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베토벤의 사람들

월광 소나타 진실게임

정준극 2013. 12. 7. 11:32

월광 소나타 진실게임

줄리에타(율리) 백작부인에게 헌정한 곡

 

옛날에 우리들의 선배들은 베토벤을 우리식으로 배도빈(裵道彬)이라고 불렀다. 빛나는 길이라는 뜻이렸다. 우리들의 선배들은 베토벤을 배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배씨들은 베토벤을 자기들의 친족으로 생각하고 은근히 뽐내었다. 옛날에는 베토벤이라고 하면 '운명'도 있고 '전원'도 있지만 '월광곡'을 더 생각했다. 아이나 어른이나 할것 없이 베토벤의 '월광곡'을 알고 있었다. 그건 아마 사변후 나온 음악교과서인가 어디엔가에 베토벤이 월광곡을 작곡하게 된 에피소드가 들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베토벤이 비엔나 교외의 하일리겐슈타트에 살고 있었을 때였다. 베토벤은 산책을 하기를 좋아해서 밤이나 낮이나 시간만 있으면 숲길이나 냇가를 거닐며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어떤 달 밝은 밤이었다. 베토벤은 적적하고 무료해서 그날 밤에도 혼자서 산책을 하였다. 그러던중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낯익은 멜로디였다. 실은 베토벤이 작곡한 멜로디였다. 베토벤은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그곳으로 옮겼다. 창문을 통해서 집 안을 들여다보니 촛불이 흔들거리는 가운데 어떤 노인이 신발을 꿰매고 있고 한쪽에 있는 낡은 피아노 앞에는 어떤 소녀가 앉아서 띠엄띠엄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베토벤은 이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게 이 밤중에 노인은 일을 하고 있고 또 소녀는 왜 피아노를 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신기료(구두수선)장수인 노인은 소녀가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손녀라고 하면서 손녀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함께 살고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러면서 실은 손녀가 앞을 보지는 못하지만 어머니가 생각이 나면 가끔씩 저렇게 어머니가 쓰던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베토벤은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서 소녀를 일으켜 세우고 대신 피아노 앞에 앉아 손이 가는대로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마침 촛불이 다 달아서 꺼지고 방안에는 달빛만이 창문을 통해서 교교하게 흘러 들어오고 있다. 베토벤은 달빛에 취해서 손이 가는 대로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를 다 치고 나서 보니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소녀는 베토벤의 손을 부여잡고 '선생님이 베토벤이시죠? 맞죠?'라고 물었다. 베토벤이 그렇다고 하자 소녀는 너무나 감격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때 베토벤이 달빛 속에서 친 곡이 유명한 '월광곡'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얘기는 흥미 있으라고 누가 만들어 낸 것이다.

  

월광곡에 얽힌 에피소드를 그린 그림.

                        

우리가 보통 '월광곡'이라고 부르는 '월광 소나타'(Mondlicht Sonata: Moonlight Sonata)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 14번으로서 1802년에 완성되어 그 해에 비엔나에 살고 있는 줄리에타 기우치아르디(Giulietta Guicciarde: 1782-1856)에게 헌정된 곡이다. 율리(Julie)라는 애칭으로 불린 줄리에타는 갈리치아의 프르체미슬이란 곳에서 태어나서 트리에스테에서 살다가 1800년에 부모와 함께 비엔나로 와서 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트리에스테도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였다. 비엔나의 사교계에 데뷔한 율리는 청순하고 기품있는 미모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율리는 20세도 되기 전에 갈렌버그 백작이란 사람과 정혼하였고 21세가 되던 해에 결혼식을 올렸다. 갈렌버그 백작은 아마추어 작곡가이기도 했다. 결혼후 두 사람은 나폴리로 가서 살았다. 율리는 나폴리에서 거의 20년을 살다가 비엔나로 돌아와서 1856년,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하여 저 유명한 '월광 소나타'를 헌정 받은 줄리에타(율리)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러면 율리는 어떻게 해서 베토벤을 알게 되었으며 두 사람은 어떤 사이였는가?

 

줄리에타 기우치아르디 백작부인

 

베토벤은 율리를 브룬스비크(Brunsvik: Brunwick) 가족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베토벤은 특별히 율리의 조카들인 테레사와 요제피네와 가깝게 지냈다. 1799년부터 피아노 선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801년부터는 율리의 피아노 선생까지 겸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베토벤은 이성으로서 율리를 대단히 좋아하게 되었다. 베토벤이 1801년 11월 16일에 본에 있는 친구인 프란츠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베토벤은 율리를 '매력에 빠지지 않을수 없는 아가씨'(Enchanting girl)라고 부를 정도로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베토벤은 율리로 인하여 행복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베토벤은 1802년에 율리에게 피아노 소나타 14번을 헌정했다. 이 소나타의 오리지널 제목은 Sonata quasi una Fantasia 이지만 '월광 소나타'로 더 많이 알려진 곡이다. '베토벤의 생애'라는 저서를 남긴 타이어(Thayer)는 '베토벤이 원래 줄리에타 구이치아르디에게 헌정코자 했던 작품은 론도 G 장조 작품번호 51번의 No 2였으나 이 작품은 리흐노브스키(Lichnowsky) 백작부인에게 헌정키로 되어 있어서 대신 작품번호 14을 헌정하게 되었다'고 썼다.

 

베토벤은 1823년에 친구 겸 비서인 안톤 쉰들러에게 당시에 줄리에타(율리)를 진정으로 사랑했었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그리고 쉰들러는 1840년에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이라고 표현한 사람은 실상 줄리에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율리의 조카인 테레사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테레사는 베토벤과 자기의 동생인 요제피네가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테레사는 베토벤이 요제피네를 아주 열정적으로 사랑했다고 증언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베토벤이 율리도 사랑했었고 테레사와 요제피네도 사랑했었다는 것이다.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살았던 집. 오늘날 아랫층은 호이리거로 되어 있다. 베토벤은 어느날 밤에 이 거리를 거닐다가 눈먼 소녀를 만나 월광곡을 작곡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건 얘기일 뿐이다.

 

 

[사족: 음악의 성자들]

베토벤을 보통 악성이라고 부른다. 음악의 성인이라는 뜻이다. 음악가 중에서 성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베토벤 뿐이다. 그런데 재미있으라고 부르는 노래이지만 루이 암스트롱과 대니 케이가 함께 부르는 '성자가 행진해 올때'(Oh,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이라는 노래에서 이들은 음악의 성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그들이 행진해 온다고 노래하는 구절이 있다. 누구를 거론했는가?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브람스, 쇼팽, 림스키 코르사코프, 구스타브 말러, 비제, 주페, 마스네, 생 상스, 주페, 오펜바흐, 카차투리안, 푸치니, 바그너, 베르디 등이었다. 이들이 모두 성자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