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 왕조

합스부르크 제국 총점검

정준극 2016. 6. 18. 09:09

합스부르크 제국 총점검

Habsburg Monarchy - Habsburg Empire - House of Habsburg - House of Austria


서양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합스부르크라는 단어를 자주 접했을 것이다. 중세 이후 유럽의역사에서 합스부르크 가문'(House of Habsburg), '합스부르크 왕조'(Habsburg Dynasty), '합스부르크 제국'(Habsburg Empire), '합스부르크 군주국'(Habsburg Monarchy)이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나오지만 사실 이 말은 공식적인 용어가 아니다. 역사학자들이 편의상 부르는 호칭일 뿐이다. 공식적으로 말한다면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지파가 통치하던 국가 또는 지역'이라고 해야 올바르다.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 지파(branch)는 주니어 합스부르크 가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니어 합스부르크 가문이 있으면 시니어 합스부르크 가문도 있게 마련이다. 시니어 합스부르크는 스페인을 통치했던 합스부르크의 지파를 말한다. 합스부르크가 시니어와 주니어 지파로 나뉘어 진 것은 16세기에 스페인의 카를로스(샤를르) 5세 치하에서부터였다. 카를로스 5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이 필립 2세이고 그 다음이 사생아 아들인 후안이었다. 후안은 나중에 오스트리아를 통치하게 되어서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Juan de Austria)라고 불리게 된 사람이다. 어쨋든 큰 아들이 통치하게 된 스페인 일대를 시니어 합스부르크라고 부르게 되었고 작은 아들격인 후안이 통치하게 된 오스트리아 일대를 주니어 합스부르크라고 부르게 되었다. 


  

(왼쪽부터) 카를로스 5세(샤를르 5세: 1661-1700). 스페인을 통치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국왕.

필립 2세(펠리피 2세: 1556-1598). 카를로스 5세의 적자. 필립 1세로스 포르투갈 국왕 겸직. 메리 1세의 배우자로서 영국 공동 국왕.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스'의 주인공인 돈 카를로스의 아버지.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Ritter Johann von Österreich: 1547-1578). 카를로스 5세의 사생아. 주니어 합스부르크 왕가의 시작.


그런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이 계속 배출되었기 때문에 말하기 좋아하는 역사학자들은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주니어 합스부르크를 합스부르크 제국, 또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합스부르크 가문을 오스트리아 가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시니어와 주니어 합스부르크 얘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스페인의 시니어 지파는 1700년 카를로스 2세가 세상을 떠남으로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고 이와 함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합스부르크 시니어 지파는 부르봉 왕가로 대체되었다. 한편, 오스트리아의 주니어 지파는 1740년 샤를르 6세(칼 6세)가 아들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남으로서 사실상 남계 세습이 소멸되었다. 혹자는 오스트리아의 주니어 라인은 1780년 샤를르 6세의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여제의 서거로 완전 소멸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주니어 라인은 로레인(로트링) 가문의 보드몽(Vaudemont) 지파가 승계하여 새로운 합스부르크-로레인(Habsburg-Lorraine: Habsburg-Lothringen) 가문이 시작되었다. 사족이지만, Habsburg는 영어로는 햅스버그라고 발음하지만 독일어로는 합스부르크라고 발음한다는 말도 곁들이고 싶다. 


  

(왼쪽부터) 샤를르 6세(칼 6세: 1685-1740). 신성로마제국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 주니어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 샤를르 6세의 큰 딸. 독일 로트링겐 왕가의 프란츠와 결혼. 요셉 2세와 레오폴드 2세의 어머니.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뚜아네트의 어머니.

프란츠 1세(1708-1765). 신성로마제국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 합스부르크-로트링겐(합스부르크-로레인) 왕가의 시작. 요셉 2세와 레오폴드 2세의 아버지.

