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메조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Vesselina Kasarova)

정준극 2013. 4. 19. 22:48

베셀리나 카사로바(Vesselina Kasarova)

불가리아의 큰 별

 

불가리아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

 

요즘 세계의 오페라계는 불가리아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에 대한 찬사로 넘쳐 있다. 혜성처럼 등장한 메조소프라노이다. 1965년생이므로 2013년으로 48세이니 이미 중년을 넘어선 나이지만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바쁜 성악가 중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다. 카사로바는 몸과 영혼으로 노래를 부른다. 그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진지하여서 자기도 모르게 그 노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전율을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대단한 비르투오소이면서도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성악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그가 맡았던 오페라의 역할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를 짐작할수 있다. 2008년 이후로 그가 맡았던 오페라의 역할은 헨델의 '아그리피나'의 아그리피나, 로시니의 '라 체네렌톨라'의 안젤리나, 헨델의 '아리오단테'의 아리오단테, 비제의 '카르멘'의 카르멘, 마스네의 '베르테르'의 샬로테, 생생의 '삼손과 델릴라'에서 델릴라, 베르디의 '돈 카를로'의 에볼리, 로시니의 '샤브란의 마틸데'의 이사벨라,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의 마리나, 칼 하인리히 그라운의 '몬테추마'의 몬테추마, 벨리니의 '캬퓰레티가와 몬테키가'의 로메오, 헨델의 '알치나'의 루지에로, 로시니의 '세발리아의 이발사'의 로지나, 바그너의 '탄호이저'의 비너스 등이다. 이렇게 많은 역할 중에서 어느 역할이라도 아무때나 공연할수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재능이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벨리니의 '캬퓰레티가와 몬테키가'에서 안나 네트렙코(줄리엣)의 상대역으로 로미오를 맡은 베셀리나 카사로바

 

베셀리나 카사로바는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음반을 취입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오늘날 까지 끊임없이 취입을 했다. 세계적으로 자기의 이름과 노래를 가장 널리 알릴수 있는 길은 음반이 최고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셀리나 카사로바의 이름은 그의 수많은 음반으로(또는 비디오로) 이미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제 좀 지루하겠지만 베셀리나 카사로바가 취입한 음반들을 소개코자 한다. 카사로바의 오페라 출연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반을 골라서 구입하여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차이코브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1988). 가정부, 에밀 차카로프 지휘의 소피아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1992) 폴랭. 오자와 세이지 지휘의 비엔나 슈타츠오퍼

- 벨리니의 '텐다의 베아트리체'(Beatrice di Tenda: 1992). 아그네세, 핀카스 슈타인부르크 지휘의 오르프 심포니 오케스트라

- 로시니의 '탄크레디'(Tancredi: 1996). 탄크레디, 로베르토 아바도 지휘의 뮌헨 라디오 오케스트라

- 베버의 '오베론'(Oberon: 1996). 파티메, 마레크 야노브스키 지휘의 도이체스 심포니 오케스터 베를린

- 오펜바흐의 '아름다운 엘렌'(La belle Helene: 1997). 엘렌. 나콜라우스 하르논쿠르트 지휘의 취리히 오페라

- 마스네의 '베르테르'(Werther: 1999). 샬로테, 블라디미르 주로보스키 지휘의 도이체스 심포니 오케스터 베를린

- 벨리니의 '캬퓰레티가와 몬테키가'(I Capuleti e i Montechi: 1999). 로메오, 로베르토 아바도 지휘의 뮌헨 라디오 오케스트라

-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La Damnation de Faust: 1999). 마르게리트, 실뱅 샴브르링 지휘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발

-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2001). 로지나, 넬로 산티 지휘의 취리히 오페라

- 도니체티의 '라 화보리타'(La Favorita: 2001). 레오노르, 비오티 지휘의 뮌헨 라이도 오케스트라

- 몬테베르디의 '율리시스의 조국 귀환'(2003). 페네로페, 하르논쿠르트의 취리히 오페라

- 모차르트의 '티토의 자비'(2003). 세스토. 하르논쿠르트의 잘츠부르크 여름 페스티발

- 글룩의 '오르페와 유리디스'(Orphee et Euridice: 2004). 오르페. 이보르 볼튼의 바바리아 슈타츠오퍼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Der Rosenkavalier: 2005). 옥타비안. 프란츠 벨저 뫼스트의 취리히 오페라

