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매력의 분수

13구의 분수들

정준극 2013. 5. 21. 21:26

13구의 분수들

분수의 보고 쇤브룬궁전

 

⊙ Brunnen im Orangerie-Parterre(브룬넨 임 오랑게리 파르테레) - 온실 분수

 

13구 히칭에 있는 쇤브룬 궁전은 분수의 보고이다. 쇤브룬이라는 명칭부터가 아름다운 샘(분수)이라는 의미가 아니던가? 오랑게리 분수는 13구 히칭의 쇤브룬 궁전 내에 있다. 오랑게리라는 단어는 원래 남쪽 지방의 진기한 식물인 오렌지를 기르는 온실을 말하지만 오늘날에는 일반 온실도 오랑게리라고 부른다. 쇤브룬 궁전의 오랑게리는 규모도 훌륭하고 시설도 뛰어나서 온실 목적 이외로도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면 연회도 베풀고 연주회와 같은 공연도 열린다. 오랑게리의 앞에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세 마리의 사자가 받들고 있는 분수이다. 1580년에 플레미쉬 조각가인 알렉산더 콜린(Alexander Colin: 1527-1612)이 제작했다. 그래서 콜린 분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분수는 원래 막시밀리안 2세가 짐머링에 세운 슐로쓰 노이게보이데에 있었으나 콜린이 재건한 것이다.

 

쇤브룬궁전 오랑게리(온실) 앞의 콜린 분수

 

⊙ Ehrenhofbrunnen vor Schloss Schönbrunn(슐로쓰 쇤브룬의 에렌호프브룬넨)

 

궁전의 정문으로 들어가면 본관 건물과의 사이에 넓직한 광장이 있고 여기에 동서로 커다란 분수가 있다. 1776년에 잘츠부르크 출신의 조각가인 요한 밥티스트 하게나우어(Johann Baptist Hagenauer: 1732-1810)와 티롤 출신의 조각가인 프란츠 안톤 폰 차우너(Franz Anton von Zauner: 1746-1822)가 협동하여 제작한 분수들이다. 동쪽 분수의조각은 두명의 남성이 있고 그 아래쪽에 한 명의 여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푸토들이 엉켜서 놀고 있는 조각들도 있다. 세 사람은 각각 합스부르크의 영향이 미치고 있는 지역인 갈라치엔, 로도마이렌, 지벤뷔르겐을 비유한 것이다. 서쪽 분수에도 역시 두 사람의 남성과 한 사람의 여성이 있다. 이들은 각각 도나우, 인(Inn), 엔스(Enns) 강을 상징한 것이다.

 

쇤브룬 궁전의 에렌호프 분수. 윗쪽의 두 남성은 각가 갈라치엔, 로도마이렌을 상징한 것이며 아래쪽의 여성은 지벤뷔르겐을 상징하였다.

 

⊙ Engelbrunnen im Schlosspark Schönbrunn(엥겔브룬넨) - 천사 분수

 

슐로쓰파르크 쇤브룬(쇤브룬궁전공원)에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분수이다. 자연석으로 좌대를 삼았으며 푸토(큐피트와 같은 어린이 모습) 둘이 물고기와 함께 있는 조각이다. 물이 흘러나오는 곳은 물고기의 입이다. 1775년에 완성했다. 물받이 부분은 아마도 슐로쓰 노이게보이데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푸토는 천사가 아닌데 이 분수의 명칭을 천사분수라고 했다.

 

쇤브룬 궁전 공원의 천사 분수

 

⊙ Fischbassin im Schlosspark Schönbrunn(피슈바씬) - 물고기 분수

 

두명의 푸티(푸토의 복수형)이 커다란 물고기와 함께 있는 모습이다. 물이 나오는 주둥이는 가면을 사용했다. 1780년에 완성했다. 세월이 흘러서인지 푸토 하나의 팔이 부러져있다.

 

피슈바씬 분수. 물고기의 모습이 특이하게 희학적이다.

