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벤자민 브리튼의 '글로리아나' - 45

정준극 2013. 11. 30. 09:51

글로리아나(Gloriana)

벤자민 브리튼의 3막 오페라

엘리자베스 1세의 비극적인 이야기..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축하 공연작품

 

'글로리아나'라는 별명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3년 6월 2일에 대관식을 가졌으므로 2013년으로서 대관식 60주년을 맞이하였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에 부왕 조지 6세가 서거하자 곧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대관식은 장례식이 끝난 후인 1953년에 가졌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26년 4월 21일에 태어났으므로 2013년으로 놀랍게도 87세의 노인이 되었다. 또한 1952년에 영국의 군주가 되었으므로 2013년으로 어느덧 장장 61년을 대영제국의 여왕으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80세에 가까운 노인이지만  건강은 아직도 별로 문제가 없는듯하다. 그래서 언제 요단강을 건너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기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 퀸 마더(Queen Mother)도 102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모계의 유전인자가 강하다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어렵지 않게 100세 이상을 살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기간 동안 군주였던 사람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셉 1세로서 무려 68년을 황제로서 군림하였다. 프란츠 요셉 황제의 부인의 이름이 엘리자베트(씨씨)라는 것도 인연이면 인연이다. 아무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프란츠 요셉 황제의 장기근속 기록을 깨트릴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나저나 이른바 크라운 프린스라고 하는 챨스는 1948년생이므로 2013년으로서 어느덧 65세의 노인이 되었고 이미 손자까지 두었다. 그러므로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대영제국의 왕위에 오른다고 해도 '노인 왕'이라는 소리를 들을터이니 민망스러운 노릇이다. 이야기가 공연히 이상한 곳으로 흘러 들어갔음을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며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의 3막 오페라 '글로리아나'에 대하여 소개를 시작코자 한다. '글로리아나'를 소개하기 전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했음은 이 오페라가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작곡되었고 그리고 물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헌정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오페라가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이유는 이 오페라의 주인공이 엘리자베스 1세이므로 엘리자베스 2세와 상당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에 있어서 여왕은 여러 명 있었지만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의 여왕은 엘리자베스 1세와 엘리자베스 2세 뿐이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2세라고 호칭을 붙이게 된것은 엘리자베스 1세와 같은 훌륭한 군주가 되라는 의미에서였다고 한다. 그러니 엘리자베스 1세와 엘리자베스 2세는 집안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서로 공통점이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1953년 6월 2일. '글로리아나'는 6일 후인 6월 8일에 초연을 가졌다.

                 

벤자민 브리튼이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글로리아나'가 2013년으로 초연 60주년을 기록하였다. 그레서인지 2013년에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60주년을 축하하는 영국은 '글로리아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글로리아나'는 영국의 작가인 라이튼 스트랫치(Lytton Strachey: 1880-1932)의 1928년 소설인 '엘리자베스와 에섹스: 비극적 이야기'(Elizabeth and Essex: A Tragic History)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스트래치의 이 작품은 역사물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여왕과 젊은 총신과의 관계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조명해 보았다. 스트래치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여  남아공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작가인 윌렴 플루머(William Plomer: 1903-1973)가 대본을 썼다. 브리튼은 플루머를 알드버러 페스티발에서 만났으며 그후 친구로서 서로 협력하며 지냈다. (Plomer는 플로우머라고 발음해야 하지만 본인이 플루머라고 주장하였다기에 그대로 인용한다.) '글로리아나'의 음악은 브리튼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과 튜도 시대의 음악을 기술적으로 균형있게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16세기 영국의 상황이 합창과 궁중 무곡으로서 생생하게 재현되었다. 에섹스가 루트를 타며 부르는 노래도 튜도 시대의 전형이다. 물론 현대적인 면모도 담겨 있다. 여왕이 이상한 생각과 행동으로 빠질 때의 음악, 여왕의 별로 의미 없는 말들, 그가 숨을 거둘 때의 음악 등은 현대적인 감각의 음악이다.

 

1953년 초연의 무대 장면. 여왕이 레이디 에섹스를 위로하고 있다.

