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카발리에리의 '영혼과 육체의 대화' - 35

정준극 2013. 7. 13. 20:05

영혼과 육체의 대화(Rappresentatione di Anima e di Corpo) - 영혼과 육체의 표상

Conversation of Soul and Body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Emilio de Cavalieri: c 1550-1602)의 작품

오페라로 간주하면 오페라 역사상 첫 오페라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

 

음악사학자들, 그리고 상당수의 오페라 애호가들은 심심하면 '역사상 첫 오페라는 누구의 어떤 작품이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를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의 '오르페오'(L'Orfeo: 1607)가 오페라 역사상 첫 작품이라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몬테베르디의 동료였던 자코포 페리(Jacopo Peri: 1561-1633)의 '에우리디체'(Euridice: 1600)가 오페라 역사에서 첫 오페라라고 내세우고 있다. 자코포 페리는 그보다 앞선 1597년에 '다프네'를 작곡하여 공연하였다. 그러므로 당연히 자코포 레피의 '다프네'가 역사상 첫 오페라라고 볼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현재 악보가 남아 있지 않아서 어떤 작품인지 모르므로 역사상 첫 오페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자코포 페리는 1600년에 '에우리디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므로 자코포 페리의 '에우리디체'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보다 7년이나 먼저 나왔으므로 당연히 역사상 첫 오페라로 간주될수 있다. 그런데 '에우리디체'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일반적인 오페라와는 거리가 멀다. 때문에 최초의 오페라를 규정하는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한편 플로렌스의 줄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 1551-1618)라는 사람이 1602년에 '에우리디체'를 내놓은 것도 있으다. 그런데 역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정상적인 오페라의 기준에 미흡하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1600년에 공연된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Emilio de Cavalieri: c 1550-1602)의 '영혼과 육체의 대화'(Rappresentatione di Anima e di Corpo: 1600)가 역사상 첫 오페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는 몬테베르디, 페리, 카치니 등과 함께 플로렌스 카메라타의 멤버였다. 아무튼 과연 누구의 어떤 작품이 오페라의 역사에서 제일 처음 만들어진 작품이냐 하는 것은 음악사학자들의 논쟁에 맡기고 우리로서는 그저 '영혼과 육체의 대화'라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1550-1602): 영혼과 육체의 표상(1600)

- 줄리오 카치니(1551-1618): 에우리디체(1602)

- 자코포 페리(1561-1633): 다프네(1597), 에우리디체(1600)

-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 오르페오(1607)

 

'영혼과 육체의 표상'. 베를린 슈타츠오퍼. 현대적 연출. 이 작품은 원래 1600년에 로마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17세기에 플로렌스 카메라트의 멤버들 사이에는 라이발 의식이 심했다. 후원자들, 특히 메디치 가문의 인정을 받으려면 특별하게 뛰어나야 했다. 그래야 작곡가로서 명성도 얻고 보수도 넉넉히 받았다. 1600년에 카발리에리가 발표한 '영혼과 육체의 대화'가 과연 오페라인가, 아니면 오라토리오인가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물론 당시에는 오페라라는 장르도 명확히 설정되지 않았으며 마찬가지로 오라토리오라는 장르도 확실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카발리에리의 '영혼과...'에 대하여 그것이 오페라인지 또는 오라토리오인지 왈가왈부한 것은 순전히 훗날의 음악학자들이 벌인 논란이다. 기본적으로 말해서 '영혼과...'는 종교적 내용을 담은 것이다. 영혼, 육체, 시간, 지성 등이 의인화되어 비유로서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들이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는 내용이다. 당시 로마로 보아서는 이 작품이 일종의 교훈을 주는 공연일 뿐이었다. 다만, 종래의 공연예술 형태와는 달리 자유롭게 흐르는 레시타티브와 내용의 설명을 노래 스타일로 사용했다는 것이 다르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혁신이었다.

 

'영혼과 육체의 대화' 베를린 공연. 현대적 연출

 

메디치가의 본거지는 플로렌스인데 '영혼과....'가 로마에서 초연된 것은 카발리에리가 로마 출신의 귀족이며 로마에 영향력있는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다. '영혼과...'는 1600년 2월 로마의 성 필립 네리 오라토리회의 수도원에서 초연되었다. 당시에는 그 교회를 '새교회'라고 불렀다. 카발리에리는 이 수도회의 사제들과 친분이 많았다. 특히 이 수도회의 창시자인 필립 네리와 가깝게 지냈다. 첫 공연을 가진 장소가 어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영혼과....'의 공연이 플로렌스 서클에 대한 로마 작곡가들의 일종의 도전이라는데에 있다. 로마의 음악가들은 플로렌스가 너무 자만하고 있기 때문에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로마의 음악가는 플로렌스의 음악을 '지루하고 무색무취한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했다. '영혼과....'는 과거의 무대작품들이 신화 또는 왕족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은 것과는 달리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영혼과...'의 대본은 아고스티노 마니(Agostino Manni)라는 오라토리오회 사제가 작성했다. 아고스티노 마니 사제는 약 20년 전에 나온 영혼과 육체의 대화인 라우데(Laude)라는 것을 바탕으로 삼았다. 라우데는 굳이 장르로 보면 종교적 비유에 속하는 작품이다. 도덕저인 이야기와 교육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종교적인 내용의 공연을 하는 것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통이었다. 주로 천국과 지옥, 축복받은 영혼과 저주받은 영혼의 고백 등을 내용으로 삼은 것들이었다. '영혼과...'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지성과 충고가 의인화되어 나오며 부정적인 면에서는 쾌락, 세상의 삶 등이 의인화되어 나온다. 하지만 두 주인공은 '영혼'과 '육체'이다. 두 존재는 마치 사랑하는 연이들처럼 등장하여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주로 아리오서 레시타티브로 표현되면 간혹 아리아와 듀엣도 등장한다.

 

'영혼과 육체의 대화' 음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