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 2

정준극 2013. 11. 13. 10:35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 - 2

수백명이 등장하는 러시아 그랜드 오페라

16세기 제정러시아의 역사 조명

 

1870년의 모스크바 노도데비치 수도원 앞 광장의 모습. 수많은 군중들이 자유와 빵을 달라고 외치고 있다. 오페라에서도 이 장면이 재현되었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1872년도 수정본의 초연에 등장했던 인물들이다. 타이틀 롤인 보리스 고두노프는 실존인물로서 1551년에 태어나서 1605년에 겨우 54세로 세상을 떠난 제정러시아의 짜르(황제)이다. 34세 때에 짜르이던 표도르 1세가 세상을 떠나자 짜레비치(황태자)가 어리다는 이유로 1585년부터 1598년까지 13년간 짜르의 섭정으로 지내다가 마침내 짜레비치를 살해하고 스스로 짜르에 올랐다가 7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오페라에서 보리스 고두노프는 베이스 또는 바리톤이 맡는다. 보리스 고두노프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다. 아들은 표도르(Fyodor 또는 Feodor)로서 주로 메조소프라노가 맡는다. 딸은 크세니야(Kseniya 또는 Xenia)로서 소프라노가 맡는다. 크세니야의 유모는 콘트랄토가 맡는다. 바실리 이바노비치 슈이스키(Vasiliy Ivanovich Shuysky) 공자(1552-1612)는 보리스 고두노프가 죽은 후 거짓 드미트리(황태자)가 권력을 잡았으나 그도 역시 죽임을 당하자 바실리 4세로서 제정러시아의 짜르가 된 사람이다. 바실리 4세가 짜르로 있을 때는 Time of Troubles의 와중이었다. 바실리 4세는 루리키드 왕조의 마지막 짜르이며 그 후에 로마노프 왕조가 들어섰다. 오페라에서 바실리 이바노비치 슈이스키 공자는 테너가 맡는다.

 

보리스 고두노프의 사후에 드미트리 2세가 잠시 짜르의 행세를 하였으나 그를 축출하고 짜르가 된 바실리 4세. 원래 이름은 바실리 이바노비치 슈이스키.

 

안드레이 슈셸칼로프(Andrey Shchelkalov: Bar)는 제정러시아 참의원(오늘날의 러시아국회)의 서기이다. 제정러시아 참의원은 두마(Duma)라고 불렀다. 두마는 로마노프 왕조가 짜르가 된 이후에 보장을 받아 본격적인 활동을 하였으나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폐지되었다. 피멘(Pimen: B)은 사관(史官)이며 은자이다. 피멘은 수도승인 그리고리(Grigory: T)와 함께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리는 나중에 거짓 드미트리 황태자라고 주장하며 백성들을 미혹하여 결국은 보리스 고두노프를 몰아내고 잠시 짜르의 자리에 앉는다. 마리나 므니체크(Marina Mniszech: 메조소프라노 또는 드라마틱 소프라노)는 폴란드 총독(Voyevoda: Voivode)의 딸로서 어릴 때에 드미트리 황태자와 약혼한 사이이다. 마리나 공주는 폴란드 남부의 산도미에르츠(Sandomierz)에서 살았다. 란고니(Rangoni: B)는 신분을 잘 알수 없는 사람이다. 실은 예수회 사제이지만 신분을 감추고 지내고 있는 사람이다. 발람(Varlaam: B)은 방랑 음유시인것 처럼 보이게 했다. 미사일(Misail: T)도 마찬가지이다. 여관주인은 메조소프라노가 맡는다. 유로디비(yurodiviy: T)는 바보천치를 말한다. 경찰서장의 이름은 니키티츠(Nikitich: B)이며 농민 지도자의 이름은 미튜카(Mityukha: B)이다. 러시아의 귀족인 크르슈초프(Khrushchov: T)와 그의 종자(T)도 등장한다. 러시아에서는 짜르 다음으로 지체 높은 귀족을 보야르(Boyar)라고 부른다. 예수회 사제들인 라비키(Lawicki 또는 Lavitsky: B)와 체르니코브스키(Czernikowski 또는 Chernikovsky: B)도 등장한다. 이밖에 제정러시아의 귀족들인 보야르들, 보야르의 아이들, 병사들(스트렐치), 경비병들, 경찰들, 폴란드 귀족들, 산도미에르츠 주민들, 방랑하는 음유시인들, 모스크바 시민들이 등장한다.

