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에피소드

오페라의 악역들

정준극 2014. 4. 7. 18:47

오페라의 악역들

스카르피아? 이아고?

 

오페라에 등장하는 악역 중에서 누가 가장 사악한가? 오페라에는 의외로 악역들이 많다. 사람들은 어차피 희극보다는 비극을 더 선호하기 때문인것 같다. 이아고(오텔로), 맥베스, 레이디 맥베스, 오르트루트(로엔그린), 밤의 여왕(마술피리), 블랙 위도우, 리자이나, 에드워드 게인스(마가렛 가너), 돈 피짜로(휘델리오), 카스파르(마탄의 사수), 스카르피아, 메피스토펠레스, 바르나바(라 조콘다), 게슬러(귀욤 텔) 등등....그런 중에도 아무튼 악역 10위를 선정해야 하므로 미국의 음악평론가들이 선정한 것을 일단 소개코자 한다. 독자 제위의 생각과는 당연히 다를수가 있기 때문에 절대적이 아님을 첨언한다.

 

1위: 스카르피아(토스카): 로마의 경시총감인 스카르피아가 오페라의 악역 중에서 가장 악역으로 선정되었다. 세상에서 스카르피아를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야비하고 음흉하며 잔인하고 사악하다. 이름까지도 스코르피온(전갈)을 연상케 한다. 토스카가 스카르피아를 단검으로(또는 책상 위에 놓은 레터나이프로) 찔러 죽이는 것을 보고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스카르피아는 무고한 화가인 카바로도시를 체포해서 고문을 하고 심지어 고문을 당할 때 지르는 비명소리를 애인인 토스카가 옆 방에서 듣도록 했다. 정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인간이다.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에게 몸을 요구하였고 들어 준다면 애인 카바로도시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카바로도시를 처형하라고 비빌 지시를 내렸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처사인가! 토스카의 단검으로 가슴을 찔려 죽는 것을 보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니 그 얼마나 악한 인간이었는지 모르겠다.

 

스카르피아를 죽인 토스카

 

2위: 바르나바(라 조콘다): 참으로 또 하나의 비열하고 악랄한 인간이 '라 조콘다'에 등장하는 바르나바이다. 바르나바는 거리에서 발라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지만 베니스의 막강한 종교재판소의 첩자여서 누구든지 그를 보면 뱀을 보듯 싫어한다. 그런 주제에 역시 거리의 가수인 조콘다를 일방적으로 좋아해서 어떻게 하면 조콘다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까라고 생각하여 온갖 모함을 한다. 결국 바르나바는 조콘다의 눈먼 어머니인 치에카를 죽인다. 그리고 조콘다가 사랑하는 엔조를 모함하여 죽음에 처하게 만든다. 조콘다는 사랑하는 엔조를 살리기 위해 바르나바에게 몸을 바치기로 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조콘다는 어머니도 죽으셨는데 사랑하는 엔조까지 죽게 만들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비극, 또 비극이다.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에서 조콘다와 눈먼 어머니 치에카

 

3위: 살로메(살로메): 오페라 주인공 중에서 누가 가장 미친 여자이냐에 대한 콘테스트가 있다고 하면 오펠리아(햄릿)도 후보선수이고 루치아(람메무어의 루치아)도 후보선수이다. 하지만 정말 사악한 여인, 도저히 정상적인 여인이라고 볼수 없는 정신 나간 여인을 지적하라고 하면 살로메이다. 아무리 의붓 아버지이지만 그런 남자를 유혹하여 일곱 베일을 하나하나 벗어 제키는 스트립 쇼를 벌인 후에 결국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로 헤롯의 발 앞에서 엎드린다. 그러면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잘라서 쟁반에 담아 달라고 청한다.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선지자 중의 한사람이다. 그런 그를 끔찍하게 목을 잘라 죽여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헤롯의 명령에 의해 병사가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잘라서 쟁반에 담아 오자 그 입술에 입맞춤을 한다. 피가 뚝뚝 흐르는 그 머리를 부여 안고서 말이다. 그만하면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간 여자임에 틀림 없다. 그리고 정말 잔인한 여자, 악독한 여자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에서 살로메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바라보고 착찹한 감정에 싸이고 있다.

 

4위: 메피스토펠레스(파우스트): 도대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소리이다. 젊음과 부를 가지게 해 주겠으니 영혼과 바꾸자는 계약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순진하고 어여쁜 마르게리트(그레첸)를 파우스트의 환락을 위한 희생물로 삼았다. 마르게리트는 결혼도 하지 않은 몸으로 아이를 낳았고 결국은 아이를 죽게 만들었다. 그래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이것은 모두 메피스토텔레스의 사악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젊은이건 늙은이건 그대들이여! 절대로 악마와 계약을 맺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인생파멸이기 때문이다.

