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외르크 빌트만의 '바빌론' - 18

정준극 2013. 4. 12. 18:35

바빌론(Babylon)

외르크 빌트만의 사치스런 현대 오페라

 

작곡가이며 뛰어난 클라리넷 연주자인 외르크 빌트만

 

독일 뮌헨 출신의 중견 작곡가인 외르크 빌트만(Jörg Wildmann: 1973-)의 신작 오페라 '바빌론'이 2012년 10월 27일 뮌헨의 바바리아 슈타츠오퍼에서 초연되어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바바리아 슈타츠오퍼의 2012/2013 시즌을 장식하는 첫번째 오페라였다. 전체 7장으로 구성된 오페라 '바빌론'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사치스럽다고까지 말할수 있는 초현대적인 무대로 꾸며져서 세계 오페라계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아마 외계에서 온 사람이 보았으면 지구가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은 그저 소문일 뿐이고 바야흐로 풍요로운 경제붐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할 정도의 무대였다. 그 외계인은 오페라 '바빌론'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들인 탐무(Tammu)와 인나나(Innana)가 우주선을 타고 떠나는 것을 보고 '여기가 혹시 나의 고향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바빌론'의 무대는 우주적이다. '바빌론'은 모든 면에서 그랜드 스케일이다. 무대도 그렇지만 오케스트라도 그러했고 출연 인원도 그랜드 스케일이다.

 

알파벳이 적힌 건축 블로그로서 바벨탑을 짓고 허물기를 반복하는 장면

 

무대제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카를루스 파드리사(Carlus Padrissa)가 맡았다. 파드리사는 바르셀로나에 본부를 두고 있는 무대기획사인 라 푸라 델스 바우스(La Fura dels Baus)의 대표이다. 파드리사는 만일 '바빌론'의 무대가 스펙터클 하지 않다면 '바빌론'을 무슨 맛으로 보겠느냐고 말했다. 세트는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 무대세트로서 유명한 롤란드 올베터(Roland Olbeter)가 맡았다. 롤란드 올베터의 세트는 거대한 건축용 블록으로 구조물을 짓고 그것을 허무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무대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으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종말론적인 영상도 나오지만 포르노적인 그림도 보여준다. 합창단도 장대하게 보인다. 베토벤 스타일의 합창도 나온다. 그러나 파드리사의 아킬레스 건은 아무래도 각 개인의 특성과 그들의 감정을 분명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데에 있다.

 

아난나의 등장. 마치 누에고치에서 변태하는 듯한 인상이다.

 

초연의 캐스트는 최상이었다. 작곡자인 빌트만은 성악의 역할에 대하여도 상당한 신경을 썼다. 클래론 맥화든(Claron McFadden)은 '영혼'의 환상적인 비행을 마치 수정처럼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소프라노 안나 프로하스카(Anna Prorhaska)는 여사제인 인니나의 역할을 충실하고 화려하게 맡아하였다. 과연, 안나 프로하스카는 어떤 노래든지 소화할수 있는 소프라노였다. 오프닝에서 솔로를 맡은 스코르피온 인간은 카이 베셀(Kai Wessel)이 맡아 기괴한 표현을 훌륭하게 처리하였다. 원래는 카운터 테너가 맡도록 되어 있다. 탐무는 독일에서 촉망받는 테너인 유시 밀리스(Jussi Myllys)가 맡았다. 빌트만은 '바빌론'이 '모든 것에 대한 오페라'라고 말했다. 게다가 대본은 천문학자이며 철학자이며 대본가인 페터 슐로터디크(Peter Sloterdijk)였다. 그는 추방당한 유태인과 '영혼'과 바빌로니아 여사제와의 불투명한 사랑을 일곱 장면을 통하여 추적하였다. 일곱 장면에는 두개의 서로 다른 대홍수 장면이 나오며 사람을 제사지내는 것, 지하세계에서 거니는 것, 그리고 일곱 위성들이 노래하는 장면들과 관련되어 있다. 오페라 '바빌론'에는 선지자 에스겔, 스코프피온 인간, 영혼, 죽음 등이 의인화하여 나오며, 신년의 축일에는 일곱 개의 노래하는 남자 성기와 여자 성기를 의인화한 인물들, 일곱마리의 원숭이(유인원)들이 등장한다. 인나나는 지하세계로 여행하는 중에 일곱 개의 옷을 벗어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살로메'에서 일곱 베일의 춤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대본에는 바벨탑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무대의 뒤편, 또는 무대의 한편에서 대형 컴퓨터 키를 조작하여 바벨탑을 짓고 파괴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튼 무대는 여러가지 기이하고 기괴한 장면의 연속으로 첨단적인 장치와 조화를 이루도록 되어 있다.

