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레타 철저분석/오페레타의 세계

요한 슈트라우스의 '심플리시우스'(Simplicius)

정준극 2014. 5. 4. 18:16

심플리시우스(Simplicius)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11번째 오페레타

두번째 부인과의 이혼 소송을 위해 코부르크 왕국 체류시 작곡

코부르크 왕국의 에른스트 2세에게 헌정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공연 실황 DVD

                

'왈츠의 왕'이라고 하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오페레타의 발전에도 선구적인 역할을 하여 생전에 모두 15편(또는 16편)의 비엔나 오페레타를 작곡했다. 그중에서 '심플리시우스'(Simplicius)는 11번째로서 1887년에 완성한 것이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심플리치우스'를 당시 작센 코부르크 고타(Sachsen-Coburg und Gotha) 왕국에 체류하면서 작곡했다. 일반적으로 코부르크라고 불리는 이 왕국은 현재의 독일 중부지역, 바바리아와 튜링기아 지방에 걸쳐 있었던 소왕국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코부르크 왕국에 머물고 있었던 것은 두번째 부인 릴리에 대한 이혼소송을 코부르크 왕국에서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를 보기 위해서였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1878년에 릴리라는 애칭의 여배우인 에르네스티네 헨리에트 안젤리카 디트리히와 비엔나의 칼스키르헤에서 결혼했다. 그러나 릴리가 너무나 사치하고 허영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가 생겨 가출까지 하는 바람에 결국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요한 슈트라우스는 아델레라고 하는 회계사와 사랑하는 사이여서 결혼하고 싶었지만 로마 가톨릭인 오스트리아에서는 이혼이 말처럼 쉽게 처리되지 않아서 할수 없이 개신교 왕국인 코부르크로 가서 일단 개신교로 개종을 하고 코부르크 왕국의 시민권을 얻어 이혼 수속을 진행하였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로서는 조국 오스트리아가 아닌 코부르크 왕국의 시민이 되었고 로마 가톨릭을 버리고 개신교로 개종까지 하면서 아델레와 결혼코자 했던 것이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아델레와 결혼하기 위해 두번째 부인인 릴리와 이혼을 해야 해서 코부르크 왕국에 가서 개신교로 개종하고 그 나라 시민이 된후 법원으로부터 이혼 승인을 받아 결혼했다. '심플리시우스'는 요한 슈트라우스가 코부르크 왕국에 머물 때에 작곡했다.

 

오페레타 '심플리시우스'는 코부르크 왕국의 에른스트 2세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그가 요한 슈트라우스에게 보여준 도움을 감사하기 위해서였다. 에른스트 2세는 그 자신도 훌륭한 작곡가로서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오페라 공작'(Opera Duke)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에른스트 2세는 특별히 바그너 작품을 크게 애호하여 후원하였다. 에른스트 2세가 작곡한 오페라 '산타 키아라'(Santa Chiara)는 1854년 프란츠 리스트의 지휘로 바이마르에서 초연을 가졌다. 이후 독일의 여러 곳에서 널리 공연되었고 파리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어 파리에서만 60회 이상이나 공연되었다. 당시 파리에 있었던 마이에르베르 조차 '산타 키아라'를 훌륭한 오페라라고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에른스트 2세에게 오페라 '기사 파스만'(Ritter Pasman)도 헌정하였다. '기사 파스만'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유일한 오페라이다.

 

작세 코부르크 고타의 에른스트 2세

 

