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이해하기

어떤 오페라를 볼 것인가?

정준극 2013. 9. 11. 03:53

어떤 오페라를 볼 것인가?


미국 워싱턴의 국회 도서관은 그 규모가 크기로 유명하다. 모든 분야의 서적이 거의 등록되어 있다. 이 국회 도서관에 등록되어 있는 오페라는 2만 5천 작품이나 된다. 하지만 그 중에서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정기적으로 공연되는 오페라 작품은 약 1백 편에도 이르지 못한다. 어떤 것들이 성공적인 오페라 작품인가? 여덟 가지 항목을 살펴본다.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무대. 명가수를 주인공으로 삼은 오페라이다.

                            

(1) 작곡자가 원작에 감동을 받아 작곡한 오페라는 훌륭한 작품이다. 작곡자 자신들이 불후의 원작에 감동을 받아 새로운 신념과 감정을 가지고 작곡을 했다면 그것은 훌륭한 오페라이다. 세계의 문호들이 쓴 원작을 소재로 하여 대사를 가다듬고 오페라를 작곡했다면 우리는 그 오페라를 통하여 세계 걸작 문학작품을 다시한번 접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세계적 문호들의 작품을 오페라로 만든 경우는 허다하다. 베르디의 오텔로, 맥베스, 라 트라비아타, 운명의 힘, 돈 카를로, 팔슈타프, 리골레토, 베토벤의 휘델리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구노의 '파우스트'와 ‘로미오와 줄리엣’, 차이코프스키의 '유진 오네긴' ....모두 세계적 문학작품을 소재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오페라를 감상한다는 것은 음악과 함께 불후의 세계 명작에 접근하는 일석이조의 가치가 있다. 명작 오페라에 대하여는 본 블로그의 다른 항목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람.

 

프로코피에프의 '전쟁과 평화'에서 나타샤(안나 네트레브코)와 안드레이 공자(드미트리 흐보르보스코브스키)

 

 (2) 작곡자의 인간적 고뇌와 박애정신이 반영된 오페라는 훌륭한 작품이다. 작곡자가 인간적인 고통과 번뇌를 통하여 얻은 경험을 반영한 오페라는 훌륭한 작품이다. 그 오페라를 통해서 인간승리의 귀중한 경험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청각을 잃고서도 불굴의 정신으로 자기 자신과 투쟁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그의 '휘델리오'는 억압받는 민중을 대변하며 독재에 대한 투쟁을 담아 놓은 작품이다. 푸치니는 젊은 시절 배고픈 음악가로서 오랜 세월을 지냈다. 푸치니는 이 기간의 어려웠던 경험을 그의 최대작 '라 보엠'에 쏟아 부었다. 불후의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고 힘없으며 소외당하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소외당하고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의 첫 성공작 나부코(Nabucco)는 다른 사람이 내용이 흥미롭지 못하다고 해서 거들떠보지 않았던 소재를 선택하여 작곡한 것이다. 억압당하고 있는 히브리 포로들의 자유를 향한 갈망에 마음이 사로잡혔던 것이다.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초연이후 이탈리아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탈리아 제2의 국가(國歌)로 애창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 경우든지 작곡자들이 스토리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서 오페라를 작곡하면 그 작품은 듣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확신을 주는 것이 된다.

 

푸치니의 '토스카'. 코벤트 가든. 마리아 칼라스와 티토 고비


 (3)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기본 감정을 표현한 오페라는 훌륭한 작품이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면 별다를 관심을 가질 수 없다. 공공요금이 올랐기 때문에 걱정이라든지, 믿고 먹을만한 식품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든지, 자녀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걱정이라든지 따위의 일상적인 감정이 무슨 감동을 줄수 있겠는가?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랑과 우정, 분노와 질투, 자만과 오만, 욕심과 욕구, 오해와 불신.... 이러한 감정들을 표현하고 그러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판단과 해결방안을 요구하는 작품이라면 일단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베르디의 '리골레토' 주막집 장면

 

대부분 오페라에는 사랑, 배반, 복수, 질투, 우정, 회개, 헌신 등 인간의 모든 기본 감정이 기둥 줄거리로 되어 있다. 사람들이 오페라에 대하여 애착을 갖는 이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페라의 스토리가 바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비통한 사랑 이야기, 자기의 비참한 운명이야기, 원수에 대한 복수심,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한 이야기, 행복한 시절에 대한 추억, 사랑하는 사람에게 애정을 주지 못했던 후회의 마음.... 그런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오페라에는 왜 이런 내용들이 담겨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감정들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공통적일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주인공이 다르더라도 인간의 기본 감정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 감정을 음악에 붙여 표현할 때 그 감정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실제 생활에서보다 더 확대되어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와 닿게 되는 것이다. 