                                              

합스부르크 가문(또는 합스부르크 제국, 또는 합스부르크 왕조)은 시니어와 주니어로 갈라지기 전부터 역사상 유럽의 왕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강했던 가문이었다. 얼마나 영향력이 막강했나? 우선 1438년부터 1740년까지 3백여 년동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출신들이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이어 합스부르크 가문은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 트란실바니아 왕국, 멕시코 제2제국 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고 영국 왕국, 프랑스 왕국, 독일 왕국, 헝가리 왕국, 러시아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 아일랜드 왕국, 포르투갈 왕국, 스페인 왕국, 그리고 몇개에 이르는 더치 공국과 이탈리아 내의 공국들과는 간접적인 연관이 있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오스트리아 지파와 스페인 지파로 나뉘게 되었다. 하지만 비록 시니어와 주니어로 구분되어서 서로가 관할하는 영토가 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실간의 결혼 등으로 계속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럽의 왕실 사람들은 합스부르크라는 매개체 때문에 한치 건너 두치가 최소한 서로 사촌간이었다. 그러면 합스부르크라는 단어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1020년대에 라드보트(Radbot) 백작이라는 사람이 지금의 스위스 아르가우(Aargau) 주에 요새 겸 성을 건축하고 그 요새의 이름을 합스부르크라고 지었는데 그것이 합스부르크라는 단어의 기원이다. 그것도 다름 아니라 하루는 성위에 독수리인지 매인지가 한마리 의연하게 앉아 있었는데 스위스 방언으로 독수리를 합스라고 하므로 그래서 성의 이름을 합스부르크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이라는 용어는 공식적으로 라드보트 백작의 손자가 되는 오토 2세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오토 2세는 스스로를 '합스부르크 백작'이라고 칭하였고 그때부터 합스부르크 가문 또는 합스부르크 왕조라는 표현이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라드보트 백작이 합스부르크 요새 겸 성을 건축할 당시에 그 지역은 슈봐비아(Swabia) 공국에 속한 영토였다. 그리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왕조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11세기를 거쳐서 13세기에 이르렀던 때였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문을 연 라드보트 백작. 스위스 무리 수도원의 조각. 오른편은 합스부르크라는 호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오토 2세(-1111). 


라드보트 백작의 후손들은 계속 합스부르크 성에 살고 있었는데 1273년에 라드보트 백작의 7대손인 루돌프가 독일왕으로 선출되는 대단한 일이 있었다. 3년 후인 1276년에는 루돌프가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는 군주가 되는 경사가 있었다. 이에 루돌프는 식솔들을 이끌고 합스부르크 성을 떠나서 오스트리아 공국에 와서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전에는 바벤버그가 비엔나에 본부를 두게 되었는데 루돌프 이후로는 합스부르크가 비엔나에 본거지를 두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1918년 1차 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공화국으로 변신할 때까지 640여년간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의 센터였다. 전반적으로 보아서 합스부르크 군주들의 주요 역할은 다음과 같다. 특히 합스부르크의 수장들은 선거에 의해서 많은 경우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선출되었다. 그것은 1806년 프란츠(프란시스) 2세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신성로마제국을 해산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프란츠 2세는 나폴레옹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1804년에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선포하고 프란츠 1세로서 초대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2년 후인 1806년에 마침내 신성로마제국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합스부르크 사람들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고 해도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모든 영토를 합스부르크의 관할 아래에 둔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는 합스부르크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영토들도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합스부르크 영토라고 해도 모두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이라고 하면 카를로스 5세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관할하던 스페인 제국도 포함하여 말하는 것이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는 비엔나였으나 1583-1611년에는 프라하가 제국의 수도였다. 합스부르크 군주들의 주요 역할은 다음과 같다.


- 신성로마제국 황제(1273-1806). 독일왕, 로마왕이라는 칭호도 겸용

- 오스트리아 군주(1278-1453 오스트리아 변경백, 공작: 1453-1806 오스트리아 대공: 1804-1918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 1867년부터는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대타협의 협정으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군주가 헝가리 왕을 겸하였다. 

