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펀 페퍼스(The Aspern Papers)
도미니크 아르젠토(Dominick Argento)의 2막 오페라
헨리 제임스(Henry James) 원작을 오페라로 각색
도미니크 아르젠토
도미니크 아르젠토(Dominick Argento 1927-)는 현존하는 미국 작곡가 중에서 칼라일 플로이드와 함께 가장 노령에 속한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2014년으로 87세를 기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작곡에 몰두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요크에서 태어난 아르젠토는 오페라와 합창음악으로 이름나 있다. 그는 지금까지 10여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대체로 서정적인 오페라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오페라는 '모로코에서 온 그림엽서'(Postcard from Morocco)일 것이다. 이밖에도 '미스 하비샴의 불'(Miss Havisham's Fire: 나중에 '미스 하비샴의 웨딩 나이트'로 수정), '천사의 가면'(The Masque of Angels), 그리고 '애스펀 페퍼스'가 있다. 송 사이클로서는 '여섯 곡의 엘리자베스 시대 노래'(Six Elizabethan Songs)와 1975년에 퓰리처음악상을 받은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로부터'(From the Diary of Virginia Woolf)가 있다. 그의 음악은 음조면에 있어서 조성(토날리티)과 무조성(아토날리티)을 자유스럽게 복합한 것이며 12음을 서정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 어느 것도 전후의 아방 갸르드 패션을 흉내 내지는 않았다. 그의 오페라는 내용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예민하고 미묘한 관계에 있는 텍스트를 즐겨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의 하나가 '애스펀 페퍼스'이다.
1835년. 줄리아나, 바렐리, 애스펀, 소니아
'애스펀 페퍼스'는 뉴욕 출신이지만 런던에서 주로 활동했던 작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의 중편소설이다. 달라스오페라로부터 오페라 작곡을 위촉받은 아르젠토는 '애스펀 페퍼스'를 오페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88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11월 19일에 달라스오페라에서 초연되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쇠더스트룀(Elisabeth Soderstrom), 메조소프라노 프레데리카 폰 슈타데(Frederica von Stade), 바리톤 리챠드 스틸웰(Richard Stilwell)이 출연하는 호화 캐스팅의 공연이었다. 실제로 아르젠토는 이 오페라를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인 프레데리카 폰 슈타데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는 후담이 있다. 달라스 초연은 PBS가 '위대한 공연'(Great Performances)이라는 타이틀로 전국 방송을 했다. 달라스에서의 초연 이후 미국의 여러 곳에서 간헐적인 리바이발이 있었다. 1990년에는 워싱턴 오페라가 공연했다. 1988년 초연에서 소니아의 역할을 맡았던 캐서린 치에신스키(Katherine Ciesinski)가 이번에는 티나의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수잔 그레이엄이 소니아를 맡았다. 1990년에는 독일 카셀의 슈타트테아터에서, 1991년에는 미네소타 오페라에서, 1992년에는 스톡홀름의 로열 오페라에서, 1996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서, 1998년에는 런던의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er)에서 공연되었다. 그리고 2013년 4월에는 달라스에서 초연 2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공연이 있었다. 이때에는 소프라노 알렉산드라 드쇼티스(Alexandra Deshorteies), 테너 조셉 카이저(Joseph Kaiser), 메조소프라노 수잰 그레이엄(Susan Graham)이 출연했다.
메데아의 리허설을 지도하고 있는 애스펀(아스페른)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줄리아나 보르드러(Juiana Bordereau: S)는 오페라 소프라노이다. 1988년의 초연에서는 엘리자베스 쇠더스트룀이 맡은 역할이었다. 티나(Tina: MS)는 줄리아나의 조카이다. 초연에서는 메조소프라노 프레데리카 폰 슈타데가 맡은 역할이었다. 주인공인 애스펀(Aspern: T)은 작곡가이다. 그리고 바렐리(Barelli: B-Bar)는 임프레사리오이다. 소니아(Sonia: MS)는 바렐리의 애인이다. 역시 오페라 성악가이다. 로저(The Lodger: Bar)는 세들어 사는 사람이다. 그는 평론가이며 아울러 전기작가이다. 파스쿠알레(Pasquale: B)는 로저의 하인으로 정원사의 일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하녀의 이름은 올림피아(Olimpia: S)이다. 올림피아는 서막에서 줄리아나의 음성을 오프 스테이지에서 말하는 역할도 맡는다. 아르젠토의 오페라는 헨리 제임스의 원작에 비하여 주인공들의 이름, 세팅, 스토리 등이 변경되어 있다. 예를 들면 원작에는 애스펀이 시인으로 등장하지만 오페라에서는 작곡가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줄리아나는 오페라 가수로 설정되어 있다. 장소는 베니스에서 코모 호수(Lake Como)로 변경되어 있다.
