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알베르 볼프의 '파랑새' - 16

정준극 2013. 3. 17. 20:54

파랑새(L'oiseau bleu) - The Blue Bird

알베르 볼프(Albert Wolff)의 4막 오페라

모리스 매털링크의 '파랑새'를 오페라로

 

오페라 '파랑새'의 메트로폴리탄 공연 장면

 

어릴 때 '파랑새'라는 동화를 읽고 감동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파랑새를 찾으면 행복을 찾을수 있다고 해서 치루치루와 미치루라는 어린 남매가 파랑새를 찾아 집을 떠나 방황하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온다. 그러다가 집에 돌아와서 보니 창문 밖에 앉아 있는 새가 바로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파랑새였다는 얘기이다. 어릴 때 이 동화를 읽었던 사람들은 주인공의 이름들이 아직도 치루치루와 미치루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살은 그건 일본식으로 적어 놓은 것이다. 두 남매의 원래 이름은 틸틸(Tyltyl)과 미틸(Mythyl)이다. 그것을 일본 사람들이 치루치루와 미치루라고 적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틸틸과 미틸이라고 바로 알고 있어야 하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얘기해 줄 때에도 그렇게 발음해야 할 것이다.

 

그 '파랑새'를 프랑스의 지휘자 겸 작곡가인 알베르 볼프(Albert Wolff: 1884-1970)가 4막의 본격 오페라로 만들었다. 본격 오페라라고 말 한 것은 오페라 '파랑새'가 어린이를 위한 아동 오페라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알베르 볼프는 프랑스의 작곡가이지만 원래 혈통은 네덜란드인이다. 동화 '파랑새'는 벨기에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리스 매털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작품이다. 매털링크의 동화 '파랑새'는 세계의 많은 어린들이 전쟁이라는 환란을 겪으면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해 준 것이어서 대단한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의 알베르 볼프가 '파랑새'를 오페라로 만들고 싶다고 하자 매털링크는 두말하지 않고 원작을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오페라 '파랑새'가 만들어졌다. 첫 공연은 파란만장의 1919년도 저물어 가는 12월 27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있었다. 작곡을 한 알베르 볼프가 직접 지휘하였다. 초연에서 주인공인 틸틸 역은 벨기에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레이몽 들로누아(Raymond Delaunois)가 맡았고 미틸 역은 소프라노 메리 엘리스(Mary Ellis)가 맡았다.

 

'파랑새'의 메트로폴리탄 초연에서 틸틸을 맡은 메조소프라노 레이몽 들로누아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원작자 모리스 메털링크도 메트로폴리탄의 초연에 우정 참석하였다. '파랑새'의 초연은 1차 대전이 끝난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기왕이면 전쟁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을 돕는 자선공연으로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4가지 자선행사를 위한 공연으로 치루어졌다. 첫째는 벨기에여왕이 펼치는 자선행사(Queen of the Belgians Fund)의 기금을 후원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프랑스 고아들을 돕는 사업(Millerand Fund for French Orphans)을 후원하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가톨릭, 개신교, 유태교를 초월하는 빅 시스터스 기구(Big Sisters Organization)를 후원하는 것이었고 넷째는 미국에서 어린이들에게 우유를 지원하는 사업(Milk for the Children of America Fund)을 후원하는 것이었다. 동화 '파랑새'의 원산지인 벨기에에서의 오페라 '파랑새' 초연은 뉴욕에서의 초연 이듬해인 1920년 4월 21일이었다. 그후 거의 30년 동안 잠잠하다가 비로소 리바이벌 된 것은 1956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에 브뤼셀의 라 모네극장(Theatre de la Monnaie)에서였다. 이때에도 작곡자인 알베르 볼프가 직접 지휘하였다.

