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그너'의 모든 것
바그너 역의 리챠드 버튼. 정말 비슷한 모습이다.
1983년에 영국의 헝가로필름(Hungarofilm)이라는 영화제작사가 '바그너'라는 타이틀의 영화를 만든 것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지금까지 나온 바그너에 대한 영화 중에서 그래도 가장 클래시컬한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보다도 이 영화가 각광을 받았던 것은 중진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기 때문이다. 바그너는 영국이 자랑하는 배우인 리챠드 버튼(Richard Burton)이 맡았고 바그너의 두번째 부인인 코지마(Cosima)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Vanessa Redgrave)가 맡았다. 이밖에도 원로 영화배우들로서 영국 여왕으로부터 귀족의 작위를 받은 랄프 리챠드슨 경(Sir Ralph Richardson), 로렌스 올리비에 경(Sir Lawrence Olivier), 존 길거드 경(Sir John Gielgud) 등이 출연하여 스크린을 빛내 주었다. 바그너의 역할을 맡은 리챠드 버튼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그 다음해인 1984년에 향년 58세로서 세상을 떠났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영화는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이다. 또 한가지 있다. 영화의 일상적인 로케이션은 주로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이루어졌지만 바그너와 관련이 있는 독일, 스위스, 비엔나, 헝가리, 베니스, 시에나, 투스카니 등을 섭렵하면서도 촬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특별하다. 특히 독일에서는 루드비히 2세 바바리아 국왕이 지은 노이슈봔슈타인 성, 바바리아 헤렌인젤의 헤렌힘제(Herrenchiemsee) 궁전, 뮌헨의 레지덴츠(Residentz) 궁전에서도 로케이션이 이루어져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루드비히의 궁전에서
영화 '바그너'는 영국의 토니 파머(Tony Palmer)가 감독했다. 토니 파머는 클래시컬 음악과 대단히 관련이 깊은 영화감독 겸 제작자, 오페라 감독 겸 제작자, 극작가로서 영화계와 음악계로부터 한꺼번에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토니 파머는 특히 위대한 음악가들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영화로 만드는 탁월한 열성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위대한 음악가들에 대한 영화로는 마리아 칼라스 마곳 폰테인(발레리나이지만), 존 오스본(John Osborne),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예후디 메누힌, 칼 오르프, 벤자민 브리튼, 랄프 본 윌리엄스, 구스타브 말러, 파울 힌데미트, 그리고 리하르트 바그너 등 헤아릴수 없이 많이 있다. 토니 파머는 오페라도 여러편이나 직접 감독했다. 데뷔 작품은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피터 그라임스'(Peter Grimes)였다. 그후 칼스루에에서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다시 취리히에서 '트로이 사람들'(The Trojans), 러시아의 생페터스부르크에서 '파르지팔'(Parsifal) 등을 연출감독하여 언론으로부터 '세계적 수준이다', '놀라운 연출이었다' 등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토니 파머는 '바그너'를 기획할 때에 장편특집으로 구상하였다. 결과, 7시간 46분짜리의 대작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너무 길기 때문에 나중에 5시간 짜리로 편집되었다. 그러는 바람에 영화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사라진 인물들도 있다. 2011년에는 세장의 DVD로 출시되었다. 이때에는 오리지널 7시간짜리로 다시 편집되었다. 파머는 버튼의 연기에 대하여 '물론 비판도 있을수 있지만 버튼만큼 완벽하게 바그너를 연기한 사람은 일찌기 볼수 없었다'고 말했다.