1885년. 티나(프레데리카 폰 슈타데), 줄리아나(엘리자베스 쇠더스트룀), 전기작가(리챠드 스틸웰). 달라스오페라
과거에 오페라 프리마 돈나였으며 이제는 세상을 떠난 작곡가 제프리 애스펀의 애인이었던 줄리아나 보르드러는 코모 호수의 한 쪽에 있는 빌라에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조카 티나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날 어떤 나그네가 찾아와서 빌라의 방 두어개를 임대하여 줄것을 요청한다. 세를 들겠다고 하는 사람은 학자로서 작곡가 애스펀의 전기작가이기도 하다. 그 사람은 줄이아나가 애스펀과 관련한 문서들, 또는 기념물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믿고 찾아 온 것이다. 그 사람은 특히 줄리아나가 애스펀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때로부터 50년 전에 완성한 오페라의 스코어를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애스펀은 그리스 신화의 메데아를 주제로 한 오페라를 줄리아나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는 것이다. 애스펀은 1885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오페라는 1835년에 작곡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페라의 시대배경은 1885년과 1835년을 왕래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1885년의무대에서는 세를 든 전기작가가 오페라의 스코어가 이 빌라에 있다고 믿어서 찾고자 노력하는 장면이 나온다. 1835년의 세팅에서는 관객들이 젊은 애스펀과 젊은 줄리아나의 모습을 볼수 있다. 관객들은 또한 애스펀이 젊은 소프라노인 소니아와 섬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애스펀의 죽음도 목격하게 된다. 다시 1885년으로 돌아와서 전기작가는 줄리아나가 아직도 애스펀의 서류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줄리아나의 조카인 티나는 전기작가에게 만일 줄리아나와 결혼한다면 오페라 메데아의 스코어를 얻을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기작가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며 티나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다음날 당장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전기작가는 티나에게 떠나려는 마음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그 스코어를 손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작가는 줄리아나에게 청혼을 한다. 하지만 줄리아나는 전기작가에게 이미 늦었다고 말한다. 실망한 전기작가는 할수 없이 빌라를 떠난다. 자기 방에 돌아온 줄리아나는 오페라의 스코어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뜯어서 불에 태운다.
소니아와 애스펀의 메데아 리허설
[프롤로그] 시기는 1885년. 장소는 이탈리아의 라고 델 코모(Lago del Como: 코모호)의 호반에 있는 어떤 오래된 빌라이다. 젊은 시절에 프리마 돈나로서 유명했던 줄리아나 보르드러는 한적하고 외딴 이곳에서 조카 티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든 줄리아나는 젊은 시절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세상을 떠나서 없는 임프레사리오 바렐리를 회상하며 지낸다. 바렐리는 줄리아나가 프리마 돈나가 될수 있도록 힘을 쏟아 주었으며 서로 애인으로 지낸 후에는 이곳에 빌라를 마련해 주어 지내도록 했다. 바렐리는 또한 천재적 작곡가인 애스펀(아스페른)을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바렐리와 애스펀이 협동하여 새로운 오페라가 나올 때마다 대체로 줄리아나가 주역을 맡았다. 그러므로 세 사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그러다가 약 50년전, 애스펀이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하고 있을 때에 결국 줄리아나와 애스펀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 눈치를 챈 바렐리는 또 다른 젊고 매력적인 소프라노인 소니아에게 눈을 돌렸다. 바렐리와 소니아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바렐리는 이 재능있는 소프라노인 소니아를 위해 줄리아나가 지내고 있는 빌라의 건너편에 또 다른 빌라를 마련해서 소니아로 하여금 살도록 했다. 나중에 줄리아나는 애스펀이 그해(1885) 여름에 이 빌라에서 작곡을 하며 지냈을 뿐만 아니라 바로 이 호수에 스스로 빠져서 목숨을 버렸다는 사실을 밝혔다.
