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로린 마젤의 '1984' - 37

정준극 2013. 7. 26. 19:48

'1984'(Nineteen Eighty-Four)

지휘자 로렌 마젤(Lorin Maazel)의 2막 오페라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명소설을 오페라화

 

세계적 지휘자인 로린 마젤

 

오페라의 제목이 숫자로 된 것은 오펜바흐의 오페레타인 'Le 66 '이란 것이 유일했다. 어떤 가난하고 멍청한 사람이 66 이라는 숫자가 적힌 복권을 샀는데 친구가 보고서는 놀라면서 당첨되었다고 말해준다. 그 사람은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당첨금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여 미리 이곳저곳에 돈을 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66이 아니라 99가 당첨 숫자라는 내용의 오페레타이다. 근자에 숫자를 오페라의 제목으로 삼은 작품이 하나 더 등장했다. 지휘자로 유명한 미국의 로린 마젤(Lorin Maazel: 1930-)이 작곡한 '1984'이다. 영국의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이 쓴 '1984'(Nineteen Eighty-Four)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에 오페라의 타이틀도 그대로 '1984'라고 붙였다. 세계적인 지휘자가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것도 새삼 흥미로운데 그 오페라가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또 다른 베스트 소설인 '1984'라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2014년이면 조지 오웰의 1984년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시점이 된다.

 

타임지 커버에 등장한 조지 오웰과 1984 타이틀. 1983년 11월호

 

'1984'(Nineteen Eighty-Four)는 조지 오웰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49년에 쓴 다이스토피아적인 소설이다. 다이스토피아(Dystopia)라는 것은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유토피아'(이상향)를 빗대어서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암흑향(暗黑鄕)이라고 할수 있다. 조지 오웰이 유독 1984년을 타겟 연도로 삼은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다만, 그가 소설을 완성한 시기로부터 1세대, 즉 30여년이 지난 시기에는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으로 1984년을 소설의 시기로 잡았을 뿐이다. 조지 오웰은 1984년에 세계는 가상의 3대 강대세력의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3대 강대 세력이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오세아니아 국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국가를 말한다. 1984년은 이들 3대 초강대국이 세계를 지배하며 서로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시기를 말한다.

 

윈스턴과 줄리아. 오세아니아에서는 부부생활도 감시의 대상이다.

 

이야기는 가상의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오세아니아는 에어스트립 원(Airstrip one)이라는 나라에 속한 지역이다. 에어스트립 원은 전에는 대영제국(Great Britain)이라고 불리던 나라를 말한다. 오세아니아에서는 전쟁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백성들이 전쟁을 직접 경험하는 일은 없다. 당국에서 수시로 발표하는 전황만을 듣고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을 뿐이다. 오세아니에에서는 정부가 모든 것을 감시한다. 백성들은 정부가 어디에서 어떻게 자기들을 감시하고 있는지를 모르지만 정부는 백성들을 세밀하게 감시하고 있다. 오세아니아에서는 당국이 백성들의 마음을 조종한다. 일반 대중들의 마음을 마음먹은 대로 콘트롤한다. 백성들을 지배하고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잉소크(Ingsoc)라는 명칭의 잉글리쉬 소셜리즘(English Socialism: 영국적 사회주의)이라는 정치 시스팀이다. 이 시스팀은 특권층인 내부당(Inner Party)의 엘리트들이 콘트롤한다. 이들은 백성들이 가질지도 모르는 개인주의 및 독립적 생각을 사고범죄(thoghtcrimes)로 간주하여 모조리 처벌한다. 이들의 최고 통치자는 '빅 브라더'(Big Brother)라고 불리는 존재이다. 빅 브라더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우상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을 엔조이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빅 브라더를 만나 본 일이 없다. 혹시 아예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빅 브라더와 내부당의 당원들은 무슨 일이든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는 미명아래 백성들을 압박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Winston Smith)는 외부당(Outer Party)의 당원으로서 미니트루(Minitrue)라는 진실성(Ministry of Truth)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윈스턴 스미스는 진실성에서 옛날의 역사기록을 현재의 선전 내용에 맞게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신문사설에 나온 내용들을 현재의 실정에 맞게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라의 역사를 현재의 내부당 당론과 로선을 지지하는 것처럼 만든다. 윈스턴 스미스는 근면하고 재능과 기술이 있는 일꾼이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내부당을 증오하며 빅 브라더에 하여 언젠가는 반란을 벌일 꿈을 꾸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정치적 내용의 픽션이며 암흑향에 관한 사이 파이 소설이지만 내용과 줄거리는 전통적인 고전 스타일이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현실과 공상 사이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소설에 나오는 신조어들이나 새로운 개념들은 1949년 이 소설이 나온 이후에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들이 되었다. 예를 들면 '빅 브라더' '2중사고'(doublethink), '사고범죄'(thoughtcrime), 뉴스피크(Newspeak), '101호실'(Room 101), '메모리 홀'(memory hole) 등이다. '1984'는 이른바 '오웰리언'(Orwellian)이라는 형용사를 만들어 냈다. 이 단어는 공공기관의 도덕 불감증, 공식적인 거짓 발표, 비밀 사찰, 과거사 조작 등 전체주의 국가에서 쉽게 볼수 있는 현상들을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다. 소설 '1984'는 타임지가 1923년부터 2005년까지 나온 100 베스트 영어 소설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2003년에는 BBC의 독자들이 선정한 베스트 소설에서 8위를 차지했다. 이제 그만큼 소개하고 로린 마젤의 오페라로 돌아가보자.