- 모차르트의 '티토의 자비'(La Clemenza di Tito: 2005). 세스토. 핀카스 슈타인부르크의 뮌헨 방송오케스트라

- 모차르트의 '폰토의 왕 미트라다테'(Mitradate, re di Ponto: 2006). 화르나체. 로저 노링턴의 카메라타 잘츠부르크

- 로시니의 '라 체네렌톨라'(:La Cenerentola: 2006). 안젤리나. 카를로 리찌의 뮌헨 라디오방송오케스트라

- 도니체티의 '돔 세바스티앙'(Dom Sebastien: 2007). 자이다. 마크 엘더의 ROH 오케스트라

- 헨델의 '알치나'(Alcina: 2007). 루지에로. 이보르 볼턴의 바바리아 슈타츠오퍼...

 

이밖에도 2003년에 Bulgarian Soul 이라는 음반을 냈다. 불가리아 민속노래들을 취입한 것이다. 불가리아의 작곡가인 크라시미르 키우르크치이스키(Krassimir Kyurkchiyski)와 협동하여 내놓은 음반이다. Cosmic Voices from Bulgaria 라는 합창단과 Sofia Soloists Orchestra가 연주했다. 카사로바는 '많은 사람들은 나의 조국이 어디인지 모르고 있다. 나는 그들이 불가리아의 영혼을 발견하도록 해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유례없이 취입한 음반까지 소개하는 것은 베셀리나 카사로바라는 메조소프라노가 얼마나 대단한 성악가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음반 취입하랴, 오페라 출연하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여기서 카사로바, 저기서 카사로바'이다. 아무튼 대단한 성악가이다. 카사로바의 이름은 메조소프라노가 귀한 이 때에 마릴린 혼이나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뒤를 있는 거성으로서 세계 오페라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베셀리나 카사로바는 불가리아 중부의 스타라 차고라(Stara Zagora)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에는 불가리아가 소련의 영향을 받는 공산주의 국가여서 카사로바도 제2외국어로 러시아어를 배웠다. 카사로바는 4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이어 스타라 차고라의 흐리스티나 모르포바음악공연예술학교에 들어갔다. 이 학교는 오전에는 일반 고등학교나 마찬가지의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음악이나 다른 예술분야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학교이다. 그는 이 학교에서 계속 피아노를 공부했다. 피아노를 잘 쳐서 학생시절에 벌써 반주자로서 인기를 끌었다. 1987년에 이 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피아노보다는 성악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그렇게 잘하던 피아노를 중단하고 소피아음악원에 들어가서 성악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카사로바는 소피아음악원에서 유명한 레사 콜레바(Ressa Koleva)선생으로부터 모차르트와 로시니의 음악에 초점을 둔 가름침을 받았다. 카사로바가 처음으로 큰 무대에 선 것은 스타라 차고라에서 열린 어떤 음악회에서 '카르멘'의 하바네라를 부른 것이었다. 카사로바는 소피아음악원에 다니면서도 소피아국립오페라에서 단역이나마 맡아서 출연했다. 오페라 무대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 시작한 것은 이때였다. 그는 소피아음악원 졸업시험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로지나를 맡아 찬사를 받았다.

 

베셀리나 카사로바의 고향인 불가리아의 스타라 차고라는 로마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진은 로마유적지인 야외극장에서 '돈 조반니'의 공연. 스타라 차고라에서는 연례 오페라-발레 페스티발이 열린다.

 

소피아음악원은 카사로바가 졸업학년에 이르자 다른 졸업반 학생 5명과 함께 프랑스 연주여행을 보냈다. 그러면서 그 연주여행을 주선했던 불가리아의 음악기획사가 카사로바의 노래를 녹음해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들어보라고 보냈다. 폰 카라얀은 카사로바의 노래를 듣고 나서 즉각적으로 잘츠부르크 또는 비엔나에서 만나자고 연락했다. 카사로바는 잘츠부르크로 갔다. 폰 카라얀은 카사로바에게 바흐의 B 단조 미사에서 아누스 데이를 불러보라고했다. 카사로바는 훌륭하게 노래를 불렀다. 폰 카라연은 다음해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바흐의 B 단조 미사를 연주할 때에 카사로바를 솔리스트로 기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폰 카라얀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 연주회는 무산되었다. 불가리아의 음악기획사는 카사로바의 노래 테이프를 아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임프레사리오인 이오안 홀렌더(Ioan Holender)에게 보냈다. 비엔나 슈타츠오퍼는 카사로바를 당장 1991-92 시즌의 2년동안 계약하자고 연락해 왔다. 프랑스 연주여행에서 돌아온 카사로바는 불가리아에서 스타라 차로가 오페라의 오디션을 보았다. 그 오디션 자리에는 취리히 오페라의 임프레사리오인 크리스토프 그로처(Christoph Groszer)도 있었다. 그는 카사로바의 노래를 듣자마자 취리히 오페라와 계약을 맺도록 했다.

