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매력의 분수

5 - 9구의 분수들

정준극 2013. 5. 21. 09:07

5 - 9구의 분수들

 

⊙ Bärenbrunnen(배렌브룬넨) - 곰분수

 

5구 마르가레텐 귀어텔 인근의 헤르베그호프(Herweghof)와 율리우스 포프 호프(Julius-Popp-Hof)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다. 석조 조각으로 한나 개르트너(Hanna Gärtner)의 작품이다. 1928년에 설치되었다. 어미 곰이 아기 곰을 등에 태우고 있는 모습이다. 좌단은 12각형으로 12간지의 동물들을 조각해 놓았다. 저러다가 아기 곰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잠이 안 올 지경이다.

 

5구 헤르베그호프 앞에 있는 곰 분수

 

⊙ Margaretenbrunnen(마르가레텐브룬넨) - 마르가레텐 분수

 

5구 마르가레텐의 마르가레텐플라츠(Margaretenplatz)에 있는 아름다운 분수이다. 마르가레텐구가 1829년에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에 의해 지벤브룬너 상수도시설이 완성된 것을 감사하여 1836년에 완성한 분수이다. 비엔나 출신의 조각가인 요한 네포무크 샬러(Johann Nepomuk Schaller: 1777-1842)가 제작하였다. 원래 장소는 현재의 장소에서 동북쪽으로 약 20 미터 거리에 있었다가 1886년에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였다. 그때 빌헬름 슈투름(Wilhelm Sturm)이 좌대 등을 완성하였다. 상단의 조각은 한 손에 십자가를 잡고 있는 안티오키아(안디옥)의 성마르가레타(Margareta von Anntiochia)가 용을 제압하는 장면이다. 마르가레텐구의 명칭은 성마르가레타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 분수를 성마르가레타분수라고 부르지 않고 마르가레텐분수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마르가레텐구가 상수도를 설치해준 프란츠 요셉 황제에게 감사의 뜻으로 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가레텐 분수

 

⊙ Siebenbrunnen(지벤브룬넨) - 일곱 수문 분수

 

5구 마르가레텐의 지벤브룬넨플라츠에 있다. 1904년에 비엔나 출신의 위대한 조각가 리하르트 카우풍겐(Richard Kauffungen: 1854-1942)이 제작했다. 리하르트 카우풍겐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조각상으로 유명하다. 비엔나 시장인 칼 뤼거(칼 루에거)의 60세 탄생을 기념하여서 마르가레텐구가 제작한 것이다. 그래서 분수의 정면에 칼 뤼거 시장의 모습이 부조로 되어 있다. 지벤브룬넨(Siebenbrunnen)은 마르가레텐구의 일각에 있는 오버라인프레헤츠도르프(Oberreinprechtsdorf)의 지벤브룬넨펠트라는 곳에 있는 일곱 샘들을 말한다. 1562년에 페르디난트 1세 황제가 지벤브룬넨 샘물을 수로를 만들어 끌어와서 아우구스티너바슈타이의 저수조에 저장한후 호프부르크에 상수도를 공급토록 했다. 그래서 칼 뤼거 시장의 60세 생일을 기념하는 조각분수의 주제로서 지벤브룬넨을 선정한 것이다. 분수의 상단은 비엔나의 옛 이름인 빈도보나(Vindobona)를 상징하는 여신의 조각이 있다. 칼 뤼거 시장의 부조 양 옆으로는 마르가레텐을 상징하는 방패들을 부조로 만들어 설치했다.