왈츠와 폴카, 또는 행진곡만을 작곡하던 요한 슈트라우스는 어느 기회에 오페레타에 관심을 갖게 되어 46세 때인 1871년에 첫 오페레타인 '인디고와 40인의 도적'을 만들었고 그것이 인기를 끌자 이어 계속 오페레타를 작곡하였다. 오페레타 '심플리치우스'는 요한 슈트라우스가 62세 때에 완성한 것이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1825년에 태어나서 1899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향년은 74세였다. '심플리시우스'(또는 심플리치우스)라는 단어는 '단순, 순박, 천진난만' 또는 그런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페레타 '심플리시우스'는 코부르크 왕국의 에른스트 2세에게 헌정된 작품이지만 요한 슈트라우스가 이 오페레타를 완성한 1887년 그해의 12월 17일에 비엔나의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 비엔나강변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자신이 지휘를 맡았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은 요한 슈트라우스와 인연이 많아서 그의 오페레타 '박쥐'도 이곳에서 초연되었고 '집시남작'도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이밖에도 수많은 위대한 작품들이 이 극장에서 초연을 가졌는데 예를 들면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인 '휘델리오', 프란츠 레하르의 걸작 오페레타 '메리 위도우'도 바로 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심플리시우스'의 대본은 당시 비엔나에서 최고의 오페라 대본가로 알려진 빅토르 레옹(Victor Leon: 1858-1940)이 썼다. 원작은 17세기 독일의 작가인 한스 폰 그리멜하우젠(Hans von Grimmelhausen: 1621-1676)의 Der abenteuerliche Simplicissimus(모험심 많은 심플리시시무스)이다. 이 작품은 하도 유명해서 17세기 독일 소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스 폰 그리멜하우젠은 독일의 겔른하우젠이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0살 때에 헤센 군인들에게 납치되어 부대를 전전하며 결국 30년 전쟁을 직접 경험하였다. 30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그는 슈트라스부르의 추기경인 프란츠 에곤 폰 휘르스텐버그의 휘하에 들어갔고 1665년에는 바덴 지방의 렌헨의 지방장관(magistrate)에 임명되었다. 그로부터 그는 자기의 문학적 소질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헌신하여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 렌헨에는 1679년에 그의 기념상에 세워졌다.

 

'심플리시우스'가 초연된 비엔나의 테아터 안 데어 빈. 무대와 오디토리엄

 

1887년 12월 17일의 초연은 때아닌 화재경보로 인하여 중간에서 공연을 중단해야 했다. 관중들은 6년전 링테아터에서의 대화재로 인명까지 피해를 본 사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오작동에 의한 경보였지만 화재경보가 울리자 대피하느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때 지휘를 하고 있던 요한 슈트라우스는 잘못된 화재경보인 것을 알고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서 무대 위에 있는 주인공에게 이 오페레타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로맨틱한 노래인 Ich denke gern zurück an mein entschwundnes Glück(사라진 행운으로 어서 돌아가려네)를 부르도록 했다. 감미로운 노래가 울려퍼지자 그제서야 관중들이 안정을 찾고 하나 둘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고 그래서 '심플리시우스'를 겨우 모두 공연할수 있었다고 한다. 이 멋있는 노래는 요한 슈트라우스가 나중에 인기 왈츠인 Donauweibchen(도나우 아가씨)의 주제로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행진곡인 Reitermarch(기수행진곡)와 폴카 마주르카인 Lagerlust(병원의 즐거움)에도 인용되었다. '심플리시우스'는 오늘날 불행하게도 거의 잊혀져 있는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이 오페레타에 나오는 음악들은 일부가 콘서트에서 즐겨 연주되고 있어서 '아하, 심플리시우스라는 오페레타가 있었구나'라는 코멘트를 얻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은둔자 겸 벤델린 폰 그뤼벤(The Hermit - Wendelin von Grübben: Bar)

- 심플리시우스(Simplicius: T) - 벤델린 폰 그뤼벤의 아들

- 블리센 장군(General von Vliessen: Bar)

- 힐데가르데(Hildegarde: S) - 블리센 장군의 딸

- 아르님 폰 그뤼벤(Arnim von Grübben: T) - 심플리시우스의 형

- 멜히오르(Melchior: Bar) - 점성술사

- 에바(Ebba: MS) - 스웨덴의 스파이

- 슈납스로테(Schnapslotte: S) - 전선의 병영에 있는 이동식당 주인

- 틸리(Tilly: S) - 슈납스로테의 딸

 