 

오페라 '1984'의 무대. 

                           

'1984'는 반세기가 넘게 지휘자로서 명성을 떨친 로린 마젤이 작곡한 첫 오페라이다. 로린 마젤이 75세의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힘들여서 완성한 오페라이다. '1984'는 2005년 5월 3일에 런던 코벤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대본은 미국의 시인 겸 문학평론가인 조셉 도날드 맥클래치(J D McClatchy: 1945-)와 역시 미국의 작가로서 뮤지컬 '애니'(Annie) 등의 대본을 쓴 토마스 미한(Thomas Meehan: 1929-)이 공동으로 작성했다. 오페라 '1984'는 원래 바바리아 슈타츠오퍼의 감독인 아우구스트 에버딩이 의뢰한 것이다. 처음에 로린 마젤은 당연히 사양했다. 로린 마젤은 '나는 지휘자입니다. 오페라를 작곡해 본 일도 없고 작곡하게 되리라고 생각해 본 일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사양했다. 그러나 바바리아 슈타츠오퍼의 권유는 집요했다. 로린 마젤은 결국 몇년 후에 작곡을 수락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는 중에 작곡을 의뢰한 아우구스트 에버딩이 1999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공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런던의 코벤트 가든과 토쿄 오페라가 초연을 맡겠다고 나섰다. 두 오페라단은 공동으로 초연을 추진하자고 협의했다. 그러는데 얼마 후에, 일본 사람들이 하는 일이 대개 그렇지만, 토쿄 오페라가 후원하지 못하겠다고 발뺌을 했다. 절름발이가 된 코벤트 가든으로서도 혼자서 모든 경비를 부담하는 것이 부담이 되어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로린 마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재원을 조달해서 초연을 성사시켜야 했다. 로린 마젤은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든 중에서 '빅 브라더스 프로덕션'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이 회사가 로열 오페라 하우스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것처럼 했다. 로린 마젤은 '빅 브라더스 프로덕션'을 통해서 약 40만 파운드(약 6억 8천만원)의 경비를 부담했다. 로얄 오페라 하우스도 그만큼의 경비를 부담했다. 오페라 '1984'를 제작하는 일은 과연 막대한 경비가 드는 것이었다. 너무 경비가 많이 들자 로린 마젤은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게 '새로운 작품을 공연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평상시의 작품을 공연한다고 생각하여 경비를 절감해 달라'고 까지 당부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1984'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나중에 언론은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1984'의 공연에 대하여 '국민의 혈세를 그런 허황된 프로젝트에 쓰다니 말도 안된다'면서 비난했다.

