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마스네의 '라호르의 왕' - 117

정준극 2014. 6. 27. 21:29

라호르의 왕(Le roi de Lahore) - The King of Lahore

쥘르 마스네의 5막 오페라 - 마스네의 첫번째 성공작

인도를 배경으로 삼은 '오르페오' 버전

 

'라호르의 왕' 초연에서 시타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 조세핀 드 레츠케. 1877년

          

19세기말, 유럽인들의 동양(오리엔트)에 대한 호기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때에 쥘르 마스네(Jules Massenet: 1842-1912)의 ‘라호르의 왕’이 파리에서 선을 보였다. 1877년 4월 27일 파리의 팔레 갸르니에(파리국립오페라극장)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예상대로 성공이었다. 이국적인 세팅과 힌두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이어 '라호르의 왕'은 그 해에 이탈리아의 토리노, 베네치아, 로마에서 공연되었고 1879년에는 런던의 로얄 오페라 하우스에서, 1906년에는 몬테 칼로에서 공연되어 마스네의 명성을 보다 널리 전파하였다. 1924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될 즈음에는 마스네 스타일의 로맨틱 오페라가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하던 때였다. 그래서 관객이 많이 오지 않자 몇번 공연을 마치고 막을 내려야 했다. 그후 '라호르의 왕'은 그런 오페라가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있었다. 그러다가 파리에서의 초연으로부터 꼭 100년 후인 1977년 캐나다의 밴쿠버 오페라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라호르의 왕'을 대대적으로 무대에 올렸다. 세계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호주 출신의 조앤 서덜랜드를 여주인공인 시타의 역할을 맡도록 초빙하였다. 지휘는 조앤 서덜랜드의 부군인 호주의 리챠드 보닝을 초빙하였다. 대성공이었다. 밴쿠버의 제작된 '라호르의 왕'은 이어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공연을 하였고 역시 대성공을 거두었다. 2005년에는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이 공연을 가졌다. 그로부터 다른 오페라 극장들도 '라호르의 왕'의 리바이벌을 위해 서서히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형편이다.

 

무굴제국의 천년 수도였으며 현재는 파키스탄 편자브지방의 주도로서 카라치에 이어 파키스탄 제2의 도시인 라호르의 일부 모습. 라호르는 '정원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고 넓은 정원들이 산재하여 있다.

 

5막의 '라호르의 왕'은 대본을 당대의 루이 가예(Louis Gallet: 1835-1898)가 썼다. 루이 가예는 마스네는 물론, 비제와 생 상스를 위해서도 여러 오페라의 대본을 쓴 사람이다. 라호르는 현재는 파키스탄 제2의 도시이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에는 당연히 인도의 도시였다. 라호르는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화의 도시이다. 오랜기간 동안 무굴제국의 수도였다. 말하자면 인도대륙에 이슬람을 전파한 본거지였다. 이 오페라의 이야기가 시작될 즈음에는 라호르가 독립왕국이었고 힌두교를 신봉하고 있었다. 알림이 라호르왕국의 왕이었다. 당시에는 무슬림들이 라호르왕국을 계속 침범하여 무슬림 왕국으로 만들고자 하던 때였다.

등장인물들은, 라호르의 왕인 알림(Alim: T), 인드라 사원의 여사제인 시타(Sita: S), 알림 왕의 장관이었으나 왕좌를 찬탈한 신디아(Scindia: Bar), 알림왕의 하인인 칼레드(Kaled: MS), 인드라 신전의 고승인 티무르(Timour: B), 인드라 신(Indra: B), 그리고 병사들, 남녀 사제들, 백성들, 하늘의 천사들이 등장하며 프랑스 오페라로서 발레가 빠지면 안되므로 천사들(압사라: Apsaras)과 님프(女精)들의 발레가 나온다. 참고로 인드라는 힌두교에서 말하는 신 중의 신으로 하늘나라를 다스리며 위대한 전사를 상징한다. 인드라는 코끼리를 타고 다니며 손에는 마치 제우스처럼 벽력을 들고 있어서 번개와 천둥과 비를 내려보낸다.

 

인드라 신전의 여사제인 시타(조앤 서덜랜드).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1977.

 

[1막] 라호르의 백성들이 인드라 신전의 고승인 티무르의 인도아래 라호르가 무슬림 군대의 침공으로부터 무사하게 해 달라고 기구하고 있다. 마무드가 이끄는 무슬림 군대는 라호르의 외곽까지 진격해 와서 진을 치고 있다. 인드라 신전의 고승인 티무르가 백성들을 위로하며 인드라 신이 결코 라호르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알림 왕의 조카인 시타는 인드라 신전의 여사제로서 헌신하고 있다. 알림 왕은 아름다운 시타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 알림 왕의 장관인 신디아가  티무르에게 인드라 신전을 섬기는 여사제 중의 하나가 문제가 있어서 인드라 신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되므로 어서 그 여사제를 신전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티무르가 여사제를 추방하는 문제는 오직 왕만이 요구할수 있는 사항이라고 대답하자 신디아는 어떤 남자가 은밀히 신전을 찾아와서 시타를 만나고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시타를 신에 대한 서약을 깨트린 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침내 티무르도 어쩔수가 없어서 신디아와 함께 그 여사제를 만나러 신전 안으로 들어간다. 티무르와 신디아는 시타에게 그 남자가 누구냐고 다그치지만 시타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인드라 신전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여사제들

 

