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풍운아 바그너

빌란트 바그너(Wieland Wagner)

정준극 2013. 3. 7. 14:03

빌란트 바그너(Wieland Wagner)

레기테아터(Regietheater)의 주창자

 

 

빌란트 바그너

 

빌란트 바그너(Wieland Wagner: 1917-1966)는 독일의 오페라 감독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보다도 그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손자이며 지그프리트 바그너의 아들이라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유일한 아들인 지그프리트 바그너에게는 빌란트와 볼프강의 두 아들이 있었다. 빌란트는 지그프리트 바그너의 큰 아들이다. 외할머니 쪽으로 보면 프란츠 리스트의 증손자이다. 빌란트 바그너는 1941년에 무용가이며 안무가인 게르트루트 라이씽거(Gertrud Reissinger: 1916-1998)와 결혼하여 4 자녀를 두었다. 이리스(1942-), 볼프 지그프리트(1943-), 니케(1945-), 다프네(1946-)이다. 빌란트는 말년에 자기보다 훨씬 젊은 안야 실랴(Anja Silja)와 깊은 관계에 있었다. 안야 실랴는 빌란트가 바이로이트에 유치한 소프라노였다. 빌란트 바그너는 1966년 10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바이로이트 시립공동묘지(Stadtfriedhof)에 부인인 게르트루트와 합장되어 있다. 이곳에는 또한 그의 아버지 지그프리트와 어머니 비니프레트도 함께 매장되어 있다.

 

바이로이트 시립공동묘지에 있는 바그너 가족 묘지, 빌란트 바그너, 지그프리트 바그너, 게르트루트 바그너, 비니프레트 바그너가 안장되어 있다.

                 

무대감독 겸 무대 디자이너로서 빌란트 바그너는 증조 할아버지가 되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들을 새로운 현대 스타일의 무대로 연출하는 이른바 레기테아터(Regietheater)의 주창자이다. 레기테아터는 간단히 말해서 드라마의 심리학적인 면에 초점을 두며 상징적인 자연주의 무대를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조금 더 아는대로 설명을 하자면 오페라를 공연함에 있어서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재량권을 주어 작곡자의 오리지널 의도와 무대 연출의 내용이 변경될수도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주로 2차 대전 이후에 이러한 경향이 시도되었다. 그래서 장소가 변경된다든지 또는 상황이나 스토리, 그리고 출연진 까지도 변경될수 있다. 스토리는 정치사회적인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변경될수도 있고 지나치게 전통적이어서 현대인으로서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변경하는 경우도 있다. 레기테아터에서는 장소가 오리지널로부터 현대적으로 변경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인종차별, 남녀차별, 계급에 의한 억압 등 현실적인 문제들은 강조된다. 무대장치는 현대적으로 추상적이며 단순화 된다. 섹스에 대한 사항을 강조하는 경향이 많다. 의상은 시대나 지역을 혼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2010년 생루이오페라극장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2011년 '돈 조반니'를 공연 할 때에 어떤 출연자는 18세기의 의상을 입었으나 어떤 출연자는 20세기 중반의 의상을 입도록 했다.

 

레기테아터 개념에 의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연출. 바이로이트

 

빌란트의 무대감독 경력은 2차 대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 지그프리트와 할아버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를 연출하는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개혁적인 연출 방식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예를 들어 1937년 바이로이트에서의 '파르지팔' 연출은 변환의 장면에서 영사기를 사용했지만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1951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이 재개되었을 때 빌란트와 동생 볼프강은 어머니 빈프레트의 뒤를 이어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의 감독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히틀러의 시대에는 히틀러와 가까웠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새로운 방식의 연출을 시도하지 못했다. 실제로 빌란트의 새로운 연출 아이디어는 나치 시대에 억압을 받기도 했다. 빌란트의 1951년도 '파르지팔' 연출은 조명에 상당한 신경을 쓴 것이었다. 그러한 조명은 위로부터 둥근 미니말리스트 세트를 사용할수 있게 한 것이었다. 빌란트가 전후에 연출한 '지그프리트'에서 파프너는 30 피트에 이르는 거창한 규모의 용으로서 입에서 불을 뿜도록 했다. 최근의 연출에서는 입에서 불을 뿜는 대신 거대한 눈동자 두개를 사용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바이로이트 언덕에서 반쯤 걸쳐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빌란트의 1956년도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뉘른베르크 없는 명가수'라고 불린 정도로 상징적인 것이었다. 꽃피는 나무는 무대 위에 커다란 볼을 매달아 대신했으며 중세의 꼬불꼬불한 골목길들은 무대 바닥에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1972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무대. 빌란트 바그너 연출

