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동유럽의 오페라

폴란드 오페라학파와 전후의 오페라

정준극 2014. 3. 10. 13:41

폴란드 오페라학파

 

모니우츠코의 후계자 중의 한 사람이 폴란드 낭만주의 오페라의 거장인 블라디슬라브 첼렌스키(Wladyslaw Zelenski: 1837-1921)이다. 첼렌스키는 모니우츠코에게서 레슨을 받은 제자가 아니다. 다만, 모니우츠코의 작품을 모델로 삼아서 그의 스타일로 작곡을 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모니우츠코의 음악적 스타일을 계승한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첼렌스키의 오페라로는 '고플라나'(Goplana), '야네크'(Janek), '콘라드 발렌로드'(Konrad Wallenrod), '스타라 바슨'(Stara Basn)이 있다. 첼렌스키의 오페라들은 폴란드의 독립을 열망하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는 것들이다. 특히 '고플라나'가 그렇다. '고플라나'는 율리우츠 슬로바키(Juliusz Slowacki)의 희곡인 '발라디나'(Balladyna)에 바탕을 둔 것이다. 모든 작품들이 슬라브적인 민족적 취향과 낭만주의 향취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니우츠코와 첼렌스키로 이어지는 폴란드 오페라의 계보를 폴란드 오페라학파라고 부른다.

 

폴란드의 독립을 열망하는 내용의 오페라를 만든 블라디슬라브 첼렌스키

           

20세기 폴란드 오페라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해준 1901년의 '만루'(Manru)는 이그나시 파데레브스키(Ignacy Paderewski: 1860-1941)의 작품이다. 파데레브스키는 1919년 폴란드의 수상 겸 외무장관으로서 파리 평화회의에 참가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만루'의 대본은 요제프 이그나시 크라체브스키(Jozef Ignacy Kraszewski)의 소설 '차타 자 브시아'(Chata za wsia)를 바탕으로 알프레드 노시히(Alfred Nossig)라는 사람이 썼다. '만루'는 1902년 메트로폴리탄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만루'는 메트로폴리탄의 역사에 있어서 폴란드 작곡가에 의한 폴란드 오페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연된 작품이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다른 오페라로서는 루도미르 로치키(Ludomir Roozycki)가 작곡한 '과감한 볼레슬라브'(Boleslaw Smialy: Boleslaw the Bold)와 '카사노바'(Casanova)가 있다. 루도미르 로치키는 또 하나의 현대주의적 오페라를 만든 것이 있다. 예르치 출라브스키(Jerzy Zulawski)의 대본에 의한 '큐피드와 사이케'(Eros i Pshche)이다. 이밖에 20세기 초의 주요 작품으로서는 펠릭스 노보비에스키(Feliks Nowowiejski)의 '발틱의 전설'(Legenda Baltyku: The Legend of the Baltic), 그리고 타데우츠 요테이코(Tadeusz Joteyko)의 '지그문트 아우구스트 왕'(Krol Zygmunt August: King Zygmund August)가 있다.

 

1차 대전후 폴란드의 수상 겸 외무장관을 지낸 이그나시 파데레브스키

 

[카롤 치마노브스키] 20세기 초 폴란드에서 가장 저명한 오페라 작곡가는 카롤 치마노부스키(Karol Szymanowski: 1882-1937)이다. 그런데 그는 다만 2편의 오페라만을 남겼다. '하기스'(Hagith: 1922)와 '로저 왕'(Krol Roger: 1926)이다. '하기스'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윗 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다윗 왕이 늙어 기력이 쇠잔해지자 하기스라는 어여쁜 소녀로 하여금 다윗 왕을 시중들게 함으로서 회춘을 기대해 보고자 했다는 내용이다. '하기스'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로테스크한 사랑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하기스'는 초연에서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그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사라졌다. 또 하나의 오페라인 '로저 왕'은 점차 인기를 얻더니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상당한 호평을 받는 것이 되었다. '로저 왕'은 처음에는 오페라라기 보다는 오라토리오로서 알려졌다. 합창이 전편을 통하여 계속 나오는 것이 오라토리오의 분위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로저 왕'은 다양한 음악적 작품이다. 동방정교회의 찬미가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과 같은 노래가 나오는가하면 심도 있는 반음계 하모니의 노래도 나온다. 아무튼 '로저 왕'은 20세기 폴란드의 가장 중요한 오페라로 간주되고 있다.