- 보헤미아 왕(1306-1307, 1437-1439, 1453-1457, 1526-1918)

- 헝가리-크로아티아 왕(1520-1918). 신성로마제국 샤를르 5세의 동생인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대공은 헝가리-보헤미아의 왕 루이 2세가 터키와의 모하치 전투에서 전사하자 그를 계승하여 헝가리-보헤미아 왕으로 선출되었다. 

- 스페인 왕(1516-1700)

- 포르투갈 왕(1581-1646)

-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1772-1918)

- 트란실바니아 대공(1690-1867)


이상의 것은 주요 역할이며 사실상 합스부르크 인물들이 가졌었던 호칭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 멕시코 제국 황제, 로마 왕, 독일 왕, 이탈리아 왕, 스페인 왕, 시칠리아 왕, 나폴리 왕, 헝가리 왕, 보헤미아 왕, 크로아티아 왕, 포르투갈 왕,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 영국 왕, 아일랜드 왕, 프랑스 왕, 트란실바니아 대공, 오스트리아 대공, 부르군디 공작, 파르마 공작, 합스부르크 백작


그러면 합스부르크 가문(왕가)가 통치하던 영토들은 어떤 형태로 불렸는가? 대표적인 큰 영토와 소규모 영토들로 구분할수 있다. 그나저나 이들 영토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부침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명칭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는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에 역사의 무대에서 막을 내렸다.


- 합스부르크 군주국(Habsburg monarchy) 또는 오스트리아 군주국(Austrian monarchy): 이 명칭은 실은 비공식 명칭이다. 하지만 대단히 자주 사용된 명칭이다. 그리고 오늘날 뿐만 아니라 당시에도 합스부르크 군주국 또는 오스트리아 군주국이라는 명칭이 스스럼 없이 사용되었다. 이런 명칭으로 불려진 기간은  합스부르크가 헝가리 왕국을 통치하기 시작한 1526년부터 1867년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왕국이 대타협의 협정을 통하여 통합을 이룬 때까지이다. 그런데 '합스부르크 군주국'이라고 불리는 기간을 1276년부터 1918년 합스부르크-헝가리 제국이 막을 내린 때까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떤 학자들은 1156년부터 1867년 헝가리와 대타협을 이룬 때까지를 '오스트리아 군주국'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다지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 오스트리아 제국(Austrian Empire): 1804년,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프란시스(프란츠) 2세가 유럽의 정세를 살펴 볼때 신성로마제국의 운명도 다 한 것 같아서 우선조치로서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선포한 때부터 1867년 헝가리와 대타협을 통해서 새로운 체제의 2원화된 제국을 운영할 때까지를 말하는 명칭이다. 제국이라는 것은 황제가 통치하는 영토를 말한다. 그냥 넓은 의미에서의 퍼져있는 영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독일어로 Kaisertum Österreich라고 한다. 그러므로 오스트리아 제국이라고 하면 황제가 통치하는 오스트리아에 한정된 영토를 의미하며 기타 오스트리아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오스트리아 이외 지역의 영토는 일반적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Austria-Hungary Empire) 또는 오스트로-헝가리 제국(Austro-Hungarian Empire): 1867년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왕국이 대타협의 협정(Ausgleich)를 통해서 2원 1체의 체제를 유지하게 된 시기의 명칭이다. 이 명칭은 공식적인 것이며 비공식적으로는 '도나우 군주국'(Donaumonarchie: Danubian Monarchy) 또는 '2중 군주국'(Doppel-Monarchie: Double Monarchy)라고 불렀다. 한 사람의 군주 아래에 두 나가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 크라운랜드(Kronländer: Crownlands): 크론랜더(크라운 랜드)는 원래 왕실 소유의 영지를 말하지만 이 경우에는 1849년 이래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한 모든 영토를 통합해서 부르는 명칭이었다. 이어 1867년 헝가리와 대타협을 통해 통합되었을 때에도 오스트리아-헝가리를 크론랜더라고 불렀다. 대타협으로 통합이 되고 나서 사람들은 헝가리를 일반적으로 헝가리 왕국이라고 불렀지만 오스트리아 측으로서는 그렇다고 헝가리 왕국을 크론랜더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별개의 나라이지만 하나의 군주 아래에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었다. 법적으로 본다면 크론랜더라는 것은 제국의회에 대표하는 각 왕국과 영토를 의미했다. 독일어로 표현하면 Die im Reichstrate vertretenen Königreiche und Länder 이다. 한편, 대타협으로 통합을 이룬 이후에도 헝가리 측은 헝가리 왕국을 Länder der Heiligen Stephans Krone(Lands of the Holy Hungarian Crown of Saint Stephen)이라고 불렀다. 보헤미아는 Länder der Wenzels-Krone(Lands of the St Welnceslaus Crown)이라고 불렀다. 고집들도 엔간히 셌다.


