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위대한 발자취

비엔나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정준극 2013. 5. 25. 11:02

비엔나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요한 슈트라우스의 생애 등등에 대하여는 본 블로그의 [비엔나와 음악] 편의 <슈트라우스 왕조> 란에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으므로 [위대한 작곡가들의 발자취]에서는 완전 생략코자 했으나 그래도 구색을 맞추기 위해 약간 소개하는 바이다.

 

슈타트파르크에 있는 포아가이게 스타일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요한 슈트라우스(2세를 말함)의 증조 할아버지는 헝가리에 살았던 유태인이었다. 그러다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할아버지 때에 비로소 비엔나로 와서 살기시작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할아버지는 레오폴드슈타트의 도나우 강가에서 작은 여인숙을 운영하였다. 레오폴드슈타트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엔나에서 유태인들이 많이 사는 구역이다. 여인숙은 '황금 사슴'(Goldene Hirsch)이라는 이름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레오폴드슈타트의 도나우 강가에 있는 바로 이 여인숙에서 태어났다. 세월이 흘러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마리아 안나 슈트라임(Maria Anna Sterim)이라는 여인과 9구 알저그룬트의 리히텐탈 교구교회에서 1825년에 결혼하였다. 리히텐탈 교구교회는 1797년 슈베르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식을 올렸고 슈베르트도 세례를 받았던 곳이다. 그래서 오늘날 이 교회는 슈베르트 교회(Schubertkirche)라고 부른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식을 올린후 7구 노이바우의 레르헨펠터슈트라쎄(Lerchenfelderstrasse) 15번지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그 해에 레르헨펠더슈트라쎄 15번지의 집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노이바우가 아니라 장크트 울리히(St Ulrich)라는 지역이었다. 지금 그 집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태어났다는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나치는 1938년에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나서 '왈츠 킹'인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진정으로 독일적'인 음악이라고 찬양하였고 중요한 연회때마다 연주토록했다. 그러다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선조가 유태인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그런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하였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레르헨펠더슈트라쎄 15번지에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생가의 명판. 1825년 10월 25일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

레르헨펠더 슈트라쎄 15번지. 요한 슈트라우스 생가. 중간에 붉은 타원으로 표시한 곳에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가족들은 여름이면 19구 되블링에 있는 잘만스도르프(Salmannsdorf) 중심지대의 드라이마르크슈타인가쎄(Dreimarksteingasse) 13번지에 있는 별장에서 지냈다. 어린 요한 슈트라우스는 이 집에서 여섯 살 때에 첫 왈츠를 작곡했다고 한다. 그렇게 재능을 보였는데도 아버지는 음악이 밥먹여 주느냐면서 어린 아들이 음악을 공부하는 것을 절대로 못하게 하고 대신 변호사가 되라고 요구했다. 어머니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편이었다. 아무튼 그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항상 긴장되고 불안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가족들은 1829년부터 1836년까지 이 별장을 사용하였다.

 

요한 슈트라우스 가족들이 여름에 별장으로 사용했던 19구 되블링의 잘만스도르프에 있는 드라이마르크슈타인가쎄의 집

 

요한 슈트라우스 아버지와 아들은 19구 되블링거 하우프트슈트라쎄 76번지에 있는 카지노 최게르니트(Zogernit)에서 란들어와 왈츠를 연주한 일이 있다. 옛 비엔나 사람들이 즐겨 찾아와서 도박도 하고 춤도 추었던 이 곳은 1837년 6월 21일에 오픈하였는데 그때 요한 슈트라우스 아버지가 악단을 데리고 연주했다. 후에 요한 슈트라우스 아들도 이곳에서 악단을 지휘하고 연주했다는 내용의 명판이 걸려 있다. 명판은 1927년 12월에 봉헌되었다.