티나와 작가
[1막] 1장은 1885년이다. 세입자(The Lodger)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어떤 낯선 사람이 줄리아나의 빌라를 찾아온다. 낯선 사람은 티나에게 방을 두어개 빌려서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가 작가이며 자기의 작품에 대한 영감을 위해서는 이곳이 가장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나는 방을 세주어야 할지 망서린다. 티나의 나이 많은 숙모인 줄리아나는 더구나 이 낯선 사람에 대하여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줄리아나는 낯선 사람에게 감당할수 없을 정도의 액수를 임대료로 요구한다. 낯선 사람은 다음날 그 돈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한다. 낯선 사람은 티나와 둘이서만 있게 되자 티나에게 숙모인 줄리아나의 젊은 시절유명 소프라노로서 지낸데 대하여 아는 대로 얘기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다가 얘기의 주제를 애스펀으로 옮긴다. 그러나 티나는 애스펀에 대하여 별로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티나는 줄리아나가 간혹 애스펀을 '신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는 점을 덧붙인다. 낯선 사람은 '그럼 혹시 줄리아나가 애스펀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을까?'라고 묻는다. 얘기가 자꾸 애스펀으로 집중되자 티나는 도대체 낯선 사람이 그렇게 묻는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 그러자 낯선 사람은 실은 작가로서 애스펀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서 이곳까지 오게되었다고 털어 놓는다. 그 말을 들은 티나는 상당히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2장은 1835년이다. '한여름'(Midsummer)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에스펀은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모습을 바렐리가 바라보고 있다. 한쪽에서는 줄리아나가 애스펀의 새로운 오페라인 '메데아'에서 메데아의 아리아를 연습하고 있다. 애스펀은 바렐리에게 소니아를 위해 아리아를 추가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소니아는 '메데아'에서 제이슨의 새로운 애인으로서 메데아의 라이발인 크레우사의 역을 맡을 예정이다. 애스펀은 바렐리가 일이 있어서 파리에 출장 가서 있는 동안에 소니아를 잘 보살펴 주겠다고 약속한다. 연습을 마친 줄리아나가 애스펀과 바렐리가 얘기하고 있는 곳으로 온다. 바렐리는 애스펀과 줄리아나가 그렇게도 행복해 하는 모습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3장은 1885년이다. '초상화'(The Portrait)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작가는 빌라에 들어와서 지낸지도 벌써 두 달이나 지난다. 그동안 작가는 줄리아나를 단 한번도 만나 본 일이 없다. 작가는 티나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가든의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서 보내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는 듯하다. 작가는 어쩔수 없이 정원사에게 더 이상 꽃다발을 만들어서 보내지 말라고 말한다. 어느날 줄리아나와 티나가 정원에 나와서 바람을 쏘인다. 그러다가 작가를 만난다. 두 여인은 작가에게 꽃을 보내 준데 대하여 그제서야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줄리아나는 작가에게 하룻 저녁에 티나를 데리고 호수 건너편의 마을에 가서 즐겁게 지내라는 말까지 한다. 줄리아나는 내친 김에 작가에게 이 집에 누군지 모르는 초상화가 하나 있는데 좀 보아 달라고 말한다. 작가가 초상화를 보니 틀림없이 애스펀이다. 작가가 초상화의 주인공에 대하여 대단한 관심을 보이자 줄리아나는 작가가 진짜로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애스펀을 좀 더 알기 위해서 이곳까지 왔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 이전까지는 작가가 이곳까지 온 이유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못했다. 줄리아나가 집 안으로 들어가고 정원에는 티나와 작가만이 남는다. 티나는 작가에게 줄리아나가 작가를 더 머물도록 하고 싶다는 뜻이 있다고 얘기해 준다. 작가도 사실은 목적이 있어서 더 머물고 싶다고 밝힌다. 작가는 줄리아나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므로 애스펀에 대한 귀중한 자료들을 없애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작가는 그런 일이 없도록 티나가 도와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4장은 다시 1835년이다. 늦은 여름이다. 애스펀은 오페라 '메데아'에 나오는 줄리아나와 소니아의 듀엣을 피아노 반주를 해주면 연습을 지도하고 있다. 잠시후 줄리아나가 커피를 가지러 가자 애스펀은 소니아를 포옹하려고 한다. 