 

라 모네극장에서의 '파랑새' 공연. 현대적인 연출

                                       

등장인물은 의외로 많은 편이다. 어린이들도 여러 명이 등장한다. 틸틸(MS)과 미틸(S)에게는 어머니, 아버지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다. 엄마 틸(S), 아빠 틸(Bar), 할머니 틸(MS), 할아버지 틸(B)이다. 그밖의 등장인물은 사물이나 형상을 의인화한 것이다. 엄마의 사랑(S), 이해의 기쁨(S), 빛(MS), 아버지 시간(B), 빵(Bar), 우유(S), 소녀(S), 소년 2명(MS, Cont), 정의로움에 대한 기쁨(Silent),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MS), 요정(Cont), 밤(MS), 고양이(S), 개(Silent), 마담 벨링고(Cont), 행복(S), 아이(Silent), 설탕(T), 불(T), 어린이 다섯명(Silent: 네번째 어린이는 S) 등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옛적에 어느 마을에 땔감을 마련해서 파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틸틸과 미틸이라는 아이들이 있었다. 또 틸할머니와 틸할아버지도 함께 살았다.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반짝이는 트리도 없고 벽난로에 걸어둘 양말도 없었다. 틸 엄마와 틸 아빠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얘기는 그저 '어서 자거라'였다. 틸틸과 미틸은 낡은 침대에 누워서 자는 척하다가 엄마와 아빠가 다른 일로 바쁘자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나서 창문을 통해 옆 집인 부자집에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마녀 베릴륀(Berylune)이 갑자기 나타나서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는 풀과 파랑새를 찾아서 가져오라고 억지로 요구한다. 그것들이 있어야 병에 걸린 마녀의 어린 딸이 회복하고 행복해 진다는 것이었다. 틸틸과 미틸은 마녀의 요구사항이므로 어쩔수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마녀는 틸틸에게 아름답고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모자를 씌어준다. 이 모자는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며 어떤 물건이나 동물이라고 해도 말을 할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틸틸이 마법의 모자를 쓰자 주변에 있는 우유, 설탕, 빛, 빵, 불, 고양이, 개 등 모든 물건들이나 동물들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창문이 열리고 아이들은 파랑새와 노래하는 풀을 찾으러 가기 위해 창밖으로 내보내어진다. 아이들은 처음에 기억의 나라에 간다. 이어 밤의 궁전, 행복의 정원, 공동묘지, 그리고 미래의 왕국을 가지만 파랑새는 찾지 못한다. 아이들은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는다. 아침이 된다. 그때 마치 마녀처럼 생긴 어떤 이웃 아주머니가 아이들의 집에 와서 자기의 어린 딸이 아파서 누워 있는데 틸틸과 미틸의 집에 있는 파랑새를 보면 병이 나을지도 모르니 잠시 동안만 빌려달라고 한다. 아이들은 자기들에게는 파랑새가 없다고 하며 그래도 혹시나해서 주변을 둘러보니까 놀랍게도 아이들이 기르고 있던 비둘기가 파랑새로 변해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기쁜 마음으로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파랑새를 빌려 주었다. 그리고 아파서 누워 있던 이웃집의 어린 딸은 금방 기운을 차려서 낫는다. 틸틸이 이웃집 어린 딸에게 파랑새를 돌려 달라고 하자 이웃집 어린 딸은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자 파랑새는 아이들로부터 벗어나서 멀리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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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자 알베르 볼프

 

알베르 볼프

 

화란계 프랑스의 지휘자이며 작곡자인 알베르 볼프는 경력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다. 다만, 메트로폴리탄에서 2년, 그리고 2차 대전 중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몇년 동안 지휘자로 활동한 것을 제외하면 그렇다. 볼프는 주로 파리의 오페라 코믹극장의 지휘자로서 활동했다. 볼프의 부인은 프랑스 메조소프라노인 시몬 발라르(Simone Ballard)였다. 볼프는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는 화란인이었다. 하지만 볼프는 생전에 화란에 가서 산 일이 없다. 볼프는 12살 때에 파리음악원에 들어가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파리음악원에서 앙드레 제달즈(André Gedalge), 사비에르 르루(Xavier Leroux), 폴 안토닌 비달(Paul Antonin Vidal)과 같은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배웠다. 그는 파리음악원에 다니면서 캬바레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또한 생토마다퀸(St Thomas-d'Aquin)성당에서 오르간도 연주했다. 그는 22세에 화성악과 반주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파리음악원을 졸업했다.