 

증오집회

 

오페라 '1984'는 일반적인 오페라와는 달리 주인공이 바리톤이다. 2005년의 초연에서는 바리톤 사이몬 킨리사이드(Simon Keenlyside)가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Winston Smith)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대신에 리드 테너는 악역인 오브라이엔(O'Brien)의 역할을 맡았다. 윈스턴의 애인인 줄리아(Julia)는 초연에서 소프라노 낸시 구스타프슨(Nancy Gustafson)이 맡았다. 이밖에도 사임(Syme), 챠링턴(Charrington), 파슨스(Parsons), 체육관 여자 강사, 술취한 여인, 가난한 서민 여인, 카페 가수 등이 출연한다. 로린 마젤은 합창단에 중요한 비중을 두었다. 합창단의 합창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Two Minutes Hate 라는 '증오의 합창', 그리고 오세아니아 국가를 부르는 All Hail Oceania 이다. 일반 합창단과는 별도로 어린이 합창단도 등장한다. 그리고 텔레스크린을 설치하여 대사를 전하도록 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공연의 티켓은 사전에 모두 매진되었다. 로린 마젤의 명성 때문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았다. 이어 라 스칼라에서의 공연도 매진되었다. 라 스칼라 공연은 DVD로 제작되었다. DVD는 2009년 2월부터 발매에 들어갔다.  

 

진실성의 사무실

 

[1막] 막이 열리면 에어스트립 원의 빅토리 광장이다. 에어스트립 원은 런던을 말한다. 시기는 현재로부터 머지 않은 장래이다. 광장에는 군중들이 모여있다. 마치 피에 굶주린 것 같은 군중들이다. 군중들은 오세아니아의 적들을 규탄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군중들의 합창이 Hate! Hate! Hate이다. '증오의 합창'이다. 군중들은 대형 텔레스크린에 당 리더인 빅 브라더의 이미지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존경심과 함께 충성심을 보인다. 그리고는 오세아니아의 국가를 소리 높이 부른다. All Hail Oceania! 이다. 윈스턴 스미스는 진실정(眞實省: Ministry of Truth)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윈스턴은 사회의 중산층이다. 군중들의 정신나간 것 같은 집회를 지켜 본 윈스턴은 빅 브라더에 대한 증오심을 표현한다. 그리고 텔레스크린에 반복되어 번쩍이며 나타나는 모토인 미친것과 같은 이중적인 사고방식, 즉 '전쟁은 평화이다'(War is Peace), '자유는 노예제도이다'(Freedom is Slavery), '무지는 힘이다'(Ignorance is Strength)라고 모토를 증오한다.

 

사무실로 돌아온 윈스턴은 자기에게 부여된 업무를 시작하려고 준비한다. 그 업무는 새로온 여비서인 줄리아가 가져다 놓은 것이다. 윈스턴의 업무는 과거의 공식적인 기록들을 계속 수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빅 브라더과 당이 언제나 역사의 올바른 사이드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윈스턴은 직장동료로서 자기들의 일을 끝낸 사임(Syme)과 파슨스(Parsons)와 잡담을 나눈다. 파슨스는 빅 브라더가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마련해 준다고 하면서 그런 지도자는 없다고 찬사를 늘어 놓는다. 파슨스는 심지어 면도날을 달라고 해도 빅 브라더가 즉각 마련해 준다는 얘기를 한다. 사임은 공식적인 당의 언어인 뉴스피크(Newspeak)가 비록 금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아주 어려운 아리아인 The beauty of Newspeak, sir! 를 부른다. 윈스턴의 상사로서 내부당(Inner Party)의 당원인 오브라이엔이 나타나서 윈스턴에게 윈스턴의 당에 대한 충성심이 어떠니 하면서 무언가 이상하게 질문을 한다. 마치 윈스턴의 당에 대한 충성심이 의심이 간다는 듯한 뉘앙스이다.

 

그날 저녁 윈스턴은 자기의 허룸한 아파트에서 새로 산 일기장에 자기의 생각을 정리해서 적고 있다. 윈스턴은 비록 자기만의 아파트에 앉아 있지만 언제 어디서 무소부재의 텔레스크린이 자기를 감시할지 모르기 때문에 감시당하지 않기 위해 심지어 앉아 있는 위치까지 무척 조심한다. 윈스턴의 노래가 A place to think for myself 이다. 윈스턴은 빅토리 진을 마시고 반쯤 취한채 잠이 든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 텔레스크린에서 체육관 여자 강사가 어서 일어나지 못하고 무엇하고 있느냐고 소리치는 바람에 깜짝 놀래서 깨어난다. 여자 강사의 노래는 코믹한 콜로라투라 아리아가 Hands at sides, citizens! 이다. 한편, 파슨스와 그의 아이들은 빅토리 광장으로 바삐 달려간다. 오후에 광장에서 유라시아 전쟁포로를 교수형에 처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 미리부터 가는 것이다. 파슨스의 아이들은 '청소년 스파이단'(Young Spies)의 멤버들이다. 광장에는 이미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와 있다. 교수형은 오후에나 집행될 것이지만 그전에 '증오집회'가 있기 때문에 몰려온 것이다. 별별 계층의 사람들이 다 모여 있다. 서민 아이들은 London Bridge is broken down 이라는 자장가를 부르고 있다. '청소년 스파이단'은  어떤 거지 노파를 놀리고 그 노파의 옷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청소년 스파이단의 합창이 Die, blind hag!(죽어라, 눈먼 거지 노파야)이다. 술집 남성중창단은 센티멘탈한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It was only an 'opeless fancy 이다. 그리고 줄리아는 '주니어 앤티 섹스 리그'(Junior Anti-Sex League)를 이끌고 마치 군대처럼 행진해 온다. 이들의 노래는 We pledge our lives to chastity(목숨 걸고 정조를 지키자)이다. 전쟁포로에 대한 교수형이 집행 될 때에 부근에 로켓 폭탄이 떨어진다. 여기저기에 시체들이 나 뒹군다. 군중들이 급히 흩어진다. 윈스턴도 절룩거리면서 자리를 피한다.

