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위대한 발자취

비엔나와 리스트

정준극 2013. 5. 24. 20:11

비엔나와 리스트

 

젊은 시절의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의 거장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는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오스트리아의 땅에서 태어났다. 당시 오스트리아제국에 속한 라이딩(Raiding)에서 태어났다. 원래 헝가리에 소속된 지역이었지만 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땅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부르겐란트 땅이다. 리스트에 대한 기념관, 기념비, 기념상 등은 부다페스트에 몰려 있지만 제국의 수도였던 비엔나와 아이젠슈타트에도 리스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부다페스트에는 리스트 기념관이 있고 리스트 기념상이 여러 곳에 있다. 헝가리 국립오페라극장은 리스트극장이라고도 불린다. 도나우의 부다 사이드에 있는 부다페스트 시립박물관에 리스트를 기리는 전시실이 있다. 리스트는 평생을 헝가리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살았지만 헝가리어는 한마디도 할줄 몰랐다. 오히려 독일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했다. 그런 리스트로서 제국의 수도인 비엔나에 발길을 들여 놓지 않을수 없었다. 리스트는 비엔나에 자주 왔었다. 리스트는 비엔나에 오면 주로 1구 봐이부르크가쎄(Weihburggasse) 3번지에 있는 쇼텐호프(Schottenhof)에 머물렀다. 캐른트너슈트라쎄에서 슈테판성당 쪽으로 죽 내려가다가 오른쪽 골목길에 있는 호텔이다. 현재는 카이저린 엘리자베트(Kaiserin Elisabeth) 호텔이라고 부른다. 쇼텐슈티프트는 여행을 오는 성직자나 수도승들을 위해 쇼텐호프(Schottenhof)를 운영했었다. 현재 쇼텐호프에는 리스트가 자주 와서 머물렀다는 기념명판이 있다. 그리고 헤렌가쎄(Herrengasse) 6-8번지에도 리스트 기념명판이 있다. 3구 란트슈트라쎄에는 리스트를 기념하여 리스트슈트라쎄(Lisztstrasse)가 있다.


프라이융 6번지, 쇼텐슈티프트(아일랜드 수도원)의 구내에 있는 리스트 기념명판. 이 집에서 프란츠 리스트가 1869년부터 1886년 사이에 비엔나를 방문할 때마다 자주 투숙했었다는 내용이다. 부다페스트시가 헌정한 명판이다.

쇼텐슈티프트 구내에 설치되어 있는 리스트 기념명판.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이다.


헤렌가쎄 6-8번지 건물에 있는 리스트 기념명판. 이 장소이 1913년까지 뵈젠도르퍼 콘체르트잘이 있어서 여러 음악인들의 연주가 있었으며 그 중에는 프란츠 리스트도 포함된다는 내용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협회가 1951년에 리스트 탄생 140주년을 기념하여 설치했다.

헤렌가쎄 지하철역 입구에서 가까운 헤렌가쎄 6-8번지 건물에 리스트 기념명판이 설치되어 있다. 붉은 원으포 표시된 곳에 있다.


봐이부르크가쎄 3번지의 호텔 카이저린 엘리자베트. 전에는 슈텐슈티프트에 속한 숙소였다.

리스트가 비엔나에 오면 자주 묵었다고 하는 쇼텐호프. 현재의 카이저린 엘리자베트 호텔. 로비에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호텔 현관에 부착되어 있는 이 호텔에 투숙했던 유명인사의 명단. 모차르트, 클라라 슈만에 이어 세번째 명단이 프란츠 리스트로서 1856년에 투숙했다고 되어 있다. 명단에 들어 있는 다른 사람들을 소개하면 모차르트가 11살 때인 1767년에, 클라라 슈만이 1838년에, 안톤 루빈슈타인이 1859년에, 리하르트 바그너가 1862년에, 안톤 브루크너가 1863년에, 에드바르드 그리그가 1896년에 숙박했었다. 그밖의 인사들은 빈출신의 화가인 모리츠 폰 슈빈트(Moritz von Schwind)가 1863년에, 역시 빈출신의 화가인 아우구스트 폰 페텐코펜(August von Pettenkofen)이 1889년에, 폴란드 출신의 화가인 아돌프 멘첼(Adolf Menzel)이 1895년에, 빈출신의 오스카 코코슈카(Oscar Kokoschka)가 1958년에, 그리고 합스부르크 마지막 황태자인 오토(Otto von Habsburg)가 1980년에 체류했었다.

 

리스트는 아이젠슈타트도 간혹 찾아갔다. 리스트의 아버지가 에스터하지 가문에 음악가로서 봉사하였기 때문에 무관한 사이가 아니었다. 리스트는 아이젠슈타트에서 하이든을 만나 친분을 쌓았다. 리스트는 비엔나의 베토벤과도 인연이 있었다. 리스트는 비엔나 악우회가 현재의 베토벤플라츠에 베토벤 기념상을 건립코자 추진할 때에 갈라 콘서트를 열어 모금을 하는 등 여러 모로 협조하였다. 리스트는 슈베르트와도 인연이 있다. 리스트는 나중에 슈베르트의 오페라 '알폰조와 에스트렐라'를 봐이마르에서 초연될수 있도록 주선했고 직접 지휘를 맡았다. 슈베르트는 '알폰조와 에스트렐라'를 미완성으로 남긴채 세상을 떠났다. 그것을 동료들이 완성하여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26년 후인 1854년 리스트에 의해 봐이마르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던 것이다. 리스트의 사위인 바그너가 비엔나에 자주와서 공연도 하곡 작곡도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이젠슈타트에 있는 프란츠 리스트 기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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