되블링거 하우프트슈트라쎄 76번지에 붙어 있는 명판

되블링거 하우프트슈트라쎄 76번지의 카지노 최게르니트.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에 대한 명판이 붙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를 소개함에 있어서 카페 돔마이어(Cafe Dommayer)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13구 히칭의 돔마이어가쎄(Dommayergasse) 1번지에 있는 카페 돔마이어를 요한 슈트라우스(2세)가 처음으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여 데뷔한 곳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얘기를 뒷받침하듯 카페 돔마이어의 앞 길쪽으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기념상이 세워져 있다. 그래서 요한 슈트라우스 애호가들은 우정 오버라아의 이곳을 찾아와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면서 자못 감개무량해 한다. 하지만 카페 안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오케스트라가 연주할수 있는 스테이지가 없고 사람들이 왈츠를 출수 있는 플로어가 없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요한 슈트라우스가 1844년 10월 15일에 데뷔하여 인스턴트 히트를 기록했던 돔마이어는 현재의 카페 돔마이어에서 어느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13구 히칭의 히칭거 하우프트슈트라쎄(Hietzinger Hauptstrasse) 10-14번지에 있는 큰 건물이다. 지금은 파르크 호텔 쇤브룬이다. 호텔 안에 들어가보면 대연회장에 무대도 있어서 당장 그곳이 요한 슈트라우스가 데뷔했던 장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파르크 호텔 쇤브룬은 쇤브룬 궁전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한편 현재의 카페 돔마이어 앞에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조각은 슈타트파르크에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황금상의 얼굴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1844년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데뷔했던 카페 돔마이어. 현재는 파르크 호텔 쇤브룬이다. 현재 돔마이어가쎄 1번지에 있는 카페 돔마이어는 오리지널 카페 돔마이어의 이름만 빌려온 카페이다.

 

쇤브룬 궁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막싱거슈트라쎄(Maxingerstrasse) 18번지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오페레타 '박쥐'(Die Fledermaus)를 작곡한 집이다. '박쥐'는 비엔나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레타이다. '박쥐'의 초연에서 로잘린데는 당대의 소프라노인 마리 가이스팅거(Marie Geistinger)가 맡았다. 마리 가이스팅거의 묘지는 짐머링 중앙공동묘지의 예술가구역(명예구역)에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묘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묘지 바로 옆은 프란츠 슈베르트이다. 오페레타 '박쥐'의 초연에서 하녀인 아델레를 맡은 소프라노는 일명 예티라고 부르는 앙리에트 트레프즈 샬루페츠키(Henriette Treffz Chalupetzky)였다. 나중에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첫번째 부인이 되었다.

 