 

이상의 주요 등장인물들 중에서 마리나 공주, 란고니, 보야르인 크루슈체프, 그리고 두명의 예수회 사제들은 1869년도 오리지날 버전에는 나오지 않으며 1872년도 수정버전에 등장한다. 등장인물 중에 유로디비는 바보(Simpleton) 또는 천치(Idiot)라고 번역했지만 실은 '종교적인 바보'(Holy Fool)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종교적인 바보'란 예수를 따라가기 위해 세상 모든 재물과 심지어는 가족까지 버리고 나서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성프란시스코는 분명히 성자이지만 처음에는 사람들이 바보라고 조롱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런 사람을 러시아에서는 유로디비라고 부른다. 유로디비들은 대체로 허름한 옷 한번을 입고 이곳저곳을 순례하며 다닌다. 푸슈킨의 원작에는 나오지 않지만 무소르그스키가 역할을 바꾼 인물들도 있다. 원래 피멘은 수도승이며 그리고리는 견습 수도승이었다. 그런데 오페라에서는 피멘을 사관 또는 은자라고 했다. 란고니는 예수회의 추기경이며 발람과 미사일은 유랑하는 수도승들이지만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이들을 평범한 사람들로 바꾸었다. 여관주인은 여자가 맡도록 했고 귀족인 크루슈쵸프도 무소르그스키가 고안해 낸 인물이다.

 

'보리스 고두노프'의 줄거리를 소개하기 전에 제정러시아의 '혼란의 시기'(Time of the Troubles)와 공위기간(Interregnum)에 대한 역사적 상황을 소개한다. 오페라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제정러시아는 이러한 기간들을 거치면서 1598년에 류리크(Ryurik)왕조가 막을 내리고 1613년부터 새로 로마노프(Romanov)왕조가 들어섰다.

 

- 1584년. '폭군 이반'(Ivan the Terrible)이라는 별명의 이반 4세가 죽었다. 이반 4세는 원래의 타이틀이 '모스크바 대공'(Grand Prince of Muscovy)였으나 짜르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사용했다. 이반 4세의 뒤를 이은 사람이 그의 아들 표도르로서 즉위하자 표도르 1세라고 불렀다. 표도르는 오직 종교적인 문제에만 집중하였고 국가의 정사는 매형이 되는 보리스 고두노프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러시아의 보야르(귀족)였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실제적으로 섭정의 역할을 맡아했다.

 

폭군 이반(Ivan the Terrible). 1547년부터 1584년까지 37년간 짜르로서 러시아를 통치했다.

                  

 

- 1591년. 이반 4세의 다른 아들인 여덟살(혹은 10세라고 함)의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왕자(짜레비치)가 원인 모르게 우글리치(Uglich)에서 죽었다. 섭정인 보리스 고두노프는 드미트리가 혹시 짜르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드미트리를 모스크바 남쪽, 볼가강변에 있는 우글리치로 보내서 지내도록 했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바실리 슈이스키 공자에게 사인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조사결과, 드미트리는 칼을 가지고 놀던 중에 간질병이 발작하여 쓰러졌고 그때 칼이 목을 찌르는 바람에 죽었다는 것이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드미트리 왕자가 살해되었다고 주장하고 그 책임을 물어 드미트리의 어머니인 마리아 나가야(Maria Nagaya)를 우글리치로 추방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바실리 슈이스키 공자도 조사를 부실하게 했다는 이유로 마리아 나가야와 함께 우글리치로 추방했다. 그리고 드미트리 왕자의 죽음을 애도하여 우글리치의 성당이 조종을 울렸다고 해서 그 종의 추(tongue: 종의 불알)를 잘라버렸으며 나중에는 그 종을 시베리아로 추방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보리스 고두노프의 정적들은 보리스 고두노프가 드미트리 왕자를 살해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우글리치의 겨울. 드미트리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 나가야는 보리스에 의해 이곳으로 추방당해 지내고 있었다.