시기는 30년 전쟁(1618-1648)이 막바지에 이른 때이다. 서막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날 그뤼벤의 벤델린은 동생인 브루노에게 두 사람이 똑같이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절망한 브루노는 하나님을 원망한 나머지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이교도가 된다. 브루노는 30년 전쟁의 와중에서 가톨릭에 맞서서 싸우다가 불행하게도 형인 벤델린의 칼에 죽임을 당한다. 전투가 치열했기 때문에 서로는 정체를 알지 못했다. 나중에 동생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벤델린은 참회의 심정으로 아들 아르민과 부인인 블리센 백작부인을 수도원으로 보낸다. 그때 블리센 백작부인은 둘째 아들인 심플리시우스를 출산한 직후였지만 남편 벤델린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수 없어서 아르민과 함께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벤델린은 얼마 전에 태어난 심플리시우스를 죽인 후에 자기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으나 심플리시우에게 너무 지나친 처사 같아서 목숨을 부지하여 둘이서 깊은 숲으로 들어가 살기로 작정한다. 벤델린은 아들 심플리시우스만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철저하게 보호할 생각이다. 그러는 사이에 수도원으로 들어간 블리센 백작부인이 세상을 떠난다. 블리센 백작부인은 유언으로 그뤼벤 가문의 재산은 그뤼벤 가문의 사람과 블리센 가문의 여인이 결혼할 때에만 그뤼벤 가문의 사람에게 상속될수 있다고 선언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재산은 교회의 소유가 되도록 했다. 한편, 또 다른 수도원에 있던 아르민은 수도원을 떠나 가족들을 찾으러 떠난다. 아르민은 아버지 벤델린과 동생 심플리시우스가 죽었을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에 대한 증거는 없다. 이상과 같은 배경 아래 막이 오른다.

 

[1막] 주데텐 산맥의 끝자락에 있는 깊은 숲속이다. 벤델린이 속세를 떠나서 숲속에서 은둔자로 지낸지도 오랜 세월이 지난다. 벤델린은 그저 기도로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한다. 저 멀리서 나팔 소리가 들린다. 전쟁을 알리는 나팔 소리이다. 점성술사인 멜히오르가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벤델린의 명상은 방해를 받는다. 멜히오르는 에바라고 하는 스웨덴 여자 시종과 함께 나타난다. 멜히오르는 벤델린에게 그러지 않아도 별을 보니 이상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하며 벤델린이 그뤼벤 가문의 후손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들은 벤델린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멜히오르는 계속해서 벤델린에게 블리센의 힐데가르드라는 여인과 결혼하게 되어 그뤼벤 가문의 모든 재산을 보전할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멜히오르는 그뤼벤 가문에 남자 상속인이 살아 남아 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지만 그렇다고 없다는 증거도 없다고 말한다. 벤델린은 그가 몇 년 전에 심플리시우스를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때 유서처럼 만들어 놓은 서류를 멜키오르에게 보여준다. 벤델린이 그뤼벤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수 있는 서류이다. 그때 숲에 나갔던 심플리시우스가 뛰어 들어오면서 숲에서 쇠로 만든 갑옷을 입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분명히 악마일 것이라고 말한다. 실은 그들은 길을 잃은 병사들이었다. 병사들은 옷도 제멋대로 입고 행동이나 말씨도 어색한 심플리시우스가 벤델린에게 납치되어 산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병사들은 심플리시우스와 벤델린을 떼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심플리시우스에게 숲을 떠나 자기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명령한다. 숲 속의 집에 홀로 남은 벤델린은 어찌해야 할지 혼란스런 상태이지만 아무튼 아들 심플리시우스가 떠나자 크게 상심한다.