 

윈스턴은 비틀거리면서 겨우 어떤 골동품상점에 이르른다. 윈스턴이 일기를 적기 위해 일기책을 샀던 집이다. 이 나라에서는 개인이 일기를 쓰는 것이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일기책을 사는 것도 무척 힘들다. 골동품 상점의 주인인 챠링턴은 친절하게도 윈스턴을 가게 위층에 있는 다락방으로 데리고 간다. 그곳은 텔레스크린의 감시가 없는 곳이다. 두 사람은 지난날 좋았던 시절의 얘기를 나눈다. 윈스턴은 언제까지나 골동품 상점에 눌러 있을 수가 없으므로 밖으로 나온다. 윈스턴은 줄리아가 자기를 찾으러 다니는 것을 발견한다. 윈스턴은 줄리아가 자기를 감시하는 '사고 경찰'(思考警察)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줄리아가 윈스턴의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무슨 쪽지 하나를 떨어 트린다. 쪽지에는 I love you 라는 글과 함께 다음날 오래된 교회의 종탑에서 만나자는 글이 적혀 있다. 다음날, 윈스턴과 줄리아는 오래 된 교회의 종탑에서 서로 조심스럽게 포옹을 한다. 줄리아는 겉으로는 당을 위해 일하는 것 같지만 실은 당에 대하여 실망하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줄리아의 노래가 You hide what you have to 이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마침내 서로의 사랑을 듀엣으로 선언한다. Let darkness do what powers might 이다. 두 사람이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중에 갑자기 윈스턴의 상사인 오브라이엔이 나타난다. 오브라이엔은 두 사람에게 다음날 저녁에 그의 아파트로 오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오브라이엔의 화려한 아파트이다. 오브라이엔은 방 안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스크린을 끄더니 윈스턴과 줄리아에게 두 사람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오브라이엔의 노래가 We live in a world of slogans and doublethink 이다. 오브라이엔은 두 사람에게 빅 브라더에 대항하는 비밀결사에 참여할 것을 권유한다. 오브라이엔의 말은 권유이지만 실은 부하에 대하여 절대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어떤 선까지만 참여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절대로 떨어져 있지 않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오브라이엔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일단 숨어 있으라고 말한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텔레스크린의 감시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윈스턴은 골동품 상점의 다락방을 생각하고 그곳으로 간다. 두 사람은 챠링턴의 다락방에서 서로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것과 서로 배반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윈스턴과 줄리아의 듀엣이 What happens in our hearts 이다. 두 사람은 행복한 하룻 밤을 지낸다. 창문 밖에서는 가난한 노파가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린다. Stars still hang in the sky 이다. 그때 갑자기 골동품 상점 주인인 챠링턴이 나타난다. 놀랍게도 불온 사고방식을 수색하는 이른바 사고경찰과 함께 나타난다. 사고경찰들은 윈스턴과 줄리아를 체포하여 끌고 나간다.