 

⊙ Najadenbrunnen(나야데브룬넨) - 님프 분수

 

슐로쓰파르크 쇤브룬에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분수이다. 강이나 호수의 님프인 나야데가 백조와 푸토와 함께 있는 모습이다. 1780년에 완성했다. 넵튠 분수에 설치하려고 했으나 별도로 쇤브룬 공원의 양쪽에 설치키로 했다. 아래의 사진은 동쪽에 있는 나야데 분수이다. 서쪽에도 비슷한 스타일의 나야데 분수가 있다. 동쪽과 마찬가지로 넵튠분수에 설치하려던 것을 독립분수로 만들었다. 동쪽 나야데의 수조는 원형이지만 서쪽 나야데의 수조는 별모양이다. 독일 출신으로 비엔나에서 활동한 화가 겸 조각가인 요한 크리스티안 빌헬름 바이어(Johann Christian Wilhelm Beyer: 1725-1796)와 잘츠부르크 출신의 요한 밥티스트 하게나우어(Johann Baptist Hagenauer: 1732-1810)이 합작한 작품이다. 요한 크리스티안 빌헬름 바이어는 독일 뮌헨 서쪽에 있는 슐로쓰 님펜부르크(Schloss Nymphenburg: 님프궁전)의 조각들을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동쪽 나야데 분수. 여름이다. 

서쪽 나야데 분수. 겨울이다.

                                          

⊙ Neptunbrunnen(넵튠브룬넨) - 해신 넵튠분수

 

쇤브룬궁전 공원에서 가장 웅장하고 가장 아름다운 분수이다. 시원하게 내뿜는 물줄기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물의 모습이 일품이다. 다른 분수들과 마찬가지로 1780년에 완성했다. 특히 넵튠분수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특별한 지시로 이루어졌다. 독일 출신으로 비엔나에 와서 활동한 화가 겸 조각가, 특히 정원의 조경조각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요한 크리스티안 빌헬름 바이어(Johann Christian Wilhelm Beyer)와 쇤브룬궁전 공원의 여러 조각들을 제작한 비엔나 출신의 요한 페르디난트 헤첸도르프폰 호엔버그(Johann Ferdinand Hetzendorf von Hoherberg: 1733-1816)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넵튠분수의 규모는 유럽에서도 따를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장대하다. 길이가 100미터가 조금 넘으며 폭은 45미터, 높이는 조각상을 제외하고 7미터에 이른다. 한 가운데는 해신 넵튠이 전용의 삼지창을 들고 병거(兵車)위에 올라 타고 있는 모습이다. 넵튠을 중심으로 하여 바로 오른쪽에는 바다님프 테티스(Thetis)가 아들 아킬(Achill)이 트로야(Troja)에 무사항해하기를 기원하는 모습이며 왼쪽에는 역시 바다님프가 풍요의 뿔을 들고 있는 모습이 있다. 더 멀리 양편에 병거들을 타고 있는 인물은 트리톤들이며 이들의 병거를 끌고 있는 동물들은 히포캄푸스(Hippocampus)라고 하여 해마와 비슷하게 생긴 모습이어서 꼬리부분이 지느러미로 되어 있다. 넵튠분수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므로 이만 생략한다.

 

넵튠분수의 위용 

넵튠분수 디테일. 대단한 조각작품들이다.

 

⊙ Obeliskbrunnen(오벨리스크브룬넨) - 오벨리스크 분수

 

쇤브룬궁전 공원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장엄하고 매력적인 바로크 분수이다. 넵튠분수등 공원 내의 다른 분수들은 대개 1780년에 완성되었는데 오벨리스크 분수는 1777년에 완성되었다. 요한 페르디난트 헤첸도르프 폰 호엔버그와 베네딕트 헨리치(Benedickt Henrici)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넵튠분수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일반 분수에 비하면 규모가 상당하다. 길이가 35 미터이며 넓이는 24미터이고 높이는 무려 31미터에 이른다. 석재분수로서 오벨리스크가 주제이지만 그밖에도 여러 상징적인 조형물이 있어서 가만히 살펴보면 무척 흥미롭다. 오벨리스크 아랫쪽에 거인의 얼굴 조각이 있고 그 입에서 물이 흘러나오게 설계했다. 더 아래에는 어두운 동굴이 있다. 어둠의 장소는 땅의 위세를 상징한다. 비르길의 이니아스(Aeneas)가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든 것과 같은 형식이다. 동굴을 그로텐버그(Grottenberg)라고 하는데 이는 마치 탄호이저가 머물렀다는 독일 중부 산악지대의 비너스버그를 연상케 한다. 건축을 맡은 요한 페르디난트 헤첸도르프 폰 호엔버그는 이 동굴을 '예어넉인 신비한 동굴'이라고 설명했다. 오벨리스크는 찬란한 햇빛이 세상에 비치는 것을 상징한다. 특히 상단의 황금 공은 구체적으로 태양을 상징한다. 이집트의 태양숭배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쇤브룬궁전 공원에 있는 오벨리스크 분수