 

마르가레텐의 자랑인 지벤브룬넨 분수

 

⊙  Gänsemädchenbrunnen(갠제매드헨브룬넨) - 오리소녀 분수

 

6구 마리아힐르프의 랄슈티게(Rahlstiege)에 있다. 1886년에 안토닌 파벨 바그너(Antonin Pavel Wagner)가 제작한 것이다. 마리아힐르프와 오리소녀가 특별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고 원래 1구 인네레 슈타트의 브란트슈태테(Brandstätte: 현재의 페터스키르헤 뒤편)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왔을 뿐이다. 브란트슈태테는 19세기 초까지 비엔나의 가금류 시장으로 유명했다. 닭과 오리 등을 팔고 사던 시장이었다. 이를 게플뤼겔마르크트(Geflügelmarkt)라고 한다. 그러다가 시장을 철폐하고 커다란 창고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서 마리아힐르프로 옮겼다. 처음에는 마리아힐르프교회 앞 광장에 설치했다. 1879년까지 그곳에 있었다. 그라다가 하이든의 기념상을 세우기로 하여 가련한 오리소녀는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했다. 오리소녀가 정착한 곳이 편재의 랄슈티게이다. 분수의 상단에는 소녀가 막대기를 들고 오리 한마리를 몰고 가는 모습의 조각이 있다. 좌단에는 두 마리의 오리를 만들어서 입으로부터 물이 뿜어져 나오도록 했다. 오리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물을 내뿜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마리아힐르프 랄슈티게의 오리소녀 분수

 

⊙ Tiertränkebrunnen(티어트랜커브룬넨) - 동물이 물 마시는 분수

 

6구 마리아힐르프의 테오발트가쎄(Theobaldgasse) 1번지 앞에 있다. 굼펜도르퍼 슈트라쎄(Gumpendorfer Strasse)의 랄슈티게(Rahlstiege) 근처이다. 이 광장은 파피어마허플라츨(Papiermacherplatzl)이라고 하는 곳이다. 종이만드는 사람들의 작은 광장이라는 뜻이다. 동물에게 물을 마시게 해주는 분수를 만든 것은 슈타츠오퍼의 캄머쟁거린(Kammersängerin)으로 유명한 소프라노 헤드비히 프란칠로 카우프만(Hedwig Francillo-Kauffmann: 1881-1948)의 자선사업에 의해서였다. 그는 야생동물들, 특히 새들을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경비를 제공하여 1916년에 조각가 아돌프 슈퇴클(Adolf Stöckl)과 요제프 토라크(Josef Thorak)가 완성했다. 원래는 4구 제체시온의 옆에 있었다. 그러다가 도시계획으로 옮기지 않을수 없게 되어 196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분수의 가둔에 기둥에는 헤드비히 프란칠로 카우프만의 모습이 부조로 만들어져 있다.

 

 

동물물마시는 분수와 기둥 중간에 있는 소프라노 헤드히비 프란칠로 카우프만의 부조

 

⊙ Augustinbrunnen(아우구스틴브룬넨) - 아우구스틴 분수

 

7구 노이바우의 아우구스틴플라츠에 있다.  아우구스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비엔나의 대표적인 민요중에 ‘오 사랑하는 아우구스틴’(O du lieber Augustin)이란 것이 있다. 1679년의 대역병 때에 유행했던 노래이다. 아우구스틴은 거리나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다. 인기가 많아서 비엔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아우구스틴을 알았다. 어느날 밤 술에 취한 아우구스틴은 정신없이 걷다가 역병으로 죽은 시체들을 쏟아 넣은 구덩이에 빠졌다. 아우구스틴은 아무것도 모른채 잠에 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아우구스틴이 깨어보니 구덩이 속의 시체들 틈이었다. 놀란 아우구스틴은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려고 했으나 구덩이가 너무 깊어 어찌할수 없었다. 아우구스틴은 평소 술집에서 부르던 노래를 불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우구스틴를 알아보고 구해주었다. 사람들은 술이 역병에 옮기는 것을 막아주었다고 생각하며 살아 돌아온 아우구스틴에게 ‘오 사랑하는 아우구스틴’이라는 노래를 불러주며 환영 겸 놀려주었다. 현재의 아우구스틴플라츠에서 아우구스틴이 술에 취해 쓰러졌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사람들은 그런 이름의 광장이므로 아우구스틴을 기념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는 않지만 1908년에 조각가 겸 화가인 요제프 훔프리크(Josef Humplik: 1888-1958)에게 의뢰하여 청동조각을 만들어 세웠다. 그러나 2차 대전중에 나치가 철거하여 군수품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은 '우리가 가만히 있을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1952년에 새롭게 만들어 세웠다. 이번에는 사암(沙岩)으로 만들었다. 아우구스틴이 백파이프를 들고 노래하는모습이다.