 

[2막] 윈스턴은 이제 어떤 하얗게 칠한 방에 앉아 있다. 아무것도 없는 삭막하고 딱딱한 방이다. 잠시후 술취한 노파가 방으로 들어온다. 노파는 윈스턴에게 저속한 말투로 추근거린다. 노파의 노래가 Come, my pretty 이다. 이어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수갑에 채워진채 들어온다. 그 중에는 윈스턴의 동료인 사임과 파슨스도 들어 있다. 모두 사고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잡혀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곧 악명 높은 101호실로 끌려가서 갖은 고문을 다 당해야 한다. 오브라이엔에 나타난다. 놀랍게도 양 편에 경비들을 거느리고 나타난다. 윈스턴은 그제서야 오브라이엔이 옛날부터 사고경찰을 위해 일해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윈스턴은 시험실이라고 부르는 방으로 끌려간다. 경비들이 윈스턴을 침대에 눕히고 단단히 묶어 놓는다. 오브라이엔이 윈스턴의 고문 담당이다. 오브라이엔은 윈스턴을 '치료'할 책임을 맡은 것이다. 치료해서 빅 브라더와 당에게 절대 충성토록 만들어야 한다. 고문을 당한 윈스턴은 점점 마음이 허물어 진다. 오브라이엔은 당이 어떻게 콘트롤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며 아무도 당의 콘트롤에서 벗어날수 없다고 얘기한다. 오브라이엔은 또한 줄리아가 다른 감방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도 해 준다. 윈스턴의 마음은 점점 더 허물어 진다. 이제 윈스턴은 더 이상 버틸수가 없다. 윈스턴은 환각 중에 지난날의 자기 모습을 본다. 윈스턴의 고뇌에 넘친 노래가 I remember the Golden Country 이다. 드디어 윈스턴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오브라이엔은 그런 윈스턴을 101호실로 옮기라고 지시한다.

 

오브라이엔은 이번에도 101호실에서의 윈스턴에 대한 고문을 책임 맡는다. 101호실은 모든 수감자들이 공포에 떠는 방이다. 오브라이엔은 윈스턴이 결국은 마음을 돌려서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리고는 윈스턴이 도저히 견딜수 없는 방법을 택한다. 쥐를 풀어 놓는 것이다. 쥐들이 들이닥치자 마침내 윈스턴은 완전히 허물어진다. 윈스턴은 '쥐들을 줄리아에게 보내요'라고 소리친다. 윈스턴은 줄리아 때문에 이렇게 고통을 당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윈스턴은 쥐들을 줄리아에게 보내면 줄리아도 마음을 돌려서 빅 브라더에게 충성을 다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101호실에서의 고문 장면

 

그로부터 얼마후 윈스턴과 줄리아는 우연히 빅토리 광장의 체스넛 트리 카페에서 만난다. 두 사람 모두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눈에 초점이 없다. 서로를 겨우 알아볼 뿐이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추억에 얽힌 캬바레 노래가 그나마 두 사람의 마음에 가벼운 파도를 일으켜 놓는다. 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배반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아무 말도 없이 헤어진다. 두 사람은 이제 다시는 만날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는 약속은 어느덧 생각에서조차 남아 있지 않다. 대형 텔레스크린에서는 오세아니아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이 쏟아져 나온다. 윈스턴은 처음으로 빅 브라더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선언한다. 윈스턴은 이제 자기 혼자서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수 없다. 가난한 여인이 나타나서 카페의 유리창을 닦으면서 한때 윈스턴과 줄리아가 사랑을 다짐하며 불렀던 노래를 부드럽게 흥얼거린다.

 

1984년도 영국 영화인 '1984'의 포스터. 빅 브라더는 리챠드 버튼이 맡았고 윈스턴은 존 허트, 줄리아는 수잔나 해밀턴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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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휘자이며 바이올리니스트이고 작곡가인 로린 마젤

 

작곡자 로린 마젤은 어떤 사람인가?

 