 

'글로리아나'라는 말이 처음 소개된 것은 16세기 영국의 시인인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cer)가 그의 시집인 '동화속의 여왕'(The Faerie Queen)에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글로리아나로 부른 것으로부터였다. 그로부터 '글로리아나'는 전국적으로 엘리자베스 1세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러는 중에 엘리자베스 1세의 치하였던 1588년에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아르마다)를 대서양에서 대파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런던 남쪽 틸베리 항구에 있던 영국 병사들이 '글로리아나, 글로리아나, 글로리아나'라고 환호성을 질렀다는 것으로부터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브리튼의 '글로리아나'가 혹시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른 얘기가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엘리자베스 1세와 에섹스 경(Earl of Essex)의 애증관계에 대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젊은 에섹스 경인 로버트 드브러(Robert Devereau)에게 미치도록 빠진다. 그러나 에섹스 경은 여왕을 존경하고 숭모하지만 어찌보면 여왕의 관심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이용해서 권력과 지위를 얻으려고 한다. 나중에 에섹스 경이 국가에게 위험한 존재가 되자 여왕은 여왕으로서의 임무와 에섹스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엘리자베스 1세와 에섹스 경 로버트 드브러에 대한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든 것은 브리튼의 '글로리아나' 이외에도 두 편이 더 있다. 하나는 1833년에 이탈리아의 사베리오 메르카단테가 펠리체 로마니의 대본으로 만든 '에섹스 백작'(Il conte d'Essex)이며 다른 하나는 게타노 도니체티가 1837년에 살바도레 카마라노의 대본으로 만든 '로베르토 드브러'(Roberto Deveraux)이다. 그 중에서 도니체티의 작품은 스탠다드 레퍼토리에 포함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뱅가드가 스페인의 아르마다를 공격하고 있는 장면. 1588년.

                               

1953년 6월 8일, '글로리아나'는 런던 코벤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축제 기간중이었다. 초연에는 영국 왕실의 사람들과 귀족들과 정치인들, 기타 사회저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글로리아나'가 처음 공연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린 것이었다. 실망감을 내보인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1세를 동정을 받을만한 여인으로 그리기는 했지만 대체로 허영과 욕망에 넘쳐 있는 여인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브리튼의 오페라 '글로리아나'가 엘리자베스 1세의 치적을 담은 내용이 아니라 에섹스 경과의 이러저러한 내용의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나서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여왕의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오페라인데 여왕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다른 사람들도 무관심하게 되었다. 다만, 예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초연 이후 1954년에 버밍햄과 만체스터에서 공연은 계획대로 추진되었다. 이때 에섹스 경의 누이동생인 페넬로프(Penelope)의 역할을 조앤 서덜랜드가 맡았기 때문에 기억되고 있다. 그후 '글로리아나'는 아쉽게도 런던의 스탠다드 레퍼토리로서 자리 매김이 되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했다. 다만, '글로리아나'에 나오는 궁중무도회의 음악은 간혹 콘서트의 레퍼토리로서 등장하는 정도였다. '글로리아나'는 여왕의 개인적인 감정과 대영제국을 통치하는 군주로서의 갈등이 뛰어나게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2막 1장의 노위치(Norwich)에서의 가면 무도회와 2막 3장에서 화이트홀(Whitehall) 무도회는 웅장한 장면이지만 반대로 여왕과 에섹스가 은밀히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음악은 튜도 시대의 활기찬 음악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3막에서 여왕이 에섹스의 처형을 결정하지 못하고 외롭게 번민하는 장면의 음악도 그러하다.

 

에섹스 경 로버트 드브러(1565-1601)

 