소니아가 애스펀에게 줄리아나를 배반하는 것 같아서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자 애스펀은 소니아야 말로 자기의 유일한 사랑이라고 말하며 안심시킨다. 그러면서 애스펀은 자기와 소니아의 사랑을 '메데아'의 공연이 끝날 때까지 비밀로 하자고 당부한다. 왜냐하면 '메데아'의 성공을 위해서는 바렐리와 줄리아나의 협조가 필요하며 공연히 그들의 심경을 자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애스펀은 소니아에게 그날 밤에 호수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가서 다음날 아침 일찍 오자고 말한다. 그러나 애스펀은 줄리아나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5장은 다시 1885년이다. 빌라의 음악실이 무대이다. 한 밤중이다. 티나와 작가는 저녁나절 데이트를 하러 갔다가 돌아온다. 티나는 장미꽃다발을 들고 있다. 무척 행복한 모습이다. 티나는 세상이 모두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을 지금까지 잊고 지냈다고 말한다. 그때 하녀가 나타나서 줄리아나가 저녁때부터 아퍼서 누워있다고 전한다. 티나는 곧바로 줄리아나의 방으로 올라간다. 작가는 다만 몇 시간의 데이트로서 티나를 행복하게 만들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잘만하면 티나가 자기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해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티나가 내려와서 작가에게 줄리아나가 지금 상당히 정신이 혼미한 상태라고 하면서 애스펀 자료들을 평상시에 숨겨 놓은 곳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옮겨놓아야 겠다고 말한다. 티나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만일 작가가 애스펀 자료들을 정말로 보고 싶어 한다면 슬쩍 보여줄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수 있다. 티나가 방에서 나가자 작가는 문제의 애스펀 자료, 특히 '메데아'의 악보를 찾기 시작한다. 줄리아나가 그 모습을 보고 그제서야 작가의 본래 목적을 알아 차린듯 분노에 넘친 상태에서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다.
티나와 줄리아나와 작가
[2막] 2막에도 프롤로그가 있다. 부제는 "잃어버린 '메데아'"(The Lost Media)이다. 작가는 자기가 줄리아나의 감추어진 자료들을 주인의 허락도 없이 정신없이 찾는 행동이 줄리아나에게 들키자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작가는 몇주동안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작가는 바렐리가 그의 비망록에서 지금은 실종된 오페라 '메데아'의 음악이 대체로 어떠했는지 적어 놓은 것을 회상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혹시 줄리아나가 '메데아'의 악보를 실제로는 보관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써 오래전에 마치 메데아가 자기의 아이들을 죽인 것과 마찬가지로 악보를 파괴해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바렐리의 비망록에 의하면 그가 파리에 갔다가 돌아오자 애스펀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며 '메데아'의 악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혹시 애스펀 자신이 불살라서 없애 버린 것이 아닌지? 줄리아나가 바렐리에게 전한 말에 따르면 애스펀은 사고로 물에 빠져 숨을 거두기 직전에 악보를 불살라 버렸다는 것이다. 과연 믿을만한 얘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줄리아나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줄리아나가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배제할수 없다. 작가의 생각은 여러가지로 분주하다.
1장은 1835년이다. 여름의 끝이다. 애스펀은 드디어 '메데아'를 완성하고 줄리아나와 함께 그 기쁨을 나눈다. 애스펀은 상당히 상기된 마음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축하하는 이 오페라는 앞으로 천년이 지나도록 영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줄리아나는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자고 제안한다. 애스펀은 '오늘밤은 안된다'고 말하면서 맑은 정신으로 다시한번 악보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내세운다. 줄리아나는 조금 전에 애스펀이 소니아에게 오늘밤 호수 건너로 갈테니 함께 지내자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괴로워서 미칠 지경이다. 줄리아나는 애스펀이 악보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틈을 타서 밖으로 나와서 호수에 매어 있는 보트를 풀어 놓아 배가 멀리 떠내려 가도록 한다. 줄리아나가 잠자리에 들때에 애스펀은 보트를 타러 나간다. 애스펀은 보트가 멀리 떠내려 간 것을 알자 전에도 그런 일이 있으므로 별로 주저하지 않고 헤엄을 쳐서 호수를 건너기로 한다.