막싱슈트라쎄 18번지에 붙어 있는 명판. 요한 슈트라우스가 이 집에서 1870-1873년 살았으며 불후의 명작인 '박쥐'를 작곡했다고 적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오페레타인 '박쥐'를 작곡한 막싱거슈트라쎄 18번지. 보수하기 전의 모습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1863년부터 1870년까지 거의 7년을 지낸 집은 2구 레오폴드슈타트의 프라터슈트라쎄(Praterstrasse) 54번지이다. 최근까지 비엔나에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에 대한 유일한 기념관이다. 지하철 U1의 네스트로이플라츠에서 내려 프라터슈테른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나온다. 필리핀성당이라고 불리는 성요한 네포무크교회(Kirche St Joahnn Nepomuk)의 길건너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기념관은 2층이며 아래층은 맥도날드와 4분의 3박자라는 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자세한 얘기는 필요 없으며 다만 잘 아는대로 이 집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제2의 오스트리아 국가라고 하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를 작곡했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코자 한다. 그런 의미심장한 집인데 맥도날드가 들어와 있으니 속상할 일이 아닐수 없다. 기념관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사용하던 바이올린, 피아노, 책상, 그리고 각종 메달과 서한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마치 그 당시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프라터슈트라쎄 54번지의 기념명판. 요한 슈트라우스가 1867년에 이 집에서 비엔나 주민들의 노래이며 왈츠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했다고 적혀 있다. 왈츠킹의 탄생 100주년에 즈음해서 비엔나 슈베르트연맹이 1925년에 봉헌했다고 되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기념관 건물. 이 집에서 '푸른 도나우'를 작곡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보눙의 전시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1899년 6월 3일 4구 뷔덴의 이겔가쎄(Igelgasse) 4번지에서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는 4구 요한 슈트라우스 가쎄(Johann Strauss Gasse) 4번지이다. 이 집의 벽면에는 '푸른 도나우'의 첫 몇 소절의 악보가 그려져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에 그는 엄밀히 말하면 오스트리아 시민이 아니었다. 독일의 작손-코부르크-고타 공국의 시민이었다. 세번째 부인인 아델레와 결혼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버리고 독일 작손-코부르크-고타 공국의 시민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두번째 부인인 아델레 디트리히(Adele Dittrich)가 어찌나 낭비벽이 심하고 게다가 바람벽까지 있는 바람에 도저히 참을수 없어서 이혼을 결심하고 헝가리 출신의 회계사인 아델레와 결혼하려고 했으나 가톨릭 국가이기 때문이 이혼이 도무지 쉽지 않아서 할수 없이 개신교인 작손-코부르크-고타 공국으로 가서 일단 결혼하였던 것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가쎄 4번지의 명판. 이 장소에 왈츠 킹인 요한 슈트라우스(이들)이 1878년부터 살았고 작곡을 했던 집이 있었다는 내용이며 아울러 1899년 6월 3일 그가 이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적혀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세상을 떠난 4구 뷔덴의 요한 슈트라우스 가쎄 4번지 집에서 조금 떨어진 10번지의 벽면에는 '푸른 도나우'의 첫 소절 악보가 그러져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가 세상을 떠난 1899년(몇 달만 더 살았더라면 대망의 20세기를 맞이했을 터인데)에는 비엔나 남쪽의 짐머링에 대규모 중앙공동묘지가 완성되어 있었고 한 구역은 명예의 구역이라고 하여 위대한 음악가들의 묘소만을 한데 모은 곳이 있기에 요한 슈트라우스도 당연히 그곳의 입주자가 되었다. 슈베르트의 옆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얼굴 모습이 있는 바로 아래에는 아기천사라고 생각되는 세명의 케룹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박쥐 한마리도 있다. 날아 다니는 박쥐이다. 그리고 마치 묘비의 주인공인듯 음악의 여신이 하프를 만지고 있는 모습이 있다. 나중에 요한 슈트라우스의 세번째 부인인 아델레도 이곳에 합장되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버지, 두 동생 모두 중앙공동묘지의 그 지역에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가족을 위한 공동묘지처럼 생각된다.

 

짐머링 중앙공동묘지에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그의 세번째 부인인 아델레의 묘비

 

9구 알저그룬트의 뮐너가쎄(Mullnergasse) 3번지에는 근자에 요한 슈트라우스 왕조 기념관(Museum der Johann Strauss Dynasty)이 오픈되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기념관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근처에는 로사우 가톨릭교구 사무실이 있다. 전시는 14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왈츠의 승리- 요제프 란너와 요한 슈트라우스 1세: 비더마이어 시기 비엔나의 댄스 마니아: 변두리 바이올리니스트가 일약 글로벌 유명인사가 되다 - 왈츠 킹의 유럽 콘서트 투어: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돔마이어 카지노의 아버지 오케스트라를 넘겨 받다: 요제프 슈트라우스 -  하고 싶은 일을 접어두어야 했던 음악 천재: 요한, 요제프, 에두아르드 - 1860년대의 음악 승리: 음악엔 국경이 없다 - 두번째 왈츠 킹의 글로벌 승리: 에두아르드 슈트라우스 - 궁정무도회의 음악감독 - 집안 전통의 계승: 비엔나 1873년 만국박람회와 '박쥐':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오페레타 작곡가로의 방향 전환: 슈트라우스 가족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사람들: 산업혁명과 도나우 왕조의 발전: 슈트라우스 가족과 오스트리아 군주와의 관계: 비엔나 링슈트라쎄 - 음악을 포함한 토털 문화 콘셉트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왕조 기념관

궁정무도회 악단을 지휘하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4구 뷔덴의 화보리텐슈트라쎄(Favoritenstrasse) 12번지에 있는 호텔 요한 슈트라우스. 지하철 타우브슈툼멘가쎄(Tausstummengasse)에서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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