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프란츠 요제프 1세

영욕의 프란츠 요제프 1세 - 1

정준극 2013. 3. 22. 12:32

영욕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누구?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프란시스 요셉 1세)는 현재로서는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군주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중의 하나이다. 무려 68년 동안 황제로서 군림했다. 사실상 기록으로 보면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가장 오래 국왕의 자리에 있었으며 그 다음이 리히텐슈타인의 요한네스 2세이고 그 다음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로 되어 있다. 그런데 루이 14세는 코흘리개의 다섯살 때에 국왕으로 등극하였으나 실제로 그가 23세가 되던 해까지 섭정정치가 이루어졌으므로 기록상으로는 72년을 군주로 있었지만 실제로 독자적인 통치 기간은 54년 밖에 되지 않는다. 현존하는 군주로서 가장 오랫동안 국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태국의 푸미폰 아둘야뎃(Bhumibol Adulayadej: 1927-) 국왕이다. 2014년으로 87세가 되는 푸미폰 국왕은 1946년에 국왕으로 즉위하였으므로 하기야 재위 68년을 기록한다. 하지만 등극하고 나서 학업을 계속하느라고 스위스에서 몇년을 보냈으니 정작 통치기간은 아직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를 따라가지 못한다. 두번째가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다. 올해 85세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1926-)은 우리나라에서는 6.25 동란이 한창이던 1952년에 즉위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므로 2014년으로 62년을 여왕으로 재위하고 있다. 엘 여왕은 아직도 정정하니 언제 왕위가 바뀔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그러나 푸미폰 국왕이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상징적인 국왕이므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21세 때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는 실질적인 통치군주였다. 그래서 기네스 북에는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세계 역사상 실제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군주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 블로그에서는 프란츠 요제프 1세에 대한 내용이 여러 파트에서 잠시잠시 거론되어 있지만 통합적으로 설명된 것은 없기에 차제에 간략하나마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누구인지 소개코자 한다. 지루하더라도 오스트리아 역사, 나아가서 서양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 대하여 이해를 높일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프란츠 요제프, 프란츠 칼, 프란츠 페르디난트 등 비슷비슷하므로 제발 혼동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각설하고, 오스트리아, 특히 비엔나에 가면 도처에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만나게 된다. 거리의 기념품 상점에도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아름다운 황비 엘리자베트(씨씨)와 관련된 기념품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수많은 군주와 황제 중에서도 프란츠 요제프 황제만이 상품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닐수 없다. 혹자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아직도 살아서 비엔나를 통치하고 있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과거 위대했던 제국에 대한 감상때문이리라. 결론적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황비에 대하여 상당히 알고 있으면 그나라 사람들로부터 친밀감과 함께 약간의 존경을 받을수 있다.

 

비엔나 시내 한복판의 부르크가르텐에 있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 기념상. 철저한 군인정신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생애의 대부분을 걱정과 근심 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영욕의 과거를 회상하는 듯 눈을 내리감고 있다.

                               

프란츠 요제프 1세(헝가리에서는 Ferenc Jozsef)는 1830년 8월 18일에 태어나 1848년 18세의 청년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11월 21일에 세상을 떠난 오스트리아제국의 황제, 헝가리의 왕(Apostolic King of Hungary), 보헤미아의 왕(King of Bohemia), 크로아티아 왕(King of Croatia), 갈리치아와 로디메리아의 왕(King of Galicia and Lodimeria), 크라코브(Cracow) 대공이다. 재위 기간은 1848년부터 1916년이므로 68년이 된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또한 1850년부터 1866년까지 독일연맹(German Confederation)의 의장이었다. 독일연맹(독일어로는 Deutscher Bund)은 1815년 비엔나회의가 결정한 사항으로 39개 독일 국가의 연맹을 말한다. 독일연맹은 과거의 신성로마제국을 대신하는 의미에서 구성된 기구이며 회원국간의 경제협력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참고로 독일연맹의 구성국가들은 다음과 같다.

