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레타 철저분석/오페레타의 세계

레이날도 한의 '시불레트'

정준극 2016. 1. 6. 20:40

시불레트(Ciboulette)

레이날도 한의 1923년도 오페레타

 

레이날도 한

 

레이날도 한(Reynaldo Hahn: 1874-1947)은 베네주엘라의 카라카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태계 독일인으로서 엔지니어였다. 어머니는 스페인의 바스크 출신의 베네주엘라인이었다. 레이날도는 세살 때에 부모를 따라 파리로 왔으며 그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파리에서 살았다. 레이날도 한은 다른 음악의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는 여덟살 때에 파리의 상류층 살롱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이어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레이날도 한이 작곡하기 시작한 노래는 프랑스의 고전적인 전통을 가진 이른바 멜로디(melodie)였다. 파리음악원을 나온 그는 작곡가, 지휘자, 음악평론가, 극장감독, 그리고 살롱 싱거로서 명성을 누렸다. 레이날도 한은 여러 장르의 작품을 작곡했다. 그중에서 오페레타, 발레음악, 오페라, 판토마임음악 등 무대음악은 약 30편에 이른다. 그중에는 흥미롭게도 모차르트의 생애를 조명한 코미디 뮤지컬 '모차르트'가 있으며 화가 드가의 이야기를 담은 스펙터클 무곡도 있다. 오페레타로서는 '시불레트'(Ciboulette)가 대표적이다. 프랑스어에서 Ciboulette는 골파를 말한다. 하지만 레이날도 한의 오페레타에서는 매력적인 시골처녀의 이름이다. 어째서 여자의 이름을 골파라고 지었을까? 오페레타 '시불레트'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작품인가?

 

오페라 코미크의 무대. 시불레트에 에바 가니자트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가는지 모르지만, 혹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에서 무일푼의 시인인 로돌포는 사랑하는 미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조사해 본 결과, 로돌포는 시를 쓰는 것을 포기하고 관료가 되어서 얼마 후에는 파리의 대표적인 식료품 시장인 레잘레(Les Halles)의 총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레이날도 한의 1923년도 오페레타인 '시불레트'는 20세기 당시에 파리에서 가장 인기를 끈 오페레타 중의 하나였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심심하면 '시불레트'에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잠시 시간이 흐르자 모두들 건망증에 걸렸는지 '시불레트'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극히 최근에 와서야 '아하 시불레트라는 오페레타가 있었지'라면서 기억을 되살리게 되었다. 그러면 '라 보엠'과는 무슨 연관이 있다고 얘기를 꺼냈던 것인가? '라 보엠'의 로돌포가 어떻게 지내는지 까많게 잊고 있다가 최근에 들어와서야 '아하 시인 로돌포는 그후 어찌되었는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는 것이 연관성이라면 연관성이라고 하겠다. 그나저나 레이날도 한이라는 작곡가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서 잠시 소개코자 한다. 레이날도 한(1857-1947)은 베네주엘라의 카라카스에서 태어났다. 그러다가 세살 때에 부모님과 함게 파리로 왔다. 작곡은 쥘르 마스네에게서 배웠다. 레이날도 한은 여러 모로 보아서 독일 출신의 작곡가인 야콥 에버스트(Jacob Eberst)에 대응할 만한 사람이었다. 야콥 에버스트는 프랑스에서 자크 오펜바흐라고 알려진 사람이었다. 자크 오펜바흐는 비록 독일 사람이지만 파리에 와서 파리 사람들의 유머와 위트, 미묘한 생활 스타일을 꿰뚫게 되어 그런 사항들을 그의 작품들에 솔직하게 반영하였다. 마찬가지로 레이날도 한도 기본적으로 파리 사람은 아니지만 파리에서 파리 사람들의 유머와 위트, 미묘한 생활 스타일을 꿰뚫어 그런 사항들을 자기의 작품들에 솔직하게 반영한 사람이다. 그러니 레이날도 한의 오페레타가 오늘날의 파리 사람들에게 감미로운 추억을 심어 주기에 충분한 것이 아닐수 없다. 레이날도 한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평생 친구 겸 마치 애인과 같은 관계였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의 소설 '장 상퇴일'(Jean Santeuil)에서 주인공인 앙리 드 흐베이용(Henri de Reveillon)을 레이날도 한에 비유하여 그렸을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가까웠다.

 

시불레트


레이날도 한은 전통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은 현대의 추세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작품에 폭스트로트와 재즈의 리듬을 인용하기를 즐겨 했지만 레이날도 한은 그런 현대적인 요소들을 사용하기 보다는 19세기에서처럼 왈츠와 로맨틱한 듀엣, 그랜드한 피날레 등을 중시하였다. 레이날도 한의 오페레타의 줄거리들은 오펜바흐의 경우에서 처럼 조금은 황당무계한 면이 있다. 사리에 맞지 않고 그저 아름다운 로맨틱이면 족했다. '시불레트'는 현대판 '룰루'와 비슷한 면이 있다.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시골 아가씨인 시불레트는 비록 얼마 안되는 양이지만 시골에서 재배하여 수확한 농산물들을 팔기 위해 파리의 가락시장인 레잘레(Les Halle)를 찾아간다. 예쁘장하게 생기고 명랑한 시불레트는 레잘레에서 뭇 사람들의 관심과 찬사를 한 몸에 받는다. 어느덧 시불레트에게 사랑이니 무어니를 속삭이는 사람들이 여덟 명이나 생겼다. 그러나 시불레트는 그런 예찬에 만족하지 않는다. 시불레트는 타고난 욕망의 소유자였다. 시불레트가 관심을 둔 청년은 안토닌 드 무르멜롱(Antonin de Mourmelon)이라는 귀족집 자제였다. 이름에 멜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을 보니 역시 위트가 엿보이는 줄거리이다. 시불레트는 자기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점쟁이를 찾아간다. 점쟁이는 시불레트에게 양배추 더미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오페라 코미크 무대. 해피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