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 왕조

합스부르크의 대관식

정준극 2017. 7. 12. 10:05

합스부르크의 대관식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공화국이지만 유럽에는 아직도 왕이 군주로 되어 있는 왕국들이 많이 남아 있다.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모나코, 스페인,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등이다. 바티칸 공국도 군주국이라고 하면 군주국이다. 그러나 군주국이었던 다른 수많은 나라들은 이제 모두 공화국으로 전환되어서 국민들이 국가수반(대통령)을 선출하고 있다. 군주국에서는 새로운 국왕이 왕좌에 오를 때에 대관식을 갖는다. 대관식은 국가적인 축제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영국을 제외하고는 대관식을 화려하게 거행하는 군주국들은 거의 없다. 간단한 기념식을 가질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기념식조차 갖지 않는 나라들도 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근자에 대관식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간단한 서약식을 거행했을 뿐이다.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는 과거에 어떤 대관식을 가졌었을까? 참고삼아서 살펴본다. 대관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제사장 역할을 맡은 사람이 새로운 왕에게 왕관을 씌어 준다는 의미이다.


신성로마제국 프란시스 2세 황제. 1806년에 유구한 역사의 신성로마제국의 종말을 공포하였다. 그 전에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선포하고 프란시스 1세로서 첫 황제가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19세기초까지만 해도 제국이 아니라 공국이었다. 그러다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던 프란츠(프란시스) 2세가 1804년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선포하고 스스로는 프란츠(프란시스) 1세라고 칭하였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공국에서는 군주들이 대관식을 갖지 않았다. 과거에는 오스트리아 공국의 군주들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기도 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대관식을 가졌기 때문에 굳이 또다시 군주로서의 대관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였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선포되고 프란츠 1세(재위: 1792-1835)에 이어 페르디난트 1세(재위: 1835-1848), 프란츠 요셉 1세(1848-1916), 칼 1세(1916-1918) 등이 명맥을 이었다. 이들은 간혹 오스트리아제국에 속한 왕국들에서 대관식을 가지기도 했다. 페르디난트 1세는 1830년에 헝가리의 왕으로서 성스테판 왕관으로 대관식을 가졌고 이어 1836년에는 보헤미아의 왕으로서 성벤체슬라스 왕관으로 대관식을 가졌으며 1838년에는 롬바르디와 베네치아(베니스)의 왕으로서 롬바드디 철왕관으로 대관식을 가졌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헝가리왕국과 대타협을 통해서 1867년에 오스트로-헝가리제국이 되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인 프란츠 요셉은 헝가리 왕국에서만 성슈테판 왕관으로 대관식을 가졌다. 이어서 1차대전 중인 1916년에는 칼 1세(샤를르 1세)가 헝가리 왕의로서의 대관식을 가졌다. 역시 헝가리의 성슈테판 왕관이 사용되었다.


오스트리아제국 칼 1세 황제의 헝가리 왕 대관식 후 치타 왕비 및 오토 왕세자와 함께


보헤미아 왕국은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로부터 오스트리아, 즉 신성로마제국에 속하였다. 그래서 마리아 테레지아는 보헤미아의 왕으로서 대관식을 가졌다. 보헤미아의 역사상 유일하게 대관식을 가진 여성 군주였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대관식을 가진 것은 자기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부인이 아니라 군주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합스부르크의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보헤미아 왕으로 대관식을 가진 사람은 페르디난트 1세였다. 대관식에서는 보헤미아의 성게오르게수녀원의 원장이 보헤미아 왕비에에게 왕관을 씌어주는 특권을 가졌었다. 그러다가 1791년(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부터는 다멘슈티프트(Damenstift: 수녀원)의 원장에게 특권이 건네졌다. 다멘슈티프트의 원장은 오스트리아 대공비가 당연직으로 맡았다. 돌이켜보건대 보헤미아의 군주로서 처음으로 대관식을 가진 사람은 브라티슬라우스 2세였다. 중세에는 보헤미아 공작으로서 즉위가 선포되었으며 보헤미아 왕으로서만 대관식을 가졌다. 대관식 장소는 언제나 성비투스(St Vitus)대성당이었다. 대관식에서는 성벤체슬라우스 왕관이 사용되었다. 이밖에도 성벤체슬라우스의 상징인 창, 그리고 왕실을 상징하는 인시그나를 사용했다.


프라하의 성비투스 대성당. 보헤미아 왕의 대관식이 거행되는 곳이었다.


헝가리의 통치자는 헝가리의 성슈테판 왕관으로 대관식을 갖지 않으면 적법한 군주로 간주되지 않았다. 헝가리는 여자는 헝가리의 군주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믿었다. 그래서 두 여왕인 마리아 1세 테레사와 마리아 2세 테레사는 헝가리의 왕으로 대관식을 가졌다. 헝가리 군주의 대관식은 체케스페헤르바르(Szekesfehervar)에서 거행되는 것을 관례로 삼았다. 이곳은 헝가리의 군주로서 처음으로 대관식을 가진 성스테판 1세의 무덤이 있는 장소이다. 헝가리 왕으로서 마지막으로 대관식이 거행된 경우는 1916년 합스부르크의 칼 1세 황제와 치타 황비였다. 칼 1세는 헝가리 왕으로서 칼 4세라고 불렀다. 헝가리의 군주제는 1차 대전으로 종식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1920년부터 1945년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명목상의 군주제를 유지하였다. 다만, 1차 대전으로 헝가리 왕으로 대관식을 가졌던 칼 4세는 다시는 헝가리에 돌아오지 못하는 조건이었다. 헝가리는 1945년에 소련이 차지하게 되어 '왕이 없는 왕국'으로서도 마지막을 고하게 되었다.


프란츠 요셉 1세 황제의 헝가리 왕 대관식. 부다페스트 성마태 대성당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800년에 샬레마뉴 대제가 로마 교황으로부터 대관된 이래 1530년에 볼로냐에서 샤를르 5세가 로마 교황에 의해 대관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1806년 오스트리아의 프란시스 2세 황제가 스스로 신성로마제국을 대단원을 내릴 때까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대한 대관식은 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거행되었다. 대관식을 주재한 사람들은 황실 출신의 대주교 또는 추기경들, 선제후들, 쾰른과 마인츠와 트리어의 대주교 등이었다. 그후로는 황제들이 대관식을 장엄하게 거행하지 않고 단순히 '선출된 로마 황제'(Electus Romanorum Imperator)라고 선포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교황청을 대표하는 사람이 대관식을 공식적으로 주관하지는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샬레마뉴 대제의 대관식. 800년 12월 25일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