 

1. 오스트리아, 카린티아, 카르니올라, 리토랄(Littoral), 잘츠부르크, 슈트리아, 티롤, 포아아를버그

2. 보헤미아 왕국(Lands of the Bohemian Crown)

3. 프러시아(Prussia)

4. 바바리아(Barvaria)

5. 작소니(Saxony)

6. 하노버(Hannover)

7. 뷔르템버그(Wurtemburg)

8. 바덴(Baden)

9. 헤세 선제후(Electorate of Hesse)

10. 헤세 대공국(Grand Duchy of Hesse)

11. 덴마크 점령의 홀슈타인, 라우엔부르크(Lauenburg)

12. 룩셈부르크(당시 네덜란드 소속)

13. 브룬스비크(Brunswick)

14. 메크렌부르크-슈베린(Mechlenburg-Schwerin)

15. 나사우(Nassau)

16. 작세 봐이마르 아이제나하(Saxe-Weimar-Eisenach)

17. 작세 고타(Saxe-Gotha)

18. 작세 코부르크(Saxe-Coburg)

19. 작세 마이닝겐(Saxe-Meiningen)

20. 작세 힐드부르크하우젠(Saxe-Hildburghausen)

21. 메클렌부르크 슈트렐리츠(Mecklenburg Strelitz)

22. 홀슈타인 올덴부르크(Holstein-Oldenburg)

23. 안할트 베른부르크(Alhalt-Dessau)

24. 안할트 베른부르크(Alhalt-Bernburg)

25. 안할트 쾨텐(Alhalt-Kothen)

26. 슈봐르츠부르크 존더스하우젠(Schwarzburg-Sondershausen)

27. 슈봐르츠부르크 루돌슈타트(Schwarzburg-Rudolstadt)

28. 호엔촐레른 헤힝겐(Hohenzollern-Hechingen)

29.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ein)

30. 호엔촐레른 지그마링겐(Hohenzollern-Sigmaringen)

31. 발데크(Waldeck)

32. 로이스(엘더 라인)(Reuss, elder line)

33. 로이스(영거 라인)(Reuss, younger line)

34. 샤움부르크 리페(Schaumburg-Lippe)

35. 리페 데트몰트(Lippe-Detmonld)

 

1820년 협약이 재차 체결되었을 때에는 다음 5개국이 포함되었다.

1. 헤세 홈부르크(Hesse-Homburg)

2. 뤼베크(Lubeck)

3. 프랑크푸르트(Frankfurt)

4. 브레멘(Bremen)

5. 함부르크(Hamburg)

 

1839년에 룩세부르크가 벨기에에 종속되는 바람에 림부르크 공국이 설립되어 독일연맹에 가입하여 1866년 해산때까지 함께 했다.

 

1863년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독일연맹 군주회의(Frankfurter Fürstentag)

 

프란츠 요제프가 오스트리아 황제의 자리에 오른 1848년은 유럽에서 혁명의 기운이 치솟던 해였다. 오스트리아에서도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로 가야 한다는 혁명이 일어났다. 다행히 혁명은 당국에 의해 무마되었다. 그러나 정부로서 무슨 조치를 취해야 했다. 수상이던 펠릭스 추 슈봐르첸버그(Felix zu Schwarzenberg)는 무능한 황제이던 페르디난트 1세를 폐위토록 하고 페르디난트의 조카인 청년 프란츠 요제프를 새로운 황제로 즉위토록 했다. 새로 황제에 오른 프란츠 요제프는 통치 기간 중에 시대가 시대이니만치여러 변화를 겪어야 했다. 프란츠 요제프는 보수적인 인물로 알려졌지만 통치의 초기에는 제국에 속하여 있는 나라들에서 입헌주의를 반대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859년의 제2차 이탈리아 독립전쟁과 1866년의 제3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의 결과, 롬바르디-베네치아를 피에드몽-사르디니아 왕국에 양보해야 했다. 오스트리아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였지만 프러시아 왕국에 어떠한 영토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 후에 체결된 프라하 조약(1866)은 독일 문제를 프러시아에 호의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독일 통일(Grossdeutsche Lösung)을 합스부르크가 주도하지 못하도록 한 조약이었다. 다시 말하여 독일 통일 문제는 합스부르크가 아닌 프러시아가 주도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오스트라아-프러시아 전쟁 중 쾨니히스그래츠 전투에서 프러시아의 프리디르히 칼 왕자가 병사들의 사기를 격려하고 있다.

