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모스크바, 체료무슈키' - 51

정준극 2014. 1. 1. 19:26

모스크바, 체료무슈키(Moscow, Cheryomushki) - Moskva, Cheryomushki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의 3막 오페레타

모스크바의 주택 재개발 사업 풍자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피아니스트로서도 유명했다.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가 중의 하나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반세기에 걸친 작품활동을 통해 수많은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쇼스타코비치는 주로 관현악곡과 기악곡을 남겼지만 이밖에도 다섯 편의 오페라와 2 편의 오페레타를 남겨서 후세를 사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의 오페라에는 주로 풍자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풍자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코'(The Nose)는 니콜라이 고골의 풍자소설을 바탕으로 1928년에 완성한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풍자 오페라이다. 그의 대표적 오페라는 아무래도 '므첸스크구의 레이디 맥베스'(Lady Macbeth of the Mtsensk District: 1930-32)일 것이다. 보통 '레이디 맥베스'라고 부르는 오페라이다. 역시 사회풍자적인 요소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1940년에는 톨스토이의 '부활'을 바탕으로 하여 '카튜샤 마슬로바'(Katyusha Maslova)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톨스토이의 '부활'은 일찍이 1904년에 이탈리아의 프랑코 알파노가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만든 것이 있다. 하지만 역시 러시아 사람에 의한 '부활'이 더욱 실감이 있다. 마지막으로 '오랑고'(Orgango)는 1932년에 작곡하였으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가 최근에 발견된 오페라이다. '므첸스크구의 레이디 맥베스'는 쇼스타코비치가 1956년부터 수정을 시작하여 7년만인 1963년에 수정본을 완성하였는데 제목도 '카테리나 이스마일로바'(Katerina Ismailova)로 바꾸었다. 그래서 '카테리나 아스마일로바'까지 계산하면 다섯 편의 오페라를 남긴 셈이다. 쇼스타코비치가 오페레타도 작곡했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1938년에 '열두 개의 의자'(The Twelve Chairs)라는 오페레타를 작곡했고 1958년에 완성한 '모스크바, 체료무슈키'도 오페레타이다. 그리고 미완성인 코믹 오페라도 한 편이 있다. '커다란 번개'(The Big Lightning)이다. 1932년에 작곡을 시작했으나 도중에 접어 두었다.

 

사샤와 마샤. 체료무슈키의 새로운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어 들떠 있다.

 

'모스크바, 체료무슈키'는 보통 '체료무슈키'라고 짧게 부르는 오페레타이다. 작품번호로 보면 105번으로 쇼스타코비치가 52세 때에 완성했다. 오페레타라고 하면 보통 화려하고 로맨틱한 내용이 생각나겠지만 '체료무슈키'는 그런 것과는 차이가 있다. 체료무슈키는 모스크바에 있는 구역이다. 1956년에 지은 값싼 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구역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체료무슈키라고 하면 도시화에 따른 당국의 날림 주택 프로젝트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오페레타 '체료무슈키'는 모스크바의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만성적인 주택 부족 사태와 그로 인한 형편없는 생활조건에 대한 풍자이다. 형편없는 날림 아파트이지만 그나마도 입주를 하지 못해서 안달이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대본은 당대의 인기 유머작가들이 맡았다. 블라디미르 마스(Vladimir Mass)와 미하일 체르빈스키(Mikhail Chervinsky)였다. 체료무슈키라는 단어는 '새버찌나무'(bird-cherry trees)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모스크바 서남쪽에 있는 주택단지의 이름이다. 아마 새들이 깃든 버찌나무들이 많은 동네였던 모양이다. '체료무슈키'는 처음 선을 보였을 때 반짝 인기를 끌었으나 철의 장막에 가려진 소련에서는 잊혀질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서방세계에서도 오래도록 '체료무슈키'라는 오페레타가 있는 줄도 몰랐다. 더구나 전후에는 어찌된 일인지 유럽에서 오페레타라는 장르가 쇠퇴해 갔으며 대신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뮤지컬이 무대를 장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오페레타의 존재들이 잊혀져 갔다. 하지만 다행하다고 할까? 상업적 성향이 짙은 뮤지컬은 오래 가지 못하므로 결국 오페레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마련이고 그래서 쇼스타코비치의 '체료무슈키'도 조명을 다시 받게 되었다.

 

사샤와 마샤. 침대를 세워놓았지만 마치 침대 위에 누워있는 듯한 모습이다.