 

'로저 왕'. 마드리드 왕립극장

 

[전후의 오페라]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에서 공산주의 기치가 사라지기 시작한 1989년 까지의 기간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 예술정책이었다. 폴란드도 마찬가지였다. 폴란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적인 예는 타데우츠 첼리고브스키(Tadeusz Szeligowski)가 작곡한 '학생들의 봉기'(Bunt zakow: The Schoolboys' Revold: 1951)이다. 이 오페라는 1549년 지그문트 아우구스트 2세 황제와 프로레타리아 학생들 사이에 있었던 분규를 다루고 있다. 또 다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곡가로서는 위톨드 루드친스키(Witold Rudzinski)를 들수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음악가 얀코'(Janko Muyzkant: Janko the Musician: 1953)와 '파리의 지휘관'(Komendant Paryza: Commandant of Paris: 1960)이 있다. 루드친스키의 또 하나 뛰어난 작품은 '그리스 사절단의 해산'(Odprawa poslow greckich: The Dismissal of the Greek Envoys)이다. 르네상스 시인인 얀 코차노브스키(Jan Kochanowski)의 극본을 바탕으로 삼은 작품이다. 루드친스키는 자기보다 훨씬 젊은 크르치스토프 펜데레키(Krzystof Penderecki)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만루'의 한 장면

 

전후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은 로무알드 트바르도브스키(Romuald Twardowski)이다. '베르즈락의 시라노'(Cyrano de Bergerac: 1963)와 '로우드 짐'(Lord Jim: 1982)이라는 오페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둘 다 이미 영화로도 여러번 만들어져서 널리 알려진 스토리이다. 이밖에도 타데우츠 파치오르키비츠(Tadeusz Paciokiewicz), 헨리크 치츠(Henryk Czyz), 타데우츠 바이르드(Tadeusz Baird)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타데우츠 바이르드는 1966년에 요세프 콘라드의 단편 '내일'(Tomorrow)을 바탕으로 '유트로'(Jutro)라는 오페라를 완성했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요세프 콘라드의 '내일'은 유럽 여러나라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전후 폴란드 오페라의 또 하나 특징은 문학작품을 소재로 삼아 오페라를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에드바르드 보구슬라브스키(Edward Boguslawski)의 '소나타 벨체부다'(Sonata Belzebuda)는 비트카시(Witkacy)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진 시인 스타니슬라브 이그나시 비트키비츠(Stanisław Ignacy Witkiewicz: 1885-1939)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츠비그니에브 바르기슬스키(Zbigniew Bargielski)의 '말리 크사이체'(Maly Ksaize)는 앙투안 드 생 떽쥐페리의 '어린 왕자', 그리고 크르치스토프 바출레브스키(Krzystof Baculewski)의 '새로운 해방'(Nowe Wyzwolenie: 1986)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이다.

 

공산사회 아래에서 폴란드 오페라의 또 하나 특징은 미발표 작품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무대에 올리지 못한 작품들이다. 무대를 찾지 못하다보니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오페라를 발표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예를 들면 그라치나 바체비츠(Grazyna Bacewics)의 '아서 왕의 모험'(Przygody Krola Artura: 1959), 예르치 시코르스키(Jerzy Sikorski)의 '세상 종말에 관한 음악 이야기'(Muzyczna opowiesc niemalze o koncu swiata: A Musical Tale About the End of the World), 타데우츠 첼리고브스키(Tadeusz Szeligowski)의 '눈물 흘리는 오딧세이'(Odys placzacyL Odysseus Weeping: 1961) 등이다. 이와 함께 TV 를 위한 오페라도 만들어졌다. 크시슈토프 마이어(Krzystof Meyer)의 '사이버리아드'(Cyberiard)는 1970년도 스타니슬라브 렘의 공상과학 소설을 바탕으로 삼은 오페라이다.