 

[2막] 올로무츠(올뮈츠)에 있는 병영이다. 이동식당의 슈납스로테가 딸 틸리를 시켜 병사들에게 이틀치의 식량을 나누어 주도록 한다. 전투가 곧 벌어질 모양이다. 그때 슈납스로테의 눈에 어떤 처음보는 어수룩한 병사가 들어온다. 슈납스로테는 지나간 20년 동안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을 눈여겨 보는 버릇이 생겼다. 혹시나 오래 전에 헤어진 남편이 아닌가 싶어서이다. 슈납스로테는 처음 보는 멜히오르를 보고 혹시 헤어진 남편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사람을 잘못 보았다. 한편, 병사들과 함께 숲에서 나온 심플리시우스는 블리센 장군의 부하들에게 맡겨진다. 심플리시우스는 비록 군복을 입고 있지만 전투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른다. 그래서 상사에게 맨날 꾸지람을 듣는다. 틸리가 그런 심플리시우스를 가엽게 여겨서 자기가 묵고 있는 천막으로 데려온다. 틸리는 심플리시우스를 진짜 병사로 만들 생각이다. 한편, 블리센 장군은 그뤼벤 남작이라는 사람이 얼마후에 온다고 하니까 프라하의 어떤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딸 힐데가르데를 불러온다. 그뤼벤 남작과 결혼시킬 생각에서이다. 힐데가르데는 아버지 블리센 장군에게 제발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시켜 주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벤델린의 큰 아들인 아르민은 오래 전에 수도원으로 들어갔다가 지금은 프라하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아르민은 우연히 힐데가르데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아르민은 힐데가르데가 전쟁터에 있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서 가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몰래 뒤따라 간다. 심플리시우스는 병영에 나타난 낯선 아르민을 보고 적군으로 오해하지만 이내 적군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무사해진다. 아르민은 힐데가르데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블리센 장군으로부터 신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블리센 장군 휘하의 병사로 입대한다. 힐데가르데는 그뤼벤 남작과 아르민이 자기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상상을 한다. 그런 힐데가르데를 아버지 블리센 장군이 별생각을 다 한다고 하면서 심하게 꾸짖는다. 힐데가르데가 위안을 얻을수 있는 사람은 이동식당의 슈납스로테뿐이다. 힐데가르데는 아르민에게 비록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될 것 같지만 마음은 아르민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르민은 그러면 솔직히 장군에게 말해서 결혼 승락을 받자고 제안한다. 이윽고 힐데가르데가 평범한 병사인 아르민의 팔을 끼고서 나타난다. 아르민이 블리센 장군에게 힐데가르데와의 결혼을 승락해 달라고 대담하게 말한다. 블리센 장군은 너무나 기가 막혀서 화만 낸다. 그러자 아르민은 자기의 가문 내력을 소개한다. 자기가 바로 그뤼벤 남작이라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블리센 장군은 뜻밖이지만 기뻐서 당장 힐데가르데와 아르민, 즉 그뤼벤 남작과의 약혼을 선언한다.

 

두 사람의 약혼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린다. 그때 심플리시우스가 점성술사인 멜히오르를 체포해서 나타난다. 심플리시우스는 병영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는 멜히오르가 적군인줄 알고 체포한 것이다. 블리센 장군은 멜히오르가 적군이 틀림없다고 믿어서 당장 교수형에 처하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멜히오르는 자기야 말로 진짜 그뤼벤 남작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벤델린의 서류를 내보인다. 그런데 불난데 부채질을 하듯 비엔나에서 급히 파견된 황실의 사절단이 도착해서 그뤼벤 남작이라는 사람의 저택에서 그가 진짜 남작이라는 사실을 증명할수 있는 몇가지 서류들을 발견했다고 전한다. 블리센 장군과 기타 힐데가르데, 멜히오르, 아르민, 그리고 심플리시우스까지 일대 혼란에 빠져 든다. 그런데 황실 사절단은 그 서류들이 적국인 스웨덴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므로 남작이라는 사람을 즉시 체포해서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철저하게 감시하라고 말한다. 멜히오르는 실은 스웨덴 간첩인 에바라는 여자와 연결이 되어 있지만 자기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한다. 아무튼 아르민과 멜히오르가 모두 체포된다. 심플리시우스는 이제 직업군인이 된다. 다른 병사들은 모두 스웨덴 군대와의 전투를 위해 떠난다.