                                                                                    

- 1598년. 짜르 표도르 1세가 죽었다. 표도르 1세는 러시아를 7세기 동안 통치했던 류리크 왕조의 마지막 짜르였다. 러시아정교회의 최고 수장인 욥족장(Patriarch Job of Moscow)은 표도르 1세의 아들이 아직 유약한 것을 이유로 들어서 보리스 고두노프를 새로운 짜르로 임명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만일 쳄스키 소보르(Zemsky Sobor)가 승인한다면 짜르가 되겠다고 말했다. 쳄스키 소보르는 16-17세기 러시아 연방의 의회를 말하는 것으로 번역하면 Assembly of the Land 이다.쳄스키 소보르는 만장일치로 보리스가 짜르가 되는 것을 승인했다. 보리스는 그 해에 짜르로서 대관식을 가졌다.

 

표도르 1세. 1584년부터 1598년까지 14년 동안 짜르로서 러시아를 통치했다.

 

- 1601년. 러시아는 1601년부터 무려 3년 동안 극심한 기근에 허덕여야 했다. 백성들을 굶주려서 매일 죽어나갔다. 보리스에 대한 백성들의 지지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보리스 정부에 대하여 불신하기 시작했다.

 

- 1604년. 폴란드에서 짜르 표도르 1세의 후계자인 드미트리 황태자(짜레비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죽었다는 드미트리 황태자가 살아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실은 그리고리 오트렙예프(Grigoriy Otrepyev)라는 신분이 명확치 않은 사람이었다. 혹자는 그리고리가 어느 수도원의 견습 수도승이었다고 말했다. 거짓 드미트리는 폴란드 귀족층과 종교지도자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폴란드는 제정러시아의 압정에 대하여 기회만 있으면 저항코자 했었다. 여기에 폴란드 정교회의 덕망있는 클라우디오 란고니(Claudio Rangoni) 사제가 거짓 드미트리를 지지하고 나섰다. 란고니는 비밀리에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추기경이라는 신급까지 수여받았다. 거짓 드미트리는 폴란드 군부의 지지도 받았다. 그는 병사들을 이끌고 모스크바로 진격하였다. 거짓 드미트리의 측근으로서 예수회 사제인 라비크와 체르니코브스키는 백성들에게 거짓드미트리의 거사를 설명하고 지지를 받기 위해 노력했다. 추도프(Chudov) 수도원의 수도사들인 발람과 미사일도 거짓 드미트리의 거사에 동참하였다. 러시아 국경을 넘자 사기가 충만한 코사크 병사들이 거짓 드미트리의 군대에 합세하였다. 이들은 모스크바로 진격하면서 가는 곳마다 제정러시아 군대를 격파하면서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나 얼마후부터는 전투가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게다가 폴란드 용병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상당수는 군대를 탈영하여 떠났다.

 

1874년 공연에서의 거짓 드미트리

                                                                          

- 1605년. 보리스가 이유를 알수 없는 죽음을 당했다. 다음 짜르는 그의 아들이 표도르 2세로서 즉위했다. 보리스의 갑작스런 죽음은 거짓 드미트리의 반란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제정러시아의 귀족들은 거짓 드미트리 편에 서서 짜르 표도르 2세와 그의 어머니(보리스 고두노프의 부인)를 살해하는데 일조를 했다. 거짓 드미트리는 모스크바에 입성하여 짜르로서 대관식을 가졌다. 그때로부터 바실리 슈이스키 공자는 은밀히 세력을 규합하여 거짓 드미트리를 축출할 계획을 세웠다.

 

짜레비치 드미트리의 어머니인 마리아 나가야가 거짓 드미트리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마리아 나가야는 이반 4세의 여덟번째 부인으로서 1581-1584년간 러시아의 짜레비짜(황비)였다. 보리스에 의해 추방 당해서 우글리치에서 지내다가 1608년에 세상을 떠났다.