                           

'체료무슈키'는 모스크바 교외의 체류무슈키 구역에 지은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 몇 명의 친구들과 지인들에 대한 이야기로서 각 사람들을 통하여 주택 문제가 제기되는 내용이다. 모스크바역사재건박물관의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사샤(Sasha: Bar)는 얼마전에 마샤(Masha: MS)와 결혼하였다. 젊은 신혼부부는 집이 없기 때문에 함께 살 수가 없다. 사샤는 박물관 가이드인 친구 리도츠카(Lidochka: S)와 아파트를 함께 쓰고 있다. 리도츠카의 작은 아파트는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에 그나마 편하다. 리도츠카의 아파트에는 그녀의 나이 많은 아버지인 세미욘 세미요노비치(Semyon Semyonovich: B)도 함께 지내고 있다. 한편 마샤는 임시 호스텔에서 어떤 방 하나를 다른 사람과 함께 쓰고 있다. 보리스(Boris: T)는 폭발 전문가이다. 소련의 여러 곳에서 일하다가 이제는 모스크바에 정착하고 싶어서 체료무슈키 구역까지 온 사람이다. 보리스는 우연히 옛 친구인 세르게이(Sergei: T)를 만난다. 세르게이는 어떤 고관의 전용차 운전사이다. 세르게이는 류샤(Liusia: S)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류샤는 체료무슈키 구역 건축공사장에서 일하는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다. 표로드 드레베드네프(Fyodor Drebednes: T)는 꼴보기 싫은 감독관이다. 체료무슈키 아파트 공사책임자이며 아파트 분양권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세번이나 결혼했었다. 그런데도 지금은 새로운 파트너를 두었다. 바바(Vava: S)이다. 바바는 마키아벨리적인 젊은 여인으로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드레베드네프와 관계를 가진다. 바라바슈킨(Barabashkin: Bar)은 하급의 아파트 관리원이다. 그의 상사인 드레베드네프와 마찬가지로 부패해 있다. 이런 못된 사람들과 착한 사람들이 만나게 되어 갈등한다.

 

살 집을 달라고 절규하는 사샤

 

'모스크바, 체료무슈키'는 1959년 1월 24일 마야코브스키 오페레타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후 잠잠했다가 무려 45년만인 2004년 2월 8일에 제네바 그랑테아트르(Grand Theatre de Geneve)에서 리바이발되었다. 그해 12월 17일에는 리옹의 오페라 누벨(Opera Nouvel)에서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이어 영국의 오페라 노우스(Opera North)가 순회공연의 프로그램으로 채택하였고 그 다음에는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 오페라 페스티발에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장 최근의 공연은 2012년 4월 시카고의 리릭 오페라에서였다. 시기는 1950년대 중반이며 장소는 모스크바 서남쪽 교외인 체료무슈키 구역이다.

 

집을 찾아 이사를 가야하는 사람들

 

[1막] 사샤와 리도츠카와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은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그만 무너지게 되었다. 마침 사샤와 부인인 마샤, 그리고 리도츠카와 그의 아버지는 체료무슈키 구역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에 입주권을 받아 다행히 길거리에 나와 앉아 있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이들은 세르게이가 몰고 온 자기 상관의 세단에 짐을 싣고 체료무슈키 구역으로 간다. 세르게이는 체료무슈키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여자친구인 류샤가 체료무슈키 구역에서 일하고 있어서 만나러 자주 갔었기 때문이다. 리도츠카를 사랑하고 있는 폭발 전문가인 보리스는 리도츠카가 새로 집을 분양 받아서 가게 되어 별로 할일도 없기 때문에 함께 간다. 그런데 도착하고보니 단지 관리인인 바라바슈킨이 이들이 입주하려는 아파트의 열쇠를 이 핑게 저 핑게를 대며 주지 않는다. 심지어 바라바슈킨은 이들이 아파트 건물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는다. [2막] 관리인인 바라바슈킨이 열쇠를 주지 않자 보리스는 건축 크레인을 몰래 가져와서 우선 리도츠카와 그의 나이 많은 아버지를 아파트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리도츠카와 보리스 등이 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에 아파트 단지 건축 및 분양 책임자인 드레베드노프와 아파트 관리인인 바라바슈킨이 옆 아파트의 벽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을 통해 리도츠카의 아파트로 불쑥 들어온다. 리도츠카와 그의 아버지는 당장 쫓겨난다. 아무리 입주권을 받았어도 고위 공무원인 드레베드노프의 허락이 없이는 한 발치도 들어 올수 없다는 것이다.