그러다가 1963년, 브리튼의 탄생 50년을 기념하는 해에 런던의 뜻있는 음악인들이 주관하여서 콘서트 형식으로 전곡을 연주하는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비록 콘서트 형식이었지만 아무튼 1953년 초연이 있은지로부터 10년 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후 1966년에 새들러 웰스 오페라가 담대하게 공연하였다. 호주 출신의 유명한 소프라노인 실비아 피셔(Sylvia Fisher)가 타이틀 롤을 맡은 공연이었다. 그후 1973년에는 런던의 프롬스에서 챨스 맥커라스(Charles Mackerras)의 지휘로 콘서트 버전이 연주되었고 그 실황이 음반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전편이 녹음된 것은 그로부터 또 11년 후인 1984년이었다.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ENO)의 공연실황을 녹음한 것이었다. 이어 1992년에는 웰쉬 내셔널 오페라(WNO)가 공연을 가졌고 2002년에는 오페라 노우스(Opera North)가 공연했다. 2005년에는 미국의 세인트 루이스 오페라극장이 무대에 올렸다. 소프라노 크리스틴 브루어가 엘리자베스 1세를 맡은 공연이었다. 2013년,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60주년과 '글로리아나' 60주년,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리튼 탄생 1백주년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 공연했다. 사족이지만, 어떤 나라들은 자기 나라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의인화한 여성을 상징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면, 영국은 브리타니아(Britania)이고 프랑스는 마리안느(Marianne)이며 미국은 콜럼비아(Columbia),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투리타(Italia Turita), 러시아는 로시야 마투슈카(Rossiya Matushka: 마더 러시아)이다. 그런데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에서의 영광을 특별히 드높히기 위해 글로리아나라는 여성을 하나 더 만들어 냈다. 글로리아나는 브리타니아와 마찬가지로 영국을 상징하는 여신이다.

 

 

'글로리아나'의 초연에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이미지를 창조한 영국의 소프라노 조앤 크로스(Joan Cross: 1900-1993). 오른쪽은 1966년 새들러 웰스 오페라가 무대에 올렸을 때 타이틀 롤을 맡았던 호주 출신의 소프라노 실비아 피셔(Sylvia Fisher: 1910-1996).

 

'글로리아나'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 엘리자베스 1세 여왕(S) - 초연에서는 조앤 크로스가 여왕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 에섹스 경 로버트 드브러(T) - 초연에서는 벤자민 브리튼과 콤비인 테너 피터 피어스가 맡았다.

- 에섹스 백작부인 프란시스(MS)

- 마운트조이 경 챨스 블라운트(Charles Blount, Lord of Mountjoy: Bar)

- 페넬로프(Penelope: Lady Rich: 에섹스의 누이동생: S) - 1954년의 만체스터와 버밍햄 공연에서는 호주 출신의 소프라노 조앤 서덜랜드가 맡았다.

- 로버트 세실 경(Sir Robert Cecil: 여왕의 자문기구인 추밀원 서기: Bar)

- 월터 랄레이 경(Sir Walter Raleiigh: 근위대장: B)

- 헨리 커프(Henry Cuffe: 에섹스 경의 종자: Bar)

 

이밖에 여왕의 시녀(S), 눈먼 발라드 가수(B), 노르위치의 지방판사(B), 어떤 가정주부(MS), 마스크의 정령(T), 무도회 진행자(T) 등이 나오며 시간(Time)과 화합(Concord)은 댄서들이다. 그리고 합창단으로서 런던의 시민들, 시녀들, 궁전의 귀족과 귀부인들, 궁정인들, 어릿광대들, 노인, 에섹스를 추종하는 사람들과 소년들, 추밀원 위원들이 나오며 댄서들은 시골 처녀들, 어부들, 모리스 댄서들이 맡는다. 성악가가 아닌 배우들로서는 시동들, 발라드 경연대회 출연자들, 엘리자베스 여왕의 환영등이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팀은 궁정의 나팔수들, 무도회의 오케스트라 멤버들, 파이프 악기 부는 사람 등이다.

 

현대적 연출의 '글로리아나'. 여왕과 댄서들

 

시기는 16세기 후반이며 장소는 영국이다.

[1막] 1장은 무술경기장(토나멘트)이다. 마운트조이 경이 마상 창시합에서 승리한다. 에섹스 경인 로버트 드브러가 마운트조이 경에게 도전하지만 오히려 가벼운 상처를 입고 패배한다. 두 사람의 감정이 날카롭다. 여왕으로부터의 총애를 누가 더 많이 받고 있느냐는 문제 때문이다. 이때 여왕이 등장하여 두 사람의 질투심을 몹시 꾸짖는다. 여왕은 두 사람에게 먼저 화해하고 그날 저녁 궁정 무도회에 참석하라고 명령한다. 마운트조이 경과 에섹스 경이 화해한다. 사람들은 여왕의 덕을 높이 찬양한다. 그로부터 에섹스와 마운트조이는 의기가 투합하여 구체적으로는 여왕을 등에 업고 권력을 서로 나누어 잡자는 생각을 한다.