 

[3막] 6개월후, 하나우(Hanau) 궁전의 내정이다. 벤델린은 다시는 아들 심플리시우스와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크게 절망하고 있다. 한 무리의 농부들이 심플리시우스가 너무 바보 짓을 하기 때문에 도저히 봐줄수 없다고 하며 잡으러 온다. 상사가 그런 심플리시우스를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한다. 감옥에는 멜히오르와 아르민도 아직 있다. 두 사람은 할데가르데를 두고 서로 타협을 한다. 멜히오르는 힐데가르데를 포기할 테니 그 대신에 그뤼벤 재산을 갖게 해 달라고 제안한다. 아르민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힐데가르데에게 이 결정을 전하기도 전에 비엔나에서 새로운 명령이 떨어진다. 심플리시우스라는 와일드한 젊은이를 당장 찾아서 잘 대우하라는 것이다. 심플리시우스가 바로 다름아닌 그뤼벤 남작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블리센 장군은 심플리시우스를 불러 당장 중위로 승진시키고 자기 딸 힐데가르데와 결혼하라고 명령한다. 아르민은 오래 전에 헤어진 동생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심플리시우스는 장군의 명령대로 힐데가르데와 결혼을 하겠지만 무어가 무언지 통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다. 특히 이동식당의 주인인 슈납스로테의 딸 틸리가 심플리시우스에게 자기에 대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솔직히 말하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더욱 정신이 혼미해진 형편이다.

 

멜히오르는 자기 꾀에 자기가 희생 당한 것을 알게 된다. 멜히오르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비밀리에 틸리의 어머니인 슈납스로테에게 사랑의 묘약을 주어서 그것을 아무것도 모르는 힐데가르데가 마시도록 한다. 그러면 묘약을 마신 힐데가르데가 자기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못해서 그 묘약을 슈납스로테가 마신다. 슈납스로테는 멜히오르가 갇혀 있는 감방으로 가서 그가 옛날에 헤어진 남편이라고 주장하면서 멜히오르에게 육탄공세를 벌인다. 멜히오르는 슈납스로테가 집요하게 그렇게 주장하니까 할수 없이 그렇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 사실 천체도를 보니 자기가 슈납스로테의 남편이라는 징조가 보였다고 설명한다. 전투에 나갔던 블리센 장군은 스웨덴 군대를 크게 무찌르고 개선하여 돌아온다. 장군은 스웨덴 간첩인 에바를 체포해서 데려 온다. 에바는 비엔나에 있는 남작의 집에서 발견된 수상한 문서들을 만든 장본인으로 밝혀진다. 그 문서들은 에바가 멜히오르에게 보낸 것이었다. 아르민의 누명이 벗겨져서 석방된다. 잠시후 심플리시우스가 또 다른 스웨덴 병사들을 포로로 잡아서 온다. 블리센 장군과 부하 병사들은 한결같이 심플리시우스의 용맹함을 칭찬한다. 장군은 스웨덴 포로들에게 아군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한다. 스웨덴 포로들이 노래를 부른다. 아무 의미도 없는 기나긴 전쟁에서 희생당한 병사들을 추모하는 노래이다. 그 노래를 들은 심플리시우스는 자기가 과연 무엇 때문에 전쟁터에 나와서 전투에 참가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갈등에 싸인다. 심플리시우스는 숲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숲에서 어떤 농부를 만나는데 그가 바로 아버지 벤델린이었다. 벤델린은 아들 심플리시우스가 떠난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낙심 중에 살았지만 심플리시우스를 다시 만나게 되어 말할수 없이 기뻐한다. 틸리가 심플리시우스를 사랑하여서 따라온다. 아르민과 힐데가르데가 행복으로 결합한다.

 

[레코딩]

2000년에 EMI 클래식이 발매한 음반이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란츠 벨저 뫼스트(Franz Welser-Möst)가 취리히 오페라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하였고 미하엘 볼레(Michael Volle), 엘리자베트 마그누손(Elizabeth Magnuson), 마르틴 치세트(Martin Zysset), 올리버 비드머(Oliver Widmer) 등이 취입하였다.  

