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 2

정준극 2013. 3. 6. 12:00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 2

 

[베크메써](Beckmesser) 이야기

 

베크메써가 발터의 노래에 틀린점이 많아고 하면서 칠판에 표시를 하는 장면. 글린드본 페스티발

 

'뉘른베르크'에서 규칙에 따라 엄격하게 채점을 하는 졸열한 인물인 베크메써는 간혹 당시 음악평론가로 유명했던 에두아르트 한슬리크(Eduard Hanslick: 1825-1904)를 빗대어서 그린 것이 아니냐는 물의가 있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제국의 프라하에서 태어난 한슬리크는 처음에는 바그너의 작품에 호의적이었으나 나중에는 대단히 신랄한 비평을 하여 바그너와 대단히 껄끄러운 관계였다. 그래서 바그너가 의도적으로 베크메써라는 아주 못된 인물을 만들어서 한슬리크를 똑같은 사람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그너가 '뉘른베르크'의 스케치를 시작한 1845년에는 한슬리크를 알지 못했었다. 그러므로 '뉘른베르크'에 베크메써를 등장시킨 것은 평론가 전부를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사족이지만 베크메써의 평론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시작한 것은 1846년부터였다. 그리고 한슬리크의 바그너에 대한 평론은 상당히 호의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바그너와 한슬리크의 음악적 견해가 빗나가기 시작했다. 바그너가 한슬리크에 대하여 비난을 했다기보다는 한슬리크가 바그너의 작품에 대하여 점점 신랄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바그너가 당연히 기분이 상했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바그너는 1861년 '뉘른베르크'의 두번째 가사 초안을 만들면서 편협하고 악의적인 채점담당자로 바이트 한슬리히(Veit Hanslich)라는 이름을 고안한바 있다. 한슬리히라는 이름은 누가보더라도 한슬리크라는 이름을 웃기게 표현한 것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다가 1862년에 한슬리히라는 이름은 베크메써로 바꾸었다. 한슬리크가 '뉘른베르크'의 초기에 자기 이름이 빗대어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확증은 없다.

 

음악평론가인 에두아르트 한슬리크. 바그너의 음악에 비판적이었다. 바그너는 '뉘른베르크'에서 한슬리크를 베크메써로 비유하였다고 한다.

                                  

바그너 학자인 배리 밀링턴(Barry Millington)은 한발 앞서서 베크메써에 대한 아이디어가 유태인에 대한 견해를 표현한 것이며 아리안인 발터는 바그너의 반유태주의를 대표한다는 주장을 했다. 밀링턴은 1991년도 그의 저서인 'Nuremberg Trial: Is there Anti-Semitism in 'Die Meistersinger?'(뉘른베르크 재판: 마이스터징거에는 반유태주의가 있는가?)에서 19세기에 독일에서 번졌던 반유태주의 양상은 '뉘른베르크'가 만들어낸 이념적 조작의 한 부분이며 베크메써는 분명히 반유태적 특성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밀링턴의 이같은 주장은 다른 바그너 학자들에게 두드러진 논란을 야기시켜준 것이었다. 예를 들면 챨스 로젠(Charles Rosen), 한스 루돌프 바게(Hans Rudolf Vaget), 폴 로렌스 로우스(Paul Lawrence Rose), 칼 챈커(Karl Zaenker) 등이다. 바그너의 증손녀로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공동감독인 카타리나 바그너(Katharina Wagner: 1978-)는 바그너가 그의 오페라들에서 유태주의를 강조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베크메써를 통해서는 아마 그랬을 것이다'라고 대답한 일이 있다. '뉘른베르크'에서 베크메써는 발터의 시를 바탕으로 노래를 부르지만 제대로 부르지 못해서 빈축을 산다. 그러다가 발터가 노래를 부르자 이에 크게 감동하고 압도 당한다. 그리고 한스 작스의 마지막 독백이 끝나자 그의 손을 잡고 흔든다. 말하자면 한스 작스에게 복속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베크메써가 노래를 부를때 잘못 부르는 부분이 있으면 한스 작스가 망치로 구두 밑창을 두드리기로 했다. 너무나 노래를 잘못 부르는 바람에 한스 작스의 망치 소리가 계속 울린다. 글린드본 공연.

                                                                  

[반응과 비평]

'뉘른베르크'는 1868년에 초연되었을 때 상당한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당시까지 바그너의 최대작으로 평가를 받았다. 한슬리크는 초연 이후에 Die Neue Freie Presse(신자유보)에 '색채와 찬란함의 놀랄만한 장면들이다. 앙상블은 생명력에 넘쳐 있고 주인공들은 보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슬리크도 처음에는 바그너에 호의적이었다. '뉘른베르크'는 초연이 있은지 1년도 되지 않아 독일의 전역에서 무대에 올려지는 역사를 이루었다. 드레스덴, 데사우, 칼스루에, 만하임, 봐이마르, 하노버, 그리고 비엔나에서도 1870년 베를린의 뒤를 이었다. '뉘른베르크'는 1871년 독일 통일 기간중에 가장 뛰어나고 가장 인기를 끈 독일적인 오페라였다. '뉘른베르크'는 애국적인 독일 예술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한스 작스가 3막의 마지막에서 독일 예술을 외국의 위협으로부터 보존해야 한다고 경고한것은 독일 국민주의를 겨냥한 것이다. 특히 당시는 보불전쟁이 끝난 시점이어서 독일 민족주의의 열기는 뜨거워질수 밖에 없었다.