 

아우구스틴 분수

 

⊙ Zierbrunnen(치어브룬넨) - 장식 분수

 

치어브룬넨은 별다른 역사적 배경이 없이 장식용 또는 조경용으로 만든 분수를 말한다. 비엔나에는 이런 장식용 분수가 여럿이 있지만 7구 노이바우의 장크트 울리히스 플라츠(St. Ulrichs-Platz)에 있는 것이 그중 아름답다. 그런 의미에서 소개한다. 몇년도에 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제작자는 당대의 거장 안톤 도미니크 페른코른(Anton Domink Fernkorn: 1813-1878)이다. 그는 헬덴플라츠의 샤를르 대공 기마상, 사보이의 오이겐 공자 기마상을 제작하였고 아슈페른의 유명한 사자도 만들었다. 반원형의 물받이 두개를 대칭되게 배치하였고 물주둥이는 가면에서 나오도록 했다. 혹시 이곳을 지나가다가 이 분수를 보면 '아하, 그 유명한 페른코른이 만든 것이구나'라고 약간 감동하면 그말을 우연히 듣고 있던 사람이 감탄할지도 모른다. 동탄!

 

장크트 울리히스 플라츠의 장식용 분수

 

⊙ Isisbrunnen(이시스브룬넨) - 이시스 분수

 

8구 요제프슈타트의 알베르트플라츠(Albertplatz)에 있는 분수이다. 일명 가버브룬넨(Gaberbrunnen)이라고 한다. 칼 게오르크 가버(Carl Georg Gaber)라는 귀족이 주도하여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1833년 프란시스 1세 황제 때에 봉헌되었다. 멀리 휘텔도르프에서 끌어온 물을 사용한 분수이다. 그렇게 끌어온 물을 알베르트 수로(Albertinischen Wasserleitung)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알베르트 수로는 페르디난트 수로와 합류하여 비엔나의 주택에 상수도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고 주변지역의 농사에도 사용되었다. 농사와 수태를 관장하던 이집트의 여신인 이시스를 세운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라고 풀이된다. 비엔나의 다른 분수조각과는 달리 주철로 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원래는 알베르트플라츠의 북쪽에 있었으나 전차길을 놓아야 하기 때문에 광장의 중앙으로 옮겨졌다.

 

8구 요제프슈타트의 알베르트플라츠에 있는 이시스 분수

 

⊙ Wachsamkeitsbrunnen(봐흐잠카이츠브룬넨) - 경계 분수

 

8구 요제프슈타트의 슐레징거플라츠(Schlesingerplatz)에 있다. 1770년대에 니더외스터라이히 주정부가 요한 마르틴 피셔(Johann Martin Fischer: 1740-1820)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분수이다. 요한 마르틴 피셔는 화가 겸 조각가로서 특히 인체의 해부학적 스케치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여신의 오른 손에 있는 기름 등잔은 경계를 상징한다. 왼손에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경계에 대한 수칙들을 적어 놓았다고 생각된다. 여신의 오른 쪽에 두루미(학)이 한마리 있다. 발걸음을 조심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물이 나오는 주둥이는 사자머리를 사용했다. 이 분수는 원래 알저 슈트라쎄(Alser Strasse)와 스코다가쎄(Skodagasse) 사이에 있었으나 1937년에 뜻한바 있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항상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되 특히 어둔 밤에 경계를 잘 하라는 의미의 봐흐잠카이트 분수