 

마운트조이와 에섹스를 화해시키는 여왕

                              

2장은 여왕의 거실이다. 써리에 있는 논서치 궁전(Nonsuch Palace)이다. 튜도 왕조의 궁전으로서 헨리 8세가 건설한 것이다. 추밀원의 세실 경이 여왕에게 스페인으로부터 또 다른 아르마다(무적함대)가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어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대책을 논의한다. 세실 경은 이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에섹스 경에게 총애를 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충고한다. 세실이 나가고 나자 에섹스(로버트 드브러)가 들어온다. 에섹스는 여왕이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서 정치문제로 번잡한 여왕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에섹스는 여왕에게 자기를 아일랜드로 보내어 타이론 경이 이끄는 반란세력을 평정하게 해 달라고 청한다. 여왕이 즉각적인 승락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자 에섹스는 점점 초조하여서 침착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추밀원의 세실과 근위대장인 월터가 자기를 여왕의 곁에서 몰아낼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 말을 들은 여왕은 에섹스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나가라고 말한후에 하나님께 백성들을 잘 다스릴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한다.

 

여왕에 에섹스를 아일랜드 부총독으로 임명하자 에섹스는 충성을 다하여 반란세력을 평정하겠다고 서약한다.

 

[2막] 1장은 노위치(Norwich)이다. 여왕은 에섹스를 대동하고 노위치를 방문한다. 여왕은 노위치의 지방판사와 얘기를 나누면서 백성들의 고충을 묻는다. 이어 여왕이 주재하는 가장무도회가 열린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주시고 '화합'을 주신데 대한 감사의 무도회이다. 2장은 에섹스의 저택이다. 에섹스의 여동생인 레이디 리치(페넬로프)가 정원에서 마운트조이와 밀회를 하고 있다. 잠시후 에섹스와 그의 부인 프란시스가 나타나서 이들과 합류한다. 에섹스는 여왕이 아일랜드로 보내달라는 자기의 요청을 거절한데 대하여 여왕을 비난한다. 에섹스와 마운트조이와 페넬로프는 여왕이 나이가 들면 언젠가는 왕좌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때에 각각 권세를 장악하는 상상을 한다. 다만, 에섹스의 부인인 프란시스만이 모두에게 조심하라고 강조한다. 3장은 화이트홀(Whitehall) 궁전이다. 무도회가 한창이다. 에섹스의 부인인 레이디 에섹스(프란시스)는 대단히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 궁정의 모든 사람들이 레이디 에섹스의 드레스가 아름답고 화려하다고 찬사를 보낸다. 여왕은 여왕 이외의 다른 여인이 찬사를 받는 것에 대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렇다고 내색을 할 수는 없다.

 

여왕은 가발도 쓰지 않고 잠옷 차림인데도 에섹스가 여왕을 만나고자 한다.

 

여왕은 악사들에게 경쾌하고 명랑한 음악을 연주하라고 지시한다. 사람들이 우아하고 경쾌한 궁정춤을 춘다. 춤이 끝나자 여자들은 잠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고치러 다른 방으로 간다. 잠시후 다른 부인들과 함께 레이디 에섹스가 들어온다. 그런데 아름답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지않고 아주 평범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 레이디 에섹스는 남편의 여동생인 레이디 리치(페넬로프)에게 '아 글쎄 춤을 춘 후에 잠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고치기 위해 드레스를 벗어 놓았는데 글쎄 누가 집어 갔어요'라고 말한다. 잠시후 여왕이 나타난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왕이 레이디 에섹스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드레스를 입었기 때문에 길이가 짧고 몸에 너무 타이트하다. 레이디 에섹스는 여왕이 자기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자 어쩔 줄을 모른다. 레이디 에섹스는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마운트조이, 에섹스, 페넬로프가 레이디 에섹스를 위로하며 참으라고 말한다. 레이디 에섹스는 여왕에게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참는다. 여왕은 레이디 에섹스의 태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대신에 여왕은 에섹스를 아일랜드 부총독으로 임명한다. 모두들 에섹스에게 찬사를 보낸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무대