 

푸치니의 '수녀 안젤리카' 무대.

 

일상을 사는 우리들은 '라 보엠'에서 미미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게 되고 '토스카'에서 그에게 닥쳐온 비운을 안타까워하게 된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가 자기의 감정을 숨기고 일부러 알프레도를 멀리하려고 할 때 우리는 어느덧 비올레타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한없는 동정심을 가지게 되며 '리골레토'에서는 딸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고 감동하게 된다. 이렇듯 오페라는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없는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다.


(4) 어떤 오페라이던지 내용에 극적인 흥미가 있으면 성공작이라고 할수 있다. 영화든 연극이든 내용이 흥미로워야 한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작품은 아무리 예술성과 음악적 기교가 살아 있는 오페라라고 해도 성공작이라고 할수 없다. 스토리의 결말이 우리가 상상치 못했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면 흥미를 더해 줄 수 있다. 어떤 작품이던지 마지막 부분의 클라이맥스가 중요한 것이다. 클라이맥스에서의 상상치 못했던 사태의 반전(反轉)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것이다. 스토리의 결론이 권선징악적이라면 사람들의 박수를 받게 될 것이다. '돈 조반니'의 마지막 장면에서 희대의 탕아 돈 조반니가 지옥의 불길 속으로 떨어지는 것, '토스카'에서 탐욕스러운 스카르피아가 토스카의 칼에 찔려 죽임을 당하는 것, '휘델리오'에서 정치범으로 감옥에 갇혀있던 플로레스탄이 아내의 용기로 자유를 얻게 되는 것... 이런 극적인 반전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템페스트'를 리 호이비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비엔나 슈타츠오퍼

 

(5) 오페라에 이국적 정취가 흠뻑 담겨있으면 재미를 더해준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이국의 정취가 무대에 올려질 때 흥미를 갖기 마련이다.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이 무대에 올려진다면 더 애착을 가지게 된다. 19세기의 말에 비엔나에서 오페레타가 크게 유행했던 것도 그 맥락에서였다. '나비부인'이나 '투란도트'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당시 서양 사람들의 동양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큰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이국적인 음악, 무대, 의상, 춤은 유럽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들은 동양은 물론, 같은 서양에서도 스페인과 그리스, 터키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에 대하여는 그 뜨거운 태양도 관심의 대상이겠지만 그 보다도 기독교 문화와 동양적인 아랍(무어) 문화가 융합된데 대한 호기심이 더 작용했을 것이다. 오페라에서 스페인을 무대로 한 작품이 유난히 많은 것도 그런 배경에서이다. 비제의 카르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로씨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베르디의 '돈 카를로'와 '일 트로바토레', '운명의 힘', 베토벤의 '휘델리오' 등은 모두 스페인, 그것도 세빌리아를 무대로 한 것이다.

 

비제의 '진주잡이' 무대

 

그리스를 무대로 한 작품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리스(희랍)는 서구 문명의 발상지이다. 그리스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헬레니즘은 르네상스의 원동력이었다. 따라서 문화의 뿌리를 찾는다는 의미에서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이 있다. 글룩의 ‘오르페오과 유리디체’는 대표적이다. 가장 빈번하게 공연되는 오페라 중에 베르디의 '아이다'가 포함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서양 사람의 눈에는 이집트가 동양이었다. 동양에 대한 동경심이 ‘아이다’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아이다 무대에는 코끼리까지 등장하지 않는가? 아무튼 동물이 무대에 등장하는 오페라는 극히 드믄 경우이며 그런 의미에서 아이다는 일단 성공작이다.

