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큐리(Madame Curie)
폴란드의 여류 작곡가 엘즈비에타 시코라의 오페라
폴란드 르보브(Lwow) 출신의 작곡가인 엘즈비에타 시코라
폴란드의 르보브(Lwow) 출신으로 1981년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류 작곡가 엘즈비에타 시코라(Elżbieta Sikora: 1943-)가 2011년에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 과학자인 큐리 부인의 생애를 조명하는 오페라 '마담 큐리'(Madame Curie)를 작곡했다. '마담 큐리'를 2011년에 완성한 것은 몇가지 의미가 있다. 마담 큐리(마리 스클로도브스카)는 두번에 걸쳐 노벨상을 받았다. 하나는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이며 또 하나는 1911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것이다. 노벨상의 역사에 있어서 지금까지 남자건 여자건 한 사람이 두번의 노벨상을 받은 것은 큐리 부인이 처음이다. UN과 UNESCO는 2011년이 큐리 부인의 노벨화학상 수상 100 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므로 또 다른 의미있는 행사로서 2011년을 '국제화학의 해'로 정하고 여러 기념사업과 행사를 갖기로 했다. 기념사업의 하나는 큐리 부인의 생애를 담은 오페라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국제화학의 해'는 마리 큐리를 파트론으로 삼았다. 폴란드로서는 또 한가지 기념해야 할 일이 있었다. 2011년은 EC(European Council)에서 폴란드가 의장국으로서 활동한 해이므로 이것도 아울러 기념한다는 의미가 있다.
폴란드를 지극히 사랑한 마담 큐리(마리 스클로도브스카)
작곡을 맡을 사람과 대본을 맡을 사람을 선정하는 중에 폴란드 출신이 맡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두말할 것도 없이 폴란드 출신의 여류 작곡가인 엘즈비에타 시코라가 최적임자라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시코라는 폴란드 출신이지만 벌써 30년이 넘게 파리에 와서 살고 있으므로 그점도 큐리 부인과 사정이 비슷한 것이었다. 하기야 작곡자로서 시코라가 내정되자 일부 성급한 사람들은 시코라를 '음악의 큐리 부인'이라면서 커다란 기대감을 보여주었다. 시코라는 오페라 작곡에 있어서 경험이 많은 작곡가이다. 그는 그때까지 3편의 오페라를 작곡한바 있다. 1977년에 '아리아드나'(Ariadna), 1983년에 Derriere son Double, 1992년에 L'arrache-coeur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시코라는 발레음악도 세편이나 작곡했다. Blow-up(1980), Waste Land(1983), Le Clef de Verre(1986)이다. 이같은 경력으로 비추어 볼때 큐리 부인에 대한 오페라를 위탁하는데 시코라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대본도 가급적 폴란드의 여류 시인을 물색키로 했다. 과연! 적당한 사람이 있었다. 아가타 미클라체브스카(Agata Miklaszewska: 1950-)이었다. 미클라체브스카는 이미 뮤지컬 '메트로'(Metro)와 '폴리타'(Polita) 등의 대본을 쓴 경력이 있다. 미클라체브스카는 오페라 '마담 큐리'의 대본을 과학자로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의 약할을 함께 해야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학문을 탐구하는데 따른 두려움과 의구심을 포함하여 그의 야망과 감정을 표현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오페라에는 폴란드에서의 마리 스클로도브스카의 어린 시절도 등장한다.