                                 

[3막] 1장은 논서치 궁전이다. 여왕의 시녀들이 모여서 아일랜드에 부임한 에섹스가 반란세력을 진압하는데 실패했다는 얘기들을 나누고 있다. 그때 에섹스가 뛰쳐 들어오면서 경비병들과 시녀들에게 여왕을 당장 만나야겠다고 주장한다. 시녀들은 여왕이 머리를 매만지지 않았고 잠옷 차림이기 때문에 만날수 없다고 말한다. 여왕이 방 밖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리자 무슨 일이냐고 묻더니 에섹스가 와서 뵙기를 청한다고 하자 마지못해 들어오라고 허락한다. 여왕은 에섹스가 자기의 화장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늙었다고 여기면 어떻게 하나라고 걱정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섹스를 친절하게 맞이한다. 그러면서 아일랜드에서 고난을 겪었던 것을 위로한다. 에섹스는 오히려 궁전 안에 자기의 적들이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불평한다. 여왕은 에섹스가 불평을 늘어 놓으면 놓을수록 점점 참을수 없게 된다. 여왕은 에섹스의 무례에 대하여도 참을수가 없게 된다. 에섹스가 떠나자 여왕의 시녀들은 그제서야 여왕의 화장을 도와주고 드레스를 입혀준다. 잠시후 추밀원의 세실이 들어와서 여왕에게 아일랜드 반란세력도 위협이 되지만 에섹스도 여왕의 치세에 위협이 된다면서 충고한다. 여왕은 마침내 결심이나 한듯 에섹스를 체포하여서 감금하라고 지시한다.

 

 

에섹스가 여왕에게 궁정의 불순한 무리들이 자기를 모함하고 있다고 불평하자 듣고 있던 여왕이 오히려 화를 낸다.

                                    

2장은 런던의 어떤 거리이다. 어떤 발라드 가수가 에섹스가 여왕에 대하여 반란을 주도하려 했다는 예기를 노래로 들려준다. 한편, 에섹스의 부하들은 병사들을 모집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 다닌다. 왕궁에서 전령이 나와서 시민들에게 에섹스가 반역자로 낙인이 찍혔으며 그를 도와주는 사람도 함께 처형될 것이라고 전한다. 3장은 화이트홀 궁전이다. 에섹스는 중죄인을 가두는 런던탑의 감옥으로 이송된다. 추밀원의 세실과 근위대의 월터를 비롯한 추밀원 의원들이 반역죄를 지은 에섹스를 처형되어야 마땅하다면서 여왕을 설득한다. 하지만 여왕은 그래도 한때 총애하던 신하이며 사랑하는 남자였기에 사형명령을 주저한다. 모두들 나가도록 하고 혼자 남은 여왕은 에섹스와 즐겁게 지내던 때를 중얼거리며 추억에 잠긴다. 레이디 에섹스, 페넬로프, 마운트조이가 여왕에게 에섹스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여왕은 레이디 에섹스에게 자기로서도 어쩔수 없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부드럽게 위로한다. 여왕은 레이디 에섹스와 아이들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여왕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페넬로프는 자만심이 가득한 어투로 여왕에게 나라를 어려움 없이 다스리려면 에섹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러자 그때까지만 해도 부드러운 마음이었던 여왕은 갑자기 화를 내며 나라를 위해 정말 필요없는 사람은 에섹스라고 잘라 말한다. 여왕은 다른 사람들이 계속 간청하는 소리를 듣지 않고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에섹스 사형명령서에 서명을 한다. 모두들 깊은 절망감으로 나간다. 혼자 남은 여왕은 에섹스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도 죽어야 할 운명인 것을 생각한다.

 

에섹스의 부인인 레이디 에섹스(프란시스), 에섹스의 여동생인 레이디 리치(페넬로프), 페넬로프의 애인인 마운트조이 경등이 여왕에게 에섹스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간청하지만 여왕은 듣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