 

프란츠 요제프는 통치기간 중에 민족주의(Nationalism)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특히 헝가리와의 문제가 계륵처럼 떠나지 않았다. 프란츠 요제프는 마침내 1867년에 아우스글라이히(Ausgleich)를 마무리했다. 아우스글라이히라는 단어는 '균형' 또는 '정착'이라는 의미이다. 간혹 '타협' 또는 '보상'이라는 의미도 있다. 1867년의 아우스글라이히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균형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그로부터 헝가리는 비록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에 속하여 있지만 보다 많은 독자성을 갖게 되었고 실제로 제국은 듀얼 모나키(Dual Monarchy)로 운영되었다. 프란츠 요제프는 이렇듯 헝가리와 아우스글라이히로서 균형을 이루어서 그후 무려 45년 동안이나 외형적으로는 평화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프란츠 요제프는 개인적으로 대단히 비통한 일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가장 큰 비운의 사건은 황태자인 루돌프가 1889년,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한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그렇게도 사랑했던 씨씨라는 애칭의 엘리자베트 황비가 1898년에 스위스에서 어떤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의 흉기에 피살된 것이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부인인 엘리자베트 황비. 헝가리의 왕비로 대관식을 가진 후 촬영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헝가리와 대타협을 이루어 하나의 제국으로 거듭나게 된 데에는 엘리자베트 황비의 숨은 공로가 컸다고 한다.

                                                             

오스트리아-프러시아 전쟁 후, 프란츠 요제프의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은 발칸으로 돌파구를 찾아 눈길을 돌렸다. 발칸은 오래전부터 제정 러시아와의 이해관계 때문에 국제적으로 분규와 긴장이 끊이지 않고 있던 지역이었다. 프란츠 요제프는 우선 1908년에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하였다. 결과 보스니아 사태가 일어났다. 보스니아는 1878년 베를린회담(Congress of Berlin) 이후로 프란츠 요제프의 군대가 점령하고 있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의 황제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손에 암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은 즉각적으로 세르비아 왕국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했다. 당시 세르비아는 러시아와 동맹관계에 있었다. 그리하여 오스트로-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왕국의 전쟁은 화약고에 불을 붙이듯 1차 세계 대전이라는 가공할 전쟁으로 확산되었다. 프란츠 요제프는 1차 대전 중인 1916년 11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뒤를 이어 프란츠 요제프의 손자조카가 되는 칼이 제국의 황제 자리에 올랐으나 1차 대전에서 제국이 패배하는 바람에 유구한 역사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마침내 문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에는 새로운 공화국이 들어섰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차기 황제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의 사라예보에서 피살됨으로서 야기된 1차 대전은 약 4천만명의 죽거나 부상당하거나 실종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 서거 1백주년]

***********************************


2016년은 프란츠 오제프 1세 황제의 서거 1백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비엔나에서는 2016년 3월 16일부터 11월 27일까지 비엔나의 네곳에서 특별기념 전시회를 갖는다. 첫째는 쇤브룬 궁전에서 '인간 그리고 군주'(Mensch & Herrscher)라는 타이틀의 전시회, 두번째는 쇤브룬 궁전에 부속되어 있는 황실마차박물관(Kaiserliche Wagenburg)에서 '위신과 겸손'(Reprasentation & Bescheidenheit)라는 타이틀의 전시회, 세번째는 7구 안드레아가쎄 7번지에 있는 황실가구박물관(Mobel Museum Wien: Hofmobiliendepot)에서 '축제일과 지난 날'(Fest & Alttag)라는 타이틀의 특별 전시회, 그리고 네번째는 비엔나 서쪽 헝가리 및 슬로베니아와의 국경에서 가까운 니더봐이덴성(Schloss Niederweiden)에서 '사냥과 여가'(Jagd & Freizeit)라는 타이틀의 전시회가 마련된다.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의 기일은 11월 21일이다. 입장료는 이상 네곳의 전시를 모두 볼 경우 어른이 25유로이며 8-18세의 청소년은 16유로이다. 그러나 한곳의 전시회만 본다면 어른이 9유로 50센트이며 청소년이 6유로이다. 다만, 쇤브룬 궁전에 속해 있는 황실마차박물관의 경우, 청소년은 무료입장이다. 개장시간은 쇤브룬 궁전 및 황실마차박물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황실가구박물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www.franzhoseph2016.at 를 방문하면 된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 서거 1백주년 기념 특별 전시회 안내 팜플렛

 

프란츠 요제프 황제 재위 60주년 기념 포스트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