그러면 비교적 작은 영토들은 어떤 명칭으로 불려졌는가? '오스트리아 영토'(Austrian Lands)와 '세습 영토'(Hereditary Lands)라고 분류해서 불렀다. 무슨 내용인가?


- 오스트리아 영토(Österreichische Länder: Austrian Lands): '오스트리아 대공국'(Erzherzogtümer von Österreich: Archduchies of Austria)라고도 한다. 지리적으로 보면 엔스(Enns)강 상부와 하부의 영토를 모두 포함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996년부터 1918년까지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스트리아 대공국(Archduchy of Austria)을 말하며 1918년 11월 12일 오스트리아 공화국으로 발족하여 소유한 영토와 거의 같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오스트리아는 9개 주로 구성되어 있는 영토를 말한다. 비엔나도 하나의 주이며 니더 외스터라이히, 오베레 외스터라이히, 잘츠부르크, 티롤, 슈티리아, 카린티아, 포아아를버그, 부르겐란트가 아홉개의 주이다. 그러므로 오스트리아 영토라는 것은 실은 연방주(Bundesländer)의 통합영토를 말한다. 부르겐란트는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1921년 헝가리로부터 오스트리아로 이관되었다. 잘츠부르크는 대주교가 통치하는 별도의 영토였지만 나폴레옹 전쟁 후인 1816년 오스트리아에 귀속되었다. 비엔나는 1922년 1월 1일에 오스트리아의 주가 되었다. 오스트리아가 제국 시절에 비엔나는 제국수도(Reichshaupt) 및 비엔나 황도(Residenzstadt Wien)라고 불렀다. 수백년 동안 합스부르크 군주들의 거처였기 때문이었다. 니더 외스터라이히와 오베레 외스터라이히는 지역을 역사적으로 엔스 강의 북쪽과 아랫쪽으로 분리한 것이 그대로 명칭이 되었다. 그런데 오베레 외스터라이히는 1779년 바바리아 왕위계승 전쟁의 후속조치르 맺어진 '테센 조약'(Treaty of Teschen)에 따라 과거 바바리아에 속했던 인휘어르텔(Innviertel) 지역을 인수하여 영토가 확장되었다. 

