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루(Manru)
이그나시 얀 파데레브스키의 3막 오페라
메트에서 공연된 유일한 폴란드 오페라
아그나시 얀 파데레브스키
'만루'(Manru)는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이며 정치외교관으로 유명한 이그나시 얀 파데레브스키(Ignacy Jan Paderewski: 1860-1941)의 3막 오페라이다. 파데레브스키는 폴란드의 수상 겸 외무장관까지 지냈으니 음악가로서 그만한 지위에 있었던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본은 알프레드 노씨히(Alfred Nossig: 1864-1943)가 썼다. 작가이며 조각가인 알프레드 노씨히는 폴란드의 유태인으로서 바르샤바의 유태인 게토에서 지낼 때 게슈타포와 협력하여 유태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일에 앞장서는 등 나치에 적극 협조했다는 이유로 1943년 2월에 유태전투기구(Żydowska Organizacja Bojowa, ŻOB)가 그를 체포하였고 마침내 총살하였다. 알프레드 노씨히가 계산된 나치 협조자인지 또는 시온주의자인지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사항이다. '만루'의 원작은 폴란드의 작가인 요제프 이그나시 크라체브스키(Józef Ignacy Kraszewski: 1812-1887)의 소설인 '마을 뒤편의 오두막집'(A Hut Behind the Village: 1843)이다. 본 블로그에서 '유령의 장원' '할카'와 같은 폴란드 국민오페라를 위시해서 최근의 현대작품인 '우부 왕'(펜데레키), 그리고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과학자인 큐리 부인의 삶과 업적을 다룬 '마담 큐리'(엘즈비에타 시코라), 그리고 서정적 드라마인 '만루'에 이르기까지 집중 소개하는 것은 폴란드의 역사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주변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침략과 압정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일종의 동지적인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만루'라고 하니까 야구경기에서 풀 베이스(만루)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여기서는 집시 청년의 이름이다.
바르샤바 국립극장 공연. 마을 사람들이 만루와 울라나의 결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자 단도를 빼어 들고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만루'는 1901년 5월 29일 드레스덴에서 세계 초연을 가졌다. 독일어 대본을 사용했다. 그로부터 한달 후인 6월 8일에 르보브에서 폴란드어에 의한 폴란드 초연이 있었다. 바르샤바 초연은 1902년 5월 24일 바르샤바 대극장(테아트르 비엘키)에서였다. 미국 초연은 바르샤바 초연보다도 석달 앞선 1902년 2월 14일이었다. 폴란드 출신의 테너인 알렉산더 폰 반드로브스키(Alexander von Bandrowski)가 타이틀 롤을 맡은 메트로폴리탄 데뷔 공연이기도 했다. 메트로폴리탄 공연의 지휘는 작곡자인 파데레브스키와 친분이 두터운 발터 담로슈(Walter Damrosch)가 맡았다. 메트로폴리탄 공연은 뜨거운 환영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대본이 빈약하여서 뉴욕에서의 공연은 9회로 마감해야 했다. 그 이후로 미국 공연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십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루'는 폴란드 작곡가에 의한 폴란드 오페라로서는 유일하게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된 작품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오느날 '만루'는 폴란드를 비롯해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자주 공연되어 사랑을 받고 있다.
