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드보르작의 '반다' - 120

정준극 2014. 7. 6. 23:31

반다(Vanda) - Wanda

안토닌 드보르작의 네번째 오페라

체코가 아닌 폴란드 전설 바탕

 

안토닌 드보르작

 

드보르작이라고 하면 '신세계 교향곡' 또는 '유모레스크'를 생각하게 되며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드보르작은 오페라를 무려 아홉 편이나 작곡했다. '루살카'는 대표작이다. 오페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 루살카! 달에 붙이는 노래?'라면서 아는 체를 할 것이다. 하지만 드보르작의 '반다'라고 말하면 '그게 무언데?'라고 말할 것이 보통이다. '반다'는 드보르작의 전체 9편의 오페라 중에서 네번째이다. '반다'는 드보르작이 34세이던 1875년에 완성한 오페라이다. '반다'는 음악이 컬러풀하고 합창이 찬란하며 그리고 대관식, 병사들의 전투, 이교도의 의식, 백성들의 찬가 등 상당히 웅장한 장면이 여러번 나오는 작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겨우 몇 번밖에 공연되지 않았다는 것은 의아스런 일이다. 더구나 체코 이외의 나라들, 특히 독일어 지역에서 공연된 일은 없으며 체코에서도 지금까지 겨우 한 손가락으로 셀수 있을 정도로 공연되었을 뿐이다.

 

'반다'는 11세기에 폴란드 왕의 딸의 이름이다. 당시 폴란드는 아직 나라로서 형성되지 못하고 있었다. 폴란드 땅에 사람들이 모여 들어 마을을 이루고 정착하기 시작하자 주변에 있는 힘센 나라들은 은근히 경계하고 질투하였다. 폴란드 사람들이 나라를 이루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서 이다. 더구나 당시 폴란드 사람들은 기독교를 몰라서 아직 우상 숭배를 하고 있었다. 폴란드 사람들은 자연신들을 숭배했다. 예를 들면 사계절의 신이며 전쟁의 신 겸 풍요의 신인 스반토비트(Svantovit), 어둠의 신인 체르노보그(Tschernobog) 등이다. 그런고로 이웃 기독교 강대국들은 폴란드를 점령해서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을 하나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폴란드 정착민들의 왕이라고 할수 있는 크라크(Krak)가 뜻하지 아니하게 세상을 떠나자 그의 딸인 반다가 왕좌에 오른다. 백성들은 폴란드의 앞날을 위해서 힘세고 용감한 사람이 왕이 되어서 자기들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 백성들은 반다가 그런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반다는 어릴 때부터 친구처럼 지내온 슬라보이(Slavoj)라는 청년을 사랑하고 있다. 슬라보이는 왕족도 아니고 귀족 출신도 아닌 사람이다. 하지만 용감하고 존경받는 기사이다. 백성들은 슬라보이가 용감하고 선량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반다와 결혼하여 왕이 되기를 희망한다. 슬라보이도 자기를 지지하는 백성들과 함께 반다에게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고 약속한다.

 

독일의 왕자인 로데리히(Roderich)가 반다의 아름다움과 폴란드의 여왕이라는 사실 때문에 반다에게 청혼을 한다. 로데리히는 만일 청혼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군대를 이끌고 와서 폴란드를 점령하겠다고 위협한다. 독일은 반다와의 결혼을 통해서 폴란드를 지배하려는 속셈이다. 반다는 폴란드가 독일에게 종속이 될 것 같아서 로데리히의 청혼을 분연히 거절한다. 이에 독일은 막강한 군사를 보내어 폴란드를 단숨에 점령코자 한다. 반다는 나라와 백성들을 독일의 창칼로부터 보호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지만 여자로서 전쟁에 나가서 싸우지도 못하기 때문에 신들에게 소원을 간청할수 밖에 없었다. 반다는 신들에게 만일 독일 침략군을 물리치게 해 준다면 자기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서약한다. 반다가 믿는 신들이 반다의 소원을 들어주어서 그랬는지 또는 폴란드 백성들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힘을 합쳐서 침략군에게 대항하였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폴란드 백성들은 독일 침략군을 물리치고 크게 승리한다. 이제 남은 것은 반다가 신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 뿐이다. 그리하여 반다가 비스툴라(Vistula: Weichsel) 강의 푸르른 물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이 오페라 '반다'의 내용이다. 어떤 전설에는 반다가 독일과의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신들에게 이기게 해 달라고 빌고 미리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고 되어 있다. 반다가 투신하자 신들이 반다의 애국심을 높이 치하하여서 폴란드가 승전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다'라는 아름다운 공주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반다'는 중세로부터 폴란드 백성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반다에 대한 전설은 오늘날 크라코브(Krakow: Vavel) 일대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다.

