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 왕조

제국의 영광

정준극 2013. 10. 9. 22:01

제국의 영광

합스루브크 왕조,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크론랜더...우선 이런 용어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부터 필요하다.

 

쇤브룬 궁전의 글로리에트.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광을 나타내는 건축물이다.

 

○ 합스부르크 왕조 또는 오스트리아 왕조: 일반적으로 1526년부터 1867년까지의 기간에 지금의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가문을 말한다. 1526년은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아들 중에서 큰 아들인 샤를르 5세는 스페인 합스부르크로 분리되어 갔고 둘째 아들인 페르디난트 1세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지파로 이어가게 된 때이다. 그래서 합스부르크 왕조 또는 오스트리아 왕조라고 하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지파가 시작된 1526년부터 오스트리아 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개편될 때인 1876년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왕조 또는 오스트리아 왕조라고 부르는 것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서 오스타리키-오스트마르크트-오스트리아공국-오스트리아제국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온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오스트리아 왕조라고 하면 합스부르크가 오늘날의 스위스에서 하나의 가문을 이루어 등장한 때로부터(1156)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대타협을 거쳐 군주는 하나지만 별도의 정치를 하기로 결정한 때(1876)까지를 말하고 있다.

 

호프부르크 궁전의 내정에 있는 프란시스 2세 신성로마제국 황제(또는 프란시스 1세 오스트리아제국 황제)

 

○ 오스트리아 제국: 프란시스 2세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1804년에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한 때로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명칭을 변경한 때까지의 공식명칭이 오스트리아 제국이다. 독일어로는 카이저툼 외스터라이히(Kaisertum Österreich)라고 한다. 이를 영어로 번역하면 Emperordom of Austria 이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어로는 Austro-Hungarian Empire라고 쓴다. 1867년 프란츠 요셉 1세 황제가 헝가리의 독립운동을 완화하기 위해 헝가리와 타협하여 제국의 명칭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고 변경한 때로부터 1차 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종말을 고한 후 오스트리아에 새로운 공화국이 들어서고 헝가리는 독립을 쟁취한 1918년까지를 말한다. 비공식 명칭으로는 '다뉴브 왕조'(도나우모나르히: Donaumonarchie)라고 불렀다. 또한 두 나라가 한 사람의 군주 아래에 있기 때문에 도펠 모나르히(Doppel-Monarchie)라고 부르기도 했다. 2중 왕조라는 의미이다.


합스부르크 황실의 겨울 궁전인 호프부르크에서의 신년무도회

 

○ 크론랜더(Kronländer): 어떤 학자는 1849년 프란츠 요셉 1세 황제가 즉위한 다음해부터 1918년 1차 대전의 여파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종말을 고하게 된 때까지를 크론랜더(왕관의 나라), 즉 크라운 랜드라고 불렀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비단 현재의 오스트리아 뿐만 아니라 일대의 여러 지역을 영토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총칭하기 위해 크론랜더라고 불렀던 것이다. 당시에는 제국의회가 있어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의회에 참가하였다. 이를 Die Reichsrate vertretenen Königreiche und Länder 라고 불렀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오늘날의 오스트리아는 물론, 벨기에 일부, 크로아티아, 체코공화국, 프랑스일부, 독일 일부, 헝가리, 이탈리아 일부,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네덜랜드 일부, 루마니아 일부,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위스 일부, 우크라이나 일부, 보스니아 일부를 영토로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영토구분은 정치적 사건에 따라 가감이 성행했었다. 제국의 헝가리 파트는 Länder der Heiligen Stephans Krone(성스테판 왕관의 나라)라고 불렀고 보헤미아(체코) 지역은 Länder der Wenzels-Krone(벤첼라스 왕관의 나라)라고 불렀다.