대본을 쓴 아가타 미클라체브스카
오페라 '마담 큐리'의 초연은 2011년 11월 15일 파리의 유네스코 하우스에서 거행되었다. 원래는 가급적 마담 큐리의 생일인 11월 7일에 초연을 가지려고 했지만 사정상 며칠 후인 15일에 갖게 되었다. 초연은 폴란드의 그단스크(단치히)에 있는 발틱 오페라단(Opera Baltycka)이 맡았다. 초연은 유엔 '국제화학의 해' 조작위원회가 주관을 하고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과, 유네스코 주재 폴란드 상주사절단, 폴란드 문화-국가유산부 등이 협력하여 거행되었다. 그러나 그단스크의 발틱 오페라단이 가장 수고가 많았다. 마담 큐리의 역할은 소프라노 안나 미콜라이치크가 맡았고 남편인 피에르 큐리의 이미지는 테너 파웰 스칼루바가 창조했다. 이밖에도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아인슈타인도 나온다. 초연과 함께 유네스크 회관에서는 마리 큐리의 생애와 업적을 보여주는 전시회도 마련되었다. 전시회에는 마리 큐리의 일기책 등 귀중한 문서들이 전시되었다. '마리 스클로도브스카 큐리 박물관' '폴란드과학아카데미 자료실' '폴란드 화학협회'가 공동으로 협조한 전시회였다. 폴란드 초연은 파리에서 초연을 가진 후인 11월 23일 그단스크에서였다. 그단스크(Gdansk: 독일어로는 Danzig)는 발틱해에 면하여 있는 폴란드의 유서 깊은 항구도시로서 특히 레크 바웬사의 지도아래 동구에서 공산주의 통치를 종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 폴란드 연대(솔리다리티)운동의 발상지라는 의미가 있다. 오페라 '마담 큐리'의 공연에는 10명의 솔리스트와 30명의 합창단이 출연한다. 댄스 팀도 등장한다. 초연에서는 발틱댄스극장 팀이 출연했다. 오케스트라에는 색스폰, 아코디언, 콤퓨터를 이용한 전자악기까지 등장한다.
마담 큐리
그단스크의 발틱오페라단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오페라 게다네시스'(Opera Gedanesis)라는 일종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했다. 그단스크시 당국이 재정지원하는 이 프로젝트는 폴란드와 관련있는 세계적인 인물들의 생애를 오페라로 만드는 사업이다. 그 첫번째 사업이 오페라 '마담 큐리'를 제작하고 공연하는 것이었다. 두번째 프로젝트는 '그단스키 에우로페이치크'(Gdanski Europejczyk: Gdask European)이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로서 그단스크에서 태어난 철학자인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ur Schopenhauer)의 생애를 그린 내용이 될것이라고 한다. 세번째 프로젝트는 '크라코브에서 온 로메오와 줄리엣'(Romeo i Julia z Krakowa: Rome and Juliet from Krakow)라는 제목의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단스크의 발틱 오페라단은 BBC가 유럽의 최우수 9개 오페라단의 하나로 선정할만큼 전통과 능력이 있는 오페라단이다. 2014년으로 설립 64주년을 기념한다.
과학에 대한 두려움과 의구심으로 번뇌하는 마리 큐리
작곡을 맡은 엘즈비에타 시코라는 르비브(현재는 우크라이나 소속)에서 태어나서 바르샤바의 국립음악대학을 졸업했으며 1968년에 파리로 가서 피에르 새퍼(Pierre Schaeffer)와 프랑수아 베일(Francois Bayle)로부터 현대음악을 배웠다. 이 두사람은 전자음악의 타이탄(거인)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폴란드로 돌아온 시코라는 1973년에 폴란드의 젊은 작곡가들인 크르치츠토프 크니텔, 보이치에크 미크니에브스키 등과 함께 KEW 라는 작곡가 그룹을 구성했다. KEW는 폴란드 국내뿐만 아니라 스웨덴, 오스트리아, 독일 등지를 순방하며 폴란드 현대음악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엘즈비에타 시코라는 201년에 두개의 특별한 상을 받았다. 하나는 폴란드작곡가협회가 주는 특별공로상으로 오페라 '마담 큐리'를 작곡했고 그 오페라가 공연되도록 큐레이터 역할을 한데 대한 것이다. 시상식은 56차 바르샤바현대음악 가을페스티발의 일환으로 거행되었다. 또 하나의 상은 French Orphee du Prestige Lyrique가 마련한 '오르페상'으로 시상식과 함께 엘즈비체타 시코로의 '마담 큐리' DVD를 Academie du Disque Lyrique 에 영구전시되었다. 시코로에 대한 특별상 시상식은 파리의 샤틀레극장에서 6월 25일 거행되었다.
'마담 큐리' 포스터. Madame을 Mad와 ame으로 구분하여 쓴 것이 이채롭다. Mad는 미쳣다는 뜻이고 ame은 프랑스어로 '영혼'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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