 

빌란트 바그너는 바이로이트에서 그의 할아버지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를 연출한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그는 독일의 다른 도시, 또는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도 오페라 연출을 했다. 예를 들면 그는 '탄호이저'와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을 코펜하겐에서 '링 사이클'을 나폴리, 슈투트가르트, 쾰른에서, 베토벤의 '휘델리오'를 슈투트가르트, 런던, 파리, 브뤼셀에서 연출하여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을 했지만 빌란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독일의 소프라노인 안야 실랴였다. 안야 실랴는 불과 20세의 젊은 나이에 바이로이트에서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의 젠타를 맡았었다. 당시에 젠타를 맡았던 레오니 리자네크가 사정이 생겨서 출연을 취소했기 때문에 대타로서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안야 실랴의 젠타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안야 실랴는 강력하고 화려하며 젊고 빛나는 음성을 마음껏 들려주었다. 게다가 연기력이 뛰어났다. 안야 실랴는 빌란트가 이상으로 생각하던 여인이었다. 안야 실랴는 빌란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바이로이트에서 엘자(로엔그린), 엘리자베트와 비너스(탄호이저), 에바(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맡아했다. 안야 실랴는 빌란트와 실과 바늘의 관계가 되어 바이로이트 이외에서도 함께 했다. 이졸데, 브륀힐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와 살로메, 알반 베르크의 룰루와 보체크의 마리를 맡아했다. 안야 실랴는 심지어 빌란트가 제작한 베르디의 오텔로에서 데스데모나를 맡기도 했다.

 

빌란트 연출의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젠타를 맡은 안야 실랴. 빌란트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바그너 소프라노였다.

 

빌란트의 제작에 참여했던 정상급 성악가들은 다음과 같다. 한스 호터, 조지 런던,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에버하르트 배흐터, 토마스스튜워트, 테오 아담, 요제프 그란이들, 제롬 하인스, 볼프강 빈트가쎈, 라몬 비나이, 제스 토마스, 욘 비커스, 마르타 뫼들, 아스트리드 바르나이, 레진 크레스팽, 리타 고르, 레오니 리자네크, 비르기트 닐쓴, 장 마데이라, 그레이스 호프만, 프란츠 크라스,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그레이스 범브리, 크리스타 루드비히, 마르티 탈벨라, 카를로스 알렉산더, 이사벨 슈트라우스, 제임스 킹, 클로드 히터, 티초 팔리(Ticho Parly), 귀네스 존스, 프릿츠 분덜리히 등이다. 빌란트는 위대한 배우를 원했지만 그러면서도 자기의 계획을 성실하게 따라줄 성악가를 원했다. 지휘자로서 빌란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한스 크나퍼츠부슈, 클레멘스 크라우스, 앙드레 클러이튼스, 삐에르 불레즈, 허버트 폰 카라얀, 에리히 라인스도르프, 하인츠 티트옌, 로린 마젤, 볼프강 자발리슈, 칼 뵘, 브루노 마데르나, 토마스 스키퍼스 등이었다. 빌란트가 연출을 맡고 안야 실랴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바그너 오페라로서 비디오로 나온 것으로는 1967년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발퀴레'가 있다. 오사카 국제 페스티발에서 바이로이트 페스티발과 관련하여 공연한 실황이다. 이밖에 슈투트가르트 슈타츠오퍼에서 1968년에 공연한 베르크의 '룰루'도 있다.

 

빌란트 바그너(오른쪽)와 동생 볼프강 바그너

 

빌란트 바그너는 청소년 시절에 히틀러를 알게 되었다. 그는 히틀러를 '늑대 아저씨'(Uncle Wolf)인 독재자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빌란트와 결혼한 비니프레트는 히틀러와 가까운 친구사이였다. 바그너 가족이 히틀러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빌란트와 동생 볼프강은 군대에 끌려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무언가 일을 맡아야했다. 빌란트는 플로쎈뷔르크(Flossenbürg) 강제수용소의 바이로이트 지점의 민간인 부책임자로 일했다. 2011년 토니 파머(Tony Palmer)가 '바그너 패밀리'(The Wagner Family)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빌란트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부분 나온다.

 

바이로이트를 방문한 히틀러. 빌란트 바그너(오른쪽)와 비니프레트 바그너(지그프리트의 부인)가 히틀러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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