 

글룩의 '오르페오와 유리디체'에서 죽음의 강에서의 군무

 

(6) 어떤 작품이던지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의지가 담겨있는 오페라라면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관습과 전통 때문이다. 베토벤이 '휘델리오'를 무대에 올렸을 때 사람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내 놓았을 때 공연 금지를 받을 뻔했다. 비제의 '카르멘'은 처음에 실패작으로 평가받았었다. 푸치니가 '라 보엠'을 무대에 올렸을 때에도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 작곡가들이 활동 당시에 사회로부터 충분한 이해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당시 사람들은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지나치게 현대적’이라고 하면서 마땅치 않게 생각하기가 일수였다. 헨델이 '줄리아스 씨저'를 발표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그 오페라가 너무 현대적(Modern)이라고 해서 외면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유진 오네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 이들 오페라는 불후의 고전으로서 사랑받게 되었다.

 

오페라 역사상 첫 오페라라고 하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무대.

 

작곡에는 자기만의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생명이다. ‘아마데우스’는 우리가 잘 아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아마데우스’이기 때문에 주인공을 모차르트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살리에리가 주인공이다. 살리에리는 재능 있는 작곡가였다. 하지만 그가 모차르트의 그늘에 가려 빛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자기 자신의 음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작곡했던 작품들은 당시 누구라도 작곡할수 있었던 그런 스타일이었다. 독창성이 없었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그늘에서 지내야했다. 오페라에는 작곡자의 독특한 스타일이 담겨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리아나 합창의 한 소절만 들어도 ‘베르디의 오페라구나!’라고 하면서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것도 베르디만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 때문이다. 푸치니의 오페라에는 푸치니만의 스타일이 담겨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에는 모차르트만의 특별한 스타일이 담겨있다. 그래서 오페라가 재미있다는 것이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감옥에서 레오노라와 만리코

 

(7) 감동적인 아리아가 있는 오페라를 보아야 할 것이다. 오페라의 하일라이트는 아리아에 있다. 오페라의 전체 스토리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보석과 같은 아리아는 두고두고 뇌리에 남아있게 마련이다. '라보엠'에서 Si, mi chiamano Mimi(내 이름은 미), '토스카'에서 Vissi d'arte, vissi d'amore(노래에 살고 사랑 살고), '나비부인'에서 Un bel di vedremo(어떤 갠 날), ‘사랑의 묘약’에서 Una furtiva lagrima(남 몰래 흘리는 눈물), '라 트라비아타'에서 Addio del passato(지난날이여 안녕), '아이다'에서 O terra, Addio(이 세상이여, 안녕).... 이들 아리아 한 곡만으로도 그 오페라는 생명을 가지고 사람들의 가슴속에 무한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아리아, 즉 감동을 주는 아리아가 포함되어 있는 오페라는 훌륭한 작품이다.

 

푸치니의 '라 보엠'에서 뮤제타가 '내가 길을 거닐 때에'(뮤제타 월츠)를 부르고 난후 관중들의 박수에 화답하는 장면

 

 (8) 훌륭한 성악가가 출연한 오페라는 가치가 있다. 무릇 성악가라면 자기의 독특한 음역과 음색이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맞는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모차르트의 깔끔하고 사랑스런 오페라의 아리아를 즐겨 부르는 성악가가 베르디의 비통에 넘쳐있는 역할도 쉽게 맡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 역은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가 제격이다. ‘운명의 힘’에서 레오노라역은 미렐라 프레니(Mirella Freni)를 따라 갈 사람이 없다. ‘사랑의 묘약’에서 네모리노역은 니콜라이 겟다(Nicolai Gedda)가 제격이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역은 안나 모포(Anna Moffo)를 손꼽게 된다. '토스카'역은 마리아 칼라스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투란도트'에서 칼리프왕자 역이라면 플라치도 도밍고(Placido Domingo)를 연상하게 된다. '리골레토'에서 만토바 공작 역할은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가 제격이다. '돈 카를로' 역할은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베르디의 '오텔로'는 플라치도 도밍고가 제일이다. 이처럼 어느 오페라의 어느 주인공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성악가가 있기 마련이며 이들이 출연한 오페라에 애정을 가질 때에 보다 격조 있는 감상을 할 수 있다.

 

베르디의 '오텔로'에서 데스데모나(르네 플레밍)와 오텔로(요한 보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