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 왕조

합스부르크 성(Schloss Habsburg)

정준극 2014. 10. 14. 19:31

스위스의 합스부르크 성(Schloss Habsburg)

합스부르크 왕조의 발상지

 

스위스 아르가우주의 브루그에 있는 합스부르크 성. 외부 마당은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레스토랑 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 왕조의 발상지는 오늘날 스위스 아르가우 주(Canton Aargau)의 브루그(Brugg) 구역에 있는 슐로스 합스부르크(합스부르크 성: Schloss Habsburg)이다. 슐로스(Schloss)는 독일어로는 성 또는 궁전이라는 뜻이다. 슐로스 쇤브룬, 슐로스 벨베데레 등에서 볼수 있듯이 슐로스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궁전을 의미한다. 그런데 슐로스 합스부르크는 의외로 작은 규모의 건물이지만 슐로스라는 명칭을 붙였다. 아마 앞으로 위대한 인물들이 나올 가문의 첫 본거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듯 싶다. 합스부르크라는 이름이 유래한 슐로스 합스부르크는 겉 모양은 사실상 요새처럼 생긴 자그마한 성채에 불과하다. 스위스의 한적한 시골에 있는 이 작은 성이 역사적으로 세인의 관심을 끌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우정 이곳을 찾아오고 있는 것은 다름아니라 슐로스 합스부르크가 중세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도 가장 막강한 왕조를 탄생시킨 둥지이기 때문이다. 아르가우 주(칸톤)는 스위스의 북쪽, 독일과의 접경 지대에 있는 지역으로 스위스의 26개 주의 하나이다. 합스부르크는 브루그 구역에서 서남쪽으로 약 3 Km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는 마을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이 마을의 얕으막한 언덕에 슐로스 합스부르크가 있기 때문에 마을 이름도 합스부르크라고 붙였던 것이다. 슐로스 합스부르크는 라드보트(Radbot) 백작이라는 사람이 1020-1030년 경에 지은 일종의 저택 겸 요새이다. 라드보트 백작은 슈봐비아 공국의 클레트가우(Klettgau)에서 살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브루크 지역의 이 마을로 이사를 와서 성을 짓고 살았다. 당시 이 마을도 슈봐비아 공국의 일부였다. 이 마을에는 청동시대와 로마 시대에 사람이 살았다는 자취가 발견되었지만 마을의 이름이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027년이다. 합스부르크 마을이 기록에 나온 시기는 라드보트 백작이 성을 지은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선조는 브라이스가우 백작인 군트람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브라이스가우는 바덴 뷔르템버그(Baden-Württemberg)의 서남쪽에 있던 지역이다. 라트보트 백작은 군트람 백작의 손자이다. 그런에 다른 주장에 의하면, 합스부르크 가문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오토 2세라고 한다. 오토 2세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합스부르크 백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전에는 그냥 이름을 붙여서 아무개 백작이라고 했었을 뿐이었다. 

 

루돌프 1세. 합스부르크를 중흥시킨 인물이다.

 

라드보트 백작은 성을 완성하고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을까 생각하다가 마침 성벽에 매 한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오라, 합스부르크 성이라고 부르자'라고 했다고 한다. 독일어로 매를 하비히트(Habicht)라고 하는데 이 하비히트라는 말을 간단히 합(Hab)이라는 말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의 이름을 합스부르크라고 부르자 얼마 후에는 성 앞의 마을 이름도 합스부르크가 되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이 마을에는 아르(Ar)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시내가 있었는데 그 지방에서는 시내를 합(Hab)이라고 하므로 성의 이름도 합스부르크라가 되었고 마을의 이름도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라드보트 백작이 세운 합스부르크 성이 훗날 유럽에서도 가장 막강한 합스부르크 왕조의 발상지가 된 것은 역사에 길이 남은 일이었다. 합스부르크 성은 1415년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소유였다. 그러다가 프레데릭 4세 공작이라는 사람이 아르가우 칸톤을 스위스 연방에 빼앗기고 난 다음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의 손에서 떠났다. 합스부르크 마을은 16세기초까지 짙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었고 간간히 집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개발이 되어 집들이 들어서고 마을의 형태를 갖추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합스부르크 성과 합스부르크 마을

 

스위스의 작은 마을로부터 시작된 합스부르크 왕조가 얼마나 막강했느냐 하면 대대로 이 집안 출신이 수백년동안 오스트리아의 군주를 지냈고 이어 수백년에 걸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냈으며 나아가 보헤미아 왕국, 영국 왕국(군주의 배우자로서), 독일 왕국,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 제2 멕시코 제국, 아일랜드 왕국, 포르투갈 왕국 등의 군주로서 통치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수 있는 일이다. 나아가  중세 이후 스페인 왕실에서도 합스부르크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한편 오늘날 네덜란드 일대를 차지했던 덧치 공국과 롬바르디를 비롯한 이탈리아 북부의 여러 공국들도 통치하였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1438년에 시작하여 1740년 샤를르 6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리고 그 후로부터 1806년 프란시스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막을 내릴 때까지는 합스부르크-로레인 왕조로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역임하였다. 돌이켜 보건데 합스부르크가 세상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1276년, 라드보트 백작의 7대손인 루돌프가 오스트리아의 군주가 되고부터였다. 루돌프는 가문의 본거지를 스위스의 합스부르크 성으로부터 오스트리아 공국으로 이전하였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람들은 바벤버그 왕조의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의 군주로서 역사를 이끌어 왔다.

 

현재의 합스부르크 성. 스위스 국기가 날리고 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결혼 등으로 계속 확장되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시니어 합스부르크 스페인과 주니어 합스부르크 왕가로 갈라졌다. 이들은 서로 정통 합스부르크라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시니어 지파는 스페인의 샤를르 2세가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나고 그 자리를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가 차지하게 되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나머니 주니어 합스부르크 라인은 남자 후계자로서 대를 이어 오다가 1740년에 샤를르 6세가 아들이 없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막을 내렸다. 샤를르 6세의 큰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의 전통을 이어 가려 했으나 그마저 1780년에 세상을 떠나자 합스부르크 가문은 로레인 가문(독일어로는 합스부르크 로트링겐)의 보데몽(Vaudemont) 지파가 계승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합스부르크 로레인 가문을 편리한대로 합스부르크 가문이라고 불렀다.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 인물들의 주요 역할은 다음과 같다.

 

- 로마 왕(King of the Romans)

- 신성로마제국 황제(Holy Roman Emperors)

- 독일 왕(King of Germany)

- 오스트리아 공작(Ruler of Austria: 1453년 이후로는 오스트리아 대공)

- 보헤미아 왕(King of Bohemia: 1306-07, 1437-39, 1453-57, 1526-1918)

-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왕(Kings of Hungary and Croatia: 1526-1918)

- 스페인 왕(Kings of Spain: 1516-1700)

- 포르투갈 왕(King of Protugal: 1581-1640)

- 갈리치아와 로도메리아 왕(King of Galicia and Lodomeria: 1722-1918)

- 트란실바니아 대공(Grand Prince of Transylvania: 1690-1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