 

곧이어 볼프는 파리 오페라 코믹극장에 일자리를 구할수 있었다. 파리 오페라 코믹극장은 볼프의 생애에 있어서 구심점 역할을 한 곳이었다. 지휘자로서의 첫 데뷔는 1909년 슈트라스부르에서 오페라 갈라를 지휘한 것이었다. 당시에 슈트라스부르는 독일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후 그는 프랑스의 여러 곳에서 오페라 분야의 지휘자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 볼프가 처음으로 오페라를 지휘한 것은 오페라 코믹극장에서 라파라의 '라 호타'(La jota)의 초연이었다. 볼프의 지휘에 좋은 인상을 받은 오페라 코믹은 1911년에 오페라 코믹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연에 지휘자로 데리고 갔다. 그는 콜론극장에서 드비시의 '플레아와 멜리상드'의 남미 초연을 지휘했다. 볼프는 나중에 '플레아와 멜리상드'의 나폴리, 코펜하겐, 크리스티아니아(현재의 오슬로), 스톡홀름 초연들도 지휘했다. 아무튼 그리하여 볼프는 1차 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오페라 코믹의 지휘자로서 활동했다. 볼프는 전쟁 중에 프랑스를 위해 공군 조종사로서 참전하여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볼프는 전쟁이 끝나자 미국으로 가서 메트로폴리탄의 피에르 몽토(Pierre Monteux)의 후임으로 프랑스 레퍼토리를 전담하는 지휘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지휘자로서 볼프의 메트로폴리탄 데뷔는 1919년 11월 구노의 '파우스트'로서였다. 볼프는 메트로폴리탄에 있으면서 자기의 작품인 '파랑새'의 초연을 지휘하는 기쁨도 맛보았다. 오페라 '파랑새'의 초연에는 원작자로서 대본까지 쓴 모리스 매털링크도 참석하여 볼프의 초연 지휘를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볼프는 메트로폴리탄에서 상당히 호평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생활을 타향살이로 생각하여 1921년에 파리로 돌아갔다. 오페라 코믹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앙드레 메사저(André Messager)의 후임이었다. 볼프는 오페라 코믹에서 모리스 라벨의 '어린이와 마법'(L'enfant et les sortilèges), 자크 이베르의 '안젤리크'(Angélique)의 파리 초연을 지휘했고 다리우스 미요의  Le brebis égarée(길 잃은 양)의 세계초연을 지휘했다. 그때 쯤해서 그는 Concerts Modernes Paris(파리 모던 콘서트)를 설립하여 일반대중에게 새로운 작품들을 소개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볼프는 1924년에 오페라 코믹을 사임하고 샹젤리제극장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샹젤리제극장으로 자리를 옮긴지 1년 후인 1925년, 볼프는 콩세르 빠스들루(Concerts Pasdeloup)의 제2지휘자가 되어 오페라보다는 오케스트라 음악에 보다 전념하였다. 1926년에는 런던의 로열 알버트 홀에서 지휘한 것도 그러한 맥락의 일환이었다. 볼프는 1934-40년에 빠스들루의 수석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콩세르 빠스들루의 전신은 콩세르 포률레어(Concerts Populaires)로서 일찍이 1861년에 창설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랜 연혁의 오케스트라이다. 이와 함께 볼프는 1928-35년에 오케스트르 라무러(Orchestre Lamoureux)의 수석지휘자로서도 활동했다. 볼프가 알베르 루셀(Albert Roussel: 1869-1937)이 그를 위해 헌정한 제4번 교향곡의 초연을 지휘한 것도 오케스트르 라무러에서 지휘자로 활동할 때였다. 오케스트르 라무러는 1881년에 샤를르 라무러가 창설한 파리의 오케스트라이다. 볼프는 그러한 활동을 하면서도 오페라 코믹에서 에마뉘엘 봉드빌(Emmanuel Bondeville: 1898-1987)의 L'École des maris(남편 학교: 몰리에르 원작)와 Madame Bovary(마담 보바리)의 초연을 지휘했다.