만루와 울라나
작곡자인 이그나시 얀 파다레브스키는 1차 대전후 유럽이 정치적으로 소용돌이 치던 때에 폴란드의 수상 겸 외무장관을 지냈다. 1919년 1월부터 그해 11월까지 10개월 동안 수상직을 맡았으며 외무장관은 1919년 1월부터 12월까지 11개월 동안 맡았다. 1919년이면 우리나라에서 삼일운동이 일어난 해이다. 이그나시 얀 파다레브스키는 폴란드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마치 핀란드의 얀 시벨리우스가 '핀란디아'라는 교향시를 작곡하여 애국적인 감정을 북돋아 주었던 것처럼 '폴란디아'라는 대규모의 교향곡을 작곡하여 폴란드 국민들의 조국애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파다레브스키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그런 그를 혹자는 '소녀의 기도'라는 유명한 피아노곡을 작곡한 바다르체브스카와 혼돈하는 경우가 있다. 바다르체브스카도 폴란드 사람이다. 바르샤바 출신이다. 풀 네임은 테클라 바다르체브스카(Tekla Badarczewska: 1834-1861)이다. '소녀의 기도'를 포함해서 30여 편의 피아노곡을 작곡했는데 안타깝게도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성이다. 아무튼 파다레브스키와 바다르체브스카는 같은 폴란드 출신이고 같은 피아니스트이지만 다른 사람이다. 파다레브스키는 폴란드 사람이라고 하지만 실은 국적이 좀 복잡하다. 파다레브스키는 당시 제정러시아에 속한 포돌리아의 쿠릴로브카(Kurilovka)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빈니치아 오블라스트에 속한 크밀니크(Khmilnyk)라는 곳이다. 그러므로 파다레브스키의 국적은 러시아일수도 있고 우크라이나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이 지역은 폴란도에 속하였었고 부모가 모두 폴란드인이가 때문에 누가 뭐래도 폴란드 국적이 합당하다. 파다레브스키의 아버지는 넓은 장원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 폴리크세나는 파다레브스키를 낳은지 몇 달후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파다레브스키는 먼 친척들이 길렀다.
바르샤바 우야즈도브스키 공원에 있는 파데레브스키 기념상
[1막] 갈리치아와 헝가리 사이에 있는 타트라 산맥이 무대이다. 산간 지대의 마을에 사는 헤드비히(Hedwig)는 하나 뿐인 예쁜 딸 울라나(Ulana)가 어느날 집시인 만루(Manru)를 따라서 몰래 가출하자 비탄에 젖어 있다. 울라나는 갈리치아 아가씨이며 만루는 헝가리의 집시 청년이다. 얼마후 가출했던 울라나가 갑자기 마을에 나타난다. 만루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자꾸 울라나를 멀리하려고 하자 무슨 방법을 구하려고 집을 찾아온 것이다. 울라나는 어머니인 헤드비히를 만나자 자기와 만루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한다. 울라나는 부모님들이 만루와의 결혼을 승낙해 주면 만루도 마음을 돌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울라나가 돌아 왔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당장 달려와서 울라나에게 만일 만루라는 집시 청년을 앞으로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 그동안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용서해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울라나는 그럴수는 없다고 하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만루만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하도 기가 막혀서 울라나를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저주를 퍼부으면서 쫓아보낸다. 울라나는 만루의 사랑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했다. 울라나는 마법사로 알려진 난장이 우록(Urok)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우록은 사랑의 묘약을 만들줄 안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에 찾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우록은 전부터 울라나를 좋아했던 사람이다. 울라나는 마법사인 우록으로부터 마법의 묘약을 얻는다. 울라나는 그 묘약으로 만루의 사랑을 되찾을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록은 그 약이 그저 잠시동안만 효력이 있다는 점을 얘기하며 오히려 더 나쁜 결과가 나올수 있으므로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만루는 울라나의 부모로부터는 물론, 마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지내야 하는 것을 이제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며 집시들과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이 자기의 적성에 맞는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상 마을 사람들은 집시에 대하여 좋지 않은 선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구나 울라나가 만루와 결혼해서 함께 사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울라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집시인 만루를 따라 집을 나간 울라나가 다시 찾아와서 모두를 용서해 달라고 하자 화를 내며 당장 눈 앞에서 사라지라고 말한다.