 

베를린 슈타츠오퍼 무대

 

오페라 '바빌론'의 대강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위대한 도시인 바빌론은 두개의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는 순간에 앞으로 닥쳐올 문화의 변화를 위한 마당이 된다. 바빌론 사람들은 아직도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수행하지만 이곳에 추방당하여 정착한 유태인들은 이미 그런 제사를 폐기하였다. 그런 중에 추방당한 유태인인 탐무와 바빌로니아의 여사제인 인나나는 서로 사랑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서 갈등한다. 인나나는 자유분방한 사랑을 추구하는 신전의 여사제이다.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의 인나나는 사랑의 여신이기는 한데 육욕적인 사랑을 우선하는 여신이며 사랑도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혼외정사를 위주로 하는 것이다. 인나나 여신은 관능적이고 육욕적인 사랑을 선호하므로 이를 위하여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리와 주막집들을 배회하며 성적 모험을 추구한다. 그런 인나나이지만 오페라 '바빌론'에서는 탐무라고 하는 유태인 청년을 사랑하여 그가 제물로 죽자 지하세계에 내려가서 탐무를 살려서 데리고 나온다는 것이다.

 

지하세계로 여행하는 인나나를 뭇 시체들이 붙잡고자 한다. 뮌헨 초연에서 소프라노 마리나 파블로브스카야.

 

그건 그렇고 신들이 우주에 혼돈을 풀어 놓자 이 세상의 생활도 커다란 혼란에 빠진다. 선지자 에스겔이 유태백성들에게 전달한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우주로부터 운석들이 지구로 떨어져서 인간들을 위협하고 유프라데스강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일곱 위성과 유프라데스 강은 이 세상이 혼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거하는 역할이다. 이어 두번에 걸친 대홍수가 온다. 노아의 홍수를 연상케 하는 대홍수이다. 대사제이기도 한 왕은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칠 때에 하늘과 지상 사이에서 평화와 질서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한다. 바빌로니아 백성들은 이 말을 믿고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로 한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온 유태인 탐무가 제물로 선택된다. 바빌로니아 백성들은 바빌론 달력에 따른 새해의 축일에 광란의 잔치를 열고 마침내 탐무를 제물로 바친다.  탐무를 사랑하는 인나나는 '영혼'과 함께 탐무의 죽음을 탄식한다. 인나나는 지하세계로 내려가서 '죽음'에 간청하여 탐무를 살려서 데리고 나온다. 이 장면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다시 연합하여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마침내 사랑이 모든 것에 승리한 것이다. 사랑의 승리로서 하늘과 지상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며 인간들은 오래된 인간제물의 폐지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다. 하늘과 이 세상의 맺은 약속이 새로운 세상의 질서의 기본이 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7일로 구성된 일주일이 생활의 질서 있는 사이클이 된다.

 

바빌론의 신년축하 연회

 

작곡자인 외르크 빌트만은 '바빌론'에 대한 오페라를 오래동안 구상했다. 그가 원래 매력을 느낀 내용은 오늘날의 사랑과는 전혀 다른 고대 바빌론의 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아난나와 탐무의 사랑이 그것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고대 바빌론의 신화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 아난나와 탐무의 사랑 이야기는 외르크 빌트만보다 훨씬 이전에 에마누엘 쉬카네더에게 감동을 주어 '마술피리'에서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의 사랑 이야기로 각색을 하였고 그것을 모차르트가 오페라로 만들어서 잘 알려진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난나가 지하세계에 가서 탐무를 데리고 나오는 것은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연상하지 않을수 없는 내용이다.

 

원숭이(유인원)들이 첨단 영상을 보고 당황하고 있다.