메데아의 리허설
2장은 1885년이다. 프로포잘(The Proposal)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제 여름이 지난것 같다. 몇주 동안 떠나 있던 작가가 빌라로 돌아온다. 정원사가 작가를 마중한다. 정원사는 노마님(줄리아나)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준다. 티나는 작가가 돌아와서 기쁘다. 티나는 작가에게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애스펀의 자료들 중에서 일부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자료들인지는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티나는 돌아가신 숙모(줄리아나)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작가에게 줄리아나가 간직하고 있던 초상화를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티나는 숙모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물건 중에서 어떤 것이라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리고 숙모는 애스펀 자료들이 자기 가족들의 손에 있는 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점도 말했다고 전한다. 이 말인즉, 만일 작가가 자기와 결혼하게 되면 가족이 되므로 애스펀의 자료들을 공유할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암시를 전해 들은 작가는 놀랍고 두려워하지 않을수 없다. 티나와 결혼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럴수 없다고 말하자 티나는 눈물을 글썽인채 나간다. 작가는 아무래도 다음날 일찍 떠나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3장은 1835년 초가을이다. 바렐리가 줄리아나를 만나보러 온다. 줄리아느는 애스펀을 화장하고 난후 유분을 담은 단지를 보여준다. 바렐리는 호수에 배가 있는데도 애스펀이 익사했다는 얘기를 듣고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다. 더구나 줄리아나가 애스펀의 죽음 이후에 즉각적으로 무대에서 은퇴한 것도 납득키 어렵다는 생각이다. 바렐리는 소니아를 밀라노로 데려다 줄 생각이다. 바렐리는 '메데아'의 악보가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코모 호반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바렐리는 애스펀이 그 끔찍한 사고가 있기 직전에 '메데아'의 악보를 파괴했다고 알고 있다. 바렐리가 떠난 후에 줄리아나는 숨겨 두었던 '메데아' 악보를 꺼내 들고 입을 맞춘다.
4장은 1885년이다. 부제는 '악보'(The Score)라고 되어 있다. 작가는 빌라를 떠날 때에 티나가 피아노를 치는 소리를 듣는다. 작가는 그 음악이 분명히 애스펀이 작곡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 차린다. 작가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선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티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 있다. 작가는 티나와의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메데아'의 악보를 볼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작가의 결심은 너무 늦었다. 티나가 그 전날 밤에 애스펀의 자료들을 모두 불태웠던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작가는 공연히 두려운 심정에 황급히 빌라에서 빠져 나간다.
애스턴 페이퍼를 불살라 버리고 있는 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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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의 원작 '애스펀 페이퍼'(The Aspern Papers)는 1888년에 발표되었다. 헨리 제임스는 이 작품을 영국의 시인인 퍼시 바이스쉬 셀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12)가 역시 작가인 메리 셀리의 이복동생인 클레어 클레어몬트(Claire Clairmont)에게 보낸 편지들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완성했다. 원작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오페라의 내용과 얼마나 다른지를 알수 있다.
익명의 내레이터가 줄리아나 보르드러를 찾으로 베니스로 간다. 줄리아나는 이제는 세상을 떠나서 없는 미국의 시인 제프리 애스펀의 옛 애인이다. 내레이터는 이제는 노파가 된 줄리아나를 만나서 혹시 줄리아나의 빌라에 방을 빌려 지낼수 있는지를 묻는다. 내레이터는 줄리아나와 함께 살고 있는 줄리아나의 조카 티나(원작에는 티타라고 되어 있으나 나중에 작자가 티나로 수정하였음)에게 구혼할 예정이다. 티나는 사실상 평범하고 순진한 시골 아가씨에 불과하다. 내레이터가 티나와 결혼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상 줄리아나가 간직하고 있는 애스펀의 서한이나 다른 자료들을 볼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티나는 자기가 알기로는 애스펀과 관련한 어떠한 서한이나 자료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내레이터는 티나가 줄리아나의 지시를 받고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레이터는 티나에게 자기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 밝힌다. 애스펀의 자료들을 취합하여 책을 발간하겠다는 것이다. 티나가 내레이터를 돕겠다고 약속한다.
얼마후, 줄리아나는 내레이터에게 어떤 미니 초상화를 팔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턱없이 높은 가격을 부른다. 그러나 줄리아나는 그 초상화가 제프리 애스펀의 것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내레이터는 줄리아나가 애스펀의 초상화까지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애스펀의 서한들이나 다른 자료들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줄리아나가 병이 심하여 들어 눕는다. 내레이터는 그 틈을 이용해서 줄리아나의 방에 몰래 들어가서 책상을 뒤져 애스펀의 서한이나 자료들을 찾는다. 줄리아나가 그런 내레이터를 발견하고 '책장사 악당'이라고 소리친다. 그리고는 쓰러진다. 내레이터는 겁이 나서 집에서 급히 도망쳐 나온다. 며칠후 내레이터가 줄리아나의 집을 다시 찾아갔더니 줄리아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티나는 내레이터에게 만일 자기와 결혼하게 된다면 애스펀의 서한들을 가질수 있을 것이라고 힌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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