 

볼프는 1945년에 잠시지만 오페라 코믹의 감독이 되었다. 그때 그는 플랑크의 Les mamelles de Tirésias(티레지아의 유방: 1947)의 초연을 지휘했다. 볼프는 비록 오페라 코믹의 지휘자를 사임했지만 1970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간간히 오페라 코믹에서 지휘를 했다. 그가 오페라 코믹에서 '플레아와 멜리상드'를 무려 124회나 지휘한 것은 대단한 기록이었다. 볼프는 1949년부터 파리 국립오페라극장(Paris Opera)의 객원지휘자로서도 활동했다. 1960년에 스톡홀름에서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 장조를 지휘한 것은 특기할만한 일이었다. 그때 피아노는 스웨덴의 저명한 피아니스트인 라르스 셀러그렌(Lars Sellergren)이 연주했다.

 

볼프는 많은 음반을 녹음했다. 1928년에는 베를린필과 몇개의 음반을 내놓은 일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프랑스의 음악이었다. 1930년대에 파리의 폴리도르를 통해서 여러 음반들을 내 놓았다. 볼프는 러시아 음악들도 녹음했다. 그리고 파우스트와 라 보엠의 축소한 버전도 녹음했다. 1950년대에는 주로 데카 라벨로서 오페라의 녹음에 치중했다. 비제의 '카르멘', '아를르의 여인'은 뛰어난 음반이었다. 이어 아당의 '지젤', 글라추노프의 '사계'(The Seasons), 베를리오즈, 오버, 에롤드, 주페, 니콜라이, 레츠지체크의 서곡들, 팔라, 라벨, 랄로, 프랑크, 샤펜티어, 마스네의 오케스트라 작품들을 음반으로 내놓았다. 마르셀 란도브스키(Marcel Landowski: 1915-1999)의 교향곡 1번인 Jean de la Peur도 취입했다. 프랑스 라디오를 위해 녹음한 오페라들 몇 작품이 CD로 발매되기도 했다. 아당의 Le chalet(샬레), 마스네의 Thais(타이스), 봉드빌의 L'Ecole des mairs(남편 학교) 등이다. 알베르 볼프는 3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Soeur Beatrice(베아트리스 수녀: 1911, 니스 1948), Le marchand de masques(마스크 상인: 1914, 니스), L'oiseau bleu(파랑새, 1919, 뉴욕)이다. 발레곡으로서는 그의 아들 피에르가 시나리오를 쓴 Le clochard(함정)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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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시인, 극작가, 수필가

모리스 매털링크(Maurice Maeterlinck)

 

모리스 매털링크

 

'파랑새'의 작가인 모리스 매털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는 벨기에의 겐트에서 태어난 시인이며 극작가이고 에세이스트이다. 그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모두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모리스 매털링크는 191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의 주제는 대체로 죽음과 삶의 의미에 대한 것이다. 그는 프랑스 상징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파트를 담당하였다.

 

그가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아직도 20대인 1890년에 발표한 Princess Malerine(말레느 공주)로부터였다. 이 희곡이 발표되자 르 피가로지로부터 찬사를 받아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 그는 숙명주의(Fatalism)와 신비주의(Mysticism)에 입각한 작품들을 썼다. 대표적인 작품은 L'Intruse(침입자: 1890), Les aveugles(장님: 1890), 그리고 Pelléas et Mélisande(플레아와 멜리상드: 1892)이다. 모리스 매텔링크는 가수이며 배우인 조르제트 르블랑(Georgette Leblanc: 1857-1941)와 20년이 넘도록 깊은 관계에 있었다. 그러므로 르블랑은 매털링크의 작품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매털링크는 Aglavaine and Sélysette(아글라벵과 셀리세트)와 같은 희곡을 통해서 운명적인 여인상을 그려냈다. 그러면 르블랑이 연극을 통해 그런 역할들을 표현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보다 실존주의적인 스타일의 작품을 썼다. 지면의 한정으로 매털링크의 생애에 대하여 더 이상 길게 설명할 여유가 없으므로 이만 줄이기로 한다. 다만, 몇마디 덧붙인다면 그는 1919년에 57세의 나이로 30년 연하인 르네 다옹(Renee Dahon)이라는 여인과 결혼했다. 르네 다옹은 여배우로서 1910년에 '파랑새'의 리허설 중에 인연이 닿아 9년간의 데이트를 마감하고 결혼에 성공했다. 그리고 1932년에 벨기에의 알베르트 1세 국왕은 매털링크에게 백작의 작위를 수여했다. 그는 2차 대전 중에 나치를 피하여 미국으로 건너가서 살다가 전쟁이 끝나자 다시 프랑스로 가서 니스에서 여생을 보냈다.