[2막] 산속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이다. 만루가 울라나를 데리고 이곳에 와서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울라나가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다. 한쪽에서 만루는 이대로 살것인가, 또는 집시무리들과 함께 생활할 것인가를 놓고 번민하고 있다. 만루는 집시는 집시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점점 더 강하게 갖는다. 이 산속의 오두막집에 그래도 간혹 찾아오는 사람은 우록 뿐이다. 이날도 우록이 오두막집을 찾아온다. 우록은 만루가 집시들에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아예 떠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바이올린을 잘 연주하는 집시를 데리고 와서 만루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한 것이다. 만루는 갑자기 집밖에서 집시가 바이올린을 매혹적으로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그만 자기도 모르게 집시의 본성이 살아나서 집시 무리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집을 뛰쳐나와 숲 속으로 사라진다. 바이올린을 연주한 야구(Jagu)는 숲 속으로 쫓아가서 만루에게 제발 자기들 무리로 돌아와서 우두머리가 되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집시 여인인 아사(Asa)가 아직도 만루를 잊지 못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도 덧 붙인다. 그때 울라나가 쫓아와서 만루를 간곡하게 설득하여 오두막집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오두막집에 돌아온 울라나는 만루에게 마법의 묘약을 마시도록 준다. 묘약은 비록 잠시동안이지만 만루의 마음을 울라나에게 붙잡아 두는 효과를 보인다.
만루는 집시 아가씨인 아사에게 녹아 들어가서 울라나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3막] 산속에 있는 어느 호수이다. 만루가 달빛을 받으며 호수가를 거닐고 있다. 만루는 멀리서 무슨 이상한 소리가 메아리쳐 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만루는 갑자기 피곤을 느껴 나무 아래에서 잠이 든다. 잠시후 집시 무리들이 지나가다가 잠들어 있는 만루를 발견한다. 아사가 그 사람이 만루인 것을 금방 알아본다. 아사는 무리의 우두머리인 오로스에게 제발 만루를 용서하고 다시 무리 속에 받아 들여 달라고 간청한다. 오로스는 그같은 아사의 간청을 거절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만루를 무시하던 다른 집시들이 오로스의 독단에 항거하여 모두 만루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인 것을 알고는 화를 내며 무리를 떠난다. 아사가 만루를 설득하여 집시 무리의 우두머리를 맡도록 한다. 산간마을의 마법사인 난장이 우록이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 만루에게 제발 울라나와 그의 어린 아이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그런 애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만루는 마침내 아사의 유혹적인 미소에 승복하여 집시 무리들과 함께 산 속으로 사라진다. 만루가 결국은 떠났다는 얘기를 들은 울라나는 슬픔에 그만 정신이상을 일으켜 호수에 몸을 던진다. 만루와 아사가 서로 팔장을 끼고 산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갑자기 오로스가 앞을 가로 막는다. 오로스가 만루를 저 아래 깊은 계곡으로 집어 던진다. 그래서 다시 집시들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한다.
만루가 울라나에게 다시 돌아오자 울라나가 기뻐하고 있다.
파데레브스키는 폴란드의 민속음악과 춤을 폭넓게 반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헝가리의 유랑민들인 집시들의 음악도 첨가하여 민속적으로 다채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스토리도 음악적 표현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허지만 주인공들의 내면세계를 솔직하게 표현하는데 더 주력하였다. 특히 '만루'의 번민하는 정신세계를 현대적으로 표현코자 노력하였다. 1막에서 농부들의 발레(민속춤)는 전체적인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2막에서 울라나의 부드러운 자장가와 울라나와 만루의 열정적인 듀엣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된 스토리를 보여준다. 3막에서 만루가 달빛이 비치는 호수가를 거닐고 있는 장면은 이 오페라의 중심이다. 집시들은 달빛이 환하게 비칠 때에 와일드해지기 때문이다. 3막에서 오케스트라의 전주곡은 만루의 꿈을 한층 높이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야릇한 로마니(집시)의 음악과 아사의 유혹의 노래는 빛나는 보석이다.
집시들은 처음에는 만루를 무시하였으나 오로스의 독단을 싫어하여서 만루를 우두머리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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