 

세르게이의 세단을 타고 체료무슈키 구역으로 이사가는 장면

 

바라바슈킨이 그렇게 하는데에는 어떤 의도가 숨어 있었다. 자기의 상관인 드레베드노프가 그 아파트를 자기 여자 친구 바바에게 들어와서 살라고 허락을 했기 때문이다. 원래 드레베드노프는 바바를 위해 아파트를 하나 빼돌려 놓았는데 기왕이면 넓고 화려하게 살고 싶어서 리도츠카와 그의 아버지가 분양 받은 아파트를 빼앗아 하나로 터서 지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자 친구인 바바가 자기에게 더 헌신적으로 봉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드레베드노프의 부정부패가 폭로되었고 사샤와 마샤는 무사히 입주할수 있었다. 사샤와 마샤는 집들이 파티를 연다. 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못된 드레베드노프와 관리인인 바라바슈킨을 몰아내기로 의견의 일치를 본다. [3막] 보리스와 바바는 전에 애인 사이였다. 보리스는 바바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싶다. 보리스는 드레베드노프가 바바를 자기 애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점을 이용해서 골탕을 먹이기로 한다. 간단히 말해서 드레베드노프가 바바를 찾아와서 두 사람이 밀회를 하는 장면을 폭로해서 망신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리스의 친구들은 그 방법이 좀 치졸한 것이라며 반대를 한다. 대신에 좀더 현실적인 해결방법을 찾기로 했다. 무엇이 현실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들은 류샤가 주도해서 마법의 정원을 만든다. 류샤와 친구들은 드레베드노프와 바라바슈킨을 마법의 정원에 초대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에게 이 정원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든지 진실만을 말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받게 된다고 설명해 준다. 드레베드노프와 바라바슈킨은 마법의 정원에 들어와서 그동안 자기들이 저지를 범죄행위를 낱낱이 고백한다. 그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두 사람이 너무 못된 짓을 한 것을 알고 두 사람을 멀리 추방한다. 모두들 행복하게 살았다.

 

감독관과 관리인과 바바도 할 말이 있다.

 

그런데 쇼스타코비치는 3막이나 되는 긴 작품을 만들었으면서도 별로 만족해 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오페레타에서는 정상적인 대사가 없고 대신 서시시적인 음악만이 거의 100분에 걸쳐 나온다. 마치 무언극을 보는 것 같다. 그나마 음악은 여러 스타일을 인용하였다. 로맨틱한 멜로디로부터 저속하다고 생각되는 대중음악까지 표현되어 있다. '체료무슈키'가 공연되자 비평들이 나왔다. 간단히 말해서 '무슨 오페레타가 이러냐?'는 비판이었다. 쇼스타코비치 자신이 첫 비판자였다. 자기의 작품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해서였다. 만들어 놓고 보니 미숙한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황스럽고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초연이 있기 전에 쇼스타코비치가 그의 절친한 친구인 이삭 글리크만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런 그의 생각을 잘 알수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편지에 "오페레타의 리허설에 참석을 했었다네. 창피해서 죽을뻔 했다네. 당신이 만일 첫날 공연에 올 생각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라네. 당신의 눈과 귀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라네. 오히려 나의 불명예만을 보고 들을 것이라네. 지루하고, 상상력도 없고, 미련한 작품이라네. 우리끼리 얘기지만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해 줄수 있는 말이라네"라고 썼다.

 

세르게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향하는 리도츠카와 아버지와 마샤와 사샤

 

'모스크바, 체료무슈키'는 아마도 쇼스타코비치의 작품 중에서 가장 풍자적이며 비유적이고 시세이 부합하는 작품일 것이다. 막이 오르면 신혼부부인 사샤와 마샤가 언젠가는 자기들의 보금자리가 될 아파트를 꿈꾸는 환상적인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는 고전적인 발레가 등장한다. 마치 차이코브스키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 나오는 발레 장면과 같다. 사샤와 마샤는 우아한 춤을 춘다. 그러다가 곧이어 현실적인 문제와 마주친다. 두 사람은 새로 아파트가 생기면 그곳에 놓을 가구들을 생각한다. 현대적인 가구들이다. 그리고 커다란 화병 한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쁘게 춤을 추자 화병을 포함한 가구들도 함께 춤을 춘다. 환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혼동이다. 음악학자들은 '체료무슈키'가 러시아 전통의 국민주의 음악을 상당수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국민음악 5인조(The Mighty Handful)의 음악을 재현한 것이다. 보리스가 기중기를 이용해서 리도츠카를 아파트로 들어가게 만드는 장면에서 그러하다. 마치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공'에서 야로슬라브의 아리오소를 회상케 하는 멜로디가 나온다. 어찌보면 중세적인 멜로디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로딘의 제2교향곡에서 시적인 느린 악장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소련 청중들이라면 전체 음악에서 전통적인 멜로디를 즉시 느낄수 있을 것이다.

 

절망 중에서도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사샤와 마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