 

반다가 신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스툴라 강으로 뛰어 들려고 하자 그를 따르는 여인들이 반다를 만류하고 있는 그림.

 

'반다'의 원작은 폴란드의 율리안 수르치키(Julian Surzycki)의 소설이며 이를 체코의 바클라브 베네스 수마브스키(Vaclav Benes-Sumavsky)와 프란티세크 차크레이스(Frantisek Zakrejs)가 공동으로 대본을 만들었다. 하지만 누가 대본을 썼는지는 분명치 않아서 아직도 논난이 되고 있다. 오페라 '반다'는 1876년 4월 17일 프라하의 임시극장(Provisional Theatre)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반다(S), 보체나(Bozena: MS), 호메나(Homena: Cont), 루미르(Lumir: Bar), 로데리크(Roderick: Bar), 슬라보이(Slavoj: T), 벨리슬라브(Velislav: T), 브세라드(Vserad: T), 비토미르(Vitomir: T), 전령(T), 고승(B) 등이다. '반다'의 스코어는 2차 대전 중 분실되었다. 그러다가 미국의 음악학자인 알란 하우첸스(Alan Houtchens)가 이곳저곳에서 수집한 피아노 반주 파트의 악보와 오케스트라 파트 일부와 대본 일부등을 정리해서 하나의 완성된 스코어를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반다'가 과연 드보르작의 작품인지 의심스럽다는 얘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반다와 슬라보이의 사랑의 음악은 별로 감각적이 아니라는 얘기이며 3막에서 마녀들의 춤도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피날레에서 반다가 강물에 뛰어 들때의 음악도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드보르작의 천재성을 볼수 있는 대목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1막의 로망스이다. 드보르작의 테너 아리아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곡이다. 그리고 1막과 2막의 피날레에서 볼수 있는 장대한 음악과 장면은 드보르작의 또 다른 웅대한 면모이다. 결론적으로 여러 평론가들이 오페라 '반다'야 말로 매력적인 메로디로 넘쳐 있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19세기 체코 작곡가가 중세 폴란드 왕의 딸에 대한 오페라를 작곡하게 되었던 것일까? 드보르작의 고향인 보헤미아는 당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보헤미아는 역사적으로 인근 열강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부터는 체코가 좀 더 독립적이 되었다. 체코 국민들은 이같은 분위기에 고조되어서 프라하에 체코 오페라를 위한 국립극장을 짓기로 했다. 그러나 국립오페라극장의 건설은 여러 사정으로 완공이 지연되었다. 프라하 사람들은 국립극장이 완공되기 전에 사용할수 있는 임시극장을 짓기로 했다. 그래서 1862년에 임시극장이 문을 열어 1881년 국립극장이 완성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체코의 국민 작곡가인 베르디치 스메타나는 1866년부터 1874년까지 프라하 임시극장의 수석음악감독으로 봉사했다. 안토닌 드보르작은 임시극장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때 스메타나는 신축 국립극장이 완성되면 개관기념으로 공연할 '리부싸'를 막 완성했다. 리부싸(Libussa: 리뷰세)는 프라하를 창설한 인물이므로 그에 대한 오페라는 의미가 깊다고 생각했다. 오페라 '리부싸'는 이미 완성되었지만 국립극장은 언제 완공될지 모르는 형편이었다. 임시극장에서도 무대에 올릴 새로운 오페라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그래서 스메타나는 드보르작에게 새로운 오페라를 하나 만들어서 임시극장에서 공연하도록 부탁했다. 드보르작도 체코 국민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오페라를 새로 만들고 싶어서 주제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반다'가 만들어지고 1876년 4월에 초연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정확히 말하자면 '반다'는 프라하 국립극장이 아니라 프라하 임시 국립극장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그런데 '반다'는 프라하 임시극장에서 초연을 가진 후 망각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 이유는 주제가 체코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웃나라 폴란드의 신화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반다가 죽은 사슴을 보고 슬퍼하고 있다.