 

구노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트

 

5위: 이아고(오텔로): 이아고는 우직하지만 무언가 불안한 심정의 오텔로의 귀에 대고 악마의 말을 속삭인다. 마치 디즈니 만화의 '알라딘'에서 앵무새가 알라딘의 어깨에 올라 앉아 사악한 말들을 속삭이는 것과 같다. 데스데모나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아고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 주위에는 이아고와 같은 인물이 언제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아고의 말을 듣고 악마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오텔로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무엇인가? 데스데모나도 죽고 오텔로도 죽는다. 비극, 또 비극.

 

베르디의 '오텔로'에서 오텔로와 이아고

 

6위: 이번에는 사람이 아니고 질병이다. 바로 폐병이다. 오페라에서는 불쌍하고 연약한 여주인공들이 폐병으로 숨을 거두어서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 그리고 '라 보엠'에서 미미이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는 오페라가 시작될 때부터 폐병의 증세를 보이다가 시골에서 지낼 때에는 잠시 회복되는 듯 했으나 곧이어 파리의 환락생활을 다시 시작하자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프로방스의 시골에 가서 있던 알프레도가 파리로 올라와서 비올레타를 찾아 갔을 때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때였다. 한편, '라 보엠'에서의 미미는 1막에서는 폐병은 커녕 감기도 걸리지 않은 모습인데 나중에 로돌포와 함께 추운 겨울에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가출하여 폐병에 걸려 고생하는 것을 친구 뮤제타가 발견해서 데리고 파리의 라탱구역에 있는 로돌프와 친구들의 거처로 데려오고 결국 그곳에서 숨을 거두는 것으로 되어 있다.

 

푸치니의 '라 보엠'에서 미미의 죽음 장면

 

7위: 밤의 여왕(마술피리):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아 악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여왕이므로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나타나서 소프라노로서 고난도의 아리아를 한번도 아니고 두번 이상이나 부르기 때문에 그 모습과 노래에 마음을 빼앗겨서 밤의 여왕을 악녀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소개되지 않고 있다. 만일 이름이 소개되었다면 그 이름으로만 해도 여러 에피소드가 생겨났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밤의 여왕이 사악하다는 것은 딸 파미나 공주에게 단검을 쥐어 주면서 이시스 신전의 고승 자라스트로를 죽이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연약하고 순진한 파미아 공주가 어떻게 단검을 쥐고 신전의 고승을 찔러 죽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 문제는 그런 악행을 강요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라는 데에 있다. 아무리 악한 어머니라고 해도 자식에게 칼을 쥐어 주고 누구를 죽이라고 요구하며 만일 그런 요청을 들어 주지 않을 경우에는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어머니로서 차마 할 일이 아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이 딸 파미나 공주에게 단검을 주면서 자라스트로를 죽이라고 강요한다.

 

8위: 닉크 섀도우(난봉꾼의 인생행로: The Rake's Progress): 니크 섀도우는 이름처럼 섀도우(그림자)의 마스터이다. 니크 섀도우는 인형놀이를 하는 사람이다. 불쌍하고 연약한 톰은 니크 섀도우가 잡아 다니는 줄에 따라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여야 한다. 니크 섀도우는 파우스트를 이리저리 요리하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같다. 니크 섀도우는 톰에게 온갖 나쁜 일을 다 가르쳐 준다. 그리고 수염난 바바와 결혼하라고 강요한다. 니크 섀도우는 결국 톰을 사랑하는 앤느까지 죽음으로 몰고 간다. 세상에서 나빠도 니크 섀도우만큼 나쁜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난봉꾼의 인생행로'에서 니크 섀도우가 톰에게 나쁜 짓들을 강요하고 있다.

                                

9위: 카스파르(마탄의 사수):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나는 안 갈테니까 너나 지옥에 가라'는 것이 카스파르의 행동이다. 친구랍시고 지내는 처지에 친구를 대신 악마의 희생물이 되도록 주선하는 카스파르야 말로 사악한 인간의 표본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비둘기와 같은 아가테는 죽지 않고 살았고 모두들 행복한 엔딩이다. 다만, 카스파르만이 저 끔찍한 뜨거운 지옥의 불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을 뿐이다. 인과응보.

 

베버의 '마탄의 사수'에서 카스파르

 

10위: 리자니아(리자이나): 리자이나는 마크 블리츠슈타인의 오페라 '리자이나'의 타이틀 롤이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수많은 악역 중에서 굳이 리자이나를 선정한 것은 다른 여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이다. 리자이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오빠와 남동생과 함께 사업을 계획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업에 전재산을 투자해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남편은 그것이 온당치 못한 사업임을 알고 투자를 거절한다. 남편은 심장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심장마비의 증세가 오면 당장 약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리자이나는 남편이 심장마비를 증세를 보여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약을 주지 않는다. 결국 남편은 리자이나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 사악한 여인이다.

 

마크 블리츠슈타인의 '리자이나'에서 리자이나와 딸 알렉산드라(잰). 알렉산드라는 결국 어머니 리자이나에게 환멸을 느껴서 집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