  

프라하는 한때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였다. 사진은 프라하 중심가의 크리스마스 시장

                 

좁은 의미의 오스트리아 영토: 오스트리아의 군주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도 겸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한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가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서의 역활도 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가 곧 신성로마제국과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다. 어찌보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것은 명칭만 드럴듯하게 존재하지만 황제가 직접 통치하는 영토는 거의 없다. 모두 따로 따로의 국가들이 연합하여 신성로마제국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제적으로 오스트리아의 영토는 어디를 말하는가? 두가로 나누어 생각할수 있다. 하나는 현재의 오스트리아라고 할수 있는 '오스트리아 공국'이다. 다른 하나는 중세로부터 세습되어온 합스부르크의 영토를 말한다.

 

○ 오스트리아 영토(Österreichische Länder: Austrian Lands) 또는 '오스트리아 공국의 영토'(Erzherzogtümer von Österreich): 간단히 말해서 엔스(Enns)강 상부와 하부의 땅을 말한다. 엔스강은 오베레 외스터라이히주와 니더 외스터라이히주의 경계에 있다. '오스트리아 영토' 또는 '오스트리아 공국'이라는 용어는 일찌기 996년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막을 내린 1918년 11월 12일까지 사용되었다. 독일어로 외스터라이히셰 랜더(Österreichische Länder)라고 부르는 지역은 오늘날 오스트리아공화국의 영토와 거의 비슷하다. 오늘날의 오스트리아공화국은 준연방제의 국가이다. 9개의 연방주(Bundesländer)로 구성되어 있다. 니더 외스터라이히(엔스강 하부), 오베레 외스터라이히(엔스강 상부), 티롤, 슈티리아, 잘츠부르크, 카린티아, 포아아를버그, 부르겐란트, 그리고 수도인 비엔나이다. 비엔나는 특별시가 아니라 오스트리아를 구성하고 있는 주의 하나이다. 부르겐란트는 원래 헝가리 소속이었다가 1921년 주민투표를 통하여 오스트리아에 속하게 되었다. 잘츠부르크는 원래 독립적인 도시국가로서 대주교가 통치하였으나 1816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 오스트리아에 속하게 되었다. 오베레 외스터라이히주는 1779년 '바바리아 왕위계승 전쟁'의 결과로 맺은 테센조약에 따라 바바리아에 속하여 있던 인구역(Innveritel)을 인수 받아서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다. 수백년 제국의 수도였던 비엔나가 오스트리아의 주가 된 것은 1922년 1월 1일부터였다. 합스부르크 왕조 시대에는 비엔나를 레지덴츠슈타트(Residenzstadt)라고 부르기도 했다. 합스부르크의 군주들이 거처하던 도시였기 때문이다. 또는 라이히스하우프트(Reichshaput)라고도 불렀다. 제국의 수도라는 뜻이다.

 

백년동안 제국의 수도였던 비엔나의 링슈트라쎄의 위용

 

○ 세습 영토(Erbländer: Hereditary Lands): 보통 Österreichische Erlander 라고 표기한다. 또는 독일 세습 영토(German Hereditary Lands)라고도 표현한다. 중세로부터 1849년 또는 1918년까지 사용되었던 용어이다. 1849년은 프란츠 요셉 1세 황제가 즉위한 다음해이다. 1918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종말을 고한 해이다. 세습 영토는 좁은 의미로 볼때 오리지날 합스부르크 영토를 말한다. 즉 기본적으로 오스트리아 영토와 카르니올라(Carniola)를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보헤미아 왕국의 영토까지를 포함한다. 보헤미아는 1526년 페르디난트 1세 때부터 1627년 페르디난트 2세 치하까지 합스부르크의 세습 영토였다. 그때에는 Lands of the Bohemian Crown 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849년 헌법에 따라 크론랜더(크라운 랜드)라고 부르게 되었다. 합스부르크의 세습 영토는 현재의 오스트리아와 체코공화국 일대 이외에도 수많은 작은 공국(프린스, 즉 제후가 통치하는 프린시팔리티), 공작령(공작이 총치하는 공국), 또는 지방 영주들이 지배하는 카운티 등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티롤을 보면 티롤은 군주는 그라프(백작:  Graf)라고 불렀다.