                     

⊙ Josephinum-Brunnen(요제피눔 브룬넨)

 

9구 알저그룬트의 배링거슈트라쎄 25번지에 있는 요제피눔의 본관 앞에 있는 분수이다. 보건의 여신인 하이지아(Hygiea)가 한손으로는 뱀을 잡고 있고 다른 손에는 약그룻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9구 배링거슈트라쎄에 있는 요제피눔 의과대학 구내의 요제피눔 분수. 일면 하이지아 분수라고 한다.

 

⊙ Schubertbrunnen(슈베르트브룬넨) - 슈베르트 분수

 

9구 알저그룬트의 알저바흐슈트라쎄(Alserbachstrasse)와 리히텐슈타인슈트라쎄(Liechtensteinstrasse)가 만나는 곳에 있다. 프란츠 슈베르트를 기념하는 분수이다. 대리석으로 만든 소녀가 귀를 기울이며 음악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이다. 비엔나 슈베르트연맹(Wiener Schubertbund)과 알저그룬트 구청이 협력하여 테오도르 슈툰들(Theodor Stundl)에게 의뢰하여 완성했다. 제막식은 슈베르트 서거 1백주년을 기념하여 1928년 11월 18일에 있었다. 슈베르트는 1828년 11월 19일에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는 당시 비엔나 교외에 해당하는 힘멜포르트그룬트(Himmempfortgrund)의 누쓰도르퍼 슈트라쎄 54번지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알저그룬트에 속한 지역이다. 그래서 알저그룬트가 슈베르트를 기념하는 것이다. 알저그룬트에서는 베토벤이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 분수. 소녀가 귀를 기울이며 음악을 듣는 모습이다.

 

⊙ Strudlhofstiegenbrunnen(슈트루들호프슈티겐브룬넨) - 슈트루들호프 계단 분수

 

9구 알저그룬트의 슈트루들호프슈티게에 있는 분수이다.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단이다. 17세기만해도 이 곳에는 이런 아름다운 계단은 없었다. 그저 오솔길이 있었을 뿐이다. 이곳 언덕에 저명한 건축가 겸 화가인 페터 슈트루델(Peter Strudel: +1714)이 1690년에 저택을 짓고 미술학생들을 가르치는 미술원을 오픈했다. 이 미술학원은 1705년에 황실미술원으로 승격했고 1714년 슈트루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운영되었다. 이곳에 프란츠 요셉 1세 황제의 지시에 의해 아름다운 계단이 설치되고 계단의 중간 중간에 벽분수를 만들었다. 당시 비엔나 시청의 건축부서에 근무하던 슬로바키아 출신의 건축가 테오도르 요한 얘르거(Theodor Johann Jaerge: 1874-1943)가 계단 설계와 건축공사를 책임 맡았다. 그리하여 슈트루들호프슈티게는 1910년 11월 29일 오픈되었다. 그후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쳤으며 가장 최근의 보수는 2008년이었다. 이 계단에 있는 분수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슈트루들호프슈티겐브룬넨이다. 석재로 만들었으며 물주둥이는 청동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물이 흘러 나오는 주둥이의 주변을 아름다운 모자익으로 장식했다는 것이다. 마치 비너스의 탄생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모자익이다.

 

슈트루들호프슈티게 

슈트루들호프슈티게 분수

 

⊙ Zierbrunnen in Universitätscampus(치어브룬넨 인 우니페어지태츠캄푸스) - 대학교 캠퍼스 분수

 

9구 알저그룬트의 비엔나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조경 및 장식용 분수이다. 중간에 MDCCCLXXV라고 적혀 있다. 1875년에 비엔난 상수도의 수로를 통합한 것을 기념하여 제작했다. 특별한 사연은 없다.

 

비엔나대학교 교정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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