 

[원작인 심플리시우스 심플리시시무스](Simplicius Simplicissimus)

독일어로는 Der abenteuerliche Simplicissimus Teutsch 라고 한다. 1668년에 한스 야콥 크리스토펠 폰 그리멜스하우젠(Hans Jakob Christoffel von Grimmelshausen)이 쓴 바로크 스타일의 악한소설이다. 악한소설이라는 것은 악한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말한다. 이 소설의 배경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꼭 30년 동안 유럽을 휩쓸어서 수많은 나라들, 특히 독일을 황폐시켰던 저 유명한 30년 전쟁이다. 이 소설은 독얼어로 된 최초의 모험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풀 타이틀은 상당히 길다. 영어로 번역하면 The life of an odd vagarant named Melchior Sternfels von Fuchshaim: namely where and in what manner he came into the world, what he saw, learned, experienced, and endured therein: also why he again left it of his own free will.'이다. 이걸 또 번역하면 '멜히오르 슈테른펠스 폰 푹스하임이라고 불리는 어떤 괴상한 방랑자의 생애: 그가 어디서 무슨 방법으로 세상에 나왔으며 무엇을 보고 배우고 경험했으며 어떻게 견디며 지냈는지, 그리고 어째서 자기의 자유 의지에 따라 세상을 등졌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의 대강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오페라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소설은 주인공인 심플리시우스의 입장에서 얘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소설에서 심플리시우스는 불한당 또는 악한으로 등장한다. 전형적인 악한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는 30년 전쟁 기간 중에 신성로마제국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혼돈한 세상을 경험한다. 그는 어떤 농부의 가정에서 자라난다. 그러다가 전쟁 중에 어떤 용기병들이 마을에 들어와서 약탈을 하는 바람에 식구들과 헤어지게 되고 이어 어떤 은둔자의 도움을 받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살게 된다. 은둔자는 그에게 읽고 쓰는 법과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가르쳐 준다. 은둔자는 그의 이름을 심플리시우스라고 짓는다. 그가 자기의 원래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순진하고 단순하기 때문이다. 얼마후 은둔자가 세상을 떠나자 심플리시우스는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해야 했다. 그는 아직 젊은 나이에 군대에 징집을 당하여 들어간다. 그로부터 그는 약탈도 하고 전투에서 승리도 한다. 그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방탕하여 여자들과 난잡하게 어울리기도 한다. 그리고 커다란 저택에서 귀족과 같은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는 실로 여러가지를 경험한다. 그는 여행도 자주 한다. 프랑스에도 갔었고 러시아에도 갔었다. 그리고 남자 인어들이 살고 있는 신화 속의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소설은 심플리시우스가 세상 모든 것이 부패했다고 탄식하며 세상을 거부하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은둔자 생활을 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또 다른 심플리시우스 심플리시시무스]

'심플리시우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또 다른 오페라가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심플리시우스'가 선을 보인 때로부터 60여년이 지난 1948년에 독일 뮌헨 출신의 칼 아마데우스 하르트만(Karl Amadeus Hartmann: 1905-1963)이 작곡한 오페라 '심플리시우스 심플리시시무스'(Simplicius Simplicissimus)이다. 실내 오페라이지만 작곡자 자신은 그의 작품을 '반전오페라'(Anti-war opera)라고 불렀다. 세상에서 반전오페라라고 불리는 것은 아마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작곡은 1930년대 중반에 이루어졌지만 초연은 상당히 후에 이루어졌다. 대본은 작곡자의 스승인 헤르만 셰르헨(Hermann Scherchen)이 썼다. 오프닝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1618년에 독일에는 1천 2백만명이 살았다.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났다. 1648년에는 4백만명만이 살아 남았다.' '심플리시우스 심플리시시무스'는 2004년에 수정본을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가 초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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