로린 마젤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기에 그의 이력을 소개함으로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신코자 한다. 로린 마젤의 원래 이름은 로린 바렌코우브 마젤(Lorin Varencove Maazel)이다. 미국의 지휘자,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이다. 로린 마젤은 1930년 3월 6일 프랑스의 뉘일리 쉬르 세이느(Neuilly-sur-Seine)에서 태어났다. 로린 마젤의 부모는 러시아 출신의 유태인으로 미국시민이었다. 로린 마젤은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피츠버그의 오클랜드에서 자랐다. 아버지 링컨 마젤(1903-2009)은 성악가로서 성악과 피아노 교사이기도 했고 배우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배우로서 링컨 마젤은 조지 로메로의 1977년도 공포영화인 '마틴'(Martin)에 주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어머니 마리온 마리 슐만 마젤(Marion 'Marie' Shulman Maazel: 1894-1992)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여인으로서 피츠버그 청소년교향악단을 창설하였다. 로린 마젤의 할아버지인 아이작 마젤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 20년 동안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로린 마젤은 어려서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로린 마젤은 일곱살 때부터 블라디미르 바칼레이니코프로부터 지휘법을 배웠고 여덟살에 지휘자로서 데뷔했다. 11살 때에는 라디오에서 NBC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NBC교향악단 뿐만 아니라 미국의 어떤 교향악단에서도 그런 경우는 없었다. 로린 마젤은 12살 때에 미국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각 도시의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5세 때에 바이올리니스트 데뷔했다. 그는 피바디고등학교를 거쳐 피츠버그대학교를 다녔다. 그는 1945년에 잠시이지만 거장 피에르 몽토(Pierre Monteux)로부터 지휘법 등을 배우기도 했다.

 

로린 마젤은 30세가 되던 1960년에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를 지휘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후 1965년부터 1971년까지 6년동안 베를린의 도이치 오퍼의 수석 지휘자로 활동했고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 동안은 베를린 라디오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활약했다. 로린 마젤은 1972년에 조지 첼(George Szell)의 뒤를 이어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마젤의 감정에 넘쳐 있으며 풍부한 음악해석은 조지 첼의 음악해석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조지 첼은 감정의 표현보다는 정확도에 더욱 치중하였다. 로린 마젤이 클리브랜드에 있으면서 이룩한 성과 중의 하나는 처음으로 거슈인의 '포기와 베스'를 완전 녹음했다는 것이다. 녹음에서는 출연진들을 모두 흑인으로 삼은 것도 특별한 일이었다. 마젤은 1982년까지 클리브랜드에 있었다. 로린 마젤은 1982년부터 2년 동안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지휘했다. 비엔나에 오게 된 것은 1980년에 빌리 보스코브스키의 뒤를 이어 비엔나신년음악회의 지휘를 맡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로린 마젤이 비엔나신년음악회를 지휘한 때로부터 이 음악회가 TV로 전세계에 중계되기 시작했다. 로린 마젤은 비엔나신년음악회를 1994, 1996, 1999, 2005년에도 지휘했다.

 

1984년부터 1988년까지는 피츠버그 교향악단의 음악자문을 맡았다. 그리고 1988년부터 1998년까지는 음악감독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1993년부터는 뮌헨에 있는 바바리아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로서 2002년까지 활동했다. 로린 마젤은 허버트 폰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로린 마젤은 1989년에 폰 카라얀의 뒤를 이어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필의 수석지휘자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후로부터 외부와의 일체의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는 그가 모든 연락을 끊고 지내기로 한 것은 베를린필의 발전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후 그가 다시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거의 10여년이 지난 2000년으로 뉴욕필의 2주에 걸친 콘서트를 지휘한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2002년부터 뉴욕필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게되었다. 그는 뉴욕필에 있을 때인 2008년 2월에 북한의 평양을 방문하여 연주회를 가지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평양에서 미국 국가와 북한 국가의 연주를 지휘했고 이어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 조지 거슈인의 '파리의 아메리카인'을 지휘했다. 피날레로서는 한국 전통민요인 '아리랑'을 연주하여 박수를 받았다. 로린 마젤은 2008-09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뉴욕필을 떠났다.

 

로린 마젤은 2004년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는 스페인 발렌시아의 오케스트라 드 라 코무니타트 발렌시아나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2011년 발렌시아나의 마지막 지휘는 그의 81세 생일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그의 오페라 '1984'를 지휘했다. 그는 2011년부터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뒤를 이어 뮌헨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가 되었다. 로린 마젤은 오페라 영화 세 편의 지휘를 맡았다. 1979년에 '돈 조반니', 1984년의 '카르멘', 1986년의 '오텔로'였다. 그가 비엔나신년음악회를 지휘하는 모습은 2005년에 오스트리아 정부 발행의 우표에 나왔다. 로린 마젤과 부인 디틀린데 투르반(Dietlinde Turban)은 버지니아주 캐슬턴의 광활한 저택에서 살면서 매년 여름 캐슬턴 페스티발(Castleton Festival)을 운영하고 있다.

 

버지니아주 캐슬턴에 세워진 캐슬턴 페스티발 극장. 로린 마젤이 소유하고 있는 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