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풍운아 바그너

나치 독일 배경의 '탄호이저' 수난

정준극 2013. 12. 27. 13:10

나치 독일 배경의 '탄호이저' 수난

뒤셀도르프 공연 취소 소동

 

비너스의 엘레나 치드코바(Elena Zhidkova). 2013. 4. 드레스덴 드레스 리허설

 

바그너의 '탄호이저'가 새로운 연출로서 2013년 5월 4일 뒤셀도르프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었지만 공연 첫날에 이미 대단한 비난과 야유를 받아 첫회 공연으로 막을 내려야 했다. 나치의 유태인에 대한 홀로코스트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나와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탄호이저'의 세팅은 중세의 독일 중부 비너스버그가 무대인데 이번에는 연출자가 고집을 부려서 나치 독일을 시대 배경으로 설정했다. 그러다보니 나치 독일이 유태인에게 행하였던 잔혹한 홀로코스트의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그런 장면을 보고 그냥 웃어 넘길 관중이라면 그 사람은 정신이상자가 아니면 신나치주의자일 것이다. 모두들 심한 거부반응을 보여주었다. 일부 관중들은 히틀러의 망령이 살아났다고해서 비난성 야유를 보내었다. 어떤 사람들은 오페라가 진행되면 조금 나아지겠지라며 기대했지만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자 눈을 감고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했다. 출연자들은 나치의 스와스티카 완장을 차고 나치의 군복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등장하여 무대를 헤집고 다녔다. 독일에서 스와스티카의 사용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데도 악몽의 스와스티카가 버젓이 활개를 친 것이다. 이어서 출연자들은 히틀러식 경례를 하였다. 말로만 '하일 히틀러'라고 소리치지 않았지만 그런 자세였다. 사랑의 여신이라는 비너스는 또 어떠했나? 마치 나치의 SS라고 생각할수 있는 복장을 입고 나왔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그 다음에 나오는 장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봐르트부르크 노래경연대회. 뒤셀도르프 공연

 

유태인들을 가스실에 집어 넣고 독가스로 죽이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물론 분명하게 유태인들을 가스실에서 죽이는 것을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누가 보던지 그런 장면을 연상케하는 것이었다. 무대 위에 유리상자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벌거벗은 몇 사람들을 들여보낸 후 안개와 같은 가스가 뿜어나오게 하여 유리상자 안의 사람들이 점차 쓰러지도록 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유리 상자는 강제수용소의 가스실을 말하는 것이며 안개처럼 뿜어 나오는 것은 독가스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다른 충격적인 장면도 있다. 한 가족이 총살을 당하기 전에 군인들의 지시에 의해 모두 옷이 벗겨지고 머리를 면도로 밀어지는 장면이었다. 그 후에 군인들이 한사람 한사람의 머리에 총을 겨눈후 쏘아 죽이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게다가 어떤 유태인 여인이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도 가미되었다. 이들 장면에서는 '탄호이저'의 음악이 잠시 중단되었다. 그래서 오페라와는 관련이 없는 장면이 의도적으로 연출되었다는 얘기였다. 아무튼 관중들은 그런 장면들을 보고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크가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심한 충격을 받았다. 관중들은 '탄호이저'가 막을 올린지 30분도 되지 않아서 야유와 비난의 함성을 질렀고 더러는 퇴장까지하였다. 그런가하면 관중 열명 정도는 결국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쓰러져서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하기야 입원치료까지는 받지 않았지만 이들은 병원에 실려가서 치료를 받고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했다. 세상에 오페라를 보다가 정신적을 충격을 받아서 관중들이 집단으로 병원으로 실려갔던 경우는 아마 뒤셀도르프 오페라극장에서의 '탄호이저'가 유일할 것이다.  뒤셀도르프 극장이 '탄호이저'를 공연키로 한 것은 2013년이 바그너 탄생 200 주년을 기념하는 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탄호이저'의 명성에 먹칠을 한 셈이었다.