 

아름다운 티롤은 오스트리아의 관광지이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영토: 시대의 변천과 함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지배하는 영토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핵심 영토는 언제나 다음 세가지 블록으로 구성된다.

 

세습 영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지파가 지배한 세습 영토는 오늘날 오스트리아 전역과 슬로베니아의 일부지역이 해당된다. 이와 함께 동북부 이탈리아의 몇몇 지역, 1797년 이전의 독일 서남부 일부 지역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라인이 지배한 영토에 속하였다. 여기에 1779년에 바바리아의 인 구역(Innviertel)이 추가되었고 1803년에는 대주교가 통치하는 트렌트(Trent)와 브릭센(Brixen)이 오스트리아의 세습영토로 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여러 영토를 잃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휘어르텔과 잘츠부르크 대주교령은 1815년의 평화협정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리고 트렌트와 브릭센은 1차 대전후 이탈리아에 귀속되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지배하였던 세습 영토는 다음과 같다.

 

- 오스트리아 공국(오베레 외스터라이히)

- 오스트리아 공국(니더 외스터라이히)

- 슈티리아 공국

- 카린티아 공국

- 카르니올라 공국

- 아드리아해 항구인 트리에스테

- 이스트리아(Istria: 이스트리아의 대부분은 1797년까지 베니스 공국의 영토였다)

- 고리치아(Gorizia)와 그라디스카(Gradisca)

   * 이상에서 슈티리아 공국, 카린티아 공국, 카르니올라 공국, 트리에스테, 이스트리아, 고리치아, 그라디스카는 종합해서 인네레 외스터라이히(Innere Österreich)로 그룹 짓기도 했다.

- 티롤 카운티(트렌트와 브릭센이 1803년 이전에 훗날 남부 티롤이라고 부르게 된 지역을 주관하였다)

- 포아아를버그(Vorarlberg: 19세기 이전에는 여러 지방들의 집합체였다. 19세기에 들어와서 하나의 주로 통합되었다.)

- 포알란데(Vorlande): 브라이스가우(Breisgau) 일대의 지역과 독일 남서부 일대의 일부지역을 통합하여 포알란데라고 불렀다. 독일 남서부 일대는 1801년에 독일에 돌려주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 속하여 있었던 알자스 일대는 일찍이 1648년에 독일의 소유가 되었다. 그후 알자스 일대는 독불전쟁으로 인하여 여러번 소속이 바뀌기도 했다.

   * 포아아를버그와 포알란데는 간혹 둘을 합하여서 '원지 오스트리아'(Further Austria)라고 부르기도 했다. 원지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 중앙정부가 티롤와 공동으로 통치하였다.

- 잘츠부르크 대공국(1805년 이후부터 해당)

 

도나우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부다페스트의 의사당건물

 

보헤미아 영토(Lands of the Bohemian Crown): 초기에는 다섯 지역으로 구성되었었다. 보헤미아 왕국, 모라비아 변경지역, 실레지아, 상하 루사티아(Lusatia)였다. 보헤미아 의회(쳄스키 스넴)는 1526년에 이들 모든 지역의 왕으로서 페르디난트 1세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선출했다.

- 루사티아는 1635년에 작소니에 이양되었다.

- 실레지아의 대부분 영토는 프러시아가 1740-42년에 정복했다. 실레지아의 나머지 부분은 합스부르크가 오스트리아 실레지아로서 통치하였다. 이를 상하부 실레지아 공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헝가리 왕국: 합스부르크가 헝가리를 지배하에 두었다고는 하지만 실은 옛 헝가리 왕국의 서쪽과 북쪽 지역 일부를 지배했을 뿐이었다. 옛 헝가리 왕국의 대부분 영토는 오토만 제국와 오토만이 지배하는 트란실바니아의 총독이 정복하여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699년 오토만과 합스부르크의 전쟁의 결과로 중세로부터 헝가리 왕국의 영토였던 일부가 합스부르크의 소관으로 넘어 왔다. 헝가리의 다른 지역들이 합스부르크의 우산아래에 들어오게 된 것은 1718년이었다.