                                  

- 1606년. 제정러시아의 귀족들(보야르)은 거짓 드미트리가 폴란드 및 로마 가톨릭과 연맹을 맺은 것을 반대했다. 거짓 드미트리는 마리나 므니체크와 결혼식을 올리고 난후 얼마 안되어서 살해되었다. 바실리 슈이스키가 바실리 4세로서 짜르로 즉위했다.

 

- 1610년. 바실리 4세가 폐위되었고 2년 후에 폴란드의 감옥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그때 자기가 진짜 드미트리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으나 암살당했다(드미트리 2세).

 

- 1611년. 그런데 또 다른 거짓 드미트리가 나타났다(드미트리 3세). 체포되어서 1612년에 처형되었다.

 

- 1613년. '혼란의 시기'는 거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보리스 고두노프 시절에 박해를 당했던 표도르 로마노프의 아들 미하일 로마노프가 새로운 짜르로 등극했다.

 

역사 속의 보리스 고두노프가 정말로 드미트리 황태자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지는 아무런 증거가 없어서 명확치 않다. 다만, 그런 소문만 무성했던 것이다. 푸슈킨과 무소르그스키는 보리스 고두노프가 유죄라고 판단하고 받아 들였다. 그러나 그렇게 받아 들인 배경에는 이들이 셰익스피어 스타일의 비극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 현대의 사학자들은 보리스 고두노프가 드미트리의 죽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다.

 

보리스 고두노프 역의 베이스 아나톨리 코첸르가

 

[명음반] 보리스, 왕위 요구자, 마리나 - 지휘자, 오케스트라 - 버전

 

- 1952: 보리스 크리스토프, 니콜라이 겟다, 유제니아 차레스카 - 이사이 도브로벤, 프랑스 국영라디오방송 오케스트라 - 림스키 코르사코프 1908 버전

- 1962: 보리스 크리스토프, 디미터 우추노프, 에벌린 리어 - 안드레 클뤼텐, 음악원오케스트라 - 림스키 코르사코프 1908 버전

- 1962: 이반 페트로프, 블라디미르 이바노브스키, 이리나 아르키포바 - 알렉산더 멜리크 파샤예프, 볼쇼이 극장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 - 림스키 코르사코프 1908 버전

- 1963: 조지 런던, 블라디미르 이바노브스키, 이리나 아르키포바 - 알렉산더 멜리크 파샤예프, 볼쇼이 극장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 - 림스키 코르사코프 1908 버전

- 1967: 미로슬라브 칸갈로비츠, 류보미르 보두로프, 브레다 칼레프 - 두샨 밀라디노비츠, 베오그라드 오페라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 - 쇼스타코비치 1940 버전

- 1970: 니콜라이 기아우로프, 루도비크 슈피스, 갈리나 비슈네브스카야 - 허버트 폰 카라얀, 비엔나 필하모니커 - 림스키 코르사코프 1908 버전

- 1976: 마르티 탈벨라, 니콜라이 겟다, 보체나 키나츠 - 예르치 셈코브, 폴란드국립방송교향악단, 크라코브 폴란드국립방송합창단 - 무소르그스키 1872 버전

- 1985: 예프게니 네스테렌코, 블라디미프 아틀란토프, 엘레나 오브라초바 - 마크 에름러, 볼쇼이극장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 - 림스키 코르사코프 1908 버전

- 1986: 니콜라이 기아우로프, 미하일 스베틀레프, 스테프카 미네바 - 에밀 차카로프, 소피아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소피아 국립합창단 - 림스키 코르사코프 1908 버전

- 1987: 루제로 라이몬디, 비아체슬라브 폴로초브, 갈리나 비슈네브스카야 -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워싱턴 합창예술협회 및 워싱턴 오라토리오 협회 - 무소르그스키 1873 버전

- 1990: 로버트 로이드, 알렉세이 스테블리안코, 올가 보로디나 - 발레리 게르기에프, 키로프오페라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 - 무소르그스키 1872 버전

- 1997: 블라디미르 바네에프, 블라디미르 갈루신, 올가 보로디나 - 발레리 게르기에프, 키로프 오페라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 - 무소르그스키 1872 버전

 

보리스의 죽음 장면. 베이스 보리스 크리스토프. 파리 오페라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