그러자 신디아는 돌연 친절한 태도로 시타에게 이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므로 더 이상 신전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신디아의 속셈을 알지 못하는 시타는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기뻐한다. 그러나 잠시후 신디아가 시타에게 자기가 시타와 결혼하고 싶다고 밝히자 시타는 크게 실망하여서 신디아를 신전에서 쫓아낸다. 신디아는 분노하여서 시타가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말하고 그 청년을 찾아서 함께 죄를 묻겠다고 선언한다. 사제들도 신디아의 말에 동조하면서 시타에게 저녁기도의 노래를 부르면 그 청년이 시타가 신전 안에 있는 것을 알고 안심하고 신전안에 들어올 것이므로 그때 체포하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시타는 더 이상 속일수가 없어서 고승 티무르에게 실은 언제부터인가 어떤 청년이 자기를 만나러 신전을 찾아 오는데 만나서 이야기는 나누었지만 손이라도 한번 잡아 본 일은 전혀 없다고 고백한다. 신디아는 시타와 시타를 찾아오는 미지의 청년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신디아는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시타가 여사제로서 서약을 어겼으므로 죽임을 당해야 마땅하다고 선언한다. 그때 라호르의 왕인 알림이 비밀 문을 통해서 나타난다. 알림은 자기가 바로 시타를 사모하고 있는 남자라고 밝히면서 시타를 옹호해 준다. 티무르는 알림에게 여사제를 사랑의 번뇌 속에 빠트리는 것은 죄악이므로 속죄를 해야 하며 속죄를 하는 길은 마무드의 진지로 진격하여서 전투를 하여 적군을 물리치는 길뿐이라고 설명한다. 사악한 신디아는 알림이 적진을 향해 진격할 때에 부근에 자기의 심복 병사들을 매복해 두었다가 왕을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악의 화신과 같은 신디아

 

[2막] 톨 사막에 있는 알림 군대의 병영이다. 시타가 알림이 걱정되어서 알림의 진지를 몰래 찾아온다. 병사들이 한가롭게 장기를 두며 지내고 있다. 시타는 전투에 나간 알림 왕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얼마후 패전한 병사들이 진지로 돌아온다. 병사들은 알림 왕이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어서 죽어가고 있다고 전한다. 그 말을 들은 신디아가 그 기회를 이용해서 권력을 잡을 생각을 한다. 그러나 얼마후 죽어가고 있다고 하던 알림 왕이 돌아온다. 하지만 몹씨 지쳐있고 창백한 얼굴이다. 알림 왕은 군대를 정비하여 다시 공격에 나서자고 주장하지만 신디아에게 설득을 당한 병사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결국 알림 왕은 시타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 [3막] 알림 왕은 죽어서 영혼이 천국에 올라간다. 압사라들이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다. 알림은 천국의 주인인 인드라에게 시타에게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인드라가 알림의 마음에 감동하여 그를 환생시켜준다. 그러나 왕으로서가 아니라 평민으로서 세상에 내려보낸다. 인드라는 새로운 알림의 생명이 시타의 생명과 연결되도록 한다. 즉, 어느 한 쪽이 죽게 되면 다른 한 쪽도 운명을 함께 하도록 한 것이다. 알림은 라호르 왕궁의 계단에 새로운 인간으로 환생한다.

 

시타와 알림

 

[4막] 시타가 왕의 죽음을 애통해 하고 있다. 시타는 신디아와는 결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한편, 알림은 세상으로 환생하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 알림은 걸인과 같은 모습이지만 시타가 보고 싶어서 우선 왕궁을 찾아간다. 알림은 왕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마침 왕궁으로 들어가는 신디아를 만난다. 신디아는 시타를  왕궁으로 오라고 해서 최후 담판을 지을 생각이다. 왕궁으로 들어가는 계단 주변에 있던 백성들은 자기들 처럼 남루한 복장의 어떤 청년이 죽은 알림 왕과 똑같이 생겼고 목소리도 똑같은데 대하여 무척 놀란다. 거지 차림의 알림이 시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왔다고 하며 시타가 자기의 사랑을 받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모습을 본 신디아가 당장 거지 차림의 알림을 체포해서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인드라 신의 섭리를 알아 챈 티무르가 중간에 나서서 거지 알림을 신전 안으로 재빨리 도피시킨다. 그때 가마를 탄 시타가 궁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온다. 시타는 무심코 알림을 지나친다. [5막] 인드라의 지성소이다. 사제와 여사제들만이 들어올수 있는 곳이다. 왕궁에서 빠져나와 이곳으로 도피해온 시타는 아무래도 신디아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제들의 저녁기도 소리가 들린다. 시타는 과연 죽음을 택해야 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영광을 위해 악의 세력에 굴복해야 하는지를 놓고 갈등한다. 그때 뜻밖에도 비밀 통로를 통해 알림이 나타난다. 알림은 너무나 놀라서 어찌할줄 모르고 있는 시타에게 함께 멀리 떠나자고 말한다. 두 사람이 막 떠나려고 할 때에 신디아가 병사들을 이끌고 도착한다. 신디아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꼼짝 못하게 된 시타는 단검을 꺼내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시타가 목숨을 끊자 인드라 신의 선언대로 알림도 시타의 옆에서 숨을 거둔다. 아름다운 천국의 모습이 환상으로 나타난다. 시타와 알림이 저 세상 사람이 되자 신디아는 그동안의 자기의 죄악을 크게 뉘우친다.

 

슬픔에 젖어 있는 시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