- 세습영토(Erblande 또는 Erbländer: Hereditary Lands): 일반적으로는 오스트리아 세습영토(Österreichische Erblande)라고 부르는 명칭이다. 이렇게 부르는 기간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중세로부터 1849년까지이며 다른 하나는 중세로부터 1918년까지이다. 1849년을 기한으로 삼은 것은 이른바 개혁헌법(1849 March Constitution)이 발효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쨋거나 세습영토라고 불리는 지역이 합스부르크의 오리지널 영토이다. 즉, 오늘날의 오스트리아와 카르니올라(Carniola)를 말한다. 갈리치아, 이탈리아에 있는 영토, 네덜란드에 있는 영토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헤미아는 세습영토에 포함된다. 보헤미아를 오스트리아의 세습영토로 간주하는 것은 1526년부터이다. 오스트리아의 군주가 보헤미아의 왕을 겸하였던 시기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보헤미아의 통치권을 갖게 된 것이 1620년부터이므로 그때부터라고 간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세습영토라는 용어는 공국이나 독립적인 주권을 가진 여러 작은 영지까지도 포함한다. 이러한 작은 영토를 통치하는 경우에는 대체로 백작(Graf)라는 호칭을 갖는다. 예를 들면 Graf von Tyrol(티롤 백작)이다. 


그러면 과연 합스부르크(주니어 합스부르크)가 통치한 영토는 어디어디인가? 물론 여러 번의 변동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스부르크의 통치 영토는 크게 다음 네 곳으로 대표된다.


- 합스부르크 세습 영토: 현재의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의 대부분 지역이 합스부르크의 세습 영토였다. 이탈리아 동북지방의 영토도 세습영토였다. 독일 남서부 지역은 1797년 이전에는 합스부르크의 세습 영토였다. 여기에 1779년에 바바리아의 인휘어트텔(Innviertel)이 추가되었고 1803년에는 트렌트(Trent)와 브릭센(Brixen) 주교령(Bishoprics)이 합스부르크 세습 영토로 포함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으로 대혼란이 있는 중에 합스부르크는 여러 세습 영토를 잃어야 했다. 잘츠부르크 대주교령은 1805년과 1809년에 임시로 오스트리아에 소속된 일이 있으나 영구히 소속된 것은 1815년 이후였다. 하지만 포아란데(Vorlande)는 예외였다. 자, 그러면 합스부르크의 세습 영토는 어디어디인가? 

 * 오스트리아 대공국(Archduchy of Austria: Erzherzogtum Osterreich: Oberösterreich)

 * 오스트리아 대공국(Archduchy of Austria: Erzherzogtum Osterreich: Niederösterreich)

 * 슈티리아 공국(Duchy of Styria: Horzogtum Steiermark)

 * 카린티아 공국(Duchy of Carinthia: Herzogtum Karnten)

 * 카르니올라 공국(Duchy of Carniola: Herzogtum Krain)

 * 아드리아해의 항구 트리에스테(Trieste)

 * 이스트리아(Istria). 그러나 실제로 이스트리아의 대부분은 1797년까지 베니스 공국의 영토였다)

 * 고리치아(Gorizia)와 그라디스카(Gradisca): 슈티리아, 카린티아, 카르니올라, 트리에스테, 이스트리아, 고리치아와 그라디스카는 통상 인너 오스트리아(Inner Austria: Innerösterreich)로 묶는다)

 * 티롤 군(County of Tyrol: Grafschaft Tirol). 트렌트와 브릭센 주교령은 이미 1803년 이전에 남부 티롤이 되었다.

 * 포아아를버그(Vorarlberg). 실제로는 여러 지방의 집합체였다가 19세기에 들어와서 연합되어 포아라를버그로 구성되었다. 

 * 포아란데(Vorlande). 브라이스가우(Breisgau)와 남서부 독일의 이곳저곳에 있는 영지들이 집합체을 말한다. 그런데 남서부 독일 지역은 1801년에 독일에게 넘어갔다. 알자스 지역도 포아란데에 속했었으나 일찍이 1648년에 오스트리아 세습지역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 포아아를버그와 포아란데는 대체로 퍼더 오스트리아(Further Austria)와 함께 분류한다. 그리고 대체로 티롤과 공동으로 통치되었다. 

 

- 잘츠부르크 대공국(Grand Duchy of Salzburg). 1805년 이후.