오스트리아 제국, 그리고 후에는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의 황제로서 68년을 통치한 프란츠 요제프 1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영토는 간혹 시대의 변천과 함께 합스부르크의 다른 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통치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지역이었다. 국경선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 크로아티아 왕국(1527-1868) - 헝가리와의 아우스글라이히(대타협) 이후

- 슬라보니아 왕국(1699-1868) - 헝가리와의 아우스글라이히(대타협) 이후

- 트란실바니아 대공국(1699와 1867 사이. 칼로비츠 조약에 따름)

- 오스트리아령 네덜랜드. 현재의 벨기에 대부분과 룩셈부르크를 포함(1713-1792)

- 밀라노 공국(1713-1797) - 샤를르 6세 시절

- 나폴리 공국(1713-1735)

- 사르디니아 공국(1713-1720)

- 세르비아 왕국(1718-1739)

- 테메스바르 바나트(Temeswarer Banat: Banat of Temeswar). 루마니아에 있었던 지역. 1718-1778년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지배 하에 있었다.

- 올테니아(Oltenia). 루마니아에 있었던 지역. 1718-1739년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당시의 명칭은 Grand-Voivodate 였다.

- 시실리 왕국(1720-1735)

- 파르마 공국(1735-1748)

- 갈리치아 및 로도메리아 왕국(1772-1918). 현재의 폴란드 및 우크라이나에 있었던 왕국

- 부코비나 공국(1774-1918)

- 뉴 갈리치아. 크라코브를 포함한 폴랜드의 영토 일부, 1795-1918년의 제3차 분할 때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영토가 되었다.

- 베니스(1797-1805)

- 달마티아 왕국(1797-1805, 1814-1918)

- 롬바르디-베니스 왕국(1814-1859)

- 크라코브(Krakow: 1846-1918). 나중에 갈리치아에 편입되었음.

- 세르비아의 보이보디나(Vojvodina: 1848-1849).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았음.

-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1868-1918)

- 보스니아 및 헤르체고비나(1878-1918)

- 세르비아 및 테메스바르의 바나트(폴란드: 보이보데쉽 파견: 1849-1860)

- 노비 파차르(Novi Pazar) 점령지(1878-1913)

 

트리에스테의 엘리자베트(씨씨) 기념상. 합스부르크는 아드리아해의 항구인 트리에스테를 장악하고 상당기간 지배했다.

                

합스부르크 왕조와는 거리가 먼 합스부르크 영토들

합스부르크 왕조의 영토라고 해서 반드시 정통 합스부르크만이 통치하는 영토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다른 지파들이 통치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니어인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사람들은 스페인과 다른 여러 영토들을 1516년부터 1700년까지 통치했다. 주니어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1765년부터 1801년까지, 그리고 1814년부터 1859년까지 이탈리아반도의 투스카니 지방을 지배했다. 이들이 투스카니에서 추방당하자 잘츠부르크에 와서 1803년부터 1805년까지 2년 동안 잘츠부르크를 지배한 일도 있다. 이들은 이어 뷔르츠부르크로 가서 1805년부터 1814년까지 통치했다. 또 다른 주니어 라인은 1803년부터 1805년까지 포알란데(Vorlande)를 통치했고 이어 이탈리아 북부의 모데나(Modena)를 1814년부터 1859년까지 통치했다. 한편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서 나폴레옹의 두번째 부인이 된 마리 루이제 황비는 1814년부터 1847년까지 파르마공국의 군주로 행세했다. 프란시스 2세 황제의 딸인 마리 루이제는 주로 비엔나에서 생활했다. 또한 프란츠 요셉 1세 황제의 동생인 막시밀리안은 1863년부터 1867년까지 4년동안 멕시코의 황제였다. 이시기를 제2 멕시코제국이라고 부른다. 막시밀리안 멕시코 황제는 멕시코의 혁명군에 의해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막시밀리안 멕시코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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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출신의 오스트리아 통치자들: 1526-1918

 

●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라인

 

- 페르디난트 1세(1526-1564):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인 필립과 스페인의 후안나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 장남인 샤를르는 샤를르 5세 황제로서 1519-1558년간 합스부르크 군주였다. 샤를르 5세는 포르투갈의 이사벨라 공주와 결혼하여 아들 필립 2세를 두었다. 그러므로 샤를르 5세와 필립 2세로부터 스페인 합스부르크 라인이 시작되었다.