 

                          

소피아음악원을 졸업한 카사로바는 1989년에 취리히 오페라의 앙상블에 합류했다. 전문 성악가로서 카사로바의 첫 오페라 데뷔는 취리히 오페라에서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에서 제2 노른(Norn)과 발키리의 한 사람인 벨군데(Wellgunde)를 맡은 것이었다. 카사로바의 역할을 사소한 것이었지만 그의 노래와 연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카사로바는 독특한 음색을 지녔다. 카사로바는 온 몸으로 노래를 불렀다. 게다가 그는 놀라운 성악적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다. 카사로바는 귀터슬로(Guethersloh)경연대회에 나가서 2등을 했고 '올해의 새로운 음성상'(Neue Stummen)이라는 귀한 상을 받았다. 이 경연대회의 3등은 바리톤 르네 파페(Rene Pape)와 프랑스의 테너 베르나르 롬바르도(Bernard Lombard)였다. 이 경연대회는 BMG 라벨의 클래식 음반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베르텔스만이 주관한 것이었다. 카사로바는 이후로 BMG 라벨로 음반을 낼수 있는 특별계약을 맺었다. 1991년에는 드디어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 참가할수 있었다. 두개의 공연에 출연했다. 하나는 모차르트 서거 200 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였고 다른 하나는 콜린 데이비스가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티토의 자비'에서 아니오(Annio)를 맡은 것이었다. 카사로바는 그 해에 비엔나 슈타츠오퍼와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취리히오페라를 떠났다. 카사로바는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로지나를 맡아 역사적인 데뷔를 하였다. 카사로바는 비엔나에서 스위스 출신의 현재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콘서트에서의 베셀리나 카사로바

                       

카사로바가 국제적인 성악가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의 발판이 되었다. 로시니 특별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탄크레디를 부를 마릴린 혼(Marilyn Horne)이 갑작스럽게 사정이 생겨 출연하지 못하게 되었다. 비엔나에 있던 카사로바가 급히 불려왔다. 카사로바의 탄크레디는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로부터 카사로바는 잘츠부르크 여름 페스티발의 고정 출연자가 되어 모차르트의 '티토의 자비', '이도메네오', '여자는 다 그래', '미트리다테'를 비롯하여 모차르트의 파스티셰인 '옴브라 펠리체'(Ombra Felice),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La Damnation de Faust)의 주역을 맡았다. 이와 함께 그는 베르겐츠, 생 몰리츠, 글린드본, 뮌헨, 페사로의 오페라 페스티발에 출연하여 팬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카사로바는 기본적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와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와 같은 벨 칸토 오페라들을 특별히 전공했다. 로지나와 같은 역할을 그의 등록상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는 바로크 오페라의 '바지역할'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바로크 오페라에서는 여성의 출연이 제한되었으므로 카스트라토, 또는 남장여자 성악가의 출연이 일반적이었다. 카사로바는 글룩의 '오르페와 유리디스'에서 오르페, 헨델의 '알치나'에서 루지에로, 헨델의 '아리오단테'에서 아리오단테 등 '바지역할'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2008년에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카르멘'의 타이틀 롤을 맡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카사로바의 음성은 보다 따듯하고 보다 규모가 크게 발전하였다. 이어 그는 몇개의 드라마틱한 역할을 본래의 레퍼토리에 추가하였다. 예를 들면 베르디의 '돈 카를로'에서 에볼리 등이다. 어느때 카사로바는 인터뷰에서 레퍼토리가 변화되는데 따른 견해를 묻자 '기본은 벨 칸토이다. 벨 칸토에 기본을 두고 있어야 음성의 건강을 유지할수 있다. 그리고 무거운 역할도 감당할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