- 보헤미아(Lander der Böhmischen Krone). 기본적으로 다섯 영토로 구성된다. 보헤미아 왕국(Kingdom of Bohemia), 모라비아 변경지(March of Moravia: Markgrafschaft Mahren), 실레지아(Silesia), 오베레 및 니더 루자티아(Obere und Nieder Lusatia)이다. 합스부르크가 보헤미아를 영토로 삼게 된 것은 1526년 보헤미아 의회(Bohemian Diet: zemsky snem)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페르디난트 1세를 국왕으로 선출해서부터이다. 

 * 루자티아는 1635년에 작소니에게 양도되었다.

 * 실레지아의 대부분 영토는 1740-42년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의 여파로 프러시아가 정복했다. 일부 나머지 영토는 합스부르크가 오스트리아 오베르-니더 실레지아 대공국(Herzogtum Ober- und Niederschlesien)이라는 명칭으로 통치했다. 


- 헝가리 왕국(Kingdom of Hungary: Königreich Ungarn). 헝가리 왕국은 중세로부터 오토만 제국의 침공을 받아 3분의 2 이상이 터키의 지배를 받았으며 일부 지역은 트란실바니아의 오토만 총독이 통치했다. 합스부르크의 세력은 명목상으로 과거 헝가리 왕국의 서쪽 일부와 북쪽 일부 지역에만 국한하였다. 헝가리는 오토만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이 지역을 헝가리 왕국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오토만-합스부르크 전쟁의 결과로 과거 중세 헝가리 왕국이 관장하던 지역의 일부가 정식으로 합스부르크의 통치 아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조차 과거 헝가리 왕국 영토의 상당부분, 즉 사바(Sava)와 도나우 강 남부의 지역들은 오토만이 계속 지배하였다. 이상이 합스부르크 왕가가 통치했던 세습 영토이다. 그러나 실은 이밖에도 합스부르크가 통치한 국가와 지역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런데 기타 국가와 지역들 중에서는 순수 주니어 합스부르크가 통치하지 않고 합스부르크의 다른 지파가 통치한 경우도 많이 있다. 아무튼 합스부르크가 통치한 기타 국가들과 지역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통치했던 기간을 말한다. 합스부르크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맡은 것은 1438-1740년과 1745-1806년이다.


- 크로아티아 왕국(Kingdom of Croatia: 1527-1868). 합스부르크의 페르디난트 1세가 오스트리아를 통치하기 시작한 이듬해 부터 크로아티아 왕국이라는 명칭아래 합스부르크의 지배를 받았다. 

- 슬라보니아 왕국(Kingdom of Slavonia: 1699-1868). 레오폴드 1세가 통치하던 시기에 슬라보니아 왕국도 지배하였다. 오늘날 크로아티아 북부와 세르비아의 일부가 이에 속하였다.

- 트란실바니아 대공국(Grand Principality of Transylvania: 1699 칼로비츠 조약과 1867 헝가리와의 대타협 사이)

- 오스트리아 네덜란드(Austrian Netherlands: 1713-1792). 현재의 벨기에와 룩셈부르그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샤를르 6세 치하에서였다. 

- 밀라노 공국(Duchy of Milan: 1713-1797). 역시 샤를르 6세의 치하에서였다. 

- 나폴리 왕국(Kingdom of Naples: 1713-1735). 샤를르 6세의 치하에서였다.

- 사르디니아 왕국(Kingdom of Sardinia: 1713-1720). 사르디니아 섬과 이탈리아 북부, 지중해에 면한 지역이 포함되는 왕국이었다. 역시 샤를르 6세의 치하에서였다.

- 세르비아 왕국(Kingdom of Serbia: 1718-1739). 샤를르 6세의 치하에서였다. 

- 테메스바르 바나트(Banat of Temeswar: 1718-1778). 현재는 헝가리에 흡수되어 있다. 바나트는 행정조직의 단위. 주 또는 성과 같은 규모이다.