- 막시밀리안 2세(1564-1576): 페르디난트 1세와 보헤미아-헝가리의 안나 공주와 결혼하여 태어난 장남으로 삼촌인 샤를르 5세의 딸 마리아와 결혼하였다.

- 루돌프 2세(1576-1612): 아버지는 막시밀리안 2세이며 어머니는 샤를르 5세의 딸인 마리아이다.

- 마티아스(1612-1619): 형인 루돌프 2세가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나자 형의 위를 이어 합스부르크의 군주가 되었다.

- 페르디난트 2세(1619-1637): 아버지 루돌프 2세와 어머니 티롤의 안나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바바리아의 마리아 안나와 결혼하였다.

- 페르디난트 3세(1637-1657): 페르디난트 2세의 아들로서 고모인 마르가레트와 스페인의 필립 3세 사이에서 태어난 마리아와 결혼하였다.

- 레오폴드 1세(1657-1705): 아버지는 페르디난트 2세이며 어머니는 스페인의 마리아이다.

- 요셉 1세(1705-1711): 레오폴드 1세와 노이부르크의 엘에아노라 공주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브룬스비크의 빌헬미나 공주와 결혼하였으나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나자 동생인 샤를르 6세가 왕위를 이어 받았다. 샤를르 6세는 브룬스비크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나 공주와 결혼하여 아들은 없고 딸만 둘을 두었다. 큰 딸이 마리아 테레지아이다.

- 샤를르 6세(칼 6세)(1711-1740): 딸 마리아 테레지아를 다음 황제로 삼고자 했으나 반대가 심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만 로레인(로트링거)의 프란시스 스테판을 사위로 삼아서 그에게 황제의 자리를 넘겨 주었다. 로레인의 프란시스는 명목상의 황제였으며 모든 정사는 황비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주관하였다.

- 마리아 테레지아(1740-1780): 열여섯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큰 아들이 요셉 2세가 되었으며 둘째 아들이 레오폴드 2세가 되었다. 열다섯번째 자녀인 마리 안토니아는 프랑스의 왕세자와 결혼하여 나중에 마리 앙뚜아네트로서 루이 16세의 왕비가 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남편 프란시스 1세와 자녀들 마리아 테레지아는 부군 프란시스 1세를 대신하여 제국을 통치하였으며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요셉 2세 황제와 함께 정사를 돌보았다. 가운데 키큰 남자가 나중에 요셉 2세가 된 사람, 오른쪽 끝의 남자가 나중에 레오폴드 2세 황제가 된 사람이다.

 

● 합스부르크-로레인 라인

 

- 요셉 2세(1780-1790): '위대한 개혁자'라는 별명

- 레오폴드 2세(1790-1792): 1765-1790까지 투스카니 대공

- 프란시스 2세(1792-1835):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는 프란시스(프란츠) 2세,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로서는 프란시스 1세(프란츠 1세). 1804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있으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하여 오스트리아제국의 첫 황제로 즉위. 1806년 장구한 역사의 신성로마제국 종지부.

- 페르디난트 1세(1835-1848): '선한 페르디난트'(Ferdinander der Gütige)라는 별명

- 프란시스 요셉 1세(1848-1916)(프란츠 요제프 1세):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랜기간동안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68년 동안이었다. 동생 막시밀리안은 멕시코 황제로서 1864-1867년간 제2 멕시코제국를 통치했다. 바바리아의 엘리자베트(씨씨)와 결혼하여 1남 3녀를 두었다. 유일한 아들인 루돌프는 황태자였지만 자살하였다. 그래서 동생의 아들인 페르디난트를 다음 황위 계승자로 지정하였으나 사라예보에서 피살되어 결과적으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 샤를르 1세(칼 1세)(1916-1918):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의 손자가 된다. 1918년에 공화국이 들어서는 바람에 추방되어 대서양의 마데이라 섬에서 1922년에 세상을 떠났다.