등장인물들을 살펴보자. 리하르트 바그너는 리챠드 버튼이, 바그너의 첫번째 부인인 여배우 민나 플라너(Minna Planer)는 젬마 크레이븐(Gemma Craven)이, 나중에 바그너의 두번째 부인이 된 코지마 폰 뷜르브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Vanessa Redgrave)가 맡았다. 지휘자로서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의 남편이었던 한스 폰 뷜르브는 미구엘 헬츠 케스트라네크(Migule Herz-Kestranek)가 맡았다.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2세 국왕은 라츨로 갈피(Laszlo Galffi)가 맡았다. 당대의 피아니스트이며 나중에 바그너의 장인이 되는 프란츠 리스트는 에케하르트 샬(Ekkerhard Schall)이 맡았다. 허무주의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로날도 피컵(Ronald Pickup)이 맡았다. 바그너와 연인사이였던 스위스의 마틸데 베젠동크(Mathilde Wesendonck)는 마르테 켈러(Marthe Keller)가 맡았고 그의 남편 오토 베젠통크는 리챠드 파스코(Richard Pasco)가 맡았다. 작곡가 자코모 마이에르베르는 베논 도브체프(Vernon Dobtscheff)가 맡았고 파리에서 바그너를 후원한 파울리네 폰 메테르니히 공녀는 다프네 바그너(Daphne Wagner)가 맡았다. 작소니의 프레데릭 1세 국왕은 윌리엄 왈튼 경(Sir William Walton)이 맡았고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1세 국왕은 지그프리트 슈타이너(Sigfried Steiner)가 맡았다. 데임 귀네스 존스(Dame Gwyneth Jones는 소프라노 말비나 슈노르(Malvina Schnorr)를 맡았다. 존 길거드 경은 루드비히 국왕의 개인 비서인 프란츠 제라프 폰 휘스터마이스터(Franz Seraph von Pfistermeister)를 맡았고 로렌스 올리비에 경은 지그문트 폰 포이퍼(Sigmund von Pfeufer)를 맡았으며 랄프 리챠드슨 경은 바론 칼 루드비히 폰 데어 포르텐(Baron Karl Ludwig von Pfordten)을 맡았다.
DVD는 10부로 구성된 미니시리즈이다. 각각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첫번째 에피소드는 전반적인 오프닝 성격이고 마지막 에피소드는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성격이다. 나머지 8개 파트는 각각 다른 배경과 다른 내용으로 연결되어 있다.
에피소드 1: 바그너는 드레스덴에 정착하여 지내면서 작소니 국왕에게 봉사하는 궁정 지휘자였다. 바그너의 부인인 민나 플라너는 남편이 궁정 지휘자라는 지위에 만족하면서 생활을 엔조이하고 있지만 바그너는 나이 많은 왕에게 봉사하는 것에 싫증이 나서 대부분 시간을 체제와 귀족사회를 반대하는 혁명적인 팜플렛 작성에 보내고 있다. 결국 1849년 5월의 드레스덴 혁명이 일어난다. 바그너는 혁명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된다. 혁명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임시정부까지 구성된다. 하지만 작소니와 프러시아의 군대가 봉기세력을 분쇄하자 바그너는 수배인물이 되어 어쩔수 없이 스위스의 취리히로 도피한다.
에피소드 2: 민나는 바그너가 생활비는 충분히 벌어주지 않고 대신에 혁명에 몰두하자 바그너와 별거한다. 그러다가 바그너가 취리히로 도피하자 그래도 남편이기 때문에 재결합하기 위해 취리히로 간다. 민나는 바그너에게 혁명인지 무언지는 생각도 하지 말고 지휘하고 작곡하는 생활을 다시 시작하라고 요청한다. 그러면서 스위스보다는 프랑스로 가서 지내자고 설득한다.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바그너는 스코틀랜드에서 이민온 부유한 테일러 부인을 만난다. 미세스 테일러는 바그너가 자기의 결혼한 딸과 잠시나마 섬싱이 있었지만 그의 후원자가 되기로 약속한다. 바그너는 파리로 왔지만 당국이 왕정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인 바그너를 경계하여서 당장 떠나라고 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취리히로 돌아간다. 바그너는 취리히에서 좋은 친구로서 지내던 프란츠 리스트를 만난다. 그리고 미세스 리터라고 하는 파트롱이 생기게 되고 미세스 리터의 아들인 칼 리터를 제자로 받아 들인다.