- 올테니아(Oltenia: 1718-1739). 실제로는 1737년. 현재의 루마니아 지역으로 서부 발라키아 지역이었다.

- 시실리 왕국(Kingdom of Sicily: 1720-1735). 샤를르 6세 치하에서였다. 

- 파르마 공국(Duchy of Parma: 1735-1748). 샤를르 6세 치하에서였다.

- 갈리치아 - 로도메리아 왕국(Kingdom of Galicia and Lodomeria: 1772-1918에는 오늘날의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 걸쳐 있었던 왕국, 1774-1918에는 부코비나 공국). 샤를르 6세 치하에서였다. 

- 뉴 갈리치아(New Galacia: 1795-1809). 폴란드 영토. 크라코브 포함. 3차 분리에 의함. 1797-1805에는 베니스. 프란츠 1세 오스트리아 황제 치하에서였다. 

- 베네치아(Venetia: 1797-1805)

- 달마티아 왕국(Kingdom of Dalmatia: 1797-1805, 1814-1918). 프란츠 1세 치하에서였다. 

- 롬바르디-베네티아 왕국(Kingdom of Lombardy-Venetia: 1814-1859). 프란츠 1세 치하에서였다.

- 크라코브(Kratow: 1846-1918). 갈리치아에 합병되었음. 페르디난트 1세 치하에서였다.

- 세르비아 보이도디나(Serbian Vojvodina: 1848-1849), 공식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함

- 세르비아 비오도데쉽 및 테메슈바르 바나트(Voivodeship of Serbia and Banat of Temeschwar: 1849-1860)

-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Kingdom of Croatia-Slavonia: 1868-1918). 프란츠 요셉 1세 치하에서였다.

- 노비 파차르의 사냐크(Sanjak of Novi Pazar: 1878-1913). 점령지역. 프란츠 요셉 1세 치하에서였다. 현재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코소보에 걸쳐 있는 지역. 라스카 및 산드자크 지역이다.

-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1878-1918). 역시 프란츠 요셉 1세 치하에서였다.


합스부르크는 이처럼 수많은 지역들을 영토로 삼았지만 단 한번도 통일된 제국을 이룩하지는 못했다. 또한 행정에 있어서도 중앙집권을 여러번 시도했으니 성공하지 못했다. 언어와 관습의 통일은 생각치도 못한 것이었다. 각 지역은 그 지역의 특성에 따라 통치되었으며 되도록이면 자주권을 주었다. 중앙집권적 행정을 시도했던 것은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의 중점사업이었으나 성과는 미흡했다. 그후 요셉 2세가 계몽주의 사상과 함께 중앙집권을 추진하였으나 여러 개혁정책에 반발하는 상황이어서 역시 성과는 미흡하였다. 아마 가장 중앙집권적인 행정이 활발했던 것은 메테르니히 재상이 집권하고 있던 시기가 아닐까 본다. 그러다가 1848년 혁명이 진압된 이후에 프란츠 요셉 황제에 의해 중앙집권적 행정이 또 다시 시도되었고 이번에는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비엔나는 헝가리를 더 이상 왕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행정조직을 주 단위로 구분하여 오로지 비엔나가 중심이 되도록 했다. 그러나 물론 헝가리로부터의 반발이 심했고 합스부르크로부터 독립하려는 운동이 거세었다. 마침내 비엔나는 1867년에 헝가리를 왕국으로 인정하는 대타협(아우스글라이히)을 이루어서 1군주 2정부라는 특이한 형태로서 겨우 제국을 유지할수 있었다. 그리하여 헝가리 왕국은 별도의 의회를 가지고 독립적인 주권국의 모양을 갖추었으나 외교와 군사에 있어서는 비엔나가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오스트로-헝가리는 1차 대전이 끝나자 와해되었다. 1차 대전의 여파로 루마니아와 이탈리아에 대한 합스부르크의 통치가 중단되었다. 오스트리아에는 새로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헝가리는 과거 왕국의 마쟈르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국가로 탄생하였다. 합스부르크 군주국이 소요하였던 영토들은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와국(나중에 유고슬라비아) 등에 흡수되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이라는 명칭은 합스부르크의 다른 멤버들이 각각 다른 시기에 통치하였던 지역들과 혼돈해서는 안될 것이다. 합스부르크의 시니어 스페인 라인은 합스부르크 스페인과 다른 지역들을 1517년부터 1700년까지 통치하였다. 주니어 라인은 투스카니를 1765년부터 1801년까지 통치하였고 다시 1814년부터 1859년까지 통치하였다. 그러므로 이탈리아 북부의 투스카니는 오랫동안 합스부르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투스카니에서 추방 당한 이 라인은 1803년부터 1805년까지 잘츠부르크를 통치했고 이어 1805년부터 1814년까지는 뷔르츠부르크를 통치했다. 또 다른 지파는 포어란데를 1803년부터 1805년까지, 모데나를 1814년부터 1859년까지 지배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시스 2세의 딸로서 나폴레옹의 두번째 부인이 된 마리 루이제는 파르마 공국을 1814년부터 1847년까지 통치했다. 또한 멕시코의 제2제국은 1863년부터 1867년까지 4년 동안 프란츠 요셉 황제의 바로 아래 동생인 막시밀리안이 막시밀리안 1세 황제로서 통치하였다.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기간을 1526년 페르디난트 1세로부터 계산하여 1918년 1차 대전이 끝난 싯점까지로 보아서 그동안 오스트리아를 통치했던 군주들의 면모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합스부르크 주니어 라인]