- 오토(합스부르크-로레인의 오토, 또는 오스트리아의 오토)(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칼 1세(샤를르 1세)의 대관식. 치타 황비와 오토 황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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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출신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된 사람들은 16명에 이른다. 가장 처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합스부르크 출신은 14세기 루돌프 1세의 아들인 알브레헤트 1세(알버트 1세)이다. 1298년부터 1308년까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있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으로 가장 마지막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사람은 프란시스 2세이다. 그는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를 칭하고 대관식을 갖자 '황제는 무슨 황제'냐면서 그 스스로도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하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첫 황제가 되었다.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막을 닫은 것은 프란시스 2세가 황제 시절인 1806년이었다.

 

○ 오스트리아 대공(Archduke of Austria)으로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선출된 사람들

- 프레데릭 3세(1440-1493)

- 막시밀리안 1세(1508-1519)

- 샤를르 5세(1519-1556)

 

○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지파가 생기고 나서 오스트리아 대공으로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선출된 사람들

- 페르디난트 1세(1556-1564)

- 막시밀리안 2세(1564-1576)

- 루돌프 2세(1576-1612)

- 마티아스(1612-1619)

- 페르디난트 2세(1619-1637)

- 페르디난트 3세(1637-1657)

- 레오폴드 1세(1658-1705)

- 요제프 1세(1705-1711)

- 샤를르 6세(1711-1740).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 샤를르 6세 사후 5년 동안 신성로마제국 황제 공위.

 

○ 합스부르크-로레인 왕가 출신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선출된 사람들

- 프란시스 1세(1745-1765):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16 자녀를 두었다. 15번째가 마리 앙뚜아네트.

- 요세프 2세(1765-1790): 마리아 테레지아의 큰 아들.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났다.

- 레오폴드 2세(1790-1792): 마리아 테레지아의 둘째 아들.

- 프란시스 2세(1792-1806).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로서는 프란시스 1세. 1806년 신성로마제국의 대단원을 장식.

 

그림과 같은 중세부터의 고도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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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배출한 유럽의 왕가들- 연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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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 800-888.

   * 샤를르 1세(샬레마뉴): 신성로마제국의 창시자. 첫 황제

- 귀데스키 왕조(Guideschi dynasty): 891-898

-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 896-899

- 보소니드 왕조(Bosonid dynasty): 901-905

- 운루오힝 왕조(Unruoching dynasty): 915-924 (924이후 962까지 공위)

- 오토 왕조(Ottonian (Saxon) dynasty): 962-1024

- 잘리아 왕조(Salian (Frankish) dynasty): 1024-1125

- 주플링부르크 왕조(Supplinburg dynasty): 1125-1137

- 슈타우펜 왕조(Staufen (또는 Hohenstaufen) dynasty): 1152-1197

- 벨프 왕주(Welf dynasty): 1198-1215

- 슈타우펜 왕조(Staufen (또는 Hohenstaufen) dynasty): 1196-1250 (1215 재선출)

- 룩셈부르 가문(House of Luxembourg): 1308-1313

- 뷔텔스바흐 가문(House of Wittelsbach): 1314-1347

- 룩셈부르 가문(House of Luxembourg): 1346-1437 (1349 재선출)

- 합스부르크 가문(House of Habsburg): 1440-1740. 합스부르크 가문의 첫 황제는 프레데릭 3세

- 뷔텔스바흐 가문(House of Wittelsbach): 1742-1745

- 합스부르크-로레인(로트링거)가문(House of Habsburg-Lorraine): 1745-1806

 

   * 합스부르크-로레인 가문 출신으로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프란시스 2세이다. 그러므로 합스부르크 가문은 361년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재임하였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황비가 헝가리와의 대타협(아우스글라이히) 이후 헝가리 국왕 및 왕비로서 가진 대관식. 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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