 

첼리스키의 '고플라나'의 무대. 테아트르 빌키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소노리스트 오페라는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 1933-)가 창안한 오페라의 한 장르이다. 폴란드 남부 데비카(Debica) 출신인 펜데레키는 1969년에 가장 유명한 현대 오페라인 '로우둔의 악마'(Dibly z Loudun: The Devils of Loudun)를 작곡했다. 이 오페라는 바그너, 그리고 정신분석학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하며 소노리즘(공명주의) 기법을 폭넓게 사용하였다. 이 오페라가 나오자마자 대단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새로운 기법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코멘트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펜데레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었다. '로우둔의 악마'는 현대 오페라의 고전처럼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펜데레키의 혁신적인 스타일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고 있다. 펜데레키는 자기의 소노리스트 실험을 위해 음을 악보에 기록하는 새로운 방법을 창안하기까지 했다. '로우둔의 악마'는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펜데레키의 다음 오페라는 '실락원'(Paradise Lost)였다. 역시 좋은 반응을 받았다. 펜데레키가 다음 단계로 개발한 것은 '검은 마스크'(Die schwarze Maske)였다. 1986년 잘츠부르크 여름 페스티발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찬반이 섞인 반응이었다.

 

 

'로우둔의 악마'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소노리즘(Sonorism)은 형태를 창조하기 위해 소리의 특징과 품질에 초점을 두어 작곡을 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음색, 기조(텍스쳐), 개개의 조음(아티큘레이션), 강약법(다이나믹스), 율동(무브멘트)가 포함된다. 소노리즘 기법은 기본적으로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실험적인 음악의 개발이 관련이 되는 것으로 1950년대 중반에 폴란드를 중심으로 대두되었으며 1960년대까지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소노리즘은 전통적인 악기로부터 새로운 타입의 소리를 발견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각가 다른 소리들을 혼합하여 텍스쳐를 창조하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간혹 관습적이지 아니한 악기의 소리를 독특하고도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던 펜데레츠키는 소노리즘을 버리고 폴란드적인 오페라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의 새로운 오페라인 '우부 렉스'(Ubu rex: 우부 왕: Ubu roi)은 알프레드 야리(Alfred Jarry)의 코미디 소설인 '우부 왕'(Ubu roi)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대본은 폴란드의 시인인 예르치 야로키(Jerzy Jarock)가 썼다. 예르치 야로키는 물론 폴란드인이지만 이 오페라의 대본은 독일어로 작성되었다. 상반된 반응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우부 왕'의 초연에서 기립박수로서 이 오페라를 찬양했다. 하지만 일부 관중들을 '저것도 오페라냐? 돈을 내고 온 것이 아깝다. 시간은 더 아깝고!'라고 화를 내며 극장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페라는 폴란드 이외에서 상당한 환영을 받았다.

 

'우부 왕'의 한 장면

 

[새로운 세대] 세월이 흘러 어느덧 21세기에 접어 들었다. 근세 폴란드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로서는 크르치스토프 크니텔(Krzystof Knittel), 유제니우츠 크나피크(Eugeniusz Knapik), 로만 팔레스터(Roman Palester) 등이 있다. 크니텔은 1999년에 '하트 피스 - 더블 오페라'(Heart Piece-Double Opera)를 작곡했다. 락 음악을 사용한 오페라이다. 크나피크는 오페라 3부작인 '머리 위의 글라스가 글라스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Das Glas im Kopf wird vom Glas: 1996), '조용한 비명, 힘든 꿈'(Silent Screams, Difficult Dreams: 1992), '해방이라고 부르는 해방'(La liberta chiama la liberta: 1996)를 발표했다. 팔레스터는 '돈 후안의 죽음'(Smierc Don Juana)을 작곡했다. 팔레스터 자신이 프랑스어 대본을 폴란드어로 번역해서 만든 오페라이다. 현재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오페라로서는 츠비그니에브 루드친스키(Zbigniew Rudziński)의 '안티고나'(Antygona: 2001), 지그문트 크라우제(Zygmund Krauze)의 '발타자르'(Balthazar)와 '함정'(The Trap), 파웰 미키틴(Pawel Mykietyn)의 '무시와 침묵'(Ignorant i Szaleniec), 그리고 폴란드가 배출한 위대한 과학자인 큐리 부인의 노벨화학상 수상 100주년을 기념하여 엘즈비에타 시코라(Elzbieta Sikora: 1943-)가 작곡한 '마담 큐리'(Madame Curie: 2011)가 있다. 엘즈비에타 시코라는 폴란드 출신이지만 현재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류 작곡가이다.

 

엘즈비에타 시코로의 '마담 큐리'. 큐리 부인 역에 안나 미콜라이치크, 피에르 큐리에 테너 파웰 스칼루바. 2011년 11월 파리 유네스코 회관에서 초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