 

봐르트부르크에서의 노래 경연 장면. 뒤셀도르프 공연

 

극장 측은 관중들이 심한 정신적 충격을 보이자 연출자에게 표현을 누그려뜨려 달라고 요청했다. 연출자인 부어카르트 코스민키(Burkhard Kosminki)는 '무슨 소리들을 하는 것이냐? 연출은 예술이다. 그럴수 없다'면서 극장 측의 요청을 거절했다. 원래 만하임극장의 극장감독으로 있던 코스민키는 뒤셀도르프에서의 '탄호이저'로서 오페라 연출을 처음 맡은 사람이었다. 코스민키는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는 사람이어서 극장측은 그의 견해를 존중하여 두고 보았던 것이다. 코스민키는 '중세의 탄호이저 무대를 나치 시대로 옮겼을 때 어떤 극적인 효과가 있는지를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것이야 혼자서 보면 될터인데 수많은 관중들에게 보라고 강요하다시피 한 것은 아무래도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라는 후문이었다. 아무튼 극장 측은 관중들이 역겨워하고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자 현재의 형태로서는 오페라를 제작할 수 없다며 당장 '탄호이저'의 공연을 취소했다. 극장 측은 '탄호이저' 공연을 무기한 취소하고 대신 콘서트 형식으로 5월 9일에 공연하였다. 바그너 탄생 200 주년을 기념하는 공연들은 독일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관심을 받으며 진행되었으나 뒤셀도르프에서처럼 물의를 빚은 경우는 없었다. 다만,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의 음악을 수십년 전부터 비공식적으로 보이콧해 왔었기 때문에 2013년에도 어떠한 바그너 공연도 없었다. 물론 바그너는 나치의 홀로코스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저 19세기를 살면서 유태인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했던 일은 있다. 그래서인지 뒤셀도르프 유태인사회의 대표격인 미하엘 첸타이 하이제라는 사람은 '이게 뭐냐? 말도 안되는 처사들이다'라고 주장하는 대신에 '바그너는 물론 열렬한 반유태주의자였지만 그렇다고 홀로코스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엘리자베트와 탄호이저. 뒤셀도르프 공연

 

바그너의 '탄호이저'는 1845년에 드레스덴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오페라 '탄호이저'는 음유시인 탄호이저에 대한 전통적인 발라드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독일 중남부에 있는 봐르트부르크 성에서의 노래 경연대회가 나온다. 그러므로 오리지널 '탄호이저'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만, 굳이 관련이 있다면 바그너가 심한 반유태주의자였다는 것과 바그너를 숭배한 히틀러가 '탄호이저'의 음악을 애호했다는 관련이 있을 뿐이다. 뒤셀도르프에서의 '탄호이저'가 홀로코스트를 표현하자 독일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아마 대사는 '예술의 자유 좋아하네. 남의 마음 속에 염장을 질러 놓은 후에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라고?'라며 분개했을 것이다. 북부 라인지역 유태인협회장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는 뒤셀도르프의 '탄호이저'가 악몽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나치의 만행을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극장에서조차 왜곡된 공연은 우리가 바라는 내용이 아니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것'이라고 주장했다.

 

탄호이저와 비너스. 뒤셀도르프 공연

 

돌이켜보면, 2012년 7월에 러시아 베이스인 에프게니 니키틴(Evgeny Nikitin)이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의 '방랑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änder)에 출연 예정이었으나 그가 가슴과 팔에 나치의 문신을 한 것이 밝혀져서 결국 출연하지 못했던 일이 있다. 니키틴은 젊을 때에 헤비메탈 그룹에 속한 일이 있으며 문신은 그때 했던 것이라고 한다. 바그너는 반유태주의에 대한 아집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히틀러는 바그너의 음악을 대단히 숭배하였다. 독일에서 바그너 음악의 공연은 간혹 물의를 일으키곤 했다. 최근에 베를린의 도이치오퍼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공연할 때에는 누드의 군상들이 무대를 가로 질러 걸어가는 것이 연출되어 논란이 되었었다. 그런데 오늘날 바그너의 오페라를 연출하는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형태의 연출을 시도하고 있으며 옛날 오리지널 스타일대로 공연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중에 웰쉬 내셔널 오페라가 카디프에서 바리톤 브린 터플이 출연하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공연했을 때에는 바그너의 오리지널대로 전통적인 무대를 제작하였다. 그때 관람을 하던 일부 독일 사람들은 독일에서조차 오리지널 연출을 보기가 힘들다고 하며 치하의 박수를 보냈다. 독일에서의 새로운 연출에 의한 공연은 논란과 소동만 빚어 온 것이기 때문에 카디프의 공연에 대하여 일종의 향수심을 가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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