 바란다.

 

3막 4장. 에바가 한스 작스의 가게에 들어선다. 에바는 발터를 만나러 왔지만 마치 얼마전에 한스 작스가 만들어 준 구두가 발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을 말하기 위해 온 것처럼 행동한다. 한스 작스는 에바에게 만들어준 신발이 완벽하게 맞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부러 고쳐주겠다고 말한다. 한스 작스는 에바의 구두를 고치면서 에바에게 자기가 마침 아름다운 노래를 하나 들었는데 마지막 소절이 없는 것이라는 얘기를 해 준다. 발터가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축제(경연대회)를 위해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노래한다. 한스 작스와 에바가 모두 발터의 노래에 압도 당하여 감동한다. 발터와 에바는 한스 작스에게 발터가 이렇게 노래를 훌륭하게 부를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한스 작스의 덕분이라고 하면서 감사한다. 에바는 한스 작스에게 결혼 운운하면서 그의 마음을 가지고 놀린것처럼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용서를 구한다. 한스 작스는 자기의 운명은 구두장인, 시인, 홀아비로서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한스 작스는 비록 마음 한 구석에는 에바에 대한 감정이 있기는 하지만 마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마크 왕과 같은 처지가 되지 않으려는 결심한다. 그리하여 에바와 발터에게 축복을 내린다. 다비드와 막달레나가 나타난다. 한스 작스는 이들에게 새로운 우승노래가 만들어졌다고 선언하고 그 노래를 정식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노래에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도제는 세례의 증인이 될수 없다. 한스 작스는 도제인 다비드를 봔더게젤레(Wandergeselle: Journeyman)로 한 단계 격상하여 임명하고 전통적인 관례에 따라 귀를 두드린후 증인이 되도록 한다. 그런 후에 한스 작스는 새 우승노래인 '아침의 꿈노래'(Selige Morgentraumdeut-Weise: Morning Dream Song)에 대하여 세례를 준다. 다섯 사람은 앞날에 행운이 있으라고 바라면서 노래를 부른후 축제의 장소로 떠난다.

 

발터가 노래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명가수로 임명되는 장면. 데사우.

 

3막 5장. 페그니츠(Pegnitz) 강변의 초원이다. 성요한 축제가 거행되고 있다. 각각의 조합(길드)들이 깃발들을 들고 장엄하게 들어온다. 행렬의 마지막에는 명가수들이 등장하여 축제의 오프닝을 절정으로 만든다. 사람들이 명가수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랑받는 한스 작스를 칭송하는 노래를 부른다. 드디어 노래 경연대회가 진행된다. 베크메써가 한스 작스로부터 얻은 가사로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그는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가사를 노래의 멜로디에 맞추어 부르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을 형편없이 끝낸다. 사람들이 그런 베크메써에게 한없는 조소를 보낸다. 사람들은 한스 작스가 가사를 썼다는 얘기를 듣고는 어찌해서 훌륭한 한스 작스가 그런 형편없는 가사를 쓸수 있느냐며 의아해 한다. 그러자 한스 작스가 실은 그 가사는 자기가 쓴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만일 멜로디에 가사를 정확히 붙여서 노래를 부른다면 그보다 더 사랑스러운 노래를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스 작스는 자기의 말을 확인시켜줄 생각으로 발터를 부른다.

 

사람들은 새로운 노래가 얼마나 훌륭하길래 한스 작스가 저렇게 찬사를 퍼붓나라고 생각해서 발터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한다. 모두들 발터의 노래에 압도 당한다. 사람들은 발터를 조합의 명가수로 임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발터는 처음에 그럴 생각이 없었으나 한스 작스가 다시 한번 중간에 나서서 설득하는 바람에 마침내 명가수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승락한다. 한스 작스는 예술이란 문화적 전통 안에서만 존재할수 있다고 설명하고 그 전통이란 것은 예술이 유지되고 개선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발터는 한스 작스의 말에 확신을 가진다. 그래서 조합에 가입한다. 포그너가 나와서 명가수의 상징적인 메달을 발터의 목에 걸어준다. 사람들은 뉘른베르크가 사랑하는 명가수 한스 작스를 다시한번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피날레. 성요한의 축일(하지)에 열린 노래 경연대회에서 발터가 우승을 차지하고 에바와 결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