                              

여기서 작곡자 외르크 빌트만에 대하여 소개코자 한다. 그는 작곡가이기도 하고 뛰어난 클라리넷 연주자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뮌헨음악극장대학(Hochschule fur Musik und Theater Munchen)에서 클라리넷을 공부했고 나중에는 뉴욕의 줄리아드에서 공부했다. 그는 1997년에 뮌헨에서 석사학위를 받은후 칼스루에음악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2001년부터는 젊은 나이에 프라이부르크음악대학에서 클라리넷 교수로 활동했다. 그리고 2001년에는 프라이부르크음악대학의 신음악연구소의 작곡부문 겸임교수가 되었다. 작곡은 뮌헨음악극장대학에서 클라리넷을 공부하면서 함께 시작했다. 그의 스승은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 빌프리트 힐러(Wilfried Hiller), 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bels) 등이었지만 특히 한스 베르너 헨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26년에 태어난 한스 베르너 헨체는 2012년 10월 27일, 바로 바바리아 슈타츠오퍼에서 수제자인 외르크 빌트만의 오페라 '바빌론'이 역사적인 초연을 갖기 몇 시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아마 빌트만의 새로운 시도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지하세계의 장면

 

외르크 빌트만은 클라리넷 연주자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어 독일은 물론 해외 각지에서 연주회를 가져 찬사를 받았다. 빌트만에게 헌정되어 초연을 가진 클라리넷 작품들도 여럿이나 있다. 볼프강 림(Wolfgang Rihm)은 1999년에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을 빌트만에게 헌정하여 초연을 가졌으며 2006년에는 아리베르트 라이만(Aribert Reimann)이 Cantus(칸투스)라는 작품을 헌정하여 서독일방송교향악단과 초연을 가진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작곡가로서 그는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을 개척하였다. 예를 들어 그는 악기 앙상블을 성악의 형태로 표현토록 하는 삼부작을 작곡하였다. 이 삼부작은 리트(Lied), 합창(Chor), 미사(Messe)로 구성되어 있다. 또 하나의 예는 화음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Armonica(아르모니카)라는 작품이다. 아르모니카는 2007년에 피에르 불레즈 지휘로 비엔나 필하모닉이 초연했다. 빌트만은 실내악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의 제1현악4중주곡(1997), 합창4중주곡(2003), 사냥4중주곡(2003)은 아르디티 현악4중주단이 초연하였다. 2005년에는 제4현악4중주곡, 푸가에 대한 실험(소프라노를 동반한 제5현악4중주곡)은 아르테미스 현악4중주단이 초연했다.이들 현악4중주곡 작품들은 하나의 사이클을 이루고 있다. 그의 '바이올린을 위한 연습곡 IV-VI'는 2010년에 카롤린 빌트만(Carolin Wildmann)의 연주로 비텐 신실내악의 날(Witener Tage fur neue Kammermusik)에서 초연되었다. 카롤린 빌트만은 외르크 빌트만의 누나이며 '비텐신실내악연주의 날'은 루르지방의 비텐에서 개최되는 현대실내악 페스티발이다. 외르크 빌트만의 첫 오페라인 Das Gesicht im Spiegel(거울 속의 얼굴)은 2003년에 뮌헨의 바바리아 슈타츠오퍼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오페라에는 그나마 어느 정도 낯설지 않은 음악들이 나온다. 바흐의 멜로디가 나오는가 하면 바바리아 맥주집의 민속적인 음악, 그리고 재즈풍의 멜로디와  낭만주의 음악도 나온다.

 

인나나가 탐무를 지하세계에서 살려서 데리고 나와 재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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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작전'(Operation Opera)이라는 작전이 있었다. 작전명을 오페라라고 붙인 것도 특이한데 이 작전의 또 다른 명칭은 '바빌론 작전'(Operation Babylon)이었다. 바빌론은 오늘날의 이라크를 말한다. 이라크가 등장하면 이스라엘이 따라 나오지 않을수 없다. '오페라 작전' 또는 '바빌론 작전'은 짐작한 대로 이스라엘과 이라크간의 사건이었다. 이스라엘 폭격기들이 1981년 7월 6일 새벽, 이라크의 바그다드 동남방 약 17km에 있는 건설중인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한 사건이다.이라크는 1976년에 프랑스로부터 오시리스(이집트 신의 이름) 급 원자로를 구입하여 건설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오시라크라는 말은 오시리스와 이라크를 합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라크가 이 원자로를 이용해서 핵무기를 제조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스라엘은 만일 이라크가 핵폭탄을 갖게 된다면 중동의 평화를 크게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극비리에 이스라엘 전투기와 폭격기를 발진시켜 오시라크 원자로를 파괴하였다. 이스라엘은 정당방위의 작전이었다고 주장했다. '오페라 작전' 또는 '바빌론 작전'은 이 작전이 있기 얼마전에 이라크와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이  역시 오시라크 원자로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수행한 '칼 초토화 작전'(Operation Scorch Sword)에 이어서 감행된 것이었다. 외르크 빌트만이 '바빌론'을 작곡하면서 이스라엘과 이라크간의 이같은 전투를 염두에 두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