- 페르디난트 1세(1526-1564)

- 막시밀리안 2세(1564-1576)

- 루돌프 2세(1576-1612)

- 마티아스(1612-1619)

- 페르디난트 2세(1619-1637)

- 페르디난트 3세(1637-1657)

- 레오폴드 1세(1657-1705)

- 요셉 1세(1705-1711)

- 샤를르 6세(1711-1740). 칼 6세.

- 마리아 테레지아(1740-1780)


[합스부르크-로레인 라인]

- 요셉 2세(1780-1790).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프란시스 1세의 큰 아들.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났다.

- 레오폴드 2세(1790-1792).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프란시스 2세의 둘째 아들.

- 프란시스 2세(1792-1835). 프란츠 2세. 1804년에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하여 프란츠 1세로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페르디난드 1세(1835-1848)

- 프란츠 요셉 1세(1848-1916). 장장 68년을 합스부르크 군주로서 재임하였다. 부인이 씨씨라는 애칭의 바바리아의 엘리자베트이다. 유일한 황태자 루돌프가 자살하자 동생의 아들인 페르디난트를 황위계승자로 삼았으나 세르비아의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함으로서 또 다른 동생인 칼 루드비히의 손자인 칼(샤를르)을 황태자로 임명하였다.

- 샤를르 1세(1916-1918). 칼 1세.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마지막 군주

- 합스부르크-로레인의 오토(오스트리아의 오토).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황태자


 

오스트리아를 통치한 첫 합스부르크 주니어 라인의 페르디난트 1세. 스페인의 왕자였다. 1521년부터 오스트리아 세습영토를 통치했고 1522년부터는 티롤까지 통치하였으며 1526년부터는 보헤미아와 헝가리 왕으로서 겸직하였다. 또한 1531년부터는 로마왕이라는 호칭을 받았으며 신성로마제국에서는 형인 샤를르 5세(카를로스 5세)의 대리로서 활동하다가 1556년부터 1564년까지 8년간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역임하였다. 합스부르크-로레인 가문의 마지막 황제인 칼 1세(샤를르 1세)는 1916년 프란츠 요셉 1세 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제 겸 국왕으로 등극하였으나 1918년 1차 대전의 종식되는 것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막을 내리므로서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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