 

황금공 위에는 독수리가 비상할듯 앉아 있다. 독수리는 로마제국 시대에도 그랬지만 독일국가, 나아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더구나 독수리는 태양을 상징하는 황금공 위에 앉아 있다. 황제는 하늘과 땅을 연계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시스 1세 황제와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 오벨리스크 분수를 통하여 비엔나(쇤브룬)와 로마가 연결되기를 바랐다. 오벨리스크의 하단에는 네마리의 거북이(Schildkröte)가 있다. 거북이는 안정과 영원을 상징한다. 하기야 악어의 이빨도 어쩌지 못하는 거북이의 등껍질은 안정의 대명사이며 또한 거북이는 장수한다고 하니 영원을 상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벨리스크 분수는 군주의 강건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밖에 님프들과 푸티는 분수를 다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오벨리스크 분수 앞 부분.

 

⊙ Römische Ruinen Brunnen(뢰미셰 루이넨 브룬넨) - 로마유적 분수

 

쇤브룬궁전 공원의 로마유적 분수는 참으로 신통한 조형물이다. 로마의 유적이 쇤브룬의 정원에서 발굴된 것은 아닐진대 새로 유적처럼 만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벨리스크 분수를 완성한 다음 해인 1778년에 완성된 유적지 겸 분수이다. 아무튼 일부러 만든 것치고는 대단하다. 그래서 특별히 로마유적 분수는 예술적 유적지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제작은 오벨리스크 분수를 만든 요한 페르디난트 헤첸도르프 폰 호엔버그와 나야데 분수를 만든 요한 크리스티안 빌헬름 바이어 등이 맡았다. 바이어는 앞부분 수조에 인공적인 섬을 만들고 그곳에 있는 인물상들의 조각을 제작했다. 우선, 로마 유적의 모델은 다름아닌 로마에 있는 베스파시아-티투스 신전(Vespasian-und-Titustempel)이다. 베스파시안(베스파시아누스)은 로마제국 플라비안 왕조의 창시자로서 주호 69년부터 79년까지 황제로 있었다. 그는 로마의 법을 독일, 영국 등 현지의 규범을 반영하여 다시 만들었다. 그로인하여 강압적이 아닌 통치를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로마제국의 통치권을 훨씬 강화한 셈이었다. 그는 또한 군대를 개혁하여 막강한 병력을 유지하였다. 그는 로마제국의 번영을 비로소 이룩한 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티투스(티토)는 부왕인 베스파시안의 뒤를 이어 로마황제가 된 인물이다. 로마황제의 자리를 아들이 승계한 경우는 티투스가 처음이다. 뛰어난 사령관인 그는 로마와 유대의 1차 전쟁시에 사령관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예루살렘의 제2성전을 완전히 파괴한 것으로 유명하다. 티투스 황제는 79년부터 81년까지 재위했다.

 

로마 유적 분수의 앞 부분. 진짜 유적처럼 부서진 기둥들을 흩으려 놓았다.

 

프란시스 1세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마리아 테레지아가 로마 유적 분수를 만든 것은 합스부르크가 로마의 플라비안 왕조처럼 막강한 통치력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로마 유적 분수가 로마시대 신전의 석재와 비슷한 모습을 띠게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고대 로마의 돌색갈을 재현하느라고 여간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아니다. 수조의 인공섬에 있는 인물들은 슈테르칭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몰다우와 엘베를 상징하는 강의 여신들이다. 로마유적 분수의 규모는 길이 35미터, 넓이 20미터, 높이 16미터에 이른다. 전체 조형물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것은 신전의 뒤편 언던 위에 또 하나의 조각이 있는 것이다. 헤르쿨레스(헤라클레스)가 악의 권세와 싸우는 장면의 조각이다. 결론적으로 로마 유적 분수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권세와 영광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닫.

