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프란츠 요제프 1세

루돌프와 동반자살한 마리아 베체라

정준극 2015. 1. 3. 18:22

루돌프와 동반자살한 마리아 (Maria)

마리아 베체라 남작부인과 루돌프 황태자


루돌프 황태자의 애인인 마리아 베체라(Maria Vetsera: 영어로 Mary 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음)남작부인은 1871년 3월 19일 태어나 17세의 꽃같은 나이로 세상을 하직한 비운의 여인이다. [남작부인이라는 호칭 때문에 혹시 마리아가 결혼한 여자가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고 그의 아버지가 남작(baron)이라는 작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딸도 남작부인(baroness)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마리아의 아버지 알빈 베체라(Albinn Vetsera) 남작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외무공무뭔이었다. 마리아의 아버지는 마리아가 루돌프와 사귀고 있는 때에는 다른 나라에 외교관으로 발령받지 못하고 대기 중이었다고 한다. 마리아는 아버지 알빈 베체라 남작과 어머니 헬레레 베체라(Helene Vetsera)사이에서 태어난 1남 2녀중 큰 딸이었다. 마리아의 성장과정 등에 대하여는 굳이 알 필요가 없으므로 생략하고 다만 루돌프 황태자와의 이른바 동반자살에 대하여 일고(一考)코자 한다. 두 연인은 1889년 1월 30일 새벽에 비엔나 근교의 마이엘링(Meyerling)에 있는 프란츠 요셉 황제의 사냥 숙소(일설에는 루돌프가 이 건물을 매입하여 사냥 숙소로 사용했다고 되어 있으나 누구의 소유인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사냥 숙소의 이름을 따서 ‘마이엘링 사건’이라고 부른다. 마리아는 루돌프가 쏜 총알에 죽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항이지만 당시 정확한 사인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미궁속에 있다. 그저 이러니 저러니 하는 얘기만 무성할 뿐이다. ‘마이엘링 사건’은 합스부르크 황실에 의해 오래동안 안개 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정확한 진상을 알지 못하고 있다. 다만, 당시의 보도에 따르면 루돌프 황태자가 먼저 마리아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그 다음에 자기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쏘아 죽었다고 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두 사람은 살해되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당시 마리아가 죽을 때 임신하고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도 하나의 궁금증으로 남아 있다. 만일 마리아가 임신중이라면 가톨릭 신자로서 두 생명을 죽인 셈이기 때문이다.

 

하일리겐크로이츠수도원 묘지에 있는 마리아(메리) 베체라 남작부인의 묘지

 

마리아의 시신은 발견된 바로 그날인 1월 30일 오전에 누군가가 마이엘링 사냥 숙소에서 비밀리에 빼내어 인근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공동묘지에 매장하였다. 아마 황실의 누군가가 처리한 모양이었다. 수도원 공동묘지는 실상 수도원으로부터는 상당히 떨어진 장소에 있다. 그러다가 1945년 우연한 기회에 마리아의 유해를 검사해야하는 경우가 생겼다. 전쟁으로 묘지의 일대가 포격을 받아 무덤들이 훼손되었으므로 마리아의 시신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유골에 대한 검사를 했다고 한다. 검사 결과 두개골에는 물론 다른 골격에도 총탄이 박혔던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루돌프가 마리아의 머리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보고는 어떻게 된 것인가? 1992년 우연한 기회에 마리아의 유해를 또 다시 검사하게 되었다. 역시 마찬가지 결과였다. 두개골에는 물론이고 다른 뼈에도 총알 흔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머리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는 증거가 제시되었다. 그렇다면 총으로 쏘아 죽인 것이 아니라 심하게 구타하여 죽게 만들었다는 결론이다. 정말 그랬는가?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심한 타박상의 흔적은 루돌프의 유해에서도 발견할수 있었다. 그리고 루돌프는 머리에 한방의 총알을 맞은 것이 아니라 신체의 이곳 저곳에 모두 여섯 발의 총알을 맞은 것으로 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자살할 때에 머리에 한발의 총알을 쏘면 그 자리에서 쓰러지게 마련이다. 더 이상 기운을 차릴수 없기 때문에 계속하여 여섯발의 총알을 자기 몸에 쏘아 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루돌프가 자살했다는 권총에는 그만한 총알이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쏘았다고 밖에 해석할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 정말 자살했는가?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에서의 필자 (2006. 12)


가톨릭 신자로서 루돌프는 가톨릭 교회식으로 장례를 치루고 안장되었다. 가톨릭 교회가 자살한 사람의 장례를 교회식으로 치루도록 허용했다는 것은 극히 드믄 일이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루돌프의 가톨릭 장례를 위하여 로마 교황청과 몇차례 서신을 교환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살은 했지만 온전한 정신에서 자살한 것이 아니므로 교회식 장례를 치룰수 있는 양해를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루돌프가 정신이상자였다는 말인가? 루돌프에 대한 과거 기록에 그가 정신이상자였다는 얘기는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황실측은 루돌프가 정신적 불균형(Mental Unbalance)으로 마리아를 죽이고 자신도 죽었다고 발표했다. 진상은 과연 무엇인가? 현재로서 유일한 단서는 프란츠 요셉 황제가 로마 교황청에 보냈다는 서신의 내용이다. 로마 교황청의 문서창고 깊숙이 들어 있는 서신들이 공개된다면 세기를 건너며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루돌프와 마리아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가 풀릴지도 모른다.

 

마이엘링의 황실 사냥 숙소(현재는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의 수녀원 겸 교회). 교회 안에 마이엘링 사건에 대한 조그만 전시장이 있다.

 

‘마이엘링 사건’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로는 두편이 있다. 1936년 프랑스가 제작한 다니엘 다류(Danielle Darrieux)와 샤를르 보이에(Charles Boyer)가 주연한 ‘마이엘링’이란 영화와 1968년 미국이 제작한 캬트리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와 오마 샤리프(Omar Sharif)가 주연한 ‘마이엘링’이다. 1968년의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비수(悲愁)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1954년도 TV 영화도 있다.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과 멜 페러(Mel Ferrer)가 주연한 것이다. 2007년에는 오스트리아 TV가 막스 폰 투른(Max von Thurn)을 비운의 루돌프 황태자 역으로 하여 영화를 만들었다. 세계적인 안무가인 영국의(나중에는 호주) 케네드 맥밀란(Kenneth MacMillan: 1929-1992)은 1978년에 발레작품 ‘마이엘링’을 만들었다. 프란츠 리스트의 음악들을 편곡하여 사용한 발레작품이다. 마리아 베체라가 프리마 발레리나의 역할을 맡은 것이다. 발레 '마이엘링'은 역사적인 사실과 내용이 다른 점이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루돌프’라는 뮤지컬도 있다. 2006년 7월 부다페스트의 오페레타극장(Operett Szinhaz)에서 초연을 가졌다. 2006년도 영화 The Illusionist(환상가)는 마이엘링 사건을 줄거리로 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상당히 다르다.

 

캬트리느 드뇌브(마리아)와 오마 샤라프(루돌프)가 주연한 영화 '마이엘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