 

모리스 매털링크와 깊은 관계에 있었던 오페라 성악가이며 배우인 조르제트 르블랑

 

모리스 매털링크의 작품은 음악의 진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플레아와 멜리상드'는 다섯명의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어 작품을 남기도록 했다.

 

- 1897. 윌렴 월레이스(William Wallace). 오케스트라를 위한 조곡 '플레아와 멜리상드'

- 1898.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 오케스트라 조곡(또는 막간음악으로 알려짐)

- 1893-1903. 클리드 드비시(Claude Debussy). 오페라 '플레아와 멜리상드'

- 1902-03. 아놀드 쇤버그(Arnold Schoenberg). 교향시

- 1905.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막간음악 '플레아와 멜리상드'

 

매털링크의 희곡들을 바탕으로 만든 다른 음악들로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Aglavaine and Sélysette(아글라벵과 셀리세트). 아서 오네거. 관현악 전주곡

- Ariane et Barbe-bleue(아리아느와 푸른 수염). 폴 뒤카의 3막 오페라, 아나톨리 니콜라예비치 알렉산드로프의 막간음악

- The Betrothal(약혼). 암스트롱 깁스(Armstrong Gibbs)의 막간음악

- Les aveugles(장님: The Blind). 비트 퍼러(Beat Furrer)의 오페라. 폴랜드 작곡가 얀 아스트리아브(Jan Astriab)의 오페라 Slepcy(슬렙시)

- The Death of Tintagiles(탄타길르의 죽음). 챨스 마틴 뢰플러(Charles Martin Leoffler)의 교향시, 랄프 본 윌렴스(Ralph Vaughan Williams)의 막간음악, 로렌스 콜링우드(Lawrence Collingwood)의 오페라, 카르스(Carse)의 서곡, 누게(Nougues)의 오페라, 산토리퀴도(Santoliquido)의 교향시, 부르몰렌(Voormolen)의 관현악 전주곡

- Monna Vanna(모나 바나). 에밀 아브랑이(Emil Abranyi)의 3막 오페라, 헨리 페브리에(Henry Fevrier)의 3막 오페라,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미완성 오페라, 니콜라에 브란초(Nicolae Branzea)의 3막 오페라

- L'oiseau bleu(파랑새). 알베르 볼프(Albert Wolff)의 오페라, 프리츠 하르트(Fritz Hart)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13장의 음악, 엥겔버트 훔퍼딩크의 막간음악, 크리카(Kricka)의 서곡, 노만 오닐(Norman O'Neill)의 막간음악, 첼리고브스키(Szeligowski)의 막간음악

- Princess Maleine(말레느 공주). 피에르 드 브레빌(Pierre de Breville)의 서곡, 시릴 스콧(Cyrill Scott)의 서곡, 릴리 불랑제(Lili Boulanger)의 미완성 막간음악, 막시밀리안 슈타인버그(Maximilian Steinberg)의 막간음악

- The Seven Princesses(일곱 공주). 피에르 드 브레빌의 막간음악, 나차예프(Nachayev)의 오페라

- Soeur Beatrice(수녀 베아트리스). 알렉산더 그레차니노프(Alexander Grechaninov)의 오페라, 아나톨리 리아도프(Anatoly Liadov)의 합창곡, 마르케즈 푸이그(Marquez Puig)의 오페라 Sor Beatriz, 드미트리 미트로풀로스(Dmitri Mitropoulos)의 오페라, 라쎄(Rasse)의 오페라

- Interieur(침입자). 지드리우스 쿠프레비치우스(Giedrius Kuprevicius)의 오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