 

로마 유적 분수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영광과 권세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 Schöner Brunnen(쇠너 브룬넨) - 아름다운 샘

 

쇤브룬이라는 말은 바로 이 쇠너 브룬넨이라는 샘의 명칭에서 나온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2세(1527-1756) 황제는 1569년 현재의 쇤브룬 궁전이 있는 이 지역을 황실 소유로 취득하고 이곳을 합스부르크왕실의 사냥터로 삼고 간혹 사슴이나 멧돼지를 사냥하기 위해 들렸다. 막시밀리안 황제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른 루돌프2세(1552-1612)가 사냥별장을 확장하였으나 이곳은 1605년 헝가리의 공격으로 다시 파괴되었다. 루돌프2세의 동생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마티아스(1557-1619)가 폐허가 된 이곳의 사냥별장을 재건하였다. 이때에 숲속에서 물의 품질이 좋은 아름다운 샘을 발견하였다. 쇤브룬(아름다운 샘)이란 명칭은 이때부터 비롯되었다. 쇤브룬이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페르디난트2세(1578-1637)의 부인 ‘곤자가의 엘레오노르’(Eleonor de Gonzaga) 때문이었다. 페르디난트2세는 사촌형인 마티아스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른 사람이다. 곤자가의 엘레오노르는 황실의 사냥별장을 여름 거처로 변경하고 대규모의 화려한 연회를 열었다. 아마 이때부터 쇤브룬 궁전이라고 불렀던것 같다. 쇤브룬 궁전이라는 명칭이 유래된 샘은 1771년에 어떤 궁정정원사가 샘을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집을 지었다. 그후 궁정건축가인 이시도르 카네발레(Isidor Canevale: 1730-1786)가 샘집을 다시 반듯하게 지었다. 이시도르 카네발레는 프라터의 루스트하우스, 나렌투름, 아우가르텐 정문, 알게마이네 크랑켄하우스등을 건축한 사람이다. 그후 1780년에 쇤브룬 공원의 여러 곳에 분수를 만들고 새단장을 할 때에 넵튠분수를 만든 요한 크리스티안 빌헬름 바이어가 샘을 보수하고 그곳에 샘의 님프인 아름다운 에게리아(Egeria)를 만들어 놓았다. 에게리아의 한 손에 들고 있는 항아리에서 물이 나오도록 설계했음은 물론이다. 쇤브룬 궁전을 찾아온 사람이라면 반드시 둘러보아야 할 장소이다. 아름다운 에게리아도 만나고!

 

쇠너 브룬넨(아름다운 샘). 쇤브룬이라는 말이 유래된 샘이다.

 

⊙ Zierbrunnen im Palmenhaus-Parterre(치어브룬넨 임 팔멘하우스 파르테레) - 식물원 분수

 

쇤브룬궁전 공원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식물원(팔멘하우스) 앞의 평지에 있는 자그마한 분수이다. 예전에 홀란드정원(Holländischen Garten)이라고 부르던 정원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1882년에 만들었다.

 

식물원(팔멘하우스) 분수

 

⊙ Rolandbrunnen(롤란트브룬넨) - 롤란트 분수

 

13구 히칭에 있는 분수로서 하나만 더 소개하자면 마인츠병원에 있는 롤란트분수이다. 요제프 호이(Josef Heu: 1876-1952)가 제작했다. 그는 샘물발견분수(Brunnen Befreiung der Quelle)를 만든 조각가 겸 화가이다. 중세 샬레마뉴 대제의 용장인 롤란트(+778)가 검을 들고 엄숙하게 서 있는 모습의 조각분수이다. 롤란트의 전설은 여러 예술작품의 주제로 사용되었는데 예를 들어 오페라로서는 프랑스의 장 바티스트 륄리,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비발디, 영국의 조지 프레드릭 헨델 등이 롤란드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를 작곡했다. 롤란드의 이탈리아식 표기는 올란도(Orlando)이다. 마인츠병원에 롤란트를 표방한 조각을 세운 것은 비엔나 시장인 칼 뤼거를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칼 뤼거 시장을 마치 중세의 롤란트와 같은 존경받는 인물로 표현했다. 그러므로 얼굴 모습은 칼 뤼거이다. 

 

마인츠병원에 있는 롤란트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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