에피소드 3: 바그너는 건강이 악화되어 여러가지 질환으로 고통을 겪는다. 취리히의 부유한 비단무역상인 오토 베젠동크는 바그너를 숭배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부인인 미모의 마틸데 베젠동크는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마틸데는 바그너가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자기 저택의 별채를 바그너를 위해 제공한다. 일단 베젠동크의 별채에 정착한 바그너는 그때부터 마틸데와 열정적인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간다. 마틸데의 남편인 오토 베젠동크는 물론이지만 바그너의 부인인 민나도 이 상황에 대하여 몹시 불쾌하게 생각한다. 평소에 화려하고 사치스런 생활을 즐겨했던 민나는 취리히에서의 고독하고 힘든 생활을 견디기 어려워서 마약에 손을 댄다. 한편, 바그너는 자기와 마틸데의 관곌를 위해서 저 유명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하기 시작한다. 그럴 즈음에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지휘자 한스 폰 뷜로브가 부인 코지마와 함께 바그너를 찾아온다. 프란츠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는 얼마 전에 폰 뷜로브와 결혼하여 신혼이었다. 민나는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앉아만 있을수 없다고 생각하며 바그너와 마틸데에게 정면으로 대응키로 결심한다.
에피소드 4: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완성하기 위해 베니스로 간다. 그런데 바그너를 후원하던 미세스 리터가 더 이상 바그너를 경제적으로 지원하지 않겠다고 통보한다. 바그너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아서였다. 마침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황제가 바그너에게 '탄호이저'의 파리 공연을 주관토록 허락하자 바그너는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서 파리로 간다. 파리주재 오스트리아 대사의 부인으로 메테르니히 공자의 딸인 파울리네 폰 메테르니히도 '탄호이저'의 파리 초연을 후원한다. '탄호이저'의 파리 초연은 재앙이었다. 관중들은 고함을 치며 오페라 공연을 방해하였다. 이유는 통상 프랑스 오페라에서는 발레가 2막에 나오는데 바그너는 그런 관례를 무시하고 1막 중에 발레를 포함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파리 관중들을 격분케 했다. 또 다른 이유는 프랑스와 적대관계에 있는 메테르니히의 딸이 '탄호이저'의 공연을 황제에게 요청해서 가능케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에피소드 5: 파리에서 실패를 경험한 바그너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러시아를 여행하며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새로운 파트론을 구하고자 한다. 바그너는 비엔나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공연코자 했으나 그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편, 민나는 드레스덴 법정에 바그너의 사면을 계속 요청하여 결국 법원으로부터 사면을 얻어냈다. 바그너는 드레스덴에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채권자들이 그를 추적하여 빌린 돈을 받아내려고 하기 때문에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바그너는 숨어서 지냈지만 이번에는 휘스터마이스터라는 사람에게 결국 소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휘스터마이스터는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국왕의 개인비서였다. 루드비히 국왕이 바그너를 절실하게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에피소드 6: 이제 바그너는 바바리아의 젊은 국왕의 후원을 받아서 편안한 생활을 한다. 바그너는 대부분의 빚을 다 갚는다. 새로 작곡한 오페라들은 대성황리에 공연되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바그너는 친구인 한스 폰 뷜로브의 부인인 코지마와 뜨거운 관계를 갖는다. 코지마의 아버지인 프란츠 리스트는 그런 사실을 못마땅해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깊어진다.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2세 국왕은 바그너를 대단히 위해주고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다른 장관들에게는 못마땅한 처사가 된다. 장관들은 물론이고 바바리아의 국민들도 바그너에 대하여 싫증을 내거나 혐오감을 갖는다. 루드비히 국왕은 바그너의 초상화를 새로 그려서 바그너에게 선물로 주기로 한다. 초상화가 완성되자 바그너는 루드비히에게 대금을 지불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 사실을 장관들이 알게 된다. 장관들은 바그너 때문에 국고가 낭비된다고 하면서 반대한다. 그렇게하여 결국 바그너와 루드비히는 결별하게 된다.