 

20세기에 들어서서도 '뉘른베르크'는 계속적으로 독일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빌헬름 황제 시대를 거쳐 봐이마르 공화국 시대, 그리고 악명 높게도 독일 제3제국의 시기에 그러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1924년 바이로이트에서 페스티발이 재개되었을 때에도 '뉘른베르크'가 우선적으로 공연된 것도 그러한 생각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스 작스가 유명한 독백을 할 때에는 관중들이 모두 일어서서 경청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되어 있다. 한스 작스의 독백이 끝난 후에는 관중들이 한목소리로 독일 국가인 Deutschland über Alles(Das Lied der Deutschen)를 부르는 것도 관례로 되어 있다. '뉘른베르크'의 서곡 등은 나치가 선정용으로 자주 사용했다. 1933년 3월 21일, 제3제국의 발족을 기념하는 공연에서도 히틀러가 참석한 가운데 '뉘른베르크'를 공연했다. 3막의 전주곡은 1934년도 뉘른베르크에서의 나치 전당대회를 주제로 한 영화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 Triumph of the Will)에 사용하였다. 2차 대전 중인 1943-44년에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에서 무대에 올려진 오페라는 '뉘른베르크' 뿐이었다.

 

'뉘른베르크'와 나치주의와의 연합은 이 작품에 대한 가장 커다란 쟁점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에서의 '뉘른베르크' 첫 공연은 1956년이었다. 바그너의 손자가 되는 빌란트 바그너(Wieland Wagner: 1917-1966)이 감독을 맡은 제작이었다. 빌란트 바그너는 '뉘른베르크'에서 독일 국수주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추상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였고 무대 배경에서도 뉘른베르크의 모습을 모두 제외하였다. 그래서인지 그 제작은 Die Meistersinger ohne Nürnberg(뉘른베르크 없는 명가수)라는 별명을 들었다. 바그너의 증손녀가 되는 카타리나 바그너는 2007년에 바이로이트에서 대단히 논쟁이 되는 제작을 하였다. 전통과 명예의 명가수들을 구태의연하고 답답한 학교선생님들로 대체하였다. 그런가하면 한스 작스는 무정부주의자로 그렸고 노래경연대회는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을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나치의 뉘른베르크 야간 집회. 인상적인 조명과 바그너의 음악으로 집회장을 흥분과 감동으로 몰아 넣었다.

 

[유명 레코딩]

바이로이트 실황이 처음 녹음된 것은 1928년이었다. 레오 블레흐(Leo Blech)가 지휘하는 베를린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연주했다. 다음은 지금까지 나온 대표적인 바이로이트 공연실황 음반들, 그리고 잘츠부르크, 메트로폴리탄 등 주요 공연의 리스트이다. 출연진은 한스 작스, 발터, 베크메써, 다비드, 에바, 막달레나 순으로 표기했다. 그 다음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이다.

 

- 2001: James Morris, Ben Heppner, Thomas Allen, Matthew Polenzani, Karita Mattila, Jill Grove

- 1999: Robert Holl, Peter Seiffert, Andreas Schmidt, Endrik Wottrich, Emily Magee, Birgitta Svenden, Daniel Barenboim, Bayreuth Festival Orchestra and Chorus

- 1997: Jose van Dam, Ben Heppner, Alan Opie, Herbert Lippert, Karita Mattila, Iris Vermillon - Georg Solti, Chicago Symphony Orchestra

- 1993: Bernd Weikl, Ben Heppner, Siegfried Lorenz, Deon van der Walt, Cheryl Studer, Cornelia Kallisch - Wolfgang Sawallisch, Munich Staatsorchester

- 1976: Dietrich Fischer-Dieskau, Placido Domingo, Roland Hermann, Horst Laubenthal, Catarina Ligendza, Christa Ludwig - Eugen Jochum, Chorus and Orchestra of the German Opera, Berlin

- 1968: Theo Adam, Waldemar Kmentt, Thomas Hemsley, Hermin Esser, Dame Gwyneth Jones, Janis Martin - Karl Böhm, Orchestra and Chorus of the Bayreuth Festival

- 1967: Thomas Stewart, Sandor Konya, Thomas Hemsley, Gerhard Unger, Gundula Janowitz, Brigitte Gassbaender - Rafael Kubelik, Chorus and Orchestra of the Bavarina Radio

- 1951: Otto Edelmann, Hans Hopf, Erich Kunz, Gerhard Unger, Elisabeth Schwarzkopf, Ira Malaniuk - Herbert von Karajan, Bayreuth Festival Orchestra and Chorus

- 1950: Paul Schöffler, Günther Treptow, Karl Donch, Anton Dermota, Hilde Güden, Else Schürhoff - Georg Solti, Vienna Philharmonic

- 1949: Hans Hotter, Günther Treeptow, Benno Kusche, Paul Kuen, Anneliese Kupper, Ruth Michaelis - Eugen Jochum, Bayreuther Staatsorchester

- 1944: Paul Schoeffler, August Seider, Erich Kunz, Peter Klein, Irmgard Seefried, Else Schürhoff - Karl Böhm, Vienna Philharmonic

- 1937: Hans Herrmann Nissen, Henk Noort, Hermann Wiedermann, Richard Sallaba, Maria Reining, Kerstin Thorborg - Arturo Toscanini,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and Chorus, Salzburg Festival

- 1936: Friedrich Schorr, Rene Maison, Eduard Habich, Hans Clemens, Elisabeth Rethberg, Karin Branzell - Arthur Bodanzky, Metropolitan Opera Orchestra and Chorus

- 1936: Hans Herrmann Nissen, Charles Kullman, Hermann Wiedermann, Richard Sallaba, Lotte Lehmann, Kerstin Thorberg - Arturo Toscanini, Vienna Philhamonic Orchestra and Chorus

- 1928: Friedrich Schorr, Robert Hutt, Leo Schützendorf, Karl Jöken, Elfriede Marherr-Wagner, Lydia Kindermann - Leo Blech, Berliner Staatsoper

 

글린드본 공연 비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