에피소드 7: 바그너는 루드비히와 화해해야 했다. 결국 그렇게 된다. 두 사람의 친분관계는 전보다 더 굳어진다. 하지만 장관들은 바그너때문에 지불되어야 하는 경비가 점차 많아지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바바리아 초연은 갑자기 이졸데를 맡은 소프라노가 병에 걸리는 바람에 연기되지만 얼마후 실현된다. 루드비히 국왕이 초연에 참석했다. 그러나 궁전으로 돌아가는 황실기차를 타기 위해 공연이 끝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사람들은 이제 바그너와 루드비히의 관계도 서서히 약해지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다. 당시 바바리아는 인접 국가들의 도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때에 바그너는 사치스런 생활을 한다고 믿어서 더욱 싫어하기 시작한다. 사실상 바그너의 사치는 보통 이상이었다. 마침내 루드비히는 바그너를 바바리아에서 추방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한편, 코지마는 바그너의 딸을 낳는다. 혼자 생활하고 있는 민나가 세상을 떠난다.
에피소드 8: 바그너는 코지마와 함께 스위스의 루체른으로 옮긴다. 코지마는 아직 이혼이 성립되지 않은 남편 한스 폰 뷜로브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도 데리고 온다. 얼마후 루드비히 국왕이 바그너를 찾아온다. 바그너를 숭배하고 있는 루드비히는 심지어 왕위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바그너의 개인비서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한 때에 프러시아가 바바리아를 침공한다. 바그너는 루드비히를 설득해서 전쟁이 벌이지고 있는 바바리아로 돌아가도록 한다. 한스 폰 뷜로브가 루체른을 찾아온다. 코지마가 폰 뷜로브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폰 뷜르보는 바그너에 대하여 더 이상 좋은 감정을 가질수 없었다. 그래서 바그너로부터 떠난다. 바그너는 한스 리히터(Hans Richter)를 새로운 보조자로 맞아 들인다. 얼마후 프리드리히 니체가 바그너를 방문한다. 두 사람은 삶의 철학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지만 서로의 견해가 다른 것을 확인한다. 코지마가 바그너의 아들을 출산한다. 지그프리드이다.
에피소드 9: 바그너와 코지마는 아들이 태어나서 진실로 기뻐한다. 한편, 독일은 프랑스와 전쟁을 계속한다. 독일의 군소국가들은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통합을 시작하고 이로써 독일의 통일이 가시적으로 된다. 바그너가 평생을 통해서 그토록 바라던 것이었다. 바그너는 마침내 코지마와 결혼식을 올린다. 루드비히는 바그너에게 '라인의 황금'을 공연해 달라고 요청한다. 바그너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으므로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루드비히의 주장은 강경했다. 초연을 하루 앞둔 날, 마침내 루드비히와 바그너는 의견의 충돌로 서로 돌아서게 된다. 바그너는 초연의 극장에 들어오지 못하는 제재를 받는다. 바그너는 자기의 작품들을 마음대로 공연할수 있는 자기만의 극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바그너는 바이로이트에 자기만의 극장을 짓기로 결심한다.
에피소드 10: 바이로이트에 새로운 극장의 건축되고 있다. 마침내 그의 대서사시적인 작품인 '니벨룽의 반지'가 역사적인 초연을 가질수 있게 된다. 초연에는 루드비히도 참석한다. 그때쯤 해서 루드비히는 점차 정신이상의 증세를 보인다. 루드비히는 자기의 꿈이 담긴 노이슈봔슈타인 성에서 지내고 있다. 바그너와 니체는 마침내 서로 생각이 달라서 헤어진다. 니체는 바그너의 생활스타일과 아이디어 특히 반유태정서에 대하여 공감하지 못한다. 이제 바그너는 임종을 앞두고 있다. 리스트와 바그너는 그동안 바그너의 생애를 조명해 본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그너는 어떤 인물인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과 그가 완성해놓은 음악들